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너에게 있을지어다라고 축복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목회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따르게 하는 것을 경계하라고 말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단과 이단 사상들이 교회에 많이 침투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 신앙을 가르쳐서 성도가 예수님을 부인하게 만들고 자신의 의를 주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예수님보다 인간을 더 높이는 교회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율법을 강조하면 복음을 사라지게 됩니다. 거짓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경계하여 올바른 진리의 복음만을 교회에서 전파해야 합니다.
이단과 이단 사상에 대한 경계(딤전 1:1-11)
1절 파울로스 아포스톨로스 이에수 크리스투 카트 에피타겐 데우 소테로스 헤몬 카이 퀴리우 이에수 크리스투 테스 엘피도스 헤몬
=====1:1
우리 구주 하나님 - '구주'에 해당하는 헬라어 '소테로스'는 이방신과 로마의 황제 숭배에도 사용되었던 호칭이다. 바울은 여기에서 '우리'라는 말을 첨가함으로써 하나님이 사도 바울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을 구속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사도 된 바울 - '사도'(아포스톨로스)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파송된 사람'이라는 뜻이다(고전 15:8,9; 갈 2:8). 처음 사도는 예수의 공생애 기간에 함께 생활한 제자들을 일컫는 말이었는데(눅 6:13), 나중에는 사도의 조건이 예수의 생활과 죽음과 부활을 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발전했다(행 1:23-26). 바울은 여기에서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디모데에게 맡겨진 사역을 잘 감당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사도'라는 칭호는 당시 바울 외에 복음 사역에 헌신하였던 바나바, 디도, 아볼로, 실라, 디모데에게도 동일하게 사용되었다(행 14:14; 고전 4:6; 빌 2:25; 살전 2:6).
2절 티모데오 그네시오 테크노 엔 피스테이 카리스 엘레오스 에이레네 아포 데우 파트로스 헤몬 카이 크리스투 이에수 투 퀴리우 헤몬
=====1: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 - 디모데가 바울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은 신앙 안에서 디모데가 바울의 영적 아들이라는 뜻이다. 혹자는 '종속적 원리'에서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를 생각하지만 여기서는 '선생과 제자' 사이의 관계로 봄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선생과 제자'의 관계를 나타낼 때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2차 전도 여행 때 루스드라에서 그리스도인의 유대인 모친과 헬라인 부친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디모데를 만났다(행 16:1-3). 그때 디모데는 바울의 전도 여행을 따라다니면서 신앙 교육을 철저히 받았다. 그러고 나서 바울이 가장 신임하는 동역자 중의 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바울이 디모데를 영적으로 양육한 아들로 보는 것은 타당하다(빌 2:19-22).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일반적으로 '은혜와 평강'이라는 말을 인사말로 썼다(고전 1:3; 고후 1:2; 갈 1:3; 엡 1:2; 빌 1:2; 골 1:2; 살전 1:1; 살후 1:2; 딛 1:4; 몬 1:3). 그러나 본문에서는 '긍휼'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이처럼 '긍휼'이 서신의 인사말에 언급된 경우는 본서 외에 딤후 1:2; 요이 1:3; 유 1:2에만 해당된다. '긍휼'의 의미는 하나님이 인간의 모든 상황을 지배하시고 한없는 사랑과 위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긍휼은 죄인들을 고통에서 구원하여 항상 새롭게 한다. 한편 '은혜'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구원의 선물이며, '평강'은 죄인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의 결과이다. 이렇듯 은혜와 긍휼과 평강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3절 카도스 파레칼레사 세 프로스메이나이 엔 에페소 포류오메노스 에이스 마케도니안 히나 파랑게일레스 티신 메 헤테로디다스칼레인
=====1:3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한 것은 - 바울은 로마에서 2년간 옥에 갇혔다가 석방된 후에 디모데를 데리고 그레데 섬을 지나 에베소까지 왔으나 계속 동행하지 못하고 디모데를 그곳에 남겨둔 채 마게도냐로 떠났다. 바울이 마게도냐를 방문한 것은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바울이 디모데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도록 한 이유는 에베소 교회에 거짓 교사들의 미혹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실한 동역자요,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가 아니면 복음 사역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를 머물도록 한 것이다. '권하여'의 헬라어 '파레칼레사'는 '간청하다', '간절히 원하다'는 의미로 디모데가 바울과 같이 마게도냐로 가기를 원했으나 에베소에 머물도록 했음을 시사한다.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 '다른 교훈'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테로디다스칼레인'은 '거짓 교훈' 즉 정통 교훈과 배치되는 이단적 사상을 의미한다. 이것은 초대 교회에 이미 공인된 기독교 교리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4절 메데 프로세케인 뮈도이스 카이 게네알로기아이스 아페란토이스 하이티네스 제테세이스 파라쿠신 말론 에 오이코노미안 데우 텐 엔 피스테이
