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원문 강해

[누가복음 헬라어 성경말씀] 호적을 정리하는 요셉과 마리아(눅 2:1-7)

엘벧엘 2022. 10. 2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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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을 정리하는 요셉과 마리아(눅 2:1-7)

 

성 경: [눅2:1] 에게네토 데 엔 타이스 헤메라이스 에케이나이스 엑셀덴 도그마 파라 카이사로스 아우구스투 아포그라페스다이 파산 텐 오이쿠메넨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예수의 탄생]

󰃨 이때에 - 2장을 시작하는 이 말은 1:80의 언급을 염두에 둔 것으로서 새로운 사건의 시작을 알림과 아울러 상황의 변화로 인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 가이사 아구스도(K* A , 카이사로스 아우구스투) - '카이사로스'는 하나의 인명일 수도 있고 후대적 용법에서처럼 칭호일 수도 있다. 아구스도는 원래 라틴어인데 헬라어로는 보통 '황제'(세바스토스, 행 25:21, 25)로 번역되며 여기서는 인명으로 사용되었다. 아구스도 황제의 본명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Gaius Octavius)이다. 그는 B.C. 27-A.D. 14까지 로마의 황제로 있었고 그 후 외증조부 율리우스 시이저의 이름을 따라 가이우스 율리우스 시이저(Gaius Julius Caesar)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옥타비아누스는 B.C. 27년에 로마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위대하고 고귀하며 지극히 숭배받는' 이란 뜻)라는 칭호를 부여받으며 그 후 그는 시이저 아우구스투스로 명명되고 최고의 권위자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는 탁월한 통치 능력과 현명하고 훌륭한 정치 및 행정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점령지에 대한 정책의 일환(一環)으로 점령지의 지방 자치를 부분적으로 허용하기도 하며 점령지의 문화와 종교, 생활 풍습 등을 인정해 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그 나라의 법률까지도 로마법에 비추어 무리가 크게 없는 한 인정해 주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예술. 문화. 건축 등을 장려하기도 했으며 그 자신이 또한 위대한 건축가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그의 정책과 통치로 인해 전에 없이 오랜 세월 동안 평화가 지속되었고 그는 '자비로운 정치가', '로마의 대부'(代父)로까지 불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최고 승원장(Pontifex Maximus) 또는 대제사장(Highest Priest)이란 칭호를 받아들여 모든 종교의 최고의 위치를 차지했다. 게다가 그는 피살(被殺)된 자신의 외증조부 율리우스 시이저를 신격화하여 그를 기념하는 사원을 건립하여 그를 신으로 받들도록 명령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그는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많은 죄를 범하기도 하였다. 한편 탁월한 정치 지도자이며 행정가인 그가 자기에게 속한 나라들이 무질서하다는 것을 알고는 로마에 속한 모든 나라들로 하여금 인구 조사를 실시하도록 명령했다. 따라서 그는 인구조사의 실시로 말미암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 5:2의 예언을 성취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Hendriksen).

󰃨 (도그마) - 이 단어의 기본적 의미는 '옳다고 여겨지는 것이며 '원리', '법령' 등의 뜻이다. 동사로는 '법령을 제정하다', '칙령을 공포하다' 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 여기서는 황제의 포고령을 가리킨다.

󰃨 천하 - 이는 원어상 '거주지'란 뜻이다. 고대 학자들은 이방인의 땅과 구별되는 의미로서의 헬라인의 거주지를 이 단어로써 나타냈으며 그 후에 '로마제국'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11:28;17:6).

