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원문 강해

[헬라어 마태복음 성경 좋은 말씀 ] 동방박사의 예수님 경배(마 2:9-12)

엘벧엘 2022. 7. 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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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경말씀은 마태복음 2장에서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을 알고 베들레헴에 가서 경배하고 있습니다. 헤롯 왕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을 싫어하여 죽이려고 합니다. 유대의 왕이 났다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왕권에 도전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아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구원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동방박사의 예수님 경배(마 2:9-12)

 

9절 호이 데 아쿠산테스 투 바실레오스 에포류데산 카이 이두 호 아스테르 혼 에이돈 테 아나톨레 프로에겐 아우투스 헤오스 엘돈 에스테 에파노 후 엔 토 파이디온

=====2: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 본서의 기자 마태는 분명히 '별'이 박사들을 예루살렘으로 인도했다고 기록하지 않았다. 더욱이 그들이 10절에서 별을 보고 기쁨을 표한 것은 적어도 별이 계속 보이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아마도 그 당시 '별'을 통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던 박사들이 그 '별'이 보이지 않게 되자 유대인의 왕이 탄생할 장소는 당연히 예루살렘일 것이라는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예루살렘을 찾았고, 또 그 당시 유대의 유력자 헤롯의 '말'을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헤롯의 경건하게 보이는 말에 고무되어 있었을 것이다.

   동방에서 보던 그 별 - 자신들의 지혜에 의해 길을 잘못 들었던 박사들에게 바른 길을 제시하는 하나님의 밝 은계시의 별이 다시 나타났다. 실로 혼탁하고 부패한 세상 가운데서 참 생명 되신 예수께로 인도하는 유일한 힘은 하나님의 계시뿐이다(시 119:105). 한편 본문은 박사들이 궁(宮)을 떠날 때 이미 밤이 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낮이 무덥고 밤이 서늘한 중근동 지방에서는 먼길을 가기 위해 밤에 별을 보고 여행하는 것이 관습이었다.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 여기서 '문득'이란 말은 헬라어 원문에는 없는 말로서 갑작스런 상황을 더욱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 의미상 첨가한 말이다. 이제 박사들은 다시 '별'을 통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바른 길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앞서 인도하여'라는 헬라어 '프로에겐'은 서술적 미완료 시상으로 동작(인도)의 계속성을 나타낸다. 즉 '손으로 이끌듯 계속해서 인도해 가는 상태'를 나타내는 용어이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이 말이, 별이 동방으로부터 베들레헴까지 움직였다는 것과 베들레헴 상공에 계속 떠서 움직이고 있는 별을 보고 박사들이 왔다는 것 중 어느 것을 가리키는 말인지 확실하게 밝힐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박사들은 그 별이 '유대인의 왕'(2절)을 가리킨다고 믿었고, 그  별은 그들을 '아기 있는 곳'으로 인도한 것이다.

   아기 있는 곳 위에...섰는지라 - 여기서  '있는 곳 위에'란 '아기가 있었던 베들레헴의 한 특정한 곳 위에'로 볼  수도  있고, 그저 막연히 '베들레헴 동네 위에'로 볼 수도 있다. 만일 전자를 받아들인다면 이 사건의 초자연성을 더욱 강조한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후자를 받아들여 일단 베들레헴에 도착한 박사들이 수소문하여 아기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할지라도 이 사건의 초자연성을 감소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여하튼 별은 아기가 '있는' 곳에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굳게 '머물러' 있었다. 실로 그곳에 바로 인도와 축복과 그리고 구원이 있었다. 정녕 다윗의 자손 예수께서 '머물러 서'(눅 18:40) 있는 곳에 구원이 있는 것이다.

10절 이돈테스 데 톤 아스테라 에카레산 카란 메갈렌 스포드라

=====2:10

 저희가 별을 보고...기뻐하고 기뻐하더라 - '별을 보고'라는 말은 그들이 새삼스럽게 별의 나타남(7절)을 보았다기보다, 아기 예수 위에 '머물러 서'있는 별이 자신들의 기나긴 여행의 최종적인 목적지로서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은혜, 곧 임마누엘 이신 예수(1:23) 탄생을 드디어 목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확신하였다는 말이다. 이 확신은 그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맛볼 수 없었던 무한한 기쁨의 세계로 들어가게 했다. 그러한 그들의 기쁨을 표현한 본문 중 특별히 '가장'에 해당하는 헬라 '스포드라'는 '충만하여 차고 넘치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며, '큰' 역시 크고 놀랍고 장엄함을 뜻하는 단어이다. 이 두 단어의 만남은 결국 그 기쁨의  실체가 최상에 이르렀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기뻐하고 기뻐하더라'는 기쁨을 뜻하는 헬라어 '카라'라는 동일 어근의 중첩으로서 이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기쁨을 기뻐했다'가 된다. 이는 어떤 의미를 특별히 강조하기 위해 동일한 의미의 단어를 중첩해 사용했던 셈어의 영향을 받은 중언법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본문은 박사들의 기쁨이 절정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무관심한 택한 백성들의 소동(3절)에 비하여 얼마나 값진 일인가. 그들은 샛별(벧후 1:19)의 인도를 따라왔기 때문에 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를 뵐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즉 그들의 기쁨은  자신들에게 닥친 크나큰 행운(메시아를 만나 보는 일)을 볼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11절 카이 엘돈테스 에이스 텐 오이키안 에이돈 토 파이디온 메타 마리아스 테스 메트로스 아우투 카이 페손테스 프로스큐네산 아우토 카이 아노익산테스 투스 데사우루스 아우톤 프로세넹칸 아우토 도라 크뤼손 리바논 카이 스뮈르난

