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에스라 10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에스라와 개혁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데 예루살렘의 상황은 영적으로 엉망입니다. 이방인들과 통혼하고 있었고 율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율법을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이방인과 통혼한 것을 끊는 종교개혁을 시작했습니다.
에스라와 개혁(스 10:1-17)
1. 죄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를 가지자.
2. 회개엔 자신의 과오가 변상되어야 한다.
3. 회개는 우리들의 죄에 대한 슬픔이다.
4. 개혁은 회개를 기초로 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방백들 그리고 백성의 우두머리들이 저질러 놓은 죄악 때문에 에스라 선지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속옷과 겉옷을 찢으면서 머리털과 수염을 쥐어뜯은 채로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방백들과 백성의 우두머리며 많은 사람들이 에스라 주위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거기서 에스라는 통회자복을 했다. 백성들이 저질러 놓은 죄악이 마치 자기가 지은 죄인양 하나님께 회개를 했다.
9:6절에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워 낯이 뜨뜻하여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내가 부끄러워라고 했다. 우리 허물이 크다고 했다.
1. 죄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를 가지자.
10:1절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심히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에스라 선지자가 이렇게 통곡하면서 회개의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과 인식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죄에 대한 인식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하여 어떤 인식을 가지고 계시는가? 죄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율법을 지키지 아니함을 말한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엔 어디에나 다 법이란 게 있다. 사람들은 그 법을 지키면서 부지런히 살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과 세상의 법의 차이점과 공통점이 재미가 있다. 세상의 법이나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못하면 다 같이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다른 것은 하나님의 법은 지키면 그 지킴의 정도에 따라 엄청난 상급이 주어진다. 그러나 세상의 법은 아무리 열심히 지켜도 아무런 대가가 없는 것이다. 도리어 세상의 법을 잘 지키면서 사는 사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바르게 인정이 잘 안 되고 마치 바보 취급을 받는 기분이 들 때가 허다하다. 하나님의 법은 다르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무한히 가증스러운 것으로 인정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죄는 조금도 용인하지 않으신다. 죄는 가정이며, 사회며,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며 종래는 인간성마저도 훼손하는 무서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죄 중에서도 가장 싫어하는 죄악을 저질렀다. 그 죄라는 것은 이스라엘의 남정네들이 이방 여인들과의 혼인을 통한 우상 숭배 즉 다른 신을 섬기는 죄악이었다. 지금 이스라엘에게 명하시고 있는 법을 어기게 되면 사형에 해당되는 큰 죄였다. 그런데 죄를 저지른다는 사실은 그 죄에 대하여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과소평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멀리 벗어나는 것이 된다. 죄와 싸우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와의 올바른 관계를 지닐 수 없다. 죄를 바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십자가도 바로 이해할 수 없다.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하나님의 사랑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죄가 죄로 인식이 되지 못하면 결국 인간의 생각을 인간의 사랑을 인간의 생명을 고갈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어 메마른 인생으로 전락하게 된다.
2. 회개엔 자신의 과오가 변상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살다 보면 많은 과오를 저지르게 된다. 그 많은 과오들 중에 완전히 변상을 하지 못할 죄악도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완전에 가깝도록 최선을 다해 변상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식물로 어떤 사람은 말로 어떤 사람은 행동으로 그런데 어떤 경우 변상이 불가능한 경우는 하나님께 고백을 해야 한다.
3절에
"곧 내 주의 교훈을 좇으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의논을 좇아 이 모든 아내와 그 소생을 다 내어 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이제는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했다. 이 율법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개가 얼마나 철저한가를 보여 주고 있다. 만일 우리들이 회개할 때 삭개오처럼 남의 재물을 토색 한 것이 있으면 4배나 돌려주고 재산의 절반을 팔아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준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재물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고 이미 결혼한 이방인들과의 생활을 청산함이다. 함께 결혼해서 살고 있던 사람을 돌려줌이다. 물론 그들 사이에서 출생한 자손들까지 철저하게 해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삶에 죄라고 느껴지는 것이 있으면 이렇게 철저하게 해결을 해야 한다.
3. 회개는 우리들의 죄에 대한 슬픔이다.
사람들은 슬픈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슬픔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피해 가기를 원한다. 아니 아예 슬픔 같은 것은 닥치지 않기를 소망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슬픔의 원인이 되는 죄악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인간들이 범죄를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맛보셔야 했다. 그것은 그 사랑하는 아들 독자를 십자가에 매달아야 했던 슬픔이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큰 슬픔을 경험해야 하시었던 것처럼 우리들도 죄를 청산하는 아픔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죄의 결과가 얼마나 큰 슬픔을 가져다주는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우리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또 슬퍼하실 것인가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더 귀한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죄악 때문에 아들을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그 결과로 인간들이 구원받게 된 것을 보시고 얼마나 기뻐하시었는지 모른다. 이 말은 회개가 주는 기쁨 즉 죄를 청산한 기쁨과 평안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말해줌이다. 어떤 사람이 병원을 찾았다. 다름이 아니라 몹쓸 병이 들어 다리 하나가 막 썩어 올라오고 있었다. 이를 지켜본 의사가 내린 진찰의 결과가 무엇이었을까? 이미 썩기 시작을 했으니 그냥 내버려 두라고 했을까? 아니면 남은 부분을 살리기 위하여 썩고 있는 부분을 잘라 버리자고 했을까? 물론 잘라야 산다고 했을 것이고 환자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네 오른손이 범죄 하거든 네 오른손을 찍어 버리라" "만일 네 오른 눈이 범죄 하거든 네 오른 눈을 뽑아 버리라"라고 하시었다. 이러한 각오가 없이는 또 기쁨과 평안도 바라지 말아야 한다.
4. 개혁은 회개를 기초로 해야 한다.
에스라가 바사 나라에서 개인의 보장된 평안의 삶을 포기하고 이스라엘로 온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썩어만 가는 나라와 민족과 교회를 바로잡는 일이었다. 이름하여 일대 개혁이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위한 개혁이었다. 개인의 개혁이다. 가정의 개혁이다. 나라의 개혁이다. 지금도 개혁은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개혁은 회개가 그 기초가 되지 못하고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개혁의 결과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11절에서 에스라가 백성들을 향하여 "이제 너희 열조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 뜻대로 행하여 이 땅 족속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려라" 12절에 무리들이 "회 무리가 큰 소리로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 그런데 그때 무슨 일이 생겼는가? 13절에 "그러나 백성이 많고 또 큰 비가 내리는 때니 능히 밖에 서지 못할 것이요 우리가 이 일로 크게 범죄 하였은즉 하루 이틀에 할 일이 아니오니" 어려운 결단을 하고 회개를 하려고 마음가짐을 가질 때 그때가 계절적으로 큰 비가 내릴 때였다. 마귀의 역사는 최후까지 물고 늘어진다. 모처럼 회개의 기회가 마련되니 큰 비가 올게 무엇인가?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 뒤로 미루거나 지체하지 않았다. 17절에 "정월 초하루에 이르러 이방 여인을 취한 자의 일 조사하기를 마치니라" 18절에 "제사장의 무리 중에 이방 여인을 취한 자는 예수아 자손 중 요사닥의 아들과 그 형제 마아세야와 엘리에셀과 그달랴라" 19절 다 같이 "저희가 다 손을 잡아 맹세하여 그 아내를 보내기로 하고 또 그 죄를 인하여 숫양 하나를 속건죄로 드렸으며"
[히브리어 성경 주석 강해 느헤미야] 유다 민족을 위한 느헤미야 기도(느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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