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원문 강해

[고린도후서 원어 성경 강해] 고린도 교회 성도를 사랑하는 바울(고후 2:1-4)

엘벧엘 2022. 3. 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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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2장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려다가 계획을 변경한 이유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내가 근심 중에 너희에게 나가지를 않기고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면서 분노하는 상태로 나간다면 하나님 앞에서 덕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를 사랑하는 바울(고후 2:1-4)

 

1절 에크리나 데 에마누토 투토 토 메 팔린 엘데인 엔 뤼페 프로스 휘마스

=====2:1

 내가 다시 근심으로 너희에게 나아가지 않기로 스스로 결단하였노니 - 본문은 바울이 본 서신을 기록하기 이전에 두 번 고린도를 방문했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왜냐하면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설립을 위해 첫 번째로 그곳을 방문한 이후에(행 18:1-8) 쓴 고린도 전서에는 슬픈 방문에 관한 어떤 암시도 없는 반면 본문에는 '가슴 아픈 방문'에 관해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내에 들어온 거짓 교사들에 의해 야기될 바울에 대한 오해와 교회에 발생한 제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두 번째로 그곳을 방문했을 것이다. 고린도전서를 발송한 이후에 있었던 이 두 번째  방문은(12:4;13:1,2)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더욱 큰 불신과 마음의 상처만 남긴 방문이었기에 가슴 아픈 방문이었다. 이 가슴 아픈 방문이 1:15,16절의 여행 계획과 관련이 있다고 보며, 마게도냐로 가는 길에 방문한 것이 바로 이 방문이었다고 본다. 그리하여 되돌아오는 길의 방문은 피차간의 가슴 아픈 만남이 되지 않기 위하여 여행 계획을 변경한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계획을 변경시킬 때 상당한 고심을 한 흔적이 엿보이는데 이는 그가 계획의 변경을 서술할 때 '결단했다'는 표현을 쓰고 있는 데서 드러난다.

2절 에이 가르 에고 뤼포 휘마스 카이 티스 에스틴 호 유프라이논 메 에이 메 호 뤼푸메노스 엑스 에무

=====2:2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하면 나를 기쁘게 하는 자가 누구냐 - 본절에 대한 개역성경의 번역은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데 그 내용은 "나를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여러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 나를 기쁘게 해 줄 사람에게 슬픔을 안겨 주는 셈이 되지 않겠습니까?"(공동번역)의 뜻이다. 이 말속에는 바울이 고린도 방문 계획을 변경한 이유가 암시되어 있다. 즉 원래의 계획대로 고린도 방문을 강행하여 지금까지 저지른 성도들의 잘못을 엄단한다면 그것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큰 근심의 요소가 되기 때문에, 그렇게 행하지 않고 계획을  변경하여 그들에게 회개할 시간적 여유를 줌으로써 훗날 기쁨으로 만나기를 원했던 바울의 깊은 생각이 담겨 있다. 이렇듯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유익하고 자신에게도 기쁨이 되는 세심한 목회적 배려를 행하였다.

3절 카이 에그랍사 휘민 투토 아우토 히나 메 엘돈 뤼펜 엑소 아프 혼 에데이 메 카이레인 페포이도스 에피 판타스 휘마스 호티 헤 에메 카라 판톤 휘몬 에스틴

=====2:3

  이같이 쓴 것은 - '쓴 것은'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그랖사'는 서간체의 과거형으로 지금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썼던 것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이 편지는 고린도전서이거나 전서와 후서 사이에 보낸 것으로 알려진'눈물의 (준엄한) 편지'일 텐데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 편지는 현존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바울이 가슴 아픈 방문을 한 후 기록한 것으로 믿어지며 A.D.56년 봄 디도를 통해 고린도에 보내진 것으로 보인다.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 바울이 씨를 뿌려 거둔 열매인 고린도 교인들은 당연히 바울에게 기쁨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관계가 매우 열악한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에 바울에게 기쁨을 주어야 할 고린도 교인들이 도리어 근심을 끼치는 형편이 되었다. 바울이 진정으로 근심하고 마음 아파하는 것은 단순히 오해에서 비롯된 감정상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염려하는 것은 그들이 거짓 사도들에 현혹되어(11:13)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바울은 이런 문제에 대해 직접 방문하여 책망하고 문책(問責)하는 것이 피차에 마음만 상하게 할 뿐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였으며 그리하여 그는 고린도 방문 계획을(1:15, 16) 취소하고 대신 눈물의 편지를 디도를 통해 보냄으로써 회개의 기회를 주고자 했던 것이다.

   나의 기쁨이 너희 무리의 기쁨인줄 확신함이로라 - 바울이 겪는 모든 회노 애락은 고린도 교인들을 위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1:6-12). 지금은 관계가 많이 악화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버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바울은 자신의 기쁨이 그들의 기쁨이 된다는 확신을 표하는 것이다. 혹자는 본문에서 고린도에는 문제를 야기시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5, 6절;11:13) 대부분의 교인들은 여전히 건전했다고 추론한다.

4절 에크 가르 폴레스 들립세오스 카이 수노케스 카르디아스 에그랍사 휘민 디아 폴론 다크뤼온 우크 히나 뤼페데테 알라 텐 아가펜 히나 그노테 헨 에코 페릿소테로스 에이스 휘마스

=====2:4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 - 이것은 바울이 '눈물의 편지'를 쓰게 된 이유와 그때의 바울의 심정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환난'에 해당하는 헬라어 '들립세오스'는 `압박', '괴로움'을 뜻하며 '애통'에 해당하는 헬라어 '쉬노케스'는 '억압', '고통', '고민'의 뜻이 있어 바울의 심정이 매우 심한 괴로움과 고통을 당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바울이 이토록 깊은 심적 고통을 당했던 것은 고린도 교회 안에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이 있었고 이들의 반(反)바울적 논리에 고린도 교인들 중 일부가 동조(同調)하는 데까지 나아갔기 때문이다.

   많은 눈물로 - 바울이 겪고 있는 심적 환난과 애통은 눈물로 씌어진 편지에서 절정을 이룬다. 바울은 가끔 눈물의 편지를 쓰거나 눈물로 호소했는데(빌 3:18;행 20:19,31) 이것은 눈물 흘리는 것을 수치로 여겨 참았던 스토아의 학자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근심하게 하려 한것이 아니요...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 이것은 바울의 눈물의 편지가 부분적으로 고린도 교인들의 마음을 슬프게 했음을 말해준다(7:8). 바울이 눈물로 써 보낸 편지의 핵심은, 비록 그들이 바울을 슬픔 가운데 빠지게 했지만 바울은 그들에 대하여 지금도 변함없는 사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려는 것이었다. 바울은 이 사랑을 '넘치는 사랑'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혹자는 이처럼 문제가 많은 고린도 교인들을 남달리 사랑하는 데에는 문제아들을 더 사랑하는 심리가 작용했을 것이라고 본다. 자기들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사랑을 전하고 있는 바울의 편지를 받은 고린도 교인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아 회개하기에 이르렀을 것이다(7:9).

[고린도전서 헬라어 성경말씀] 미련한 자를 선택하신 하나님(고전 1:26-31)

 

[고린도전서 헬라어 성경말씀] 미련한 자를 선택하신 하나님(고전 1: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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