󰃨 호적(戶籍) - 황제의 칙령은 세금 징수를 목적으로 실시하는 인구 조사에 관한 것이었다. '호적'에 해당하는 원어 '아포그라포'는 '등록하다', '기록하다'(2:3, 5;12:23)는 말로 세금 징수를 위한 파피루스로 된 공식 기록부를 가리키며, 이 기록부에는 성명, 직업, 재산, 친척관계를 기록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인구 조사는 예수의 탄생을 세계 역사의 맥락 속에 넣어 하나님이 그의 섭리를 달성하기 위해서 지상의 통치자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성 경: [눅2:2] 아후테 헤 아포그라페 프로테 에게네토 헤게모뉴온토스 테스 쉬리아스 퀴레니우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예수의 탄생]

󰃨 구레뇨 -B.C. 12년에 마르마리대(Marmaridae)를 군사적으로 장악하여 집정관이 된 후 구레뇨는 갈라디아의 남쪽 접경에 있던 산적 떼의 후손인 호모나덴세스(Homonadenses) 족을 정복하였다. 그 후 그는 A.D. 3-4년 가이우스 시이저(Gaius Caesar)의 고문역을, A.D. 6-9년에는 시리아의 황제 파견관을 역임한 후 A.D. 21년에 죽었다.

󰃨 수리아 - 시리아(수리아, :27)B.C. 64에 로마제국에 합병되었다. A.D. 70까지 유대는 별도로 자체의 행정부를 구성하고 있었지만 시리아에 복속되어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따라서 이 당시까지만 해도 시리아는 유대 지역까지 포함된 로마제국의 통치령이었다.

󰃨 첫 번 한 것이라 - 1차 인구 조사는 흔히 예수의 탄생보다 훨씬 이후인 A.D. 6년경 구레뇨가 통치하던 시기에 실시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행 5:37과 요세푸스의 저서(Antiq. , 26.1)에도 제1차 인구조사에 대해서 언급되고 있다. 따라서 많은 학자들은 누가가 A.D. 6년에 실시되었던 제1차 인구조사를 그 이전에 실시되었던 것으로 혼동했다고 추측한다. 그 문제와 관련하여 많은 견해들이 제시되었지만 다음 두 견해가 가장 설득력이 있다. 첫째, 어떤 사본에는 구레뇨가 '두 번째'로 '시리아의 총독'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그 사본의 내용이 애매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구레뇨는 예수가 태어날 당시와 그 후의 몇 년이 지난 뒤, 곧 두 차례에 걸쳐 시리아의 총독 직위에 있었다는 단서를 제공해 준다(F.F. Bruce, Quirinius, NBD, p.1069). 둘째, '첫 번'의 헬라어 '프로테'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첫 번째의'라고 번역되었지만 그 단어는 그 의미보다 '이전의' 또는 '앞의'를 뜻할 수 있다. 만약 '첫 번'이라는 단어가 '이전의'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면 본절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이 되기 이전에'라고 번역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본문의 기록의 역사성이 대해 회의를 표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만일 이 기록이 잘못된 것이라면 초대의 기독교 논박자들이 이를 지적하지 않았을 리 없으며 또한 당대의 교양 있는 사람들에게 써 보낸 누가의 기록 속에 터무니없는 내용이 수록되었을 리도 없겠기 때문이다.

성 경: [눅2:3] 카이 에포류온토 판테스 아포그라페스다이 헤카스토스 에이스 텐 이디안 폴린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예수의 탄생]

󰃨 모든 사람이...고향으로 돌아가매 - 인구 조사는 각 사람의 고향에서 실시되는 것이 관례였다. 이렇게 많은 불편을 감수하며 자기의 고향까지 가서 호적을 하는 것은 유대의 호적제도를 따르는 것이었다. 로마의 호적제도는 자신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서 인적 사항만을 기록하는 훨씬 더 간편하고 손쉬운 방법이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이 로마의 손쉬운 호적 제도를 따르지 않고 굳이 번거롭게 많은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자신들의 호적제도를 따르는 것은 이 호적 명령이 로마의 명령으로 행해지는 것이지만 자신들의 독자적(獨自的)인 방법과 의사에 의해 행해지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 최소한의 민족적 자존심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한편 모든 사실들을 자세히 미루어 살펴본(1:1-4) 누가가 실제로 시행되지 않았던 인구 조사를 강조하여 기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 경: [눅2:4] 아네베 데 카이 이오세프 아포 테스 갈릴라이아스 에크 폴레오스 나자레트 에이스 텐 이우다이안 에이스 폴린 다비드 헤티스 칼레이타이 베들레엠 디아 토 에이나이 아우톤 엑스 오이쿠 카이 파트리아스 다비드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예수의 탄생]

