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고린도 성도들에게 인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는 원한다고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성도의 삶을 살아서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실 때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믿음을 굳건히 지켜야 합니다.
바울의 인사와 감사 인사(고전 1:1-9)
1절 파울로스 클레토스 아포스톨로스 이에수 크리스투 디아 델레마토스 데우 카이 소스데네스 호 아델포스
=====1:1
하나님의 뜻을 따라...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 바울은 하나님이 자신을 친히 부르셨다는 주장이 필수적으로 변화되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 이유는 고린도 교회에 여러 당파들이 있어서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려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12절;9:1-12). 여기에서 '사도'(아포스톨로스)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자'란 의미로 전권을 위임받은 특사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사도'라는 직분은 원래 오직 그리스도가 임명을 해서 직접 보낸 열 두 제자만을 가리켰다. 그러다가 초대 교회에서는 이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갖게 되었다. 여기에서 바울은 자신이 다메섹 도상에서 직접 예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사실을 근거로 해서(행 9:15) 자신의 사도 됨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따라 된 것임을 명백히 한다. 그는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권위를 옹호하기 위하여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바울이 본서의 첫머리에서 자신의 신분을 사도라고 밝힌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형제 소스데네 - 헬라어 본문에서 '형제'의 헬라어 '아델포스'앞에 정관사 '호'가 있어서 소스데네가 '형제들'가운데 하나임을 의미한다. 그가 바울과 함께 본 서신을 집필하였다는 증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으나 고린도 교인들이 소스데네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언급했을 것이다. 소스데네는 고린도의 유대인 회당의 회당장이었으며, 유대인들이 총독 갈리오에게 바울을 송사했을 때 바울 대신에 그들에게 매를 맞은 사람이었다(행 18:12-17). 그런데 소스데네라는 이름은 당시에 흔한 이름이었기 때문에 그가 반드시 본절의 인물과 동일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2절 테 에클레시아 투 데우 테 우세 엔 코린도 헤기아스메노이스 엔 크리스토 이에수 클레토이스 하기오이스 쉰 파신 토이스 에피클루메노이스 토 오노마 투 퀴리우 헤몬 이에수 크리스투 엔 판티 토포 아우톤 테 카이 헤몬
=====1:2
고린도에 있는 - 고린도는 기원전 146년에 무미우스에 의해 파괴되었으나 그로부터 80년 후인 기원전 44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복구되었다. 그 후 고린도는 급속히 재건되어 아우구스토 황제에 이르러 아가야의 수도가 되고 바울 당시에는 인구 60만을 헤아리는 대도시로 발전했다. 당시에 이 도시는 상업의 도시로 번창했으나 반면에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극히 암담하고 무질서하였다. 그 도시인들은 다신교를 숭배했고(행 17:16-22) 그들의 생활은 음란했다. 따라서 '고린도화 하다'라는 말은 '아프로디트 여신을 숭배하며 추악한 음행을 행한다'는 의미가 될 정도였다.
하나님의 교회 - 바울이 고린도라는 지명과 함께 '하나님의 교회'를 언급한 것은 기독교의 고귀한 이상과 우상 숭배의 허탄함을 극명하게 대조해 주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고린도 교회가 하나님에게 속한 교회임을 나타내는 이 표현은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온전한 주권과 하나님의 교회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는 바울의 겸손함을 잘 드러내 준다. 바울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모이는 교회를 헬라 세계의 세속적인 '엑클레시아'와 구별하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당시의 세속적인 세상의 총회(엑클레시아)는 공공, 이익에 관련되는 문제를 토의하고 결정하기 위해 도시 국가의 시민들이 모이는 집합체였다(행 19:39).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묘사한다. '거룩하여지고'의 헬라어 '헤기아스메노이스'는 완료형 분사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고 그 결과 이루어진 상태가 현재에도 계속 유지됨을 의미한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 등이 하나님의 소유로서 거룩하다고 불렸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을 지칭하여 거룩한 자들이라고 불렀다(30절;6:11). 바울이 여기에서 고린도인들을 '성도'와 '거룩하여진' 자들로 칭했다고 해서 고린도 교인들 모두가 참 신자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의심할 바 없이 고린도시가 부패했던 것처럼 교회도 교리와 실천에 있어서 상당히 부패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로 인정하고 있다.
