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원문 강해

[신약히브리어성경 갈라디아서 강해] 거짓 이단의 경계 말씀(갈 2:1-10)

엘벧엘 2023. 1. 11.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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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장에서 바울은 예루살렘에 2차로 방문하게 된다. 바울은 평생을 복음을 위해서 달렸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거짓 이단들도 교회에 가만히 들어와서 율법주의 신앙을 전했다. 지금도 이단들은 교회에 침투하고 있다. 거짓 복음을 전하여 성도들의 영혼을 죽이려고 한다. 목회자는 오직 복음을 전해야 한다. 복음이 전해지지 않으면 성도는 거짓 복음에 노출된다.

 

거짓 이단의 경계 말씀(갈 2:1-10)

 

2:1 십 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노니

이것은 바울이 제3차로 예루살렘에 올라가 예루살렘 공의회에 참석한 것이다(15장 참조).

십 사년 후는 갈라디아서 1:18-24의 사건 후 즉 제1차 예루살렘 방문 후 십 사 년이라는 뜻이다. 바울이 제 1차 예루살렘 방문 후 십 사 년 동안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교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히는 목적을 바울의 사도직의 독립성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바울의 제2차 예루살렘에 전달하기 위하여 잠시 들렸던 것뿐이고(11:29, 12:25), 사도들과 교제하거나 다른 일을 보지 않았다.

바나바 처음부터 독실히 믿고 자기 소유를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둠으로 권위자라는 칭호를 받은 자요(4:36-37 참조), 바울을 예루살렘 교회에 소개하고 안디옥 교회에 모셔 온 자요, 안디옥 교회에서 바울과 같이 일 년간 성경을 가르친 자이며(11:25-26 참조), 바울과 같이 선교사로 파송받은 자이다(3:1-3 참조).

디도 본래 이방인으로서 기독 신자가 된 자이며(2:3 참조), 바울의 조사(助事)로서 일한 사람이었다.

2:2 계시를 인하여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저희에게 제출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할례 문제를 공적으로 결정짓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갔고 그리하여 예루살렘 공의회가 소집되었다(15:2-7 참조). 바울이 이렇게 상경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다. 바울은 항상 자기의 뜻대로 하지 않고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한 것이다. 안디옥 교인들은 원래 이방인이었으나 바울과 바나바에게 전도를 받아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도리를 믿었기 때문에 할례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유대로부터 온 어떤 형제들이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주장하므로 그들과 바울 사이에 적지 않은 다툼과 변론이 일어나매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대표를 보내서 이 문제를 확정 짓기로 했다. 그 대표로서 바나바와 함께 바울이 이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많은 기도를 하는 중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상경하게 된 것이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통한 외부적인 역사와 자기 속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계시를 인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우리도 무슨 일이나 외부적으로는 교회의 지도와 인도를 받고 내적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해야 된다. 사도시대에는 개인에게 직접 계시를 주기도 했으나 지금은 개인이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한다.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전한 복음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할례와 관계없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저희에게 제출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 바울이 할례 문제를 공적의제(公的議題)로 사도와 장로들에게 제출함에 있어서 먼저 유명한 자 즉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사사로이 그 문제를 토의했다는 것이다(9절 참조). 중대한 문제를 갑자기 제출하면 혼란과 분쟁이 생길 우려가 있기 때문에 사전에 충분한 설명을 하고 그 문제를 위하여 충분히 기도한 후에 결정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은 바울이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세우기 위하여 일생 동알 달음질한 것을 말하는데 할례를 받아야 구원 얻는다고 하면 이 진리가 헛된 데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이 진리를 세우기 위하여 그들을 만난 것이다.