󰃨 다윗의 집 족속...다윗의 동네로 - ''은 단순한 문자적 의미보다는 좀 더 포괄적인 의미를 나타내어 '민족', '족속', '나라' 등의 의미를 내포하며, '족속'은 문자 그대로의 뜻을 나타내나 이곳에서는 둘이 서로 동의어로 사용된 것 같다. 평행 본문 마 1:6, 16에서도 요셉이 다윗의 후손임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거니와 본절에서 다윗의 집 혹은 다윗의 동네라는 말이 거듭 언급되는 것은, 예수께서 육신상으로 다윗의 후손임을 강조함과 아울러 다윗 왕가의 후손이자 만왕의 왕으로 오실 예수께서 일개 초라한 시골민의 가정에서 태어남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내포한다. 삼상 20:6에서 베들레헴은 '다윗 성'이라 불린다. 다윗은 약 천 년 전 이곳에서 태어났고, 그가 양 떼를 돌보던(삼상 17:15) 곳도 이 마을 근처의 언덕이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7.2Km 떨어졌고 나사렛에서는 약 144Km 떨어진 곳이며 그것의 옛 이름은 에브라다이고 라헬이 장사된 곳이기도 하다(35:19). 이 마을 이름의 뜻은 '떡집'이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곳이 다윗이 자라난 곳이고 미 5:2에 나타난 대로 메시아가 출생한 곳이라는데 있다. 따라서 이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은 태어난 아기가 다윗성에서 난 다윗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성 경: [눅2:5] 아포그랍사스다이 쉰 마리암 테 멤네스튜메네 아우토 귀나이키 우세 엥퀴오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예수의 탄생]

󰃨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 누가는 요셉이 어느 시기에 베들레헴을 향해서 출발했으며, 또한 그가 왜 마리아를 동반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다. 추측컨대 아마 마리아의 고향에서 마리아에 대한 그릇된 소문이 퍼지고 있었을지도 모르며 그 소문으로 인해서 마리아는 정신적으로 압박을 받았을 것이므로 요셉은 인구 조사를 기회로 마리아를 데리고 고향을 떠났을 가능성도 있다. 요셉은 이미 그녀를 아내로 맞이했다(1:24). 그러나 그들이 성령으로 잉태한 아이를 낳을 때 까지는 분명히 약혼 관계에만 머물러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이 '정혼'이라는 말을 유대적 배경에서 이해해야만 한다. 유대적 개념에서 '정혼'은 결혼을 의미하고 절차상으로 신부를 신랑집으로 데려오는 일만 남은 것이다. 혼인서약은 대체로 정혼에 행해졌으며 이 정혼은 항상 공식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있은 후에는 신랑이 그의 신부를 데려가는 일에 있어서 어느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았다. 한편 요셉이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여행하는 것은 결코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산이 임박한 마리아가 그 장거리(144Km, 요단을 우회하여 돌아가는 길)를 여행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산모와 태아에 치명적인 위험을 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당시 로마법에 의하면 여자도 호적해야 할 의무가 있었지만 자신이 직접 고향에 가서 호적할 필요는 없었다. 물론 함께 동행하는 것은 세인(世人)의 비난을 피하고자 한 요셉의 배려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를 자신의 뜻대로 운행하는 주관자이시기 때문이다(136:8-26).