=====1:4
신화와 끝없는 족보 - '신화와 족보'는 하나의 표현으로 나누어서 생각해서는 안된다. 유대인들에게는 모든 만물에 영이 있다는 영지주의 사상이 있었다. 이 영지주의자들과 유대교의 학자들은 가문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유대의 문화권 속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끝없는 족보가 있다고 생각하였고, 그리하여 구약 인물들에 대한 가상적 족보를 만들었다. 특히 아브라함과 모세, 대제사장들을 중심으로 족보와 전기를 만들어 개개의 자신들을 그들의 후예로 만들었다. 이러한 특색은 당시 유대교의 묵시 문학에서 발견되었다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 '경륜'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이코도미안'은 '청지기' 즉 복음 사역을 위한 '직분'을 의미하지만 '계획'으로도 번역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은 복음이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만 전달되고 사람들이 믿음으로서만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신화와 족보는 첫째, 끝없는 논쟁을 불러일으킴은 물론 영지주의자들 스스로 유식 계급이라고 자처하게 하며, 둘째, 일반 성도들로 하여금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므로 바울은 신화와 족보는 마침내 하나님의 교회에 계급주의와 분파 운동을 불러일으켜 변론만 일삼게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5절 토 데 텔로스 테스 파랑겔리아스 에스틴 아가페 에크 카다라스 카르디아스 카이 쉬네이데세오스 아가데스 카이 피스테오스 아뉘포크리투
=====1:5
경계의 목적은...사랑이거늘 - '경계'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랑겔리아스'는 '계명'을 의미한다. 이것은 디모데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책임을 다해야 함을 시사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역자는 성도들을 그릇된 이단 사상에 미혹되지 않도록 권고해야 하며 그 권고의 동기는 '아가페' 사랑에 두어야 한다. 이러한 사랑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부터 온다. 여기서 '거짓이 없는 믿음'이란 자신의 권위와 이익을 위해 불순한 동기로 믿는 것이 아니라, 신실한 동기를 가지고 믿는 믿음을 말한다(행 15:9). 당시의 거짓 교사들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 쓸데없는 신학 논쟁을 일삼으며 가식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6절 혼 티네스 아스토케산테스 엑세트라페산 에이스 마타이올로기안
=====1:6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 '벗어나'의 헬라어 '아스토케산테스'는 '표적을 벗어나다', '잘못 맞추다'는 의미이다. 또한 '헛된 말'에 해당하는 '마타이올로기안'은 신약성경을 통틀어 본절에만 나오는 단어로 '공허한 지껄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절은 불행하게도 어떤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의 기초인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벗어나 쓸모없고 무의미한 말만 늘어놓았다는 뜻이다.
7절 델론테스 에이나이 노모디다스칼로이 메 노운테스 메테 하 레구신 메테 페리 티논 디아베바이운타이
=====1:7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논리를 펴서 율법 선생이 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 율법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유대주의자들과 영지주의자들이 가졌던 신화와 헛된 족보를 전파하여 공중 앞에서 자신들의 권위를 세우고자 하였다. 그들은 이미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사랑의 계명을 버렸기 때문에 그들의 말은 헛된 궤변에 불과하였다. 따라서 바울은 그들의 헛된 교만을 꾸짖고 있는 것이다.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 헛된 궤변을 남발하는 자들의 말은 성경의 권위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진리가 아니다. 또한 그들이 말하는 것이나 확증하는 것은 사랑의 진리나 율법에 대한 신성한 목적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무의미한 잡담에 불과하였다. 성경의 심오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성경에 대한 해석을 늘어놓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결국 그와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과 같다.
