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히브리어로 보는 창세기 중에서 뱀의 유혹과 인간의 타락 사건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인간을 그곳에 두셨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나님이 아담에게 명령했습니다.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셔서 보내주셨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문제였습니다. 뱀이 여자를 미혹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어도 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여자는 뱀의 말에 속아서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이것을 아담에게도 주었는데 아담도 먹었습니다. 인간의 타락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결국 죽었습니다. 영혼이 죽어서 하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회복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뱀의 유혹과 인간의 타락 사건(창 3:1-13)
1절 베하나하쉬 하야 아룸 미콜 하야트 하사데 아쎄르 아사 아도나이 엘로힘 바요메르 엘 하이솨 아프 키 아마르 엘로힘 로 토켈루 미콜 에츠 하간
========3:1절
뱀(나하쉬) - 본래 이 단어는 파충류를 가리키는 포괄적인 낱말이나 성경에서는 모두'뱀'으로 번역된다.(사27:1; 렘8:17; 미7:17). 한편 뱀을 가리키는 히브리어는 사나움을 강조하는 '사라프'(민21:8; 사 30:6)와 '용'(욥7:12; 시74:13; 사27:1; 렘51:34)으로도 번역되며 특히 큰 뱀을 가리키는 '탄닌'(출7:9; 신 32:33) 등이 있으나, 여기서 사용된 '나하쉬'는 사람을 꾀며 미혹하는 능력을 지닌 뱀의 교활함을 특히 강조하는 명칭이다.
간교하더라(아롬) - 좋은 의미에서는 '영리하고 신중한 것'(잠12:16; 22:3)을, 나쁜 의미에서는 '교활하고 기회주의적인것'(욥5:12; 15:5)을 뜻한다. 뱀은 본래 영특하게 피조되었으나 사단의 도구로 사용되자 그 지혜는 사악한 것으로 전락하였다<1-6절 강해 참조>.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 사단이 하와를 유혹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여자가 남자보다 더 연약하고 또한 쉽게 미혹당할 수 있는 존재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벧전 3:7).
하나님(엘로힘) - 뱀이 '언약의 하나님'을 강조하는 명칭인 '여호와 하나님'<2:4>을 사용하지 않고 단순히 '지고자'를 뜻하는 '엘로힘'<1:1>을 사용한 것은 아담과 언약을 맺은 하나님에 대한 도전 의사를 표명하는 것이다.
참으로 - '진실로', '정녕'이란 뜻으로 어떤 사실에 대한 강한 놀라움을 나타내는 의문사이다.
먹지 말라 하시더냐 - 원문의 정확한 번역은 '먹지 말라 한 것이 사실이냐?'. 사단이 하나님의 금지 명령을 몰랐을 리 만무한데도 이처럼 물은 것은 (1) 하나님의 말씀과 권위에 대한 도전이자 (2) 그분에 대한 철저한 불신 행위이다. 그러나 우리는 (1) 하나님께선 사람이 아니시므로 식언하거나 변개치 않으신다는 점(삼상15:29)과 (2)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인간 본연의 의무이자 복된 길임(신 6:4-9 ; 28:1-6을 기억해야 한다.
2절 바토메르 하이솨 엘 하나하쉬 미페리 에츠 하간 노켈
================================3:2절
말하되(아마르) - '대답하다', '애기하다', '명령하다', '성언하다' 등과 같이 의사소통의 수단을 포괄하는 다양한 뜻을 지닌다. 한편 뱀과 여자가 서로 의사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선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1) 범죄 하기 이전 인류는 오늘날과 같은 언어 이상의 언어로 동물과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2) 언어는 인간 고유의 기능이므로 당시 뱀이 여자와 의사소통한 것은 사단이 뱀의 입을 빌어 여자와 얘기한 것이다. 이 중 전자는 언어 분열 현상(11:1-9)이 하나님께 범죄 한 결과였다는 점에 부합되며, 후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동물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된 존재로 지으셨다는 점에 부합된다. 그렇지만 성경 전체의 가르침에 입각할 때 후자가 더 타당한 듯하다.
먹을 수 있으나(노켈) - '아칼'(먹다, 소비하다, 삼키다)의 미완료형으로 현재 뿐 아니라 앞으로도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는 허용적 의미이다. 만일 아담이 범죄치 아니하였더면 오늘날의 인류도 각종 과실과 함께 생명나무 실과를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22절).
