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요한은 가이오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요한은 가이오에게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한다고 말합니다. 요한은 가이오에 대해서 말을 들었는데 진리 안에서 거룩하게 행동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요한은 가이오를 보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가이오에 대한 칭찬과 격려(요삼 1:1-8)
1절 호 프레스뷔테로스 가이오 토 아가페토 혼 에고 아가포 엔 알레데이아
=====1:1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편지하노라. - 사도 요한의 세 번째 편지는 매우 개인적인 것으로 수신자 가이오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이 글 전반에서 발견된다). 이 편지는 바울이 빌레몬에게 보냈던 것과 성격상 유사하다. 요한은 본절에서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장로'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장로'는 사제나 감독처럼, 일정 지역에서 영향 있는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직임을 나타내는 듯하다. 한편 수신자인 '가이오'는 당시에 흔한 이름이었으며 그 뜻은 '기쁨', '환희'이다. 가이오라는 이름은 세 사람에게서 발견된다. (1) 바울이 세례를 주고, 후에 데살로니가의 첫 감독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고린도의 가이오(롬 16:23; 고전 1:14). (2) 바울의 동역자로 데살로니가와 아리스다고 그리고 에베소에서 고난을 같이 한 마게도냐의 가이오(행 19:29). (3) 바울의 마지막 선교 여행에서 그리스로부터 마게도냐를 지나 드로아까지 동행한 더베의 가이오(행 20:4). 4세기 경의 사도적 관행에 보면(vii. 46. 9). 이 세 번째 가이오가 나중에 요한 사도에 의해서 버가모의 첫 감독으로 임명된 것으로 보아 이 가이오가 본서의 수신자인 듯하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 '나의'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고'는 1인칭 대명사로 흔히 생략되기 쉬우나 본절에서는 강조되어 표현되고 있다. 이는 가이오에 대한 요한의 개인적인 사랑이 돈독함을 시사한다. '참으로'의 헬라어 '엔 알레데이아'는 문자적으로 '진리 안에서'라는 의미로 가이오에 대한 요한의 사랑이 '진리 안에서' 혹은 '진리로' 행하는 사랑임을 시사한다).
2절 아가페테 페리 판톤 유코마이 세 유오두스다이 카이 휘기아이네인 카도스 유오두타이 수 헤 프쉬케
=====1:2
사랑하는 자여...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 요한은 관습적인 기원의 양식을 통해서 다시 한번 가이오를 향한 그의 개인적이고도 따뜻한 마음을 전한다. '잘 되고'로 번역된 헬라어 '유오두스다이'는 '유'('잘')와 '호도스'('길')가 합성된 '유오도오'('여행을 잘하게 하다', '번영하다')에서 유래된 것으로, 문자적으로는 '좋은 길로 인도됨', '좋은 여행을 함'이란 의미를 가지나 은유적으로는 '번영하다', '성공하다'의 뜻을 가진다. 요한은 가이오의 만사가 번영하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한편 '강건하기를'의 헬라어 '휘기아이네인'은 누가의 경우 튼튼하고 정상적인 사람을 묘사할 때 사용하고(눅 5:31; 7:10; 15:27) 바울의 경우에는 건전한 가르침에 사용했다(딤전 1:10; 6:3).
