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에서 나오지 않은 구원(엡 2:1-10)
성 경: [엡2:1]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새 생명]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 바울은 본절에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과거의 삶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들의 과거의 삶은 죽음으로 특징 지워진다. '죽었던'은 신체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이며 도덕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명을 수여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단절을 시사한다(Foulkes, Bruce, Wood). 이런 사상은 초대 그리스도인들만 갖고 있던 독특한 것은 아니다. 구약 특히 시편에서도 질병, 죄, 소외, 포로 상태에 있는 삶이나 적들의 지배하에 있는 삶은 죽음의 영역에 있는 삶으로 표현되었다(시 13:1-3;30:3;31:12;88:3-6;143:3; 호 13:14; 욘 2:6). '허물'은 문자적으로 '정로'(正路)에서 떨어지다'라는 의미로 부주의하여 진리에서 떠나는 것이나 잘못된 경향성을 가리키며, '죄'는 문자적으로 '과녁에서 벗어나다'는 의미로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생의 목표를 정확히 맞추지 못한 모든 행위를 가리킨다. 결국 이 둘은 동의어이다(Barth, Lincoln, Foulkes). 또한 '허물과 죄로'라고 번역된 헬라어 '토이스 파라프토마신 카이타이스 하마르티아이스'는 여격으로 '너희의 허물과 죄를 통해서'라는 의미이다. 이 여격은 죽음의 원인, 도구, 영역 그리고 결과를 나타낸다(Barth, Lincoln).
성 경: [엡2:2]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새 생명]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 '행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리에파테사테'는 히브리어 '할라크'를 번역한 것으로 윤리적인 행동이나 삶의 방법에 있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두 가지로 표현된다.
(1) 이 세상 풍속을 좇고 - '풍속'의 헬라어 '아이오나'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 해석은, '아이오나'는 종교 혼합주의에서 비롯된 신화적 개념이 신약성경에 스며든 것으로, 신을 가리키는 '아이온'(Aion)을 의미한다는 것이다(Nock, Gnilka, Lindemann, Halter, Sasse). 이러한 해석을 주장하는 자들은 본절의 '풍속'다음에 언급되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와 같은 개념으로 본다. 두 번째 해석은, '아이오나'는 이 세대의 타락한 인간 존재의 일시적인 측면을 의미한다는 것이다(Lincoln, Mitton, Caird, Abbott). 이 두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의 에베소 교인들은 현재의 악한 세대와 이 세상에 의해서 지배를 받아 왔다. 그들의 죄악 된 행위는 하나님에게 대적하는 현세적(現世的)인 세상의 기준과 가치에 따른 것이다.
(2)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인간의 참된 행복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방해하는 초자연적인 악의 세력으로(Mitton, Lincoln) '악의 영들'(6:12), 곧 '사단'(막 8:33; 눅 22:3)을 의미한다. 에베소 교인들은 과거에 이런 악한 영의 통치(統治) 하에 살았었다.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 '불순종의 아들들'은 히브리적 표현으로 '하나님에게 대적하여 불순종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Mitton). 하나님의 뜻에 대적하는 것은 기독교 복음에 대한 거절을 내포하는 것으로 현재에 발생한다. 한편 본문에 나오는 '영'은 영적 세력으로서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의미한다(Lincoln).
성 경: [엡2:3]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새 생명]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 혹자는 1절에 언급된 '너희'가 '이방인'을 의미하는 반면, 본절의'우리'는 '유대인'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arth, Bruce). 그러나 본절의 '우리'는 바울 자신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Lincoln, Foulkes, Mitton). '다 그 가운데서'는 앞절에 언급된 '불순종의 아들들'을 가리킨다. 바울은 이제 자신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과거에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냈음'을 상기시킨다. 한편 '지내며'의 헬라어 '아네스트라페멘'은 앞절의 '페리에파테사테'('행하여')와 동의어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인간의 이기적인 욕구(慾求)에 따라 사는 삶을 가리킨다(Houlden, Foulkes, Wood). 이는 성령 안에서의 삶과 대조적으로 육체의 열매를 내는 삶이요(갈 5:19, 20),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 삶이다(롬 8:8).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 '다른 이들과 같이'는 유대인들이 이방인에 대해 멸시하는 의미로 사용하던 용어이다(Foulkes). 그러나 본절에서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이들은 '본질상' 진노의 대상이었다. '본질상'은 태어나면서부터 있던 천성적인 것을 나타낸다(Bruce, Lincoln). 그래서 혹자는 '본질상'이라는 표현이 '원죄설'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주장한다(Foulkes). 그러나 이것은 바울이 개종하기 이전의 그리스도인들의 상태를 사실적으로 진술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Mitton). '진노의 자녀'는 히브리적 관용구로서 '진노를 받기에 마땅한 자들'을 의미한다(Bruce, Wood). 본절의 '진노'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키며(God's anger, JB), '하나님의 진노'는 모든 죄악에 대해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거룩성을 증거한다(롬 1:18;2:5, 8).
성 경: [엡2:4]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새 생명]
개역성경에는 '데'('그러나')가 생략되어 있다. '데'는 본절이 1-3절에서 진술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의 상태와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시사한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에 대한 히브리적 표현이다(출 34:6; 시 103:8;145:8; 욘 4:2). 즉 '긍휼'의 헬라어 '엘레에이'는 히브리어 '헤세드'('인애')와 상응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언약을 충실히 지키며 사랑을 베푸시는 것을 시사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본질인 사랑을 통해서 우리에게 구속의 은총을 베푸셨다(롬 5:8).
