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은 선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에게 편지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순종해야 합니다.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구원받았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율법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은 백성은 율법을 폐기하면 안 됩니다. 항상 주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새 계명에 대한 순종 권면(요이 1:1-6)
1절 호 프레스뷔테로스 에클레크테 퀴리아 카이 토이스 테크노이스 아우테스 후스 에고 아가포 엔 알레데이아 카이 우크 에고 모노스 알라 카이 판테스 호이 에그노코테스 텐 알레데이안
=====1:1
장로는. - '장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프레스뷔테로스'에 관사 '호'가 있는 것으로 보아 본서의 저자 요한은 수신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으며 친근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요한은 신약 성경의 다른 서신과는 달리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아니하고 '장로'라는 칭호를 사용하여 자신이 나이가 많은 연장자로서 존경을 받을 만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감독과 같이 교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이단의 거짓 교리에 대항하여 사도의 가르침을 전하는 권위를 가지고 있는 자임을 시사한다(Stott, Barker, Smalley, Westcott).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편지하노니. - 본서의 수신자를 나타내는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의 헬라어 '에클레크테 퀴리아 카이 토이스 테크노이스 아우테스'에 대한 견해는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1) 혹자는 '에클레크테'나 '퀴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라고 주장한다(Clement, Harris). (2) 혹자는 지방 교회와 같은 기독교 공동체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Stott, Westcott, Brooke, Bruce, Dodd).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서를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한 개인에게 해당하지만 사실상 공동체에 대한 교훈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Barker). 따라서 수신자들은 요한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방 교회와 교인들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 '참으로'의 헬라어 '엔 알레데이아'에 대해서 혹자는 관사가 없음을 근거로 '진실로'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Plummer). 그러나 문맥상 본서에서 이단자들에 대한 경고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진리 안에서'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Stott). 한편 본절에 나타난 '사랑'과 '진리'는 본서 내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이단자들의 거짓된 가르침을 대항하는 방패이다. 요한은 '사랑'과 '진리'의 상관관계를 통해서 자신과 진리 안에 거한 자들의 사랑을 나타냄으로 교회와 교인들이 갖추어야 할 '진리 안에서 사랑으로 행함'을 강조하고 있다(4-6절).
2절 디아 텐 알레데이안 텐 메누산 엔 헤민 카이 메드 헤몬 에스타이 에이스 톤 아이오나
=====1:2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를 인함이로다. - 본절은 요한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수신자를 사랑하는 이유이다.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메드 헤몬 에스타이 에이스 톤 아이오나'는 종말론적 의미를 갖는다.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는 진리는 성령을 통해서 선물로 주어지며 이 진리를 통해서 상호에 대한 사랑이 지속되게 된다(Stott, Smalley). 한편 '우리 안에 거하여...진리를 인함이라'는 진리가 앞서 언급된 사랑의 원인임을 시사한다. 진리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근본이며 동기이다. 진리는 형제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내포하며(요일 2:7,8; 3:11) 그리스도인 안에 거하여 내적인 동기 부여와 충동을 통해서 사랑할 수 있도록 한다.
3절 에스타이 메드 헤몬 카리스 엘레오스 에이레네 파라 데우 파트로스 카이 파라 퀴리우 이에수 크리스투 투 휘우 투 파트로스 엔 알레데이아 카이 아가페
=====1:3
본절은 당시 서신의 관행을 따른 수신자들에 대한 축원(祝願)이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 '은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인들에게 거저 주시를 호의와 선물이며(약 1:17) '긍휼'은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며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낸다(딛 3:5). 이러한 은혜와 긍휼을 근본으로 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결과가 바로 '평강'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파라 데우 파트로스, 카이 파라 예수 크리스투 투 휘우 투 파트로스). - '아버지의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여러 칭호 가운데 독특한 것으로 예수께서 그리스도일 뿐만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아들임을 강조한다. 이것은 요한의 신학을 반영한 것으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를 계시하고 계셔서 아들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과 같음을 시사한다(요 20:31; 요일 2:23, Smalley, Brooke, Bengel). 한편 본문에서 '...로부터'의 헬라어 '파라'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에게 각각 적용되어 두 번 사용되고 있다. 이는 아버지와 동등하게 아들도 축복의 근원이 되심을 시사한다(Stott).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 요한은 바울이 자신의 서신에서 인사한 것과는 달리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를 삽입하여 강조하고 있다. 이는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진리와 사랑'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진리이신 예수의 생을 통해서 계시되었으며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서 드러난 그의 사랑 안에서 현시되었음을 시사한다(요일 4:9,10, Smalley, Barker). 또한 이러한 '진리와 사랑'을 통해서 수신자들이 이단자의 거짓 교리에 대처해 나갈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진리와 사랑은 불가 분리의 관계를 형성하여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진리 안에서 사랑할 수 있게 하며 사랑을 통해서 진리를 유지할 수 있게 한다(Stott).