=====2:11

 집에 들어가 - 누가복음에는 '아기가 나신 곳'이 마구간으로 되어  있다(눅 2:7). 그에 비해 본문에는 '아기가 있는 곳'이 집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동방 박사들이 방문한 시기는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에 의한 호적, 곧 인구 조사(눅 2:1)가 끝난 얼마 후(아마 수개월 경과 후) 요셉이 거처를 마련한 다음이었을 것이다.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 여기서 상대방에게 무릎을 꿇고 '엎드려 경배'하는 것은 헬라나 로마의 예법이 아니라 동방의 예법이다(2절). 동방 박사들이 경배했던 대상은 마리아와 '함께'가 아니고 오직 아기 예수뿐이었다. 즉 그들은 헤롯에게나 아기의 부친과 모친에게도 경배하지 아니했다. 경배의 대상은 오로지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한 분 밖에 없는 것이다(4:10).

   보배합 - 이 단어는 번역이 애매하게 된 것으로 '귀중품 상자'나 '보물 상자'를 의미한다. 그들의 '보배합'은 그들의 아름답고 고귀한 마음(예물)의 저장소였다(6:20).

   황금과...예물로 드리니라 - 이 내용은 이방의 왕들이 메시아 앞에 예물을 드리고 복종하게 될것이라는 구약 예언(시 72:10;사 60:6)의 분명한 성취이다. 한편 고대 동양 풍습에서는 왕을 알현할 때 예물을 가지고 가는 것이 상례였다(창 43:1;삼상 9:7,8;왕상 10:2). 박사들이 헌상한 세 가지 예물 중 황금은 동서 고금을 통해 매우 값지고 불변하는 성질의 귀중품으로 여겨져 왔다. 그릭고 유향은 값비싼 향료로서 반질반질하고 향내나는 흰색의 액체이며 아라비아 지방의 관목 껍질에 자국을 내어 얻는다. 또한 몰약은 역시 주로 아라비아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에서 추출되는 것으로서 상당히 고가의 향기를 지닌 액체이다(시 45:8;아 3:6). 이는 시체를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 내지는 마취제로 사용되었다(막 15:23). 그런데 고금의 많은 주석가들)에 의하면 이 예물 가운데 황금은 메시야 왕권을, 유향은 예수의 신성을, 그리고 몰약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에 대하여 칼빈은 왕과 제사장과 그분의 장사되심을 각각 상징한다고 본다. 어쨌든 동방 박사들의 종교적 동기를 이해한다면 예물들에 상징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여기서 예물이 세 가지라는 사실에서 동방 박사들을 세 사람이라는 교회 전승이 형성되게 되었다. 어떤 전설에 따르면 완전 수에 해당하는 '12'명의 박사라고도 전한다. 한편 이 세 예물들은 모두가 값비싼 것들로서, 예수의 가족이 애굽으로 피신하였을 때(14절) 요긴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다.

12절 카이 크레마티스덴테스 카트 오나르 메 아나캄프사이 프로스 헤로덴 디 알레스 호두 아네코레산 에이스 텐 코란 아우톤

=====2:12

 꿈이란 신탁으로 의문시했던 사실에 확실한 해답을 얻는 행위, 또는 공무수행을 위해 조언을 받거나 주는 행위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말은 앞으로의 자신들의 행동을 결정치 못 하고 주저했던 동방 박사들의 계시 요청에 따라 하나님의 응답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여기 언급된 '꿈'은 본서의 초두에서 두 번째로 나오는데, 첫 번째(1:20)와는 달리 주의 사자가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꿈은 아기 예수를 지키시기 위하여 헤롯의 악한 계획을 무산시키시는  하나님의 직접 계시로 볼 수 있다.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 하나님께서 박사들에게 헤롯의 눈길을 벗어나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셨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정확히 어느 길로 갔는지는 분명하지 않고 다만 예루살렘을 피하여 사해의 남단으로 돌아갔든지 요단강을 건너 돌아갔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이처럼 예수를 참으로 만난 자는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버리고 다른 길, 즉 생명과 진리의 길(요 14:6)로 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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