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원문 강해

[히브리어로 보는 창세기] 하나님이 빛과 궁창을 창조하심(창 1:1-8)

엘벧엘 2021. 9. 1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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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히브리어로 보는 창세기 중에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첫째 날은 빛을 창조하셨고 둘째 날은 궁창을 창조하셨습니다. 이 세상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하나님은 무에서 유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입니다. 영원 전부터 존재하셨던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기 위해서 이 세상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입니다. 이 세상은 유한합니다. 이러한 세계에서 영원한 세계를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천국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빛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이 세상은 된 것이 없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이 세상을 함께 창조하셨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예수님의 빛을 받아들이고 우리 안에 있는 어둠이 사라졌습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빛과 궁창을 창조하심(창 1:1-8)

 

1절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에트 하샤마임 베에트 하아레츠  

==============================1:1절

 창조는 하나님의 사역에만 한정되어 사용하는 단어로서 무에서 유가 이루어지는 상태를 말한다(시33:6,히11:3)

   태초에 - (베레쉬트). 70인역은 이 말을 요 1:1과 같이 '영원부터'란 뜻을 지닌 '엔 아르케'로 번역했으나 원래의 뜻은 하나님이 천지 창조를 개시함으로써 시작된 역사적 '시간의 출발점'을 가리킨다. 이는 창세기가 영원 전 사건을 다루는 깃이 아니라 우주 및 인류가 탄생하는 시점으로부터 시작되는 태고사에 관한 서술임을 암시한다. 한편 공동 번역은 이 말을 '한 처음에'라고 번역했는데 여기서 '한'은 천지 창조의 단희성을, '처음'은 만물의 출발점을 각각 강조하는 말이다.

   하나님 -(엘로힘).'두려워하다'(알라) 혹은 '강하다'란 뜻에서 과생된 말로 곧 '두려워해야 할 강하고 능력 있는 자', '경외해야 할 최고 존재'란 의미이다. '여호와'란 명칭이 '언약을 지키시는 자', '택한 백성을 구속하자'란 의미로 쓰였다면(출 6:3) 이 '엘로힘'이란 명칭은 성경에서 주로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강조할 때 쓰였다(출 20:1; 신 6:4; 삼하 22:32). 한편 일부 학자는'엘로힘'이 '엘로하'의 복수형인 점을 들어 이를 다신론적 사상의 반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비록 형태는 복수형이나 실질적으로는 단수로 취급되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이를 삼위이시나 일체이신 하나님의 존재 양식에 대한 암시로 볼 수 있다(26절). 또한 존귀하거나 장엄한 것을 표현할 때 복수형을 쓰는 히브리인의 독특한 관습에 따라 이를 장엄 복수형으로 볼 수도 있다.

   천지 - 문자적으로는 '하늘과 땅' 곧 지구를 뜻하나 여기서는 지구를 포함하여  은하계가  자리잡고 있는 전우주를 가리킨다(2:1).

   창조하시니라(바라) - 구약에는 '창조하다'란 뜻의 단어가 세 종류 나온다. 첫째 여기서 사용된 '바라'는 무에서 유에로의 완전한 신적 창조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순수한 의미의 창조를 가리킨다. 그러나 때로는 특수한 목적으로 여러 재료를 사용하여 건축하거나 만드는 것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었다. 둘째, '아사'는 이미 창조된 물질을 재료로 더욱더 나은 물체를 만드는 것을 가리킨다(16, 25, 26절). 셋째, '야찰'은 '아사'와 비슷하나 특별한 목적에 따라 기존 사물을 새로 완벽히 조성하는 것을 가리킨다(2:7.9). 한편 천지창조를 주제로 하는 본장에서 '바라'.'아사', '야찰' 등 이 세 단어는 정확한 뜻에 따라 해당 구절에서 사용되었음 알 수 있다. 그 예로 '바라'는 (1) 무에서 유에로의 존재 창조를 가리키는 1절 (2) 생물에게 생명의 근원을 주시는 창조 행위를 가리키는 21절 (3) 그전까지 전혀 없었던 영적 존재의 창조를 가리키는 27절에서만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특별 계시의 책인 성경은 정확무오한 단어가 구별되어 사용된 그야말로 일점 일획도 오류가 없는 책임을 새삼 인지할 수 있다(마 5:18). 즉 우리는 '바라'뿐 아니라 모든 성경 원어를 분석, 연구할 때마다 성경은 단어 하나에 이르기까지 영감 된 책임을 새롭게 깨닫는 것이다.