성 경: [엡2:5]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새 생명]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 본문의 괄호는 이 부분이 헬라어 본문에 있어서 부가적인 설명임을 나타낸다. 상반절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새 생명을 소유하였음을 언급한 바울은 본문에서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졌음을 부언한다. 즉 죄로 인해 진노를 받아 마땅한 죄인에 대한 구원은 하나님의 주도적인 행위인 은혜로 된 것임을 밝힌다.
성 경: [엡2:6]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새 생명]
또 함께 일으키사 - 이것은 '부활'을 가리키는 것으로 앞절에서 언급된 '살리셨고'와 연결된다. 즉 죄로 인해 초래된 영적 죽음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생명을 공유하는 영적 부활을 의미한다(Mitton).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 앞절에서는 여격 전치사 '쉰'('...함께')과 합성된 '토 크리스토'('그리스도에게')를 사용한 반면, 본절에서는 '엔 크리스토 예수'('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두 표현 모두가 그리스도와의 연합(聯合)을 의미하는 것이나 본절의 '엔 크리스토 예수'가 앞절에서 언급된 '토 크리스토'보다 더 강한 의미를 내포한다(Mitton, Lincoln). 한편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단순히 부활시키신 것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하늘에 앉히셨다고 선언한다. 이것은 골 3:1-3에 암시되어 있다(Foulkes, Bruce). 바울의 이 선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시키신 것이 이미 이루어진 것이듯이 하늘에 앉히신 것도 비록 현재 참여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없다 할지라도 이미 이루어진 것임을 나타낸다(Bruce). 그래서 우리의 시민권은 땅이 아니라 하늘에 있음을 시사한다(빌 3:20).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하나님의 존전에 서있으며 그 앞에서 즐거워한다(Mitton).
성 경: [엡2:7]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새 생명]
본절은 '히나'('...위해서')로 시작된다. 이는 본절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살리시고 일으키시며 하늘에 앉히신(5, 6절) 목적이 됨을 시사한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구원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풍성한 은혜를 드러내기 위함이다(1:3-14).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보여주신 구원의 자비(慈悲)하심을 가리킨다(Bruce). 한편 '오는 여러 세대'에 대해 혹자는 인격적인 권세나 정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가 적대적인 정사들에게 드러나는 것을 시사한다고 주장한다(Conzelmann, Schlier, Barth). 그러나 이는 시간적인 것으로 미래에 '오는 시대'를 의미한다(Sasse, Lincoln, Scott, Calvin, Bruce, Foulkes). 그리스도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목적은 다가오는 미래에 자신의 은혜의 광대함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성 경: [엡2:8]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새 생명]
개역성경에는 '가르'('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본절이 앞절에서 언급된 그리스도인에 대한 하나님의 지극히 풍성하신 은혜를 다시 한번 강조함을 시사한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 본절은 5절에서 언급한 것을 반복한 것이지만 5절과 두 가지 차이점을 갖는다. (1) 5절의 은혜에는 관사가 없으나 본절에서는 관사 '테'가 있다. 이것은 앞절에서(7절) 언급한 '은혜'와 동일한 것임을 시사한다(Lincoln). (2) 5절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가 없으나 본절에서는 나타난다. '믿음'은 스스로 자신을 의롭게 하려는 행위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긍휼 하심을 기대하는 것으로 구원이 인간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다(Wood, Bruce, Foulkes, Lincoln).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구속의 은총(恩寵)을 받아들이고 응답함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이것'이 가리키는 것에 대해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이것이 '믿음'이라고 주장한다(Bengel, Beza, Hodge, Chird, Westcott). (2) 혹자는 구원의 과정 전체라고 주장한다(Lincoln, Wood, Abbott, Gnilka, Schlier, Mitton). 두 견해 중 후자가 더 타당하다. 왜냐하면 '이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토'는 중성으로 믿음의 성(性)인 여성과 맞지 않으며, 문맥상 본절의 내용이 믿음에 대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Bruce, Foulkes).
성 경: [엡2:9]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새 생명]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크 엑스 에르곤'에서 '엑스'는 기원이나 원인 혹은 근거를 나타내는 것으로 구원이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롬 3:20, 28;4:1-5; 갈 2:16; 딛 3:5). 바울은 이 행위를 율법과 관련시켜서 언급하지 않는다. 본절의 행위는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행하는 인간의 윤리적인 노력을 의미한다(Wood, Lincoln). 인간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은 인간의 행위가 하나님을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인간은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자랑할 수 없다(롬 3:27;4:2).
성 경: [엡2:10]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새 생명]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자랑할 수 없는 이유는 구원은 공적(功績)에 의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재창조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만드신 바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이에마'는 70인 역과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첫 창조 사역을 의미하나(시 142:5; 롬 1:20) 본절에서는 그리스도인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는 하나님의 재창조 사역을 의미한다(고후 5:17; 갈 6:15; 엡 4:24; 골 3:10, Bruce, Wood, Foulkes). 하나님의 재창조 사역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된 것으로 그 목적은 '선한 일'을 위함이다. '선한 일'은 구원을 얻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구원에서 비롯된 열매로서(Bruce) 하나님과 인간관계의 목표이다(Lincoln). 또한 '선한 일'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에서 비롯되며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롬 2:7;13:3; 고후 5:10;9:8; 갈 6:10; 살전 5:15).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에 대해서 혹자는 동사의 목적어로서 '헤마스'('우리를')를 삽입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선한 일 자체를 먼저 예비하신 것으로 해석한다(Abbott). 그러나 본절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도록 예비(豫備) 하신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Meyer, Houlden, Barth, Schlier). 이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는 잠재력을 주셨다는 의미이다(Lincoln). '선한 일'은 성령의 은사를 통해서 가능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한 것이다(롬 8:4; 엡 6:6, Bruce, Lincoln).
[갈릴리 바다 지명 설교말씀] 복음 전도의 무대 갈릴리 바다(막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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