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원문 강해

[베드로전서 헬라어 주석강해] 복음은 영원히 존재하느니라(벧전 1:20-25)

엘벧엘 2022. 3. 30.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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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1장에서 하나님은 창세전부터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해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창세전에 있었던 우리들은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밖에 있었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영원히 존재하느니라(벧전 1:20-25)

 

20절 프로에그노스메누 멘 프로 카타볼레스 코스무 파네로덴토스 데 에프 에스카톤 톤 크로논 디 휘마스

=====1:20

  그는 창세 전부터가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 본절은 전형적인 비교 구문인 '멘...데'('한편...또 다른 한편')로서 베드로는 이 구문을 통해 '창세 전'과 '말세'를 비교하여 네 가지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1)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창세 전'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진실하게  진행되었다(Michaels). (2) 동사 시제에 있어서 '미리 알리신 바'의 헬라어 '프로에그노스메누'는 완료 수동 분사로 하나님께서 구속 사역에 대해 '미리 알리신' 내용이 완전했음을 시사하며, '나타내신 바'의 헬라어 '파네로덴토스는 부정 과거 수동 분사로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속 사역이 일회적으로 완전했음을 시사한다(Lenski). (3) 내용상 '창세 전'은 메시야의 신성과 사역을 나타내며 '말세'는 구속과 부활의 증거를 보여준다(Stibbs). (4) '프로에그노스메누'와 '파네로텐토스' 모두 수동태 분사형으로 인간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인간의 타락이나 죄악도 하나님의 계획을 파기시킬 수 없음을 시사한다(Michaels).

21절 투스 디 아우투 피스튜온타스 에이스 데온 톤 에게이란타 아우톤 에크 네크론 카이 독산 아우토 돈타 호스테 텐 피스틴 휘몬 카이 엘피다 에이나이 에이스 데온

=====1:21

   너희는...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 '하나님을'의 헬라어  '에이스 데온'은 문자적으로 '하나님 안에'를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야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을 계시하셨으며(요 1:18) 자신의 대속적인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화해시켰기 때문이다(고후 5:19, Blum, Kelly).베드로는 본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화해를 이룬 하나님에 대해 두가지로 진술한다.

   (1)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 하나님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신 분이시다. 곧 예수의 부활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근거가 됨을 시사한다(Stibbs, Blum).

   (2) 영광을 주신 - 하나님께서 예수를 부활시키실 뿐만 아니라 영광을 주신 것은 예수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도 미래에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보증해 준다(롬 8:17-30; 히 2:10, Stibbs).

   너희 믿음과 소망이 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호스테 텐  피스틴  휘몬 카이 엘피다 에이나이 에이스 데온) - 본문을 헬라어 구문상으로 해석할 때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본문을 '의도문'으로 본다(Robertson). (2) 이유는 본절이 직설법로 쓰였기 때문이다. 비록 '호스테' 다음에 부정사가 따르면 결과로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다할지라도 문장 전체가 명령법이 아니고 직설법일 때는 '의도'로  해석한다는 주장이다. (2) 혹자는 본문을 '결과문'으로 본다(Robertson). 그 이유는 코이네 헬라어에서 '호스테' 다음의 부정사가 따르면 일반적으로 '결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비록 서술적 용법일 때 '의도'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러울지라도 그것은 문법적 규칙이 아니기에 문맥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문맥상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이유가 그리스도의 구속과 부활로 그리스도인들을 안위하기 위함이며 그 결과 그리스도인은 구원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하나님께 두게 되었기 때문에(Michaels)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한편 '믿음과 소망'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믿음'에 '소망'이 종속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Moffatt). 왜냐하면 헬라어 본문에서 '믿음'에는 정관사가 있지만 '소망'에는 정관사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문은 '그러므로 너희 믿음이 하나님께 소망을 가지게 한다'(Kuhl)라고 해석해야 한다. (2) 혹자는 '믿음과 소망'은 병렬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Bigg).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동전의 양면처럼 한 사실의 두 가지 의미를 반복적으로 기술하여 강조적 효과를 나타내며 믿음과 소망을 강조하기 위해 앞에서 배경적 설명을(3-9절) 해왔기 때문이다(Michaels, Selwyn).