 이제 이처럼 중요한 단어인 '창조하다'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의미와 그 기사의 정확성을 간추려 보자. (1) 하나님의 창조 활동은 그분의 자유로운 의지에서 기인한 단독 사역이며 (2) 하나님의 창조능력은 제한적이거나 부차적이지 않고 완전한 무에서 유에로의 창조를 가능케 하는 새롭고 신비한 성격의 것이다. 그리고 (3)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존재인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주인으로서 그 모든 것을 자신의 기쁘신 뜻에 따라 말씀에 의해 만드셨다(시33:6-9; 렘10:12). (4) 또한 이는 성경 기록이 비논리적이거나 비과학적이라는 주장을 일소시켜 준다. '창조'라는 개념조차도 무에서 유에로의 창조와 기존 물질을 변형하여 새롭게 제작하는 것과는 명확히 구분하고 있을 정도로 성경은 합리적인 것이다. 한편 이 '바라'라는 단어는 사 40-66장에도 약 20번이나 언급되면서 인간에게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가를 명확히 드러내 주고 있다. 즉 (1) 하나님은 우주의 창조자이시며(사42:5;45:7-9) (2) 언약 공동체인 이스라엘의 창조자이시고(사 43:1, 15) (3)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분이심과(사 65:17) (4) 인류 구원의 주도권을 가지신  분이심(사 42:5-9:49:5,6)을 밝혀 주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다윗의 참회시에도 볼 수 있듯 하나님은 죄인을 중생케 하시는 새 창조의 근원이심(시 51:10; 고후 5:17)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2절 베하아레츠 하예타 토후 바보후 베호쎄크 알 페네 테홈 베루아흐 엘로힘 메라헤페트 알 페네 하마임

================================1:2절

땅 - 접속사(웨)와 정관사(하)가 붙어 있어 직역하면 '그런데 그  땅'이다. 여기서는 '지구'를 가리킨다.

   혼돈하고 -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지구에  생명체가 살수 있을 정도로 아직은 정돈된 상태가 아님을 보여 주는 말이다.  즉 '혼돈'에 해당하는 원어 '토후'는 '공허', '헛된 것'(삼상 12:21;사 40:17)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전혀 형체가 없거나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상태를 의미한다.

   공허하며- 원어 '보후'는 사 34:11; 렘 4:23에서 '공허한'(void)으로 번역되었는데 이것 역시 '토우'와 마찬가지로 미처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는 적막한 상태, 무가치한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혼돈하고 공허하였다'란 의미는 지구가 아직조화된 모습을 갖추고 있지 않고, 따라서 아무런 생명체도 살고 있지 않은 무질서하고 텅 빈 상태였다라는 뜻이다. 한편 본절의 하고... 하면은 카오스적인 존재 상태를 뜻하는 말이지 일부 학자들의 주장처럼 거역한  사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은 변이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 여기서 '흑암'은 단순히 빛에 대칭되는 어두움의 개념이 아니라 창조 이전 빛이 없는 상태를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한편 공동 번역은 이를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로 번역하였다. 왜냐하면 '깊음'에 해당하는 원어 '테홈'은 때로 '깊은 바다'(시 42:7;겔 31:15)나 지하물의 근원지(7:11; 시 78:15)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아마 이는 창조된  원시 형태의 지구가 물 혹은 물 같은 유동체로 덮여있었으며 사면에는 칠흑 같은 어둠만이 있었을 뿐임을 뜻하는 것 같다.

