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야 왕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종교 개혁을 단행하고 있습니다. 요시야 왕은 자신의 아버지 아몬처럼 악을 행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따르게 됩니다. 바알 제단을 헐고 아세라 목상을 찍어버렸습니다. 그 당시 쉽지 않은 일인데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종교 개혁을 일으켰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복음 말씀으로 우리의 심령을 개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기경하여 복음의 씨앗이 떨어져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요시야 왕의 계속되는 개혁(대하 34:14-28)
이스라엘의 왕들 중에 선한 왕 세명을 꼽으라고 한다면 다윗왕과 히스기야 왕, 그리고 요시야 왕을 들 수 있습니다. 그중에 요시야 왕은 여덟 살에 남쪽 유다의 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길로 행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왕이 된 지 8년에 그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구하고 12년에는 유다에 있는 모든 우상들을 타파하고 하나님을 믿는 백성으로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백성들,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이 요시야가 왕이 되었을 때에는 어떤 신앙 태도들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짐작케 해주는 말씀이 34장 3절과 4절에 기록이 되어 있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산에다 집을 짓고 신을 섬기는 산당이 있었고, 아세라라고 하는 신을 나무로 깎아서 섬겼고, 바알이라고 하는 신을 섬기는 제단을 지었으며, 태양을 닮은 모습을 만들어 놓고 신이라고 했으며, 기타 아로새겨서 만든 우상이나, 틀에다 부어서 만든 우상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요시야 왕은 이러한 우상들을 모두 부수고 태우고 가루로 만들었습니다.
요시야가 왕위에 있은지 18년에는 하나님의 성전을 깨끗이 수리하여 유다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온전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성전 안에서 오래전부터 보관되어 온 율법책이 발견된 것입니다. 이 율법의 말씀을 제사장인 힐기야는 서기관 사반에게 주었고 사반은 요시야 왕에게 가지고 나와서 그 말씀을 낭독하였습니다. 그러자 요시야 왕은 자기 옷을 찢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조상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고 준행하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 진노를 하셨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요시야 왕은 말했습니다. "너희는 가서 나와 및 이스라엘과 유다의 남은 자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요시야 왕은 이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나라를 개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마땅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믿음을 지키는 삶을 살도록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살지 못하고 변질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는 역사는 인간이 사는 역사 안에서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것은 14C 말경에도 있었습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였던 위클리프라는 사람은 부유하게 사는 신부들을 비난하고 화체설을 부정하다가 대학에서 쫓겨나게 된 수난은 종교개혁을 예시한 첫 신호였습니다. 그 후 그의 추종자이며 프라그 대학의 교수였던 후스는 더욱 강력하게 교황 정치의 잘못을 비난하고 면죄부 판매를 반대하며 보헤미아에서 교회 갱신 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화형을 당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중세기 말에 이르러 교회는 극도의 타락과 부패로 약해져서 그 권위와 진리성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고 이때 교황권은 세상 권력의 시녀가 되어 버렸고 교회 내에서는 이러한 부패에도 불구하고 갱신의 희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신부들은 무식하였고 신자들은 그러한 신부들의 가르침이 옳은지 그른지를 구별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예배는 회중들이 알지 못하는 말로 드려져서 들을 수 없게 했고 순수치 못한 미신적 예배가 여기저기서 생겨났습니다. 우르반 II세 때 십자군에 참여한 자에게 죄를 속한다는 표로 나누어 주기 시작한 속죄표는 중세 후반에 이르러 돈으로 거래되는 부패한 증서가 되었고, 또한 새로 부임한 주교의 처음 1년간 총수입을 교황에게 바치는 풍속이 생겨나면서 성직매매 제도가 번져 기독교의 역사상 가장 어두운 비극의 때였습니다.