3절 우미페리 하에츠 아쎄르 베토크 하간 아마르 엘로힘 로 토켈루 미메누 베로 티게우 보 펜 테무툰
================================3:3절
만지지도 말라 - 하나님의 금지 명령과는 차이가 있는(2:17) 과장된 표현이다. 이는 (1) 하나님의 명령이 하와에게 있어선 너무 엄격한 것으로 비쳤다는 점과 (2) 하나님께 대한 그녀의 신뢰와 사랑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점을 드러내 준다.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 직역하면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앞 구절과는 달리 하나님의 절대명령(2:7)을 약화시킨 표현이다. 이처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 결과 그녀가 악의 유혹에 넘어진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마 14:27-32).
4절 바요메르 하나하쉬 엘 하이솨 로 모트 테무툰
=================================3:4절
결코 - 2:17의 '정녕'(surely)과 동일한 말로 불변하는 사실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절대명령을 절대적인 거짓으로 맞바꾸고 있는 장면에서 우리는 사단의 거짓된 속성을 살펴볼 수 있다(요 8:44).
5절 키 요데아 엘로힘 키 베욤 아콜르켐 미메누 베니프케후 에네켐 비헤이템 켈로힘 요드에 토브 바라
=================================3:5절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베욤 아칼르켐) - 여기선 '욤'(날)이 '순간', '때'란 의미로 사용되어 '너희가 그것을 먹자마자', '너희가 그것을 먹는 순간에'란 뜻이다. 이것은 하와의 욕망을 충동질하는 강한 유혹의 말이다.
너희 눈이 맑아 - 문자적 의미는 '너희 눈이 열려. 구약에서 이러한 표현은 대개 이상을 보거나 진리를 아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21:19; 민22:31; 사 35:5). 그런데 여기서는 선악을 분별하는 분별력을 획득하게 됨을 뜻한다.
하나님과 같이 되어 - '지고한 신성')을 획득하여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적인 거짓말에 불과하였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는 오히려 그들의 순전했던 영안)이 어두워졌을 뿐이다(7절).
아심이니라(요데아) - '야다'(알다, 이해하다, 탐지하다)의 완료 분사로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일관되게 알고 계셨다는 의미이다.
6절 바테레 하이솨 키 토브 하에츠 레마아칼 베키 타아바 후 라에나임 베네흐마드 하에츠 레하세킬 바티카흐 미피르요 바토칼 바티텐 감 레이솨흐 임마흐 바요칼
=================================3:6절
먹음직도...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 선악과가 원래 이러했다기보다는 하와와 경계심을 늦추고 탐욕의 눈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다는 뜻이다.
보암직도 하고 - '눈이 추구하는'이란 의미로 육체의 안목과 정욕(벧전 2:11)에 사로 잡혀 허상을 보고, 느낀 것을 뜻한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이러한 죄악에 빠지는 것을 엄히 경계하셨다(마 5:28, 29).
그도 먹은지라 - 아담은 하나님의 금지 명령을 직접 들은 자로서(2:16, 17) 여자의 잘못을 지적하고 회개토록 이끌 책임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악과를 받아먹은 것은 (1) 그의 자의로 여자의 범죄에 동참하였다는 곳과 (2) 죄는 놀라운 전염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증거해 준다(롬 7:11).
7절 바티파카흐나 에네 쉐네헴 바예드우 키 에루밈 헴 바이트페루 알레 테에나 바야아슈 라헴 하고로트
=================================3:7절
밝아(파카흐) - 문자적 뜻은 '개안되다'. 그러나 이것은 시력이 항상 더 잘 보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혹은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는 뜻이다.
벗은 줄을 알고 - 타락 전과는 달리 수치심을 느낀 까닭은 창조 시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았던 순수하고 고귀한 영적 순결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이 치마를 사용해 몸을 가릴 수 없었다<7-13절 강해 참조>.
8절 바이쉐므우 에트 콜 아도나이 엘로힘 미트할레크 바간 레루아흐 하욤 바이트하베 하아담 베이쉐토 미페네 아도나이 엘로힘 베토크 에츠 하간
===3:8절
날이 서늘할 때에 - 직역하면 '바람이 부는 때에', 서늘한 이 때는 시단의 유혹에 넘어갔던 아담과 하와가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들의 행위를 뒤돌아보기에 알맞은 시간이었다. 비록 인간은 하나님 곁을 떠난 범죄 하였지만 하나님께선 그들을 포기할 수 없으셨기에 적절한 시점에 그들을 찾아오셨다.