성 경: [눅2:6] 이게네토 데 엔 토 에이나이 아우투스 에케이 에플레스데산 하이 헤메라이 투 테케인 아우텐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예수의 탄생]

󰃨 그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 이 표현은 단순히 임신과 출산 사이에 일정한 기간이 지나야 만 아이가 태어난다는 의미로 이해되어도 무방하다. 임신 자체는 비록 기적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지만 태중에서 아기가 자라나는 것은 일반적인 과정에 의했던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 우리와 똑같은 성정(性情)을 가지고 똑같은 성장 과정을 거치며 모든 인류를 대속하실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는 우리와 똑같은 출생과 성장과정을 거쳤기에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신 분이다(4:15). 한편 이 구절에서 '해산할 날'이 현재대로 12월 25일인지는 밝히고 있지 않다. 그러나 기독교회에서는 성탄절을 전승에 따라 보통 겨울로 잡는다. 이것이 3세기부터 문제시되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520일을 제안했다. 12월 25일을 성탄일로 지킨 것은 336년부터였다. 서방에서 이날을 택한 것은 로마신인 '정의의 태양'(Sol Invictus) 탄생일에 대치한 것이나 동방 교회에서는 주현제 즉 동방의 현자들이 도착했다고 하는 날(Epiphania manifestation, 16)에 예수의 수세를 기념하다가 4세기부터는 예수의 탄생도 연결시켰다. 그리고 5세기 중엽부터는 동방 교회도 거의 1225일을 성탄일로 지켰으나 예루살렘 교회는 549년까지도 16일을 크리스마스날로 지킨다.

성 경: [눅2:7] 카이 에테켄 톤 휘온 아우테스 톤 프로토토콘 카이 에스파르가노센 아우톤 카이 아네클리넨 아우톤 엔 테 파트네 디오티 우크 엔 아우토이스 토포스 엔 토 카탈뤼마티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예수의 탄생]

󰃨 맏아들 - '외아들'이 아닌 '맏아들'이라는 표현은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뒤 계속해서 자녀들을 낳았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후에 계속해서 동정을 지키며 자녀를 낳지 않았다는 주장은 근거없는 이야기며 이는 마리아에 대한 지나친 의미부여와 경외심에서 나온 이야기라 하겠다. 그리고 예수의 여러 형제와 여동생들에 대한 이야기는 신약성경 여러 곳에서 언급되고 있다(8:19, 20;12:46, 47;13:55, 56;3:31, 32;2:12;7:3, 5, 10;1:14).

󰃨 사관(舍館)(카탈뤼마) - 이 단어는 흔히 '여관'(inn)이라고 번역되었다. 이 단어는 최후의 만찬 때에 사용된(22:11) '객실'(guest room)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22:12에는 그 객실이 '다락방'으로 언급되었다. 또한 이 단어는 군인들의 숙소나 여관을 포함하여 숙박소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사람을 데려갔던 '판도케이온'('주막', 헬라어에서 대체로 여관을 언급할 때 사용되는 단어)과는 다르다(10:34). 그런데 마리아가 해산할 날이 다가왔을 때 그 보잘것없는 가족에게 허락되었던 장소는 가축우리 있다고 누가는 담담하게 표현한다. 그곳은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는 대로 곳간(cave)이었을 수도 있으며, 또는 집이나 사관의 일부분이었을 수도 있다.

󰃨 구유(파트네) - 신약에서 이 '파트네'는 누가복음에서만 4회 나온다(7, 12, 16;13:15). 이 주제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메시아이신 예수께서 비천한 신분으로 보잘것없이 너무나도 초라하게 이 세상에 오셨음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구유는 세상 구속주의 비천한 탄생을 당시 세계의 주관자인 아구스도의 영광과 대조시키며(1, 11, 14), 아무 데도 머리 둘 곳이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인자이신 예수의 겸손과 고난을 상징한다(9:58). 어쨌든 그 당시에 사용되었던 구유는 갓난아이를 누이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리고 마구간밖에 내어 줄 수 없었던 여관 주인은 동정심이 전혀 없어서 그러했다고 보이지 않으며 누가 역시 그러한 각도에서 기술하고 있는 것 같다(H. Hengel, TDNT. , 4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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