22절 타스 프쉬카스 휘몬 에그니코테스 엔 테 휘파코에 테스 알레데이아스 디아 프뉴마토스 에이스 필라델피안 아뉘포크리톤 에크 카다라스 카르디아스 알렐루스 아가페사테 에크테노스

=====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 '깨끗하게 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그니코테스'는 완료 시상으로 회개로 이루어진 상태를 나타낸다(Michaels). 그리스도인에게 성취된 이러한 정결(淨潔)은 '진리'에 순종함으로 이루어진다. '진리'는 두 가지를 의미한다(Selwyn). (1) 거짓과 구별된 참됨을 의미한다. (2) 그리스도의  화육, 대속, 부활, 승천을 뜻한다. 본절의 '진리'는 후자의 의미로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받아 들며 순종함으로 깨끗하여진다. 이렇게 진리를 통해 죄로 부터 온전히 깨끗해진 그리스도인들은 참된 형제애를 나눌 수 있게 된다. 한편 '깨끗하게 하여'와 관련된 의식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깨끗하게 하여'가 구약 시대의 정결  의식을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Bigg) (2) 혹자는 '깨끗하게 하여'가 세례를 암시한다고 주장한다(Blum).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비록 '세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할지라도 '깨끗하게 하여'와 다음 절의 '거듭난'이 모두 완료 시상으로 과거에 단회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 '사랑하라'의 헬라어 '아가페사테'는 부정 과거 명령형이다. 부정 과거 시상은 과거의 행위와 뚜렷한 차이를 나타냄과 동시에 행위의 시작을 나타낸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에 서로 반목(反目) 상태였을지라도 회개하여 온전히 깨끗하여진 그리스도인은 과거와는 달리 하나님의 속성을 닮아 새로운 품성으로 서로 사랑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인이면 행했어야 할 덕목임을 시사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피차가 열정적으로 사랑하여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서로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어야 한다(요일 3:14-18).

23절 아나게겐네메노이 우크 에크 스포라스 프다르테스 알라 아프다르투 디아 로구 존토스 데우 카이 메논토스 에이스 톤 아이오나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 '거듭난'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나게겐네메노이는 완료 분사로 앞절의 '깨끗하게 하여'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회심된 상태를 시사한다. 한편 '씨'의 헬라어 '스포라스'가 의미하는 것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영원한 생명'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Michaels,  selwyn). (2) 혹자는 '말씀'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lum, Cranfield, stibbs).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신약성경 중 다른 곳에서도 '씨'는 '말씀'에 비유되고 있으며(막 4;14; 눅 8:11) 문맥상 이어지는 설명에서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이라고 진술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거듭남은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담고 있는 살아 있는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진다(시  33:9;  사 55:10,11; 히 4:12, Stibbs).

24절 디오티 파사 사르크스 호스 코르토스 카이 파사 독사 안드로푸 호스 안도스 코르투 엑세란데 호 코르토스 카이 토 안도스 아우투 엑세페센

=====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 본절은 포로로 끌려가 고난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하는 말씀인 사 40: 6-8의 인용이다. 베드로는 이러한 구약 본문을 인용하여 당시 핍박받고 흩어져 방랑하는 수신자들에게(1절) 위로될 뿐만 아니라(Blum) 모든 육체의 영광 즉 세상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어질지라도 말씀은 영원하며 말씀을 통해서 약속하신 그리스도인의 구원도 영원함을 강조하고 있다(Selwyn, Stibbs, Blum).

25절 토 데 레마 퀴리우 메네이 에이스 톤 아이오나 투토 데 에스틴 토 레마 토 유앙겔리스덴 에이스 휘마스

=====1: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 본절은 사 40:8(LXX)의 인용이다. 여기서 '주의 말씀'의 헬라어는 '토 레마 퀴리우'이나 70인 역에는 '토 레마 투 데우'('하나님의 말씀')로 되어있다. 인용 과정에서 일어난 변화에 대해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베드로 자신의 의도적인 해석 때문이라고 주장한다(Kelly). (2) 혹자는 사본상의 변화를 그대로 옮겨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Hort). (3) 혹자는 베드로가 신약성경의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인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Michaels).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토레마 퀴리우'에 나타난 속격은 이사야의 말씀처럼 '주격적인 속격'으로 예수의 말씀과 동일하기 때문이다(막 13:31; 눅 21:33, Michaels). 여하튼 베드로는 이러한 구약성경의 인용을 통해서 주께서 전한 말씀인 복음이 영원토록 변치 않는 말씀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이 됨을 진술하고 있다(Selwyn).

[야고보서 2장 헬라어 성경말씀] 교회에서 차별 대우하지 말라(약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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