이러한 교회 안에서 신부의 훈련을 받고 학생을 가르치던 마틴 루터는 개인적인 신앙의 고민 끝에 마침내 1517년 10월 31일 면죄부에 대한 95개 조 항의문을 비텐베르크 성당에 게시하면서 위대한 종교개혁의 막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루터는 구원이란 순전히 하나님께서 홀로 하시는 일로서 인간과 하나님의 거래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거나, 인간의 공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할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면죄부 판매를 반대하였습니다. 또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누구나 독일어를 아는 사람이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게 하였고 독일어 찬송을 부르게 하고 독일어로 예배를 드리게 하므로 알아들을 수 없던 예배를 이제는 독일 국민이면 누구나 함께 듣고 참여할 수 있는 예배의 제도로 고쳤습니다. 종교개혁은 이렇게 마틴 루터가 하나님의 뜻을 재 발견하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그분의 살아계신 역사를 체험하도록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외친 기독교의 개혁운동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개혁운동은 옛날 요시야 왕의 때나 중세기 루터 때에나 그 후 계속되는 기독교 역사 속에는 언제나 있어져야 하는 운동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항상 바르게만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개혁운동을 위하여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하므로 하나님의 뜻이 올바르게 이루어져 가게 할 수 있을까요?
1. 고민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철저한 자기 신앙의 고민 속에서 시작되었고 열매를 맺은 운동이었습니다. 루터가 살던 당시에 구원은 신앙행위로 좌우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를 위하여 루터는 수도원에 들어가 몇 번이나 죽음의 고비를 무릎으로 기어 올라가는 일까지도 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구원과 이에 따르는 기쁨과 평안이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계속되는 고민 속에서 어느 날 루터가 속해 있는 수도원을 찾은 어거스틴 파 수도 교단 대리 원장이었던 스타우피츠가 그에게 큰 위로를 주었습니다. "만약 그대가 예정되었는지 의심 나거든 하나님의 예정으로 죄인들을 대신하여 고난 받으신 그리스도를 마음에 믿으라고 했습니다. 그를 통하여 어거스틴에 이르게 되고 어거스틴을 통하여 바울에게 이르러 시편 강해를 준비하는 도중 로마서 1장 17절의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구원의 대 진리"를 체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루터가 만일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대하여 고민 없는 신부였다면 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일을 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신앙의 고민이 없는 곳에는 개혁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왜 하나님은 나를 택하셨는가? 이럴 때에 하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실까? 하는 등등을 고민하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간의 모습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진리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2. 성경말씀을 항상 가까이해야 합니다.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며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장로교를 세운 칼빈은 기독교의 진수를 알아보기 위하여 성경말씀 속으로 파고 들어갔습니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였고 이를 풀어 해석을 가하므로 말씀의 깊이를 더욱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칼빈의 `기독교강요'나 신구약 성경 주석은 오늘 고전이 되어 우리의 신앙의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주는 말씀입니다. 모든 시대의 길잡이이며 빛이요, 어둠 속에 방황하는 배들에게 등대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이론이 기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과학이, 경제가,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권력이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던 당시에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교황의 말이나 교회 대표들이 회의를 하여 결정하는 것이 더 큰 시대였습니다. 오직 복음만이 기독교를 참되게 갱신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의는 없습니다. 용기 있는 신앙인은 먼저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과감히 고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속에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서만 힘을 얻을 수 있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루터는 국회에서 그의 주장을 취소하라는 위협을 받았을 때 "성경과 명백한 이성에 비추어 그 잘못을 지적하면 누구보다 먼저 나의 책을 불사를 것이나 그렇지 않은 한 취소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용기 있는 신앙인은 굴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굽게 만들지 않습니다. 용기 있는 신앙인은 승리합니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중세 교회의 타락은 안일한 신부들로 인해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나의 구세주이므로 그리스도의 교회는 곧 나의 교회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되어 가는 일에 나 하나쯤 빠져도 괜찮겠지 하는 무관심은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적대자입니다. 우리 모두가 내가 없으면 무슨 일이든 안 된다는 관심을 갖고 서로 도와 가며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하나님의 교회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될 때에 교회의 모습도 개혁이 될 것입니다. 생명이 넘치는 교회, 이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성도가 됩시다. 신앙이 어떠한 신앙을 간직해야 하겠습니까? 용기 있는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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