4절 에카렌 리안 호티 휴레카 에크 톤 테크논 수 페리파툰타스 엔 알레데이아 카도스 엔톨렌 엘라보멘 파라 투 파트로스
=====1:4
너의 자녀 중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크 톤 테크논 수'는 부분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몇몇'의 헬라어 '티나스'를 필요로 한다. 이 '몇몇'이 가리키는 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교회 구성원들 중 순회하다가 요한에게 와서 만나게 된 자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Marshall, Stott, Bruce). (2) 혹자는 교회가 이단의 거짓 교리에 의해서 어려워지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교리는 따르게 되었을 때 진리와 사랑 가운데 있었던 몇몇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rooke, Smalley, Houlden, Schnackenburg).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 그리스도인들이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명은 단순히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계명은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 예수 안에서 믿고 서로 사랑하는 것을 가리킨다(요일 3:23, Smalley). 이는 요한이 본서에서 강조하는 '진리와 사랑'을 나타내는 것으로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지녀야 할 삶의 특징이다. 한편 요한은 예수께로부터 받은 계명이라고 표현하지 않고(요 13:34; 15:12,17) '아버지께' 받은 계명이라고 진술한다. 이는 아버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모든 진리와 메시지의 궁극적인 근원임을 시사한다(Marshall, Westcott).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 '진리에'로 번역된 헬라어 '엔 알레데이아'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관사가 없는 것을 이유로 '진실하게'와 같이 부사적으로 해석한다(Barker). (2) 혹자는 앞절에서 관사를 사용하지 않고 '진리와 사랑'을 표현한 것과 마찬가지로 관사와 관계없이 '진리 안에서'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Smalley).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한편 '행하는'의 헬라어 '페리파툰타스'는 현재 분사로서 복음과 그 도덕적 기준을 따라 일정하게 빛 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시사한다(요일 1:7).
5절 카이 뉜 에로토 세 퀴리아 우크 호스 엔톨렌 그라포 소이 카이넨 알라 헨 에이코멘 아프 아르케스 히나 아가포멘 알렐루스
=====1:5
본절은 요일4:21을 반영한다.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 '내가...구하노니'의 헬라어 '에로토'는 서간체이다. 요한은 자신이 명령할 수 있는 위치와 권한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청하는 표현을 씀으로 자신이 수신자들에게 강조하고 싶어 했던 중심적인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한편 '서로 사랑하자'의 헬라어 '아가포멘 알렐루스'는 요 13:34; 15:12,17)에 나타난 예수의 말씀을 배경으로 한 것으로 현재 시상이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특징인 상호 간의사랑이 지속적인 것이어야 함을 시사한다. 이러한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요일 4:7) 아들 되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셨던 것이며(요일 3:16)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인 안에서 성취되어 가는 것으로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비이기적인 행위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자발적(自發的)인 순종이다(요일 4:13-15, Barker, Smalley).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 본문은 요일 2:7에 대한 설명이다(요일 2:3-5,10; 3:11-18,23; 4:7,11,21).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된 순간부터 주어진 의무이며 그리스도인들이 실행해야 할 계명이다(Stott).
6절 카이 아후테 에스틴 헤 아가페 히나 페리파토멘 카타 타스 엔톨라스 아우투 아후테 에스틴 헤 엔톨레 카도스 에쿠사테 아프 아르케스 히나 엔 아우테 페리파테테
=====1:6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 본절은 '사랑'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사람에 대한 사랑을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그 두 종류의 사랑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사랑 둘 다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Westcott, Smalley). 두 종류의 사랑은 상관관계를 맺고 있어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그리스도인들 상호 간의 사랑으로 나타난다(요일 4:7-11).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그의 계명에 대한 순종을 요구한다(요 14:15,21; 15:10; 요일 5:2,3). 즉 사랑의 시금석은 그의 계명에 순종하여 지키는 것이다.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 '그 가운데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아우테'에서 '아우테'는 여성 명사를 받는 지시 대명사로서 여성 명사인 '계명'(헤 엔톨레)과 '사랑'(헤 아가페) 중 하나를 가리킨다. 이 두 가지 중 '엔 아우테'는 '사랑'을 가리킨다(Smalley). 하나님에 대해 순종하는 것을 드러내는 방법은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이 계명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수신자들이 그리스도를 처음 영접한 순간부터 기독교 복음에 대한 설교를 통해서 들어온 것이다(요일 1:1-5). 한편 '행하라'의 헬라어 '페리파테테'는 문자적으로 '걷는다'라는 의미로 생활을 통해서 사랑의 계명을 충실히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계명을 행하는 삶은 어둠에 거하지 아니하고 빛 가운데 거하는 삶으로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삶이다.
[헬라어 성경 강해 요한일서]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요일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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