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감사하면서 중보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항상 빌립보 성도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항상 성도들을 향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간구할 때마다 기쁨으로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목회자들도 항상 성도들을 향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성도에 대한 감사와 중보기도(빌 1:1-11)
1절 파울로스 카이 티모데오스 둘로이 이에수 크리스투 파신 토이스 하기오이스 엔 크리스토 이에수 토이스 우신 엔 필리프포이스 쉰 에피스코포이스 카이 디아코노이스
=====1: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 본문의 인사말 속에 바울과 디모데가 함께 등장하는 것은 당시 디모데가 빌립보 교회에 잘 알려진 지도자였으며, 바울이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보낼 계획이었기(2:19)때문이다. 바울이 다른 서신과는(롬 1:1;딛 1:1) 달리, '사도'라는 호칭은 사용하지 않고 자신을 '종'으로만 표현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이다. (1) 바울이 빌립보에서는 자신의 사도직에 대해서 도전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자신의 사도직에 대해서 옹호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2) 그곳 신자들과의 깊은 사랑의 결속력 때문에 사도라는 호칭을 쓸 필요가 없었다. '종'에 해당하는 헬라어 '둘로이'는 문자적으로 '노예'라는 말이다. 바울이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은 죄의 공포(恐怖)로부터 해방된(롬 6:18,22) 기쁨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하고 순종하는 마음을 시사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편지하노니 - 본절은 수신자에 대한 언급이다.
성도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기오이스'는 히브리어 '카다쉬'('분리하다')와 같은 의미이다. '카다쉬'는 구약의 제사에서 정결 의식을 통해 죄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죄로부터의 분리는 하나님에 대한 헌신을 의미한다. '분리된 자'에 해당하는 '하기오스'는 신약에서 거룩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구별한 백성 즉 교회를 가리킨다.
감독 - 이것은 '장로'라는 말과 거의 같이 사용되었다(딤전 5:1;딛1:5-7;벧전 5:1,2). 여기서 '감독'은 하나님의 백성을 주관하도록 선택된 목사와 장로들과 기타의 사역자들을 포함한다. 이들의 책임은 하나님 교회 교인들을 양육하고 인도하는 것이었다.
집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코노이스'는 공동체(共同體)를 위하여 일을 하는 사람이었으나 여기서는 성도들을 위하여 서로 돕는 일과 다스리는 일을 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바울이 감독들과 집사들을 특별히 언급한 것은 빌립보 교회의 감독이었던 에바브로디도가 편지를 가지고 빌립보에 갈 때 그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함이었고, 빌립보 교회에서 감독들과 집사들이 헌금을 모아서 바울에게 전해 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절 카리스 휘민 카이 에이레네 아포 데우 파트로스 헤몬 카이 퀴리우 이에수 크리스투
=====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 '은혜'는 인간의 행위에 관계없이 하나님으로부터 값없이 오는 선물이다. '평강'은 그 '은혜'의 결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화목(和睦)을 누리고 사람들 사이에 화해를 이룸을 의미한다. 이러한 '은혜'와 '평강'의 근원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것은 당시 헬라의 인사와는 다른 것임을 나타낸다
3절 유카리스토 토 데오 무 에피 파세 테 므네이아 휘몬
=====1: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 바울은 그의 몇 서신을 제외하고(딤전, 딛) 거의 전 서신에서 감사로 시작하고 있다.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있다. (1) 혹자는 '너희가 나를 생각하므로'로 해석한다. 그래서 바울이 옥중에 갇혔을 때에 빌립보 교인들이 보여준 사랑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2) 혹자는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할 때마다'로 해석한다. 두 해석 중 후자가 더 타당하다. 본절은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과 그의 감사가 빌립보 교인들과 전에 나누었던 교제를 통해서 온 것임을 시사한다.
4절 판토테 엔 파세 데에세이 무 휘페르 판톤 휘몬 메타 카라스 텐 데에신 포이우메노스
=====1: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 본절은 바울의 감사를 진술한 3절과 5절 사이에 삽입된 구절이다.'간구'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에세이는 문자적으로'결핍(缺乏)' 혹은 '필요'를 의미하나, 본절에서는 '기도'를 가리킨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 사랑과 필요를 알고 하나님께 간구함으로써 사도바울과 빌립보 교인들 사이의 상호 이해와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바울의 간구는 '기쁨'으로 충만해 있었다. 비록 바울이 옥중의 고난 가운데서 처해 있었을지라도 변하지 않는 기쁨으로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기꺼이 간구한 것이다.
