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전도서 4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더 나은 삶에 대해서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전도서는 솔로몬 왕이 인생을 누리고 난 후에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고백하여 기록한 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지 않고 인생을 허비하면 결국 인생의 마지막에 후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주님을 잘 섬김으로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갖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더 나은 삶에 대해서(전 4:1)
전 4:1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보았도다 보라 학대받는 자들의 눈물 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모든 인간은 지금의 삶보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각 사람이 비록 추구하는 삶이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보다 나은 삶을 향해 걸어가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물질적으로 더 나은 삶을 향해 무섭게 질주하고 있다. 또 어떤 이는 지식적으로 더 나은 것을 얻기 위해 밤을 새우는 줄 모르고 탐구의 노력이 대단하다. 그러면 당신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성경은 더 나은 삶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첫째, 자신의 일에 대해서
당신은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참으로 만족하고 있는가 아니면 어떤 상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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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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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의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만족하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이 더 나은 삶을 추구함에 있어서 목적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이 현재의 삶에는 만족이 없고 미래의 새로운 것만 막연한 기대를 갖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이 착각한 가장 큰 것 중에 하나이다. 솔로몬은 자신의 일에 대해서 어떤 사람이 되라고 권고하는가?(3:22)
전 3:22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아, 그의 뒤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려고 그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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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라고 비교급을 써서 강조하고 있다. 이는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상관이 없이 자신의 일에 즐거움을 갖는 것이야 말로 참으로 나은 사람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일에 불만족하면서 불평하는 청소부를 보면서 "당신의 불평이 웬 말이요, 당신은 지금 지구의 한 모퉁이를 청소하는 위대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인 것을 아시오."라고 말했다. 자신의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즐거워할 줄 아는 사람만이 만족한 삶을 살아간다. 당신이 자신의 일에 대해 새로운 각오로 취해야 할 행동에 대해 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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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을 위해 자신에게 꼭 있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4:6)
전 4:6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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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온)'함은 두 손에 무엇인가 가득하게 가지고 있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물질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도 더더욱 아니다. 두 손에 가득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더 나은 삶은 마음속에 평안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다. 여기서 일시적인 평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계속되는 평안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환경이나 상황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불완전한 평안이 아니라 하나님이 위로부터 허락해 주신 영원한 참 평안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무엇이 다른가?(요 14:27)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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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주는 평안은 모두 상대적인 것들이다. 즉, 물질, 지위, 명예, 권세 등 외부적인 환경에서 오는 것으로, 그 조건이 사라지면 평안도 사라진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성령의 내주를 통한 확실한 것으로 구원의 확신,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들을 믿음으로 얻어지는 내적이고 절대적인 평안이다. 이 평안은 어떠한 것으로도 없어지거나 소멸되지 않고 우리를 절대적으로 안정하게 하는 것이다.
당신은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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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인간관계에 대해서(4:7-12)
전 4:7 내가 또다시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전 4:8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또 비록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
전 4: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전 4: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전 4: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전 4: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세상에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라고 푸념하는 소리를 가끔 듣게 된다. 당신은 이러한 말을 들을 때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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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을 하는 사람의 삶을 자세히 보면 인간관계가 아주 좋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이런 사람은 타인을 절대적으로 불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도 심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어서 자신조차도 믿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와 같은 사람은 인간관계의 실패자로 전락해서 인생도 실패자가 되고 말아 버린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인간관계의 교제에서 바른 사귐을 가질 수 있는지 알아보자.
1. 홀로 된 자의 고독과 불행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4:8)
전 4:8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또 비록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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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의 가장 불행한 것 중 하나가 무관심이다. 특히 도시에 아파트가 많아지면서 서로 담을 싸고 살아가기 때문에 옆집에서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조차 관심 없이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무관심이 처음에는 아무런 문제 없이 서로가 간섭하지 않고 편했을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고독이라는 무서운 병으로 나타났다. 어느 날 문득 바라보니 자기 만의 콘크리트로 된 두꺼운 담을 쌓고 홀로 외롭게 쓸쓸히 죽어가는 것이다. 그래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채로 말이다. 이것이야 말로 가장 불쌍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당신이 홀로 있을 때 당했던 고독과 불행에 대해 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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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더불어 사는 인생의 유익
솔로몬은 함께 사는 것이 홀로 사는 것보다 더 낫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교제 속에서 사는 인생의 유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다.
