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히브리어로 보는 룻기 중에서 나오미와 룻의 베들레헴 귀향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나오미와 룻이 모압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향했는데 이제는 베들레헴에 도착했습니다. 나오미가 베들레헴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이 나오미를 알아보았습니다. 나갈 때는 풍족하게 나갔는데 들어올 때는 아무것도 없이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떠난 삶은 잘 될 것처럼 생각이 들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없는 삶입니다. 빈털터리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나오미와 룻의 베들레헴 귀향(룻 1:19-22)
19절 바텔라케나 쉐테헴 아드 보아나 베이트 라헴 바예히 케보아나 베이트 레헴 바테홈 콜 하이르 알레헨 바토마르나 하조트 나오미
=====1:19
온 성읍이...떠들며 이르기를 - 성읍 내에서 유력한 가문이었던(2절) 엘리멜렉 가족이 먼 모압 지방으로 이주해 간 사실도 분명 한때의 큰 화젯거리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어언 10년이 지난 후, 낯선 여인과 함께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난 나오미의 등장은 분명 조그마한 성읍 베들레헴을 온통 벌집 쑤셔 놓은 것처럼 소동케 하기에 충분히 재미난 화제거리 였음에 틀림없다.
이가 나오미냐 - 이 말은 단순히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온 것에 대한 놀라움만을 표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이방 여인인 며느리만을 데리고 빈손으로 처량하게 돌아온 나오미의 모습을 보고, 연민의 정을 느껴 발한 탄성이다. 따라서 이 말은 10여년 전 고향 떠날 때와는 전혀 다르게(21절) 변한 나오미의 모습과 처지를 반영한 말이다.
20절 바토메르 알레헨 알 티크레나 리 나오미 케레난 리 마라 키 헤마르 샤다이 리 메오드
=====1:20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 '나오미'(Naomi)란 이름의 의미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본장의 전후문맥과 어근을 살펴볼 때 '감미로운 자', '은혜로운 자', '사랑스러운 자'란 의미를 지닌다. 반면에 '마라'(Mara)란 단어는 '괴로움', '쓰라림', '씀'을 의미한다(출 15:23). 그러므로 이처럼 나오미가 자신을 '마라'라 불러달라고 한 것은 그녀가 모압에서 생활하는 중 극도의 슬픔과 고통을 맛보았을 뿐 아니라, 지금도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고 괴로운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전능자가...괴롭게 하셨음이니라 - 여기서 나오미가 특별히 하나님의 신명칭을 '전능자'로 부르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즉 '전능자'(솨다이)란 신명칭은 택한 백성이 순종의 길로 걸어갈 때는 무한히 축복해 주시되, 어그러진 길로 갈 때는 어김없이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 주는 명칭이다. 나오미도 이런 의미에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사용한 듯하다.
21절 아니 멜레아 할라케티 베레캄 헤쉬바니 아도나이 라마 티크레나 리 나오미 바아도나이 아나 비 베샤다이 헤라 리
=====1: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 이 말에 대한 해석으로는 다음 두 가지가 있다. (1) 혹자는 엘리멜렉의 가정이 지방 귀족 가문으로서, 그들이 모압을 향해 떠나던 당시에는 베들레헴에서 널리 알려질 정도로 부유하였다고 주장한다(David Atkinson, Leon Moris). (2) 어떤 학자는 나오미가 풍족하게 나갔다는 말은 재산이나 명예의 풍부가 아니라, 든든한 남편과 두 아들로 풍족하게 나갔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Keil, A.C. Hervey). 그런데 본장의 전후 문맥을 살펴볼 때 우리는 위의 두 가지 내용이 모두 함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나오미가 떠날때 '풍족했다'는 표현을 쓴 것에 초점을 맞추면 분명히 사람 뿐 아니라 재물도 포함된다. 그렇지만 나오미가 돌아올 때 남편과 자식들 없이 공수(空輸)로 돌아온 것에 초점을 맞추면 두 번째의 주장도 타당하다. 사실 충족한 재산을 가지고 이방 땅에 가서 흉년이나 기타 재난으로 망하지 않았다면, 비록 그곳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을 지라도 재물까지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에 정착하여 생활한 형편을 보면(2:2), 남편과 자식들을 잃은 것 외에 재물까지도 잃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나오미가 떠날 때 풍족했다는 표현을 쓴 것은 위의 두 가지 모두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징벌하셨고...괴롭게 하셨거늘 - 이 두 동사형은 서로 관련이 있다. 즉 '징벌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나'는 눈 밖에 난 자를 비천하게 만들어 결국 괴롭게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며, '괴롭게 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아'는 하나님의 징계로 괴로움을 당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한편 나오미가 본절에서 이 두 단어를 반복하여 사용한 것은 (1) 자기의 고통스러움이 분명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과 (2) 그 징벌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받아들인다는 회개의 의미로 설명될 수 있다.
22절 바타솨브 나오미 베루트 하모아비야 칼라타흐 임마흐 하솨바 미세데 모아브 베헴마 바우 베이트 레헴 비트힐라트 케치르 세오림
=====1:22
본절은 1장의 요약이자 2장의 서론으로서, 나오미와 룻의 귀환을 역사적 바탕 위에서 간략히 언급하고 있다.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 팔레스틴(가나안) 지방에서는 일반적으로 보리를 가을에 파종하여 이듬해 봄에 추수한다(2:23). 그리고 보리 추수가 끝날 무렵에는 밀수확을 한다. 팔레스틴의 보리 추수는 보통 4월 말 경에 시작되었으나(수 3:15) 고원 지대에서는 5월 또는 6월 초순이 되어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또한 보리는 팔레스틴 지방에서 나는 주산물 중 하나로서 주로 말이나 노새의 먹이로 경작되었으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양식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보리 수확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고 봉헌하기 위해 '초실절'(初實節)을 절기로 지킨다(레 23:9-14). 한편, 본절은 나오미가 자기 고향 땅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6절), 곧바로 모압 땅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음을 보여 준다.
[히브리어로 보는 룻기] 나오미와 동행하려는 룻의 간구(룻 1: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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