5절 에피 테 코이노니아 휘몬 에이스 토 유앙겔리온 아포 프로테스 헤메라스 아크리 투 뉜
=====1:5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 본절은 3절과 연결된 것으로 감사의 이유이다. '복음에서'라는 말의 헬라어 '에이스 토 유앙겔리온'. 이것은 빌립보 교인들이 행했던 기도와 헌금이 복음 전파에 기여하였음을 시사한다. 한편 '너희가 교제함을'의 헬라어 '에피테 코이노니아'에서 전치사 '에피'('위에')는 빌립보 교인의 행함이 '교제'를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졌음 나타낸다. '교제'는 신약성경에서는 관대함을 표현하거나(고후 9:13) 연약한 성도들을 도울 때(롬 15:26) 사용되었다. 본절에서의 교제는 최근에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에게 보낸 선물은 물론 좀 더 넓은 차원의 교제를 의미한다. 즉 본절에서의 교제는 빌립보 교인들이 사도 바울의 고난에 동참하였던 교제와 예루살렘 교회가 궁핍에 처했을 때 구제했던 교제를 모두 가리킨다(롬 15:26;고후 8:1-5;9:13). 그런데 이러한 교제는 바울이 빌립보 지역을 처음 방문하여 선교하는 '첫날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바울이 빌립보에 도착하여 복음 사역을 시작할 때, 루디아는 그의 집을 개방하였고(행 16:14,15), 간수는 그를 친절하게 대접하였으며(행 16:19-34) 2차 전도 여행 시 바울이 데살로니가(빌 4:16)와 고린도(고후 11:9)에 있을 때,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헌금을 보내오기도 했다.
6절 페포이도스 아우토 투토 호티 호 에나륵사메노스 엔 휘민 에르곤 아가돈 에피텔레세이 아크리스 헤메라스 이에수 크리스투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 '착한 일'을 혹자는 빌립보 교인들이 '헌금을 가지고 전도 사역에 참여한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본절의 '착한 일'이란 하니님께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베풀어 주신 '구속 사역의 은혜'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구원의 사역을 시작하실 뿐만 아니라 끝까지 이루시는 분이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구속 사역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온전히 이 일을 완성하실 것임을 확신하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 본절은 하나님께서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는 날을 의미한다. 본절의 '날'은 '그날'(고전 3:13;살전 5:4;살후 1:10), '그리스도의 날'(10절, 2:16), '주의 날'(고전 5:5;살전 5:2;살후 2:2), '우리 주 예수의 날'(고전 1:8;고후 1:14) 등과 같은 표현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가리킨다. 이 날은 마지막 심판의 날이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시작하신 '착한 일' 즉 '구속 사역의 은혜'를 완성하는 날이다.
7절 카도스 에스틴 디카이온 에모이 투토 프로네인 휘페르 판톤 휘몬 디아 토 에케인 메 엔 테 카르디아 휘마스 엔 테 토이스 데스모이스 무 카이 테 아폴로기아 카이 베바이오세이 투 유앙겔리우 슁코이노누스 무 테스 카리토스 판타스 휘마스 온타스
=====1: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 목자적인 심정이 있음을 나타낸다. '생각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네인'은 본서에서 자주 사용된 말로서, 지적인 생각뿐만 아니라 애정과 관심을 갖는 마음의 상태까지도 의미한다. 바울 사도가 빌립보 교인들과 갖는 복음의 진보를 위한 교제는 첫날부터 항상 그의 마음속에 있었으며, 그들에 대한 생각은 사랑의 감정으로까지 발전했음을 시사한다.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 문자적으로 '내가 너희를 마음에 두다'라고 해석된다. NEB에서는 '휘마스'('너희들')를 주어로 하여 '너희가 나를 다정하게 여기다'(you hold me in such affection)로 해석하였으나, '메'‘(나를')를 주어로 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I have you in my heart). 한편 '마음'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르디아'는 인간의 의식과 인격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헬라인들이나 히브리인들은 '마음'이라는 말을 정신과 의지(意志)를 포함하는 말로서 사람의 가장 솔직한 본성을 표현할 때 사용하였다. 따라서 본절은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마음속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 - '매임', '변명함', '확정함'은 전부 법률적인 용어로(행 25:16;딤후 4:16;히 6:16) 바울 사도가 실제로 복음 전파로 인하여 투옥되었으며(엡 6:20;골 4:18) 법정에 서서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였음을 시사한다(행 26:29). 바울은 본절에서 빌립보 교인들이 위험한 가운데서도 헌금과 교제를 통해서 바울의 복음 사역을 도왔으며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충성함으로 자신과 함께 특권을 가지고 투옥과 재판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바울이 당하는 고난은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며 교회를 위한 것으로(엡 3:13;골 1:24;딤후 2:10), 바울의 투옥과 재판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공통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8절 마르튀스 가르 무 에스틴 호 데오스 호스 에피포도 판타스 휘마스 엔 스플랑크노이스 이에수 크리스투
=====1: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 '심장'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플랑크노이스'는 짐승의 내장, 특히 심장, 간, 허파, 콩팥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신약에서는 창자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행 1:18). 그러나 본래 '스플랑크노이스'는 물질적인 것을 가리키는 경우보다는 '마음'이나 '감정'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 그러므로 본절은 그리스도께서 사람들 사랑하셨던 마음을 가지고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사랑하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바울이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바울 안에서 성령이 역사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가 바울이 가진 사랑의 중심이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 본절은 바울이 얼마나 깊이 빌립보 교인들을 사랑하는지는 마음을 판단하시는 하나님께서 증인이 되심을 시사한다. 바울은 그의 다른 서신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증거 하는 표현으로 '하나님의 증인이심'을 자주 사용한다(롬 1:9;고후 1:23;살전 2:5,10).
