성경 원문 강해

[헬라어 성경 강해 요한일서]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요일 1:1-4)

엘벧엘 2021. 10. 4.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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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요한은 요한일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대하여 우리가 눈으로 보았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받은 백성은 예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삼위일체로 함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심으로 원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요일 1:1-4)

 

1절 호 엔 아프 아르케스 호 아케코아멘 호 헤오라카멘 토이스 오프달모이스 헤몬 호 에데아사메다 카이 하이 케이레스 헤몬 엡셀라페산 페리 투 로구 테스 조에스

=====1:1

  태초부터 있는. - 이것은 1:1과 병행된 표현으로 생명의 말씀이 영원 전에 선재하였음을 암시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하나로 영원 전부터 선재하셨으며(요 10:30; 13:3) 복음이 하나님께 속하여 태초부터 존재하였음을  시사한다.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 헬라어 본문상 본절은 주절이 문장의 맨 끝에 오는 일종의 도치 문으로 네 개의 관계절, 즉 '태초부터 있던 것', '우리가 들었던 것', '우리가 눈으로 보았던 것', '우리가 주목하고 손으로 만진 것'이 '생명의 말씀'을 수식하고 있다. 요한은 이러한 매우 복잡한 표현을 통하여 자신의 격렬한 감정을 적절히  언어화시키고 있다. 본문에서 가장 핵심을 이루고 있는 '생명의 말씀'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첫째로, 영원하시고 인격적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현현을 의미한다. 즉 성육하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요 1:1). 둘째로, 복음을 의미한다. '생명의'에 해당하는 헬라어 '조에스'는 '말씀의 내용'(행 5:20; 빌 2:16)을 의미하기도 하고, '생명을 얻게 하는 것'(요 8:12; 6:35, 48:4:10,11; 계 21:6; 22:1)을 가리킨다. 이러한 두 가지 의미는 서로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신 예수에 대한 본질적인 선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 '들은 바요'와 '본 바요'는 완료 시제이다. 이것은 생명의 말씀이 예수 안에서 마침내 실현되었으며 그것을 사도들이 예수께서 설교하셨을 때 듣고, 예수께서 사역하셨을 때 눈으로 보고 확인하였음을 의미한다(히 1:1, 2). 이 '듣고'와 '본'은 요한복음에서 '믿음'과 연결된다(요 10:27 ; 20:29). 한편 '만진 바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여살라페산')은 부정 과거 시제로 과거 한때 직접 만져서 느낀 것을 가리킨다. 요한은 이러한 관계절, 즉 '들은 바요'.'본 바요', '만진 바라'는 표현을 통해서 생명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셔서 역사 속에 현현하신 하나님을 드러내셨으며 그의 사역과 설교를 통해 자신 안에 실현될 복음을 전파하셨음을 강조한다.

2절 카이 헤 조에 에파네로데 카이 헤오라카멘 카이 마르튀루멘 카이 아팡겔로멘 휘민 텐 조엔 텐 아이오니온 헤티스 엔 프로스 톤 파테라 카이 에파네로데 헤민

=====1:2

 본절은 일종의 삽입 어구로 앞절의 내용을 확대시킨 것이다. 헬라어 본절 처음에 나타나는 접속사 '카이'는 이어지는 3, 4절을 소개하는 데에  사용되고 있으며, 본서 내에 자주 나타나는 표현 방법이다(2:27 ; 3:19-24).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 '생명'으로 번역되는 헬라어 '헤 조에'는 1절에서처럼 예수 자신의 존재와 그의 복음을 가리킨다. 한편 '나타내신 바'는 예수의 지상 사역을 의미한다. 즉 그의 성육신과 십자가 상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킨다. 이는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인 생명이 역사적으로 예수 안에서 계시되었음을 시사한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계시하시지 않는 한 인간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고 너희에게 전하노니. -  본문은 세동사, 즉 '보았고', '증거 하고', '전하노니'를 통하여 경험의 세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보았고'의 헬라어 '헤오라카멘'은 그 진의와 중요성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살펴본다'는 의미로서 요한의 개인적 경험을 시사하며, '증거 하여'는 요한 자신이 경험한 내용을 개인적으로 전할 뿐만 아니라 사도로서 공적으로 선포하였음을 나타낸다.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 헬라어 본문에는 바로 앞에 '영원한 생명'이 자리 잡고 있어서 본절 처음에 나타난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와 같은 의미의 반복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보다 발전된 표현으로 '생명'을 '영원한 생명'으로 부각시키고 동시에 생명의 결정적인 근원으로 '아버지와 함께'를 제시한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영원한 생명'은 생명의 길이가 영원함을 뜻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생명이 갖고 있는 신적인 성격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가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 본절에서 요한은 생명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궁극적인 목적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사귐'이다. 요한이 본절에서 '사귐'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행위로써 표현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사상과 연결된다(2:3). '사귐'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 코이노니아'는 문자적으로 '공동 소유', '협동'을 뜻하나 본절에서는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공동자금을 모금한 '서로 나눔'의 의미(롬 15:27; 고전 9:23; 고후 13:13) 둘 다를 함축한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 본문은 1절 전반부부터 암시되어 온 예수의 이름을 명백하게 소개하고 있다. 요한은 본문에서 그리스도인의 '사귐'의 본질이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임을 분명히 제시함으로 그 사귐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즉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고 영원한

생명이시며 동시에 온전히 하나님과 하나이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함께하는 것임을 시사한다(2:1 ; 3:23 ; 4:2 ; 5:6, 20, Smalley, Wilder).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강조는 수신자들 사이에 퍼져 있었던 예수의 인성이나 신성을 경시하는 이단적인 가르침에 대한 경고를 내포한다(고전 1:9, Smalley, Stott).

3절 호 헤오라카멘 카이 아케코아멘 아팡겔로멘 휘민 히나 카이 휘메이스 코이노니안 에케테 메드 헤몬 카이 헤 코이노니아 데 헤 헤메테라 메타 투 파트로스 카이 메타 투 휘우 아우투 이에수 크리스투

4절 카이 타우타 그라포멘 휘민 히나 헤 카라 헤몬 에 페플레로메네    

=====1:3,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다. - 본문은 요 15:11을 반영한다. '기쁨'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귐', 또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하는 사귐의 결과이며 동시에 성령의 열매이다(갈 5:22, Smalley, Stott).  이러한 기쁨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사귐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현재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불완전하므로 기쁨 또한 불완전하다. 그러나 불완전한 사귐 가운데 누리는 완전치 못한 기쁨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궁극적인 사귐과 기쁨의 표징이며 보증이다. 그러기에 이 기쁨의 소망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헌신적인 사귐 가운데 기쁨을 누려야만 하는 것이다.

[헬라어 성경 강해 베드로후서] 성도에게 약속한 하나님 나라(벧후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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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사도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을 주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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