2: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라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아니하였으니

바울이 디모데에게는 할례를 행하였다(16:3 참조). 디모데의 어머니는 유대인이요, 아버지는 헬라인이었기 때문이다(16:1 참조). 디도의 아버지도 헬라인이었으나 디도에게는 할례를 행치 않았다. 그 이유는 잘못된 주장(할례)을 일시라도 복종치 않기 위함이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므로 할례를 행하거나 행치 않거나 아무 상관이 없다(5:6 참조).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 이유는 할례가 구원문제와 상관이 없는 때에 전도의 장벽(방해물)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들은 할례 받지 않는 이방인과는 상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도에게 할례를 행치 않은 것은 당시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는 율법주의자들의 그릇된 주장이 나왔기 때문에 거기에 일시라도 복종치 않고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내세우기 위함이었다. 그때에 만일 디도에게 할례를 행했다면 율법주의자들이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기 때문에 바울도 할례를 행했다고 악용할 위험이 있었다.

2: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가만히 들어온 거짓 선지자들이 교회에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비밀히 들어왔다는 뜻이다. 그것은 이리가 양의 가죽을 쓰고 들어 온 것이다.

거짓형제 예수를 믿어도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는 자들이다. 그들은 예수를 믿으나 참 복음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거짓 형제라고 했다.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믿음으로 구원받아 율법에서 해방된 자유를 말한다. 즉 진리 안에 있는 자유(8:32 참조), 영의 자유, 생명의 자유를 말한다. 거짓 형제들은 성도가 가진 이 참된 자유를 빼앗고 율법의 종과 자기들의 종으로 삼기 위하여 바른 진리를 파괴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2:5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일시라도 비진리 (다른 복음)에 복종하지 않았다. 만일 바울이 한 번이라도 그것을 복종하면 거짓 선지자들은 그것을 선전의 재료로 삼고 바울도 자기들과 같다고 주장하여 바울이 전한 바른 복음을 무너뜨릴 것이다. 참된 진리를 세워 나가려면 일시라도 비진리에 복종하면 안 된다. 진리를 양보하고 비진리와 타협하면 신앙이 죽는다. 신앙의 정조를 한 번이라도 양보하지 않을 때에 생명이 있다. 미혹하는 자들은 언제나 한번 만이라고 미혹한다. 그러나 성도가 신앙의 정조를 한번 빼앗긴 후에는 아무 힘이 없다. 마치 삼손이 신앙의 정조를 잃고 머리를 깎인 다음에는 아무 힘이 없고 블레셋 사람들의 종살이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절대로 진리를 양로 하지 말고 신앙양심을 써 나가야 한다. 심을철 목사는 마귀가 성도를 시험할 때에 4단계로 들어온다고 가르쳤다. 제 1단계는 진리를 어기는 일을 “한 번만” 하라고 한다는 것이다. 제2단계는 “남도 그러는데하고 안심시킨다. 진리를 양보하고 믿는 사람보고 누구도 그렇고 누구도 그렇더라 그러니 진리를 양보해도 괜찮다하고 안심시킨다. 제 3단계는 “염려 없다”라고 자위케 한다. “나도 신앙의 뿌리가 있고 배운 게 있으니 지금은 진리를 못 지키나 염려 없다 앞으로 잘 믿을 것이다라고 자위하게 한다. 제4단계는 “차차 하자”라고 한다. 차차 잘 믿겠다, 차차 고치자 하고 믿음을 쓰지 못한다. 차차 마귀가 들어가면 한 달 가도 차차, 일 년 가도 차차하고 뒤로 미루기만 하다가 죽을 때는 아차차 하고 죽고 만다. 성도가 신앙을 지키려면 한 번 만에서부터 막아야 된다. 한 번 만에서 무너지면 남도 그러하는데 하고 그다음에는 염려 없다 하고 차차 바로 하자 하다가 마침내 아차차 하고 망하고 마는 것이다.

순교자는 한 번의 신앙정조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이다. 경남 거창에 배추달이라는 성도가 있었다. 6․25 사변 때에 인민군들이 주일날 와서 쌀을 지고 가자고 할 때에 주일날이므로 할 수 없다고 대답하자, 그러면 개를 끌고 가자고 했다. 그것도 주일이라서 못한다고 하니 그러면 지서(파출소)의 마당을 쓸라고 했다. 그것도 할 수 없다고 하자 인민군들이 배추달 성도를 총살시켰다고 한다. 그는 주일 지키는 일을 한번 양보하지 않으려다가 순교당한 것이다. 한 번만 말씀을 어기고 이다음부터는 잘하겠다고 생각하면 마귀에게 속는 것이다.