또 각처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 '각처에서'라는 말은 이 서신이 고린도 교회 이외의 다른 교회에서도 읽힌 것을 목적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에 대해 혹자는 본서와 같은 특정한 내용의 서신 다시 말하면 특정한 교회의 개별적인 문제를 취급한 편지가 일반 교회를 상대로 하여 쓰였다고 보는 것은 곤란하다고 한다. 그러나 본 서신이 비록 고린도 교회에 보내진 것이라 할지라도 다른 교회들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을 배제할 수 없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다루는 바울의 서신은 하나님의 교회의 근본적인 성격을 원리적으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3절 카리스 휘민 카이 에이레네 아포 데우 파트로스 헤몬 카이 퀴리우 이에수 크리스투
=====1: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 이 구절은 전형적인 바울의 인사 형식이다. 당시 헬라 세계의 일반적인 인사말은 삼인칭을 사용했지만 바울은 일인칭이나 이인칭을 사용하여 훨씬 가까운 친밀감을 표현하였다. 한편 바울이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표현하는 것은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사람들을 창조하셨고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 '예수 그리스도'란 말은 본장의 1절부터 9절까지 아홉 번이나 반복되었다. 바울의 문체의 독특성 중의 하나는 핵심 되는 단어를 계속하여 되풀이하는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전하는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이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명백히 보여준다. 한편 전치사 '좇아(아포)는 하늘의 은사들이 그리스도 때문에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 이런 형식의 인사말은 바울이 자주 사용하는 문구이다(롬 1:7;갈 1:3;엡 1:2;빌 1:2). '은혜'(카리스)란 하나님이 인간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값으로 계산 불가한 것을 대가 없이 주시는 선물이다. 그리고 '평강'(에이레네)은 히브리인들의 일반적인 인사말 '샬롬'('평화')에서 온 말로 분쟁과 싸움이 없다는 소극적인 의미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축복이 있어서 풍요로운 영적 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은혜와 평강'을 기원한 것은 그들이 구원을 받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고(고후 8:9;엡 2:8,9) 그리스도께서 그의 구속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평화를 이루셨기 때문이다(롬 5:1;엡 2:14). 본절에서 바울은 비록 은혜와 평강을 얻는 방편인 믿음을 말하고 있지 않지만 그 믿음을 소유한 모든 자들에게는 이 은사가 주어지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4절 유카리스토 토 데오 무 판토테 페리 휘몬 에피 테 카리티 투 데우 테 도데이세 휘민 엔 크리스토 이에수
=====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은혜를 인하여 - 바울은 다른 편지에서와 마찬가지로 인사말에 이어 수신자들을 위한 감사를 드린다(롬 1:8;빌 1:3-7;골 1:3-8). 혹자는 본서에서의 감사는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비난한 본서의 내용에 비추어 보면 풍자적인 면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바울은 될 수 있는 대로 격려와 칭찬을 자주 하곤 했다. 비록 고린도 교인들의 삶에 많은 결함이 나타났을지라도 그들은 다른 고린도 시민들과는 명백한 차이가 있었음이 분명했다. 따라서 바울은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엔 크리스토 예수)라는 말은 바울의 서신에 164회나 나타나며 옥중 서신에 특히 많고 본서에서도 11회나 쓰였다(2,4절;3:1;4:10,15,17;15:18,19,22,31). 바울이 여기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문구를 사용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일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영역 안에서 특정하게 주어진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내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 '항상'에 해당하는 헬라어 '판토테'와 '감사하노니'(유카리스토)는 현재형으로 쓰여 바울의 계속적이고 규칙적인 기도 생활을 시사한다. 바울은 그가 가르쳤던 교회들을 위해 정규적으로 중보의 기도를 드렸다(엡 1:16;빌 1:3). 원문에는 본절의 첫머리에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열거될 수 있는 모든 영적인 축복들이 하나님의 선물이자 그분에게서만 유래되는 것임을 암시해 준다.
5절 호티 엔 판티 에플루티스데테 엔 아우토 엔 판티 로고 카이 파세 그노세이
=====1:5
너희가...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 고린도 교회에 내려진 하나님 은혜가 각 방면에서 풍족하게 드러났음을 의미한다. 본절에서 '모든...풍족하므로'(판티 에플루티스데테)는 사실상 양보다 질을 말하고 있으며 '하나도 빠짐없이 전체'라는 의미라기보다는 '가능성 있는 모든 측면에서'라는 의미가 더 타당하다. 한편 '구변'에 해당하는 헬라어 '로고'는 '교리'혹은 '진리'를 의미한다. 그리고 '지식'에 해당하는 헬라어 '그노세이'는 영지주의(Gnosticism)에서 언급하는 감추어진 신비한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기초한 구체적인 지식을 말한다. 즉 바울이 말하는 '지식'이란 '내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빌 3:8) 곧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이라는 실재 위에 기초한 구체적인 지식을 말하고 있다. 한편 '풍족하므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플루티스데테'는 '플루티조'의 부정 과거 수동태로 신약 성경에서는 바울 서신에서만 나타난다(고후 6:10,11). '풍족하다'는 말은 본절에서 개종이나 세례가 풍부하다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일들을 알고 말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이 풍성히 축복하여 주신 것을 지칭한다. 이 단어가 부정 과거 시제로 사용된 것으로 보아 고린도 교인들의 삶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가 뚜렷했음을 알 수 있다.
