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의 분열과 엘리야 활동 이스라엘의 분열 솔로몬에 의한 강경정책 특히 건축사업을 위한 강제노동은 백성들의 원망이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불만은 더욱 커져갔다. 이런 불만은 솔로몬의 탁월한 조직적인 행정력으로 그 씨앗을 터트리지 않은 채 유지되었다. 그러나 솔로몬 사후 이 불만은 즉시 터졌고 제3대 왕위에 오른 르호보암은 북쪽 10지파의 요구를 거절함으로 이스라엘은 분열되어 북쪽은 10지파를 대표하여 여로보암이 초대왕이 되었고 남쪽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중심으로 르호보암이 이끌고 가게 되었다.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과 남유다의 르호보암 사이에 경계를 갖고 있던 베냐민 지파의 영토는 남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이 그 경계선 상에 있었기 때문에 르호보암은 베냐민 지역의 상실은 곧 예루살렘을 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