네 영혼이 잘 됨같이. - '영혼'으로 번역된 헬라어 '헤 프쉬케'는 그리스도 안에서 얻게 된 영적인 생명을 가리킨다(요 10:11; 요일 3:16). 요한이 가이오의 영적인 상태와 육신적인 상태를 비교하여 육신의 형통함과 강건함을 기원하는 것으로 보아 가이오의 영적 상태는 염려할 상태가 아니었던 듯하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상태와 육신의 형통함이나 강건함은 한 편으로 치우칠 문제가 아니라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3절 에카렌 가르 리안 에르코메논 아델폰 카이 마르튀룬톤 수 테 알레데이아 카도스 쉬 엔 알레데이아 페리파테이스
=====1: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 본문은 초대 교회들 사이에 2세기까지 활발히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그리스도인들의 왕래에 대해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사회 환경의 변화나 여러 모양의 압력과 핍박으로 인한 불가피한 왕래뿐만 아니라 서로의 격려를 통해 신앙을 굳게 세우게 하기 위한 능동적인 왕래를 내포한다. '형제들'의 헬라어 '아델폰'은 그리스도인 목회자를 지칭하기도 하며(요일 3:14) 초대교회 성도들을 가리키기도 했다(살전 1:4; 2:1, 14,17). 본절의 '아델폰'은 선교 사역을 위해 여행하면서 교회에 문제가 있을 경우 특별히 방문하기도 하던 사역자인 듯하다.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 형제들이 요한에게 가이오에 대하여 전하여 준 것은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이었다.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요한이 크게 기뻐한 것은 당시 가이오가 진정한 복음인 진리를 반대하는 거짓 교사들의 온갖 위협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게 복음을 지킬 뿐만 아니라 복음 안에서 행하였기 때문이다). 가이오가 하나님의 진리인 복음을 고수하며 그 안에서 행한 행위는 '사랑'으로 표현되었다(6절). 이러한 진리에 대한 고백과 고수 그리고 사랑의 표현은 상호 보완적인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이 갖추어야 할 성품이다(요이 1:1,3,4). 한편 '행한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리파테이스'는 현재 시상으로, 가이오가 항상 진리 안에서, 진리와 더불어 사랑을 표현하면서 살고 있음을 시사한다.
4절 메이조테란 투톤 우크 에코 카란 히나 아쿠오 타 에마 테크나 엔 알레데이아 페리파툰타
=====1: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 '자녀들'은 요한이 목회의 대상으로 느끼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요한이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관심과 사랑으로 영육 간에 돌보아 왔던 대상들을 가리키는 듯하다(고전 4:14-16; 갈 4:19; 빌 2:22; 살전 2:11; 요일 2:1). 왜냐하면 '자녀들'앞에 사용된 소유 대명사 '에마'('나의')가 저자 요한과 자녀들의 상당히 오래되고 깊은 친분 관계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한편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표현은 요한 이, 삼서 외에는 신약성경에서 크게 강조되지 않는다. 요한 이서와 삼서에서 '진리'가 특히 강조되는 것은 요한의 공동체가 당면한 위기 즉 진리인 복음을 곡해하고 거짓된 교리를 전파하던 거짓 교사들의 횡포에 대항하기 위함이다. 요한은 '진리'를 강조하면서 이 '진리'를 '행함'과 철저히 연관시키고 있다(요일 1:6,7; 2:11; 요이 1:4,6). 이는 진리를 알 뿐 아니라 그 진리대로 행해야 함을 시사한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 개역성경에는 본문이 본절의 마지막 부분에 기록되어 있으나 헬라어 본문에는 본절의 서두에 기록되 있어 가이오에 대한 소식을 들은 것이 요한에게 가장 큰 기쁨이었음을 강조한다. '더'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이조테란')은 이중 비교급으로 요한이 가이오의 소식 즉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소식을 다른 어떤 소식보다 훨씬 더 기뻐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즐거움'의 헬라어 '카란'이 일부 사본에서 '카린'('은사', '은총')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혹자는 이를 인정하나 이는 필경사의 실수일 가능성이 높다.