6절 카도스 토 마르튀리온 투 크리스투 에베바이오데 엔 휘민
=====1:6
그리스도의 증거가...견고케 되어 - '그리스도의 증거'란 바울이 4년 전에 고린도에 머무르면서 전했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말한다. 그리고 '견고케 되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베바이오데'는 '베바이오오'의 부정 과거 수동태로 앞절의 '풍족하다'와 동일하게 강조되고 있다.
7절 호스테 휘마스 메 휘스테레이스다이 엔 메데니 카리스마티 아페크데코메누스 텐 아포칼륍신 투 퀴리우 헤몬 이에수 크리스투
=====1: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 '은사'라는 말은 신약성경에서 구원(롬 5:15), 일반적인 하나님의 선물(롬 11:29), 성령의 특별한 능력(12:4)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여기에서는 전체 문맥을 고려해 볼 때 그리스도의 증거가 고린도 교회에 좋게 받아들여져서 나타난 열매를 의미하는 것 같다. 고린도 교인들에게 믿음, 지식과 같은 내적인 은사뿐 아니라 이적 행함과 병 고침, 방언과 예언 같은 외적인 은사들이 풍성하였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 '나타나심'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칼립신'은 문자적으로 '뚜껑을 열다', '수건을 벗긴다'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종말론적인 용어로써 감추었던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참뜻은 현재에는 비밀에 속한 것인데 종말에는 비로소 완전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한편 '기다림이라'의 헬라어 '아페크데코메누스'는 바울이 주로 사용한 단어로 초대 교회 교인들의 종말론적 삶을 잘 표현해 준다. 본절에서 이 단어는 강하고도 진지하게 기다리며 경성 한다는 의미를 지니며 '간절하게 기다리면서'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그들의 간절한 기대는 주님의 종말(終末)에 관한 말씀(마 24:30,34)에 근거한 것이다. 초대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가능하면 그들이 살아 있을 동안에 주님께서 재림하시기를 바랐다(15:51;살전 1:9,10;약 5:8,9;벧전 4:7;요일 2:18;계 22:20).
8절 호스 카이 베바이오세이 휘마스 헤오스 텔루스 아넹클레투스 엔 테 헤메라 투 퀴리우 헤몬 이에수 크리스투
=====1:8
주께서...그리스도의 날에 - '주께서'라는 인칭관계대명사 '호스'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정확하지 않다. 7절을 미루어 볼 때 그리스도인 듯 하지만, 9절에서 하나님의 미쁘심을 언급한 것으로 비추어 볼 때 하나님 아버지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 만약 그리스도라고 한다면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의 날에 견고케 하시리라'라고 말하는 격이 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주의 날'이라는 표현은 바울 서신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나타내는 일반적인 표현이다.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 '책망할 것이 없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넹클레투스'는 '고소하다', '비난하다'의 '엥칼레오'와 부정 접두어 '아'의 합성어로 아무도 비방할 수 없을 만큼 흠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처럼 흠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보증하는 자들을 고소할 만한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롬 8:33). 따라서 본절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일깨워 주고 있다. 한편 '견고케 하시리라'의 헬라어 '베바이오세이'는 6절의 '견고케 되어'와 같은 동사인데 그곳에서는 교리적인 면을 묘사했다면 본절에서는 실제 생활에 적용되는 실천적인 면을 묘사한다.
9절 피스토스 호 데오스 디 후 에클레데테 에이스 코이노니안 투 휘우 아우투 이에수 크리스투 투 퀴리우 헤몬
=====1:9
너희를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다 - '미쁘시도다'의 헬라어 '피스토스'가 원문에는 문두에 나와서 강조적으로 쓰였다. 이 말은 바울이 즐겨 사용하는 말로써 그의 자신의 근거가 되는 말이고(고전 10:13;살전 5:24), 신약 성경 전체에 걸쳐 사용되는 중요한 용어 가운데 하나이다(히 3:2;10:23;벧전 4:19;요일 1:9;요삼 1:5;계 1:5;3:14). 바울은 본 서신의 첫머리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사도가 되었다고 밝혔는데 본절에서는 모든 신자들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대상으로 간주한다. 이 부르심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교제하여 그들을 거룩케 하기 위함이었다(롬 3:29). 여기서 '교제'(코이노니안)란 연합과 교통을 포함하는 말로 함께 참여함을 의미하며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된다.
[헬라어 성경 강해 로마서] 바울이 다윗의 혈통에 나온 예수님을 증거(롬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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