8절 오이다멘 데 호티 칼로스 호 노모스 에안 티스 아우토 노미모스 크레타이
=====1:8
율법은 선한 것인 줄 우리는 아노라 - 바울은 여러 곳에서 율법은 선하고 거룩한 것이라고 말하였다(롬 7:12 ; 갈 3:24 ; 4:4, 5). 또한 본절에서 바울은 율법을 원목적에 맞게 사용할 때 그 효용성이 발휘된다는 점에서 율법이 선하다고 말하고 있다. 실상 율법은 인간의 구원을 완성시킬 수 없으나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선한 직능이 있다(롬 7:7). 이러한 의미에서 율법은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으로 묘사되었다(갈 3:24). 율법의 직능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갈 3:15-29 주제 강해 '율법과 복음의 비교' 및 '율법의 제한성과 연속성'을 참조하라.
9절 에이도스 투토 호티 디카이오 노모스 우 케이타이 아노모이스 데 카이 아뉘포타크토이스 아세베신 카이 하마르톨로이스 아노시오이스 카이 베벨로이스 파트랄로아이스 카이 메트랄로아이스 안드로포노이스
=====1:9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 바울의 주장은 모든 불의를 열거하는 것에 목적이 있지 않았다. 다만 그가 의도한 바는 율법이 세워진 목적을 주장하려는 것이다. 당시 에베소에 있는 거짓 교사들은 율법에 관해서 갖고 있는 그들의 잘못된 견해들을 그대로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성도들은 미혹을 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이 가지고 있는, 범죄를 억제하는 기능과 고발의 기능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세상의 법도 악한 범죄를 다스리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지 결코 의로운 사람의 행동을 제약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율법 또한 행악자를 위하여 있는 것이지 의로운 자를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의로운 사람이 율법 없이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혹자는 본절의 '법'을 '모세의 법'과 연관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이 견해는 타당치 않다. 왜냐하면 '노모스'가 정관사를 수반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모세의 법'이 아닌 '일반적인 도덕법'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바울이 여기서 '옳은 사람'이라고 한 것은 넓은 뜻으로 그리스도인을 대변하는 말로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를 가리키는 것이지 절대적으로 완전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 - '불법한 자'란 율법을 제정하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고 하는 자이다(롬 2:12 ; 고전 9:21). '복종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규칙 아래 자신을 복종시키기를 거부하여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들이다. 바울은 본절에서 자신들의 말을 하면서 그리스도의 말씀은 알려고도, 들으려고도 안 하는 에베소의 거짓 교사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고의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고, 들으려고 하지 않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회피할 수 없으며 여전히 법의 테두리 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 - 이것은 앞의 문구와 연결 지어 해석해야 한다.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자기 뜻과 소견대로 사는 사람들이 곧 경건치 아니한 자요 죄인이다. '경건치 아니한 자'의 헬라어 '아세베시'는 '믿지 않는 자'란 뜻인데(롬 1:18) 이는 삶과 행위에서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뜻을 업신여기는 자를 말한다. 또한 '죄인'에 해당하는 헬라어 '히마르톨로이스'는 자신의 존재 목적을 깨닫지 못하고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상실한 자를 가리킨다.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 -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는 십계명 중 첫 네 계명을 어기는 자를 지적한다. '거룩하지 아니한 자'의 헬라어 '아노시오이스'는 '속되고 부도덕한 자'로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손상시키고 그분의 뜻을 받들지 않는 자를 의미한다(벧전 1:15, 16). 이 말은 신약성경에서 본절과 딤후 3:2에서만 쓰였으나 70인 역에서는 자주 사용되었다. '망령된 자'의 헬라어 '베벨로이스'는 '가다'를 뜻하는 '바이노'와 '문지방'을 뜻하는 '벨로스'와의 합성어로 '거룩한 곳을 범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목회서신과(4:7; 6:20) 히 12:16에만 언급된다. 이상에서 열거된 여섯 가지의 죄악들은 모두 하나님을 거역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 - 이것은 십계명의 제5계명과 6 계명을 거역한 자이다.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트롤 로아이스 카이 메트롤로아이스'는 '아비'를 뜻하는 '파테르'와 '어미'를 뜻하는 '메테르'에 '죽이다'를 뜻하는 '알로이아오'가 결합된 형태이다. 그러므로 이는 살인죄와 부모를 공경하지 않은 죄를 포함한다. 또한 '살인하는 것'은 생명의 주이신 하나님께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요일 3:15).