5절 아가페테 피스톤 포이에이스 호 에안 에르가세 에이스 투스 아델푸스 카이 에이스 투스 크세누스
=====1:5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 - '가이오'는 형제들(3절) 곧 나그네와 같은 자들을 최선을 다해 환대하고 대접하며 도왔다. 요한은 이러한 가이오의 행위에 대해 최상급인 '에르가세'('행하는')를 사용하여 타인에 대한 가이오의 환대 행위가 최선을 다한 것이었음을 강조한다. 형제와 나그네들에 대한 '환대'는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요구되는 것으로(롬 12:13; 딤전 3:2; 5:10; 딛 1:8; 벧전 4:9) 초대 교회에서의 나그네 영접은 특히 중요한 사역이요 덕목이었다(마 10:10,40-42; 25:35-40; 히 13:2) 그러나 외부인에 대한 요한의 경고로 인해서(요이 1:10) 가이오의 신실한 환대 행위는 교회의 일부 사람들로부터 냉대와 소외를 겪은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이러한 가이오의 소식을 통해 '형제들에 대한 사랑'과 '나그네들에 대한 사랑'이 충만한 그를 확인하며, 칭찬하고 있다. 한편 '신실한 일이니'의 헬라어 '피스톤 포이에이스'는 개역성경에서 본절의 마지막 부분에 나타나나 헬라어 본문에는 본절 서두에 등장하여 요한이 가이오의 신실한 행위를 강하게 칭찬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6절 호이 에마르튀레산 수 테 아가페 에노피온 엑클레시아스 후스 칼로스 포이에세이스 프로펨프사스 악시오스 투 데우
=====1:6
저희가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하였느니라. - 여행하는 형제들은(3절) 교회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신들에게 베풀어 준 가이오의 진심 어린 사랑의 행위를 증거 하여 요한과 온 교회가 그를 기뻐하도록 했다. 형제들의 이러한 증언은 잘못된 오해로 인해 냉소를 당한 가이오의 상황을 반전시켜줄 뿐만 아니라 가이오 안에 있는 진리와 그의 사랑의 행위의 신실함을 입증시켜 주었다.
7절 휘페르 가르 투 오노마토스 엑셀돈 메덴 람바논테스 아포 톤 에드논
=====1:7
이는 저희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 본절은 나그네를 잘 대접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여행하는 형제들 곧 나그네들은 평범하게 여행하는 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선교 사역을 행하는 선교사들이다. 당시 여러 곳을 여행하며 설교나 전도를 하던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수많은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선교 사역을 감당하였다(행 15:40,41; 롬 1:5). 한편 '이방인'은 '이교도'를 의미한다(마 5:47). 여행하며 선교하는 형제들이 '이방인들에게 아무것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이방인들로부터의 일련의 지원을 받는 것을 금지한다는 단순한 상식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는 예수의 말씀에 충실하였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한 듯하다(마 10:8; 막 6:8-10). 선교사들이 교회로부터 지원을 받음이 합당함에도 불구하고(빌 4:10-18) 교회의 도움을 받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였기에(고전 9:14-18; 고후 12:16-18; 살전 2:6-9) 가이오와 같이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은 당시에 매우 중요한 그리스도인의 덕목이었다.
8절 헤메이스 운 오페일로멘 아폴람바네인 투스 토이우투스 히나 쉬네르고이 기노메다 테 알레데이아
=====1:8
이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 본문에서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한다'는 것은 단순히 숙식을 제공하고 격려하는 단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음 목적지까지 어려움 없이 갈 수 있도록 물질을 지원하는 것을 포함한다. 요한은 선교사들이 마땅히 교회의 환대를 받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이유 즉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행한다는 것과 실질적으로 아무런 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것 외에 한 가지 이유를 더하고 있다. 그것은 교회의 일원들이 선교들을 환대함으로 선교사들이 선교 사역에 동참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는 '진리의 동역자', '진리의 협력자'라는 의미로, 순회 선교자들은 돕는 일이 그 형제들의 동역자가 되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진리 그 자체와도 협력자가 되는 것임을 시사한다. 또한 '함께 수고하는'은 바울이 일반적인 협력의 개념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한 표현이며(롬 16:3; 고후 6:1;빌 2:25; 골 4:11) 요한의 공동체에서의 '사귐'과 부합되며(요일 1:3),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마 10;8; 요 13:34, 35).
[헬라어 성경 요한이서 강해] 하나님의 새 계명에 대한 순종 권면(요이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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