9절 카이 투토 프로슈코마이 히나 헤 아가페 휘몬 에티 말론 카이 말론 페릿슈에 엔 에피그노세이 카이 파세 아이스데세이
=====1:9
내가 기도하노라 -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보고 싶었지만 옥중에 있었기 때문에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단지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바울은 3절과 4절에서 나타나고 있는 기도의 주제들을 9절에서 11절까지에서 세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너희 사랑을... 풍성하게 하사 - 본절은 접속사 '히나'('that')로 시작하여 기도의 항목 가운데 첫 번째임을 시사한다. 여기서의 사랑은 어떤 특정한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나타나고 있는 보편적인 사랑으로서 성령의 열매를 가리킨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사랑'에 두 가지가 더하여져서 풍성해지기를 간구한다.
(1) 지식 - 이 지식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그노세에'는 '그노시스'('앎')보다 더욱 진보(進步)된 단어로서 그리스도인들이 지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시사한다. 성령에 의해서 하나님 말씀을 깨달음으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2) 총명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이스데세이'는 주로 70인 역에서 '다아트'('지혜')의 의미로 사용되었다(잠 1:4,7,22;3:20;5:2). 이것은 지각적인 통찰력 또는 도덕적인 분별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바울은 사랑에 분별력을 더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 분별력은 지각과 체험(體驗)으로써 악한 것과 선한 것, 그리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분별하여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통해서 '사랑'은 보다 건전하고 온전해진다.
10절 에이스 토 도키마제인 휘마스 타 디아페론타 히나 에테 에일리크리네이스 카이 아프로스코포이 에이스 헤메란 크리스투
=====1: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 이것은 두 번째 기도 제목이다. '선한 것'의 헬라어 '디아페론타'는 본래 '다르다', '뛰어나다'라는 의미로서 '중요한 것'이나 '뛰어난 것' 혹은 '최선의 것'을 가리킨다(what is excellent). 또한'분별하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도키마제인'은 '시험하다'(고전 11:28;고후 13:5), '시험하여 증명하다'(고전 3:13;벧전 1:7)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본절은 '중요한 것을 시험하여 분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지식과 총명이 더해진 사랑을 통해서 도덕적으로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미묘한 것들 사이에서 올바르고 온전한 것을 분별함을 시사한다.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 '진실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에일리크리네이스'는 '헤일레'('태양빛')와'크리노'('판단하다', '시험하다')의 합성어인 듯하다. 이것은 '정말무결한 태양빛으로 시험하다'라는 의미이다. 또한 '허물없이'(아프로스코포이)는 '자르다'(코프토)에서 나온 말로 '손상되지 않는'의 의미이다(행 24:16).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진실함'과 '정직함' 그리고 '깨끗한 마음'을 소유하며 행할 것을 위해서 기도한다.
11절 페플레로메노이 카르폰 디카이오쉬네스 톤 디아 이에수 크리스투 에이스 독산 카이 에파이논 데우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 바울이 기도하는 세 번째 기도제목은 '의의 열매'가 가득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의의 열매란 율법을 지킴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3:4-9), 현재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재하시고 역사 하심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즉 본절은 빌립보 교인들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고결함을 가지고 행동할 것을 기도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없이 자기의 노력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요 15:4), 하나님과 신자 사이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역사(갈 5:22,23)를 통해서 맺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 그들을 구속하였고 성령을 보내셔서 열매를 맺게 하셨으므로 그리스도가 의의 근원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 그리스도의 내재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맺게 되는 의의 열매는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바울이 의의 열매를 사람들에게 돌리지 않고 하나님께 돌리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고 마땅히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목적은 마땅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찬송을 돌리는 것(마 5:16;요 15:8;17:4)이고, 사람의 삶 가운데서 맺게 되는 의의 열매도 모두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어야 할 것이다.
[헬라어 성경 강해 에베소서] 창세전에 예정 선택한 성도(엡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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