10절 포르노이스 아르세노코이타이스 안드라포디스타이스 프슈스타이스 에피오르코이스 카이 에이 티 헤테론 테 휘기아이누세 디다스칼리아 안티케이타이
=====1:10
음행 하는 자며 남색 하는 자 - 이는 십계명의 제7계명을 범하는 자이다. '음행 하는 자'는 미혼뿐만 아니라 기혼 이성간에 불륜을 행하는 자이다(고전 6:18). 그러므로 음행하는 자는 부도덕하고 부정한 자로서 더러운 행위를 하는 자이다(마 5:27,28; 히 13:4). 그러나 이것보다 더 추악한 범죄는 '남색 하는 것', 즉 동성 간에 성적 접촉을 하는 것이다(창 19:1-11; 롬 1:26, 27 ; 고전 6:9).
사람을 탈취하는 자 - 이는 제8계명을 거역하는 자이다.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안드라포디스타이스'는 '아네르'와 '푸스'의 합성어로 '발목을 낚아채다', '노예로 삼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는 '노예 매매자들'이나 '사람을 잡아 노예로 삼는 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안드라포디스테스'는 어떤 목적으로 유괴하여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는 행위까지 포함한다(출 21:6 ; 신 24:7).
거짓말하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 - 이는 십계명의 제9계명을 거역하는 자이다. '거짓말하는 자'는 거짓 양심을 가진 자로서 비진리를 말하는 자이고, 행동이 자신의 신앙 고백과 일치하지 않는 자이다(요일 2:4; 4:20). '거짓 맹세하는 자'는 자신의 권위나 체면 때문에 이웃을 해(害)하는 약속을 하거나 거짓 증거를 일삼는 자이다(마 5:33 ; 약 5:12).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 - '바른'의 헬라어 '휘기아이누세'는 눅 5:31과 요삼 1:2에서 '육체의 건강'에 대해 사용했으나 목회 서신에서는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율법은 어떠한 사람도 거스를 수 없으며 회피할 수 없다. 죄인들은 그 교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또한 그 교훈은 사람의 영혼을 건강하게 한다. 그러므로 그 교훈은 바른 교훈이 된다. 이러한 교훈을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독선(獨善)에 빠져 사는 사람이다(딤후 4:3; 딛 1:9;2:1).
11절 카타 토 유앙겔리온 테스 독세스 투 마카리우 데우 호 에피스튜덴 에고
=====1:11
이 교훈 - '이 교훈'은 8절에서 10절까지의 내용을 가리킨다. 이 교훈의 요지는 율법이 악한 자들의 죄를 드러내고 그들을 의로운 모습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복 되신 하나님 - 이는 본절과 6:15에만 나오는 표현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낸다. 여기서 '복 되신'의 헬라어 '마카리우'는 하나님과 교통 하는 자들이 받는 특별한 은총들, 즉 '죄 용서함을 받는 축복'의 의미로 사용되었다(롬 4:7, 8 ; 14:22 ; 고전 7:40 ; 딤전 6:15).
영광의 복음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오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복음을 주셨고 이는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드러낸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영광의 복음에 근거하기 때문에 율법에 위배되는 사항을 강력하게 고발할 수 있었고 과거에 교회를 핍박했던 자신을 신임하셔서 영광의 복음을 맡기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다(12절).
[헬라어 성경 데살로니가후서] 핍박 중에 믿음을 지킨 성도 격려(살후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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