   하나님의 신( 루아흐 엘로힘). -  '루아흐'는 때로 '바람'(8:1)이나 '숨'(욥9:18)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므로 혹자는 이를 하나님께서 깊은 물의 표면에 불게 하신 바람으로 이해하기도 하나 실은 그렇지 않다. 여기서는 어디까지나 제3위 하나님 되시는 '성령'을 가리키는 말로 천지 창조 시부터 이미 삼위 하나님께서 서로 협력하여 사역하셨음을 암시해 주는 말로 이해하여야 한다(26절). 혹자는 성령께서  신약 시대에야 비로소 활동하신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데(행 2:1-4) 성경은 성령께서 이미 구약 시대부터 여러모로 활동하였음을 이미 구약 시대부터 여러모로 활동하였음을 분명히 증거해 준다(출35:31; 삿3:10; 왕하2:1215; 대상 12:18;겔 11:24).

   운행하시니라 - 원뜻은 '알을 품다', 따라서 이 말은 이미 새가 새생명의 탄생을 열망하며 알을 소중히 감싸 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대로 지음 받을 인간의 삶의 장소를 조성하시기 위해 깊은 관심으로 포근하고 소중하게 돌보심을 의미한다.

3절 바요메르 엘로힘 예히 오르 바예히 오르

===================================1:3절

   가라사대(아마르) - 6일간의 창조 기사에서 10회나 반복 사용된 이 말은 하나님은 말씀의 하나님이시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력이 있음을 보여 준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공허하지 않고(신 32:47; 사 55:11; 렘 23:2)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은 곧 그분의 능력이요 행위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창조 시부터 말씀으로 역사하신 하나님은 오늘날도 말씀으로 인간들을 권고한다는 점에서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이며 아울러 하나님의 인격적인 분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인격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그 크신 능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빛이 있으라 - 하나님의 첫번째 명령은 '빛'과 '존재'(있으라)에 관한 것이었다. '빛'은 때로 열(사44:16), 불(사31:9), 태양(욥 31:26), 번개불(욥 27:3)등 구체적인 발광체 혹은 발광 현상을 가리키기도 하나 본절의 '빛'은 4일째 창조된 태양과는 구별되는 에너지원을 가리킨다. 한편 어거스틴은 여기 빛을 신적 은사와 능력을  상징하는 영적인 빛으로 보았다.

4절 바야르 엘로힘 에트 하오르 키 토브 바야베델 엘로힘 벤 하오르 우벤 하호쎄크

====================================1:4절

   보시기에 좋았더라 - 천지 창조 기사를 다루는 1장에 7회나 언급된 이 말은 하나님이 원래 의도하셨던 대로 창조된 여러 피조물에 대해 기쁨으로 승인하는 인준 행위를 의미한다. 즉 이 말은 심미적 판단에서 나온 우주의 아름다움 이상의 창조의 놀라운 목적성과 적합성을 나타낸다(시 104:31). 그러나 이차적으로 이 말은 우주 자체의 심미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좋았더라'(good)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토브'는 '위대한'(시 11:2), '놀라운'(욥 37:14), '완벽한'(신 32:4), '아름다운'(전 3:11)등의 뜻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이 본래 좋은 것으로 인정하신 물질을 바르게 사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힘써야 한다.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 하나님의 천지 창조에는 3차에 걸친 분리 사역이 나타나 있다. 즉 (1) 빛과 어두움(4절) (2) 물과 궁창(7절) (3) 바다와 땅(9절)의 분리이다. 후일 바울은 이 빛과 어두움의 분리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의와 불법의 분리에 적용시킴으로써 도덕적, 종교적 성결의 원리로 확대 해석했다(고후 6:14).