음성(콜) - 사람의 '목소리'나 일반적인 '소리'를 모두 뜻하나,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동산에 찾아오실 때 난 기척인 듯하다.
낯( 파님) - 문자적 뜻은 '얼굴', '앞'이나 여기선 대유법적 표현으로 하나님의 '전존재' 혹은 하나님의 '영광'을 뜻한다. 한편 시 105:4에선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하는 것을 '그의 얼굴을 구한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숨은지라 - '스스로를 숨기다'란 뜻이다. 그들은 지은 죄를 깨닫고 그것에 대하여 하나님을 뵐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범죄 한 인간이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두려움(10절) 때문에 스스로를 숨겼다.
9절 바이크라 아도나이 엘로힘 엘 하아담 바요메르 로 아예카
===3:9절
네가 어디 있느냐 - 타락한 인간이 자신의 실존을 올바로 파악키를 애타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심정이 토로되어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어디에 숨었는지 몰라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죄를 자복하고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위해 이처럼 물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처럼 잃어버린 양을 애타게 찾으신다(눅 15:3-7).
10절 바요메르 에트 콜르카 솨마에티 바간 바이라 키 에롬 아노키 바에하베
=====3:10절
듣고(솨마티) - '솨마'(주의깊게 듣다, 이해하다)의 완료형으로 아담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서 그 같은 부르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이해했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때 아담은 하나님의 낯을 피해 숨지 말고 그 즉시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어야 했다.
벗었으므로 - '완전 나체인 고로'란 뜻. 그러나 이는 (1) 그들이 하나님의 낯을 피하게 된 근본 원인(8절)이 아니며 (2) 또한 그들은 부분적으로나마 치부를 가리고 있었으므로(7절) 잘못된 답변이다. 이처럼 아담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회개의 기회를 선용치 못하고 도리어 변명하기에 급급하였는데, 그 결과는 가중되는 죄악(12절)과 그에 마땅한 준엄한 형벌일 수밖에 없었다(17-19절 ; 약 1:15). 용서받는 첫걸음은 지은 죄를 자복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통회하는 심령을 멸시치 않으신다(시 34:18 ; 51:17).
11절 바요메르 미 히기드 레카 키 에롬 아타 하민 하에츠 아쎄르 치비티카 레빌티 아칼 미메누 아칼르타
===================================3:11절
누가( 미) - '무엇이' 또는 '어떤 자가'란 뜻. 벌거벗은 것을 깨닫게 된 원인이 아담 스스로에게 있음을 상기시켜 주는 반어 문이다.
고하였느냐 - 원뜻은 '반대편에 서다.' 여기서부터 '기밀을 누설하다', '죄악을 고발하다' 등의 뜻이 파생되었다(수2:20 ; 에6:2 ; 렘20:10). 본절 전체에서 이 말의 의미는 '누가 너의 벗은 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하더냐'이다.
네가 먹었느냐 - 아담의 잘못이 어떠한 것인지를 지적함과 동시에 아담이 솔직히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기를 애타게 원하시는 거듭된 반문이다.
12절 바요메르 하아담 하이솨 아쎄르 나타타 임마디 히 나트나 리 민 하에츠 바오켈
===================================3:12절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신 여자 - '당신이 내 곁에 두신 여자'란 뜻. 하나님께서 하와를 주신 것에 대해 도리어 원망하며 또한 부부간의 한 몸 의식(2:24절)을 팽개쳐 버리는 무책임한 말이다.
13절 바요메르 아도나이 엘로힘 라이솨 마 조트 아시트 바토메르 하이솨 하나하쉬 히쉬아니 바오켈
===================================3:13절
어찌하여(마) - '어떻게'(how) 또는 '왜'(why)라는 뜻이 아닌 '무엇 때문에'(what)라는 물음이다. 하와의 죄악이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사악한 교만과 욕망 때문에 빚어진 것임을 지적해 준다(5, 6절).
꾀므로 - '잘못 인도하다'는 말. 즉 가야 할 길을 가지 못하게 막고서 그릇된 길로 이끌다는 뜻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하와는 자신의 행위가 잘못된 것이었음을 알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녀도 잘못을 시인치 않고 책임 전가에만 급급하였으니 하나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었다(16절).
[히브리어 보는 창세기] 아담의 갈비뼈로 여자를 창조하심(창 2: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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