1) 우리가 약할 때에 상호격려 함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4:10)
전 4: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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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친구가 없는 사람은 참 불행한 사람이다. 마치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죽어 가지만 아무도 그를 도와주려고 하지 않아 화를 당하고 있는 것과 같은 사람이다. 서로의 사귐을 바로 가지고 있으면 한 사람이 불행한 일을 당해도 자신이 당한 것처럼 도와주게 된다. 우리가 어떠한 일로 약해져 있을 때 서로 격려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당신에게도 이러한 서로 약할 때에 도와주고 격려해 줄 수 있는 이웃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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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가 어려울 때 서로 도와주는 것을 어떤 예로 말하고 있는가?(4:11)
전 4: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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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가 공격받을 때 상호 보호하는 것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4:12)
전 4: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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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 한 사람이면 패배하기 쉽지만 두 사람이 힘을 합하여 대적하면 능히 이길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한 줄은 쉽게 끊어질 수 있지만 줄이 많을수록 끊을 수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바른 인간관계는 우리의 성공과 실패를 가져다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교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셋째, 참된 예배에 대해서
크리스천은 예배를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배와 더불어 살아간다. 주일마다 드리는 주일예배가 오전과 오후로 있고 수요예배가 공식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그 외에도 매일 드리고 있는 새벽예배가 있고, 가정마다 드려야 하는 가정 예배, 금요일에 구역마다 드리는 구역예배와 철야예배도 빼놓을 수없다. 이렇게 많은 예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평안하다든지 흡족하지 못하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의 예배의 수가 적거나 정성이 부족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사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수는 역사적으로 비교해 보아도 너무도 많고 다양해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왜 이런 현상이 우리에게 일어나는가? 그것은 우리의 예배 안에 예배의 참된 요소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본문은 참된 예배의 의미를 더 나은 제사(예배)라고 말씀하고 있다.
1. 참 예배의 방해 요소에 대하여
1) 우리가 드리는 예배 중에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시는 것은 무엇인가?(5:1)
전 5:1 너는 하나님 앞으로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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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매자의 제사를 기뻐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우매자의 제사(예배)란 구체적으로 우리의 무엇을 지적하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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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는 우매자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 말은 우리가 죄를 간직한 채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은 받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이런 예배를 하나님은 가증되다고 말씀하신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드리는 예배는 거짓 예배요, 헛된 예배요, 심히 잘못된 예배이다. 이런 예배는 또 하나의 불신앙을 드러내는 죄를 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것을 우리의 예배에 적용해 본다면 많은 사람이 예배를 빙자해 자기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해서 드리는 예배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예배를 드리는 경건함보다 예배를 참석하는 것으로 족하게 여기거나, 혹은 예배를 보는 정도로 끝내고 자신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도 똑같은 것이다. 우리가 예배의 형식에 참여했다고 해서 결코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드리는 예배에 우매자의 모습이 있다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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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우매자의 예배를 드린 대표자가 등장을 하는데 그는 누구며 어떤 악을 저질렀는가?(삼상 15:21)
삼상 15:21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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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과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아말렉의 소와 양의 좋은 것을 취하고 돌아올 때 사무엘이 사울에게 당신이 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느냐고 물을 때 사울이 "백성들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예배)하려고 가장 좋은 것을 남겼다"라고 대답했다. 이것은 사울이 자신의 죄를 백성에게 뒤집어 씌우고 나서 자신은 하나님께 잘못한 일이 없다고 변명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무서운 것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라는 말로 사울이 하나님께로 그 원인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하나님께 좋은 것으로 제사드리려고 하는데 무슨 문제가 되며 죄가 되느냐고 따지는 투로 반박하듯 떳떳이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죄를 짓고도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당당함이 현대인의 뻔뻔함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사무엘은 우리가 하나님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더 낫다고 결론적으로 말하고 있다. 당신은 말씀을 순종하려는 노력보다 더 슈게 예배드리는데 익숙해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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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5:2절에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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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4절의 서원하는 것과 연결되는 것으로 서원기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예배드리면서 기도할 때 아무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를 쉽게 생각하고 아무런 부담 없이 서원하고 결심하고 약속하는 기도를 드릴 때가 많이 있다. 이것은 대단히 기도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요소 중에 하나이다. 사실은 우리가 기도하는 내용의 하나에서 많은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나님께 드리는 나의 약속이며 소원이며 서원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어떤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약속드린 것이 있다고 한다면 꼭 지켜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약속에 대한 위반하는 행위를 대단히 싫어하시기 때문이다. 당신은 하나님께 예배 시마다 기도로 다짐하고 약속한 사실에 대해 공수표를 날리거나 사기를 친 것이 있다면 말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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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적 예배에 대하여
1)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바른 태도는 무엇인가?(5:2)
전 5: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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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예배에 대한 우리의 바른 태도는 '하나님 앞에서' 드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자각이다. 바로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시며 내가 그분 앞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것이 되어야 영적으로 드릴수 있다. '신전 의식'의 예하게 해준다. 우리의 삶의 전부가 '신전 의식'의 사상으로 지배되어야 한다. 당신은 예배를 위시한 모든 삶에 '신전 의식'의 생활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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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의 신비적인 체험을 많이 한 브러더 로렌스는 일평생 '신전 의식'사고로 살았기 때문에 그의 행동, 말, 순간순간의 모든 생애가 하나님이 아주 기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고 한다면 감히 죄를 지을 수 없다. 우리가 신전 의식을 망각할 때 죄를 짓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전 의식이 없이는 영적 예배를 드릴 수 없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기 전에 먼저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린다. 이런 생각이 없을 때 딴생각을 하게 되고 기도에 자신이 없고 예배가 형식과 습관적이 되고, 찬송에 힘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설교 평이나 하게 된다. 이렇듯 하나님 앞에서의 자각은 신앙의 시작이자 끝이라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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