2:6 유명하다는 이들 중에(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명한 이들은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

유명하다는 이들 베드로나 요한 야고보와 같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을 말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았고 초대교회의 창설자로 유명한 자들이었다.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바울이 사도직을 원 사도들에게서 계승한 것이 아니오 하나님께 직접 받았으므로 바울의 사도직과 그 유명한 사도들과는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바울의 사도직은 하나님께서 직접 불러서 맡겨 주신 것이다(1:1 참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유명한 사람이라고 하나님이 더 알아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바른 진리를 믿고 산 신앙으로 나가는 자를 하나님이 귀중히 보시는 것이다.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 바울이 사도직과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았기 때문에 (1:1,12 참조) 유명한 어떤 사람들이라도 더하여 준 것이 없다는 뜻이다. 바울이 자기의 사도직과 진리의 독립성을 주장한 것이다. 바른 진리를 깨달았으면 그것을 절대로 양보하면 안 된다. 진리를 바로 깨달은 사람이 많지 않으며 진리대로 바로 믿겠다는 사람도 많지 않다. 누가복음 12:32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라고 하였다. 또 계시록 3:4에는 흰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사람이 몇 명만 있다”라고 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노회나 총회적으로 신사 참배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고 결의했다. 그것을 반대하고 진리를 지킨 사람은 몇 사람뿐이다. 어느 시대나 대개는 진리를 양보하면서라도 편하게, 쉽게 믿겠다는 사람이 많다. 저들은 성경대로 바로 믿으려고 하는 자에게 유명한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하지 않는데 너만 무슨 특별한 예수를 믿느냐?”라고 윽박지르고 핍박한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 해도 진리를 지키는 데 있어서는 상관이 없다. 하나님 앞에서 지켜나가야 된다. 교역자가 진리를 양보하면 첫째,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어지고, 생명의 역사가 중단되고 다른 사람의 신앙도 죽이고 그 시대를 모두 암흑과 사망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2:7 도리어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기를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이 한 것을 보고

베드로는 유대인(할례자)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직분을 맡았고 바울은 이방인(무할례자)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직분을 맡았다.

2: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베드로에게 역사하셔서 유대인의 사도로 삼으신 하나님이 또한 바울에게 역사하셔서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다. 맡은 분야는 다르지만 두 사도직의 출처는 한분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다.

2:9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유명한 사도인 야고보와 요한도 바울을 하나님께서 사도로 세우신 것과 그가 받은 진리를 인정해 주고 이방인 전도를 잘하도록 부탁하면서 교제의 악수를 한 것이다. 서로서로 하나님이 맡긴 분야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서로 협력해서 도와주고 잘 되기를 원하면서 구원운동을 해나가는 것이다.

야고보 주의 동생 야고보이다(1:19). 그 이름이 베드로보다 먼저 기록된 것은 그는 벌써 예루살렘 교회 감독직에 있었으며 권위자였기 때문이다. 기둥 건물을 버티고 있는 요긴한 역할을 하는 것이므로 여기서는 초대교회의 중심인물을 가리킨다.

2: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

가난한 자를 생각하는 것은 구제하는 일이다. 이 일을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도 바울에게 부탁했다. 이로서 바울의 사도적의 독립성과 전도의 독립성을 인정한 것이다. 당시 유대 지방에는 흉년으로 인하여 가난한 형편이었고 핍박받는 기독교인은 한층 더 가난과 곤고가 심했다. 그러므로 이방 교인들이 때때로 구제 연보를 해서 보내곤 했다(11:29,30, 15:26-27, 고전 16:3, 고후 9:1, 24:17 참조).

[헬라어성경 요한계시록 2장] 버가모 교회에 보내는 편지(계 2:12-17)

 

[헬라어성경 요한계시록 2장] 버가모 교회에 보내는 편지(계 2:12-17)

요한계시록 2장에서는 예수님이 버가모 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다. 좌우에 날 선 검을 가지신 예수님이 말씀하고 있다. 버가모 교회는 발람의 교훈을 따라가고 있었다. 거짓 복음을 따라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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