5절 바이크라 엘로힘 라오르 욤 베라호쎄크 카라 라옐라 바예히 에레브 바예히 보케르 욤 에하드

=====1:5절

 낮이라...밤이라 칭하시니라 - 하나님이 자신의 창조물에게 이름을 부여한 최초의 경우이다. 이는 곧 '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시 74:16)임을 의미하는 동시에(1:10) 낮과 밤 양자 사이에는 생동감과 적막, 생명력과 정체 등과 같은 차이점이  있음을 나타낸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 아침에 앞서 저녁이 먼저 언급되고 있는 까닭은 빛이 비추어 낮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계속 어두움만 있었던 저녁 상태였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저녁을 하루의 시작으로 셈하고 있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날 - 날에 대한 히브리어 '욥'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우주 창조의 연대 및 시간적 길이가 정해지는데, 여기에는 전통적으로 다음 세 학설이 있다.  (1) '날'은 곧 한 시대를 가리킨다는 학설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5,8,13절의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말이 하나의 상징적 표현으로서, 한 시대의 끝과 다른 한 시대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 주장의 근거는 창조주 하나님에게는 시간적 요소가 초월되어 있다는 점이다(시90:4; 벧후 3:8). 그러나 이 학설에는 두 가지 난제가 있다. 첫째, 창 1장의 주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출 20:8-11의 안식일 계명 문제에 위반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분명히 안식일 계명에 나타난 창조의 6일은 여자적 6일이요, 장구한 6 시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창세기의 1일이 오늘날과 같은 하루가 아니라면 제7일의 안식일 문제를 설명할 길이 없다. 둘째, 성경의 분명한 어법으로 표현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5,8,14,19절)라는 말을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한 시대의 교체로 보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점이다. (2) '욥'을 문자 그대로  24시간으로 보는 학설이다(루터, 칼빈, 뻘콥).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성경 해석상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원어의 일차적인 뜻을 따라야 한다. 둘재, 실제적인 제7일을 안식일로 하나님께서 정하셨다면 다른 6일도 당연히 같은 24시간을 가진 하루이어야 한다. 셋째, 창조 사역에 있어서 마지막 3일은 분명히 오늘날과 같은 태양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24시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최초의 3일도 같아야 되지 않겠는가?라는 주장이다. (3) '욥'의 기간이 서로 다르다고 보는 절충적인 학설이다(어거스틴, 바빙크), 즉 태양이 창조된 제4일 이전의 3일은 오늘날의 하루와 다른 장구한 기간으로, 그리고 이어지는 3일은 24시간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 세 가지 학설은 각기 나름대로의 타당성과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어느 학설을 완전히 수용하거나 혹은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두 번째 학설이 보수적인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다.

6절 바요메르 엘로힘 예히 라키아 베토크 하마임 비히 마베딜 벤 마임 라마임

=================================1:6절

   물 가운데 - 여기서의 물은 지구 표면을 덮고 있던 물(2절)을 포함한 우주의  모든 수분(水分)을 가리킨다.

   궁창(라키아) - 원어상 의미는 '두들겨 넓게 펼친 판(板)'이란 뜻.  따라서 고대 히브리인들의 개념상 '라키아'는 별과 달이 붙어 있고, 하늘 위의 물을 받치고 있으며, 높은 산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단단한 하늘의 금속판을 가리킨다(욥 26장, 히브리인들의 궁창 개념).

7절 바야아스 엘로힘 에트 헤라키아 바야베델 벤 하마임 아쎄르 미타하트 라라키아 우벤 하마임 아쎄르 메알 라라키아 바예히 켄

================================1:7절

 궁창 아래의 물 - 바다를 비롯한 지구 상의 모든 물.

   궁창 위의 물 - 구름이 수증기 상태로 대기권 속에 떠 있는 모든 수분, 이것이  응집되어 지구 상에 떨어지는 것이 곧 비나 눈, 우박이다.

   그대로 되니라 - '그대로'는 '명하신 대로 확실히' 또는 '틀림없이'의 뜻.  천지가 하나님의 명하신 바대로 창조된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8절 바이크라 엘로힘 라라키아 솨마임 바예히 에레브 바예히 보케르 욤 셰니

=================================1:8절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 이로써 하나님께서 만드신 '궁창'이 무엇인지 분명히 드러났다. 한편 '하늘'에 해당하는 원어 '샤마임'은 '높다'에서 유래한 말로 아주 높이 그리고 끝없이 펼쳐져 있는 대기권 전체를 가리킨다(욥26장, 히브리인들의 궁창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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