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원문 강해

[히브리어성경 아가서 강해] 술람미 여인의 사랑 고백 노래(아 1:1-7)

엘벧엘 2021. 9. 26.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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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는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 노래입니다. 솔로몬이 예수님의 모습을 담고 있다면 술람미 여인은 성도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천한 여인이었지만 솔로몬 왕이 직접 찾아갔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천한 죄인인 나에게 찾아오셔서 거룩한 신부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아가서를 통해서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의 사랑 고백 노래(아 1:1-7)

 

1절 쉬르 하쉬림 아쎄르 리쉘로모

2절 이솨케니 민쉬코트 피후 키 토빔 도데이카 미야인

=====1:2

 솔로몬의 아가라 -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으로서는 전무후무한 지혜를 받아(왕상 3:4-15) 초목과 짐승, 새, 기어 다니는 것, 물고기 등에 대해서 논하고 삼천의 잠언을 말했으며, 일천 다섯의 노래를 지었다(왕상 4:32,33). 본절에서 노래를 뜻하는'아가'란 히브리어로 '쉬르 하쉬림'으로서 '노래 중의 노래'를 의미한다. 이는 솔로몬이 지은 많은 노래 중에서 최고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으로서 흔히 히브리인들이 어떤 것을 최상급, 최고를 나타낼 때 쓰는 관용구적 표현이다. 이와 같은 관용구적 표현은 '지성소'(출 26:33,34), '헛되고 헛되니'(전 1:2), '만왕의 왕'(계 19:16), '만주의 주'(계 19:16) 등이 있다. 한편 히브리인들의 노래는 하나님의 능력(시 21:13), 사랑(시 59:16), 은혜(시 85:1) 등을 주제로 한 찬양이 주종을 이루나 본절의 노래는 그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솔로몬 자신이 경험한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한 것이다(1:5; 3:7,9,11).

3절 레레아흐 쉐마네이카 토빔 쎄멘 투라크 쉐메카 알 켄 알라모트 아헤부카

=====1:3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 본 구절의 '기름'은 감람나무 열매를 따서  돌이나 기타 압축기에 의해 짜낸 식물성 기름으로 다양하게 사용된다.  이 용도는 주로 식용(출 29:2,23), 등잔불 용(출 27:20), 관유 제조용(출 30:24,25), 의료용(사 1:6), 향유용(시 23:5)등이다. 이 중에서 본 구절은 향유로 사용된 용례로서 솔로몬 왕에게 뿌려진 향유 기름이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는예표론적인 의미에서 볼 때 솔로몬으로 예표 된 그리스도께로부터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 능력 등이 아름다우심을 예시한다 할 수 있다(요일 2:27).

   네 이름이 쏟은 향 기름 같으므로 - 성경에서 '이름'은 어떤 사람에 대한 단순한 호칭의 의미를 넘어 그 사람의 전인격을 대변하는 것으로 종종 사용되었다 (창 27:36;마 1:21).  따라서 본 구절은 솔로몬 자신이 '쏟은 향 기름'처럼 아름답고  사랑스럽다는 뜻이다.  한편 여기서 솔로몬은 곧 예표론적인 의미에서 볼 때 성령으로 인해 하늘의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시는 그리스도를 암시한다(고후 2:15).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 여기에서 '처녀들'(알라모트)은 아직 결혼하지 않는 순결한 젊은 처녀들을 뜻하며(사 7:14, G. Loyyd Carr) 본 구절에서는 술람미 여자와 대화하는 예루살렘 딸(여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5절; 2:7;3:5). 한편 이 단어는 6:8에서 예루살렘 왕궁의 '시녀'들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예표론적인 의미에서 이들은 신랑 되신 그리스도를 사모하는 순결한 성도들을 예시한다.

4절 모스케니 아하레이카 나루차 헤비아니 하멜렉크 하다라이브 나길라 베니세므하 바크 나제키라 도데이카 미야인 메솨림 아헤부카

=====1:4

  침궁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 '침궁'이란 솔로몬의 방들 중에서 특히 깊은 '내실들'을 의미한다(G. Loyyd Carr, Lange).  즉 솔로몬 왕이 술람미 여인을 각별히 사랑하여 은밀하고 안락한 안방으로 인도함을 암시한다.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 원문상으로 본 구절은  본절의 맨 서두에 나오며, 술람미 여인이 그의 사랑하는 연인 솔로몬에게 사랑을 고백하면서 인도를 소망하는 내용이다(Delitzsch). 성경에는 이와 유사한 말로서 하나님의 사랑이 그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표현이 두 군데 나온다(렘 31:3; 호 11:4).  한편  '우리'란 술람미 여인과 또한 솔로몬 왕을 사랑하는 처녀들을 가리킨다(3절).

5절 쉐호라 아니 베나바 베노트 예루솰람 케오홀레 케다르 키리오트 쉘로모

=====1:5

 예루살렘 여자들 - '여자들'(베노트)은 문자적으로 '딸들'(daughters, KJV)로 번역된다. 이는 본서에 여러 번(2:7; 3:5,10; 5:8,16; 8:4) 나오는데, 예루살렘에 거주하면서 솔로몬 왕을 사모하는 여자들을 가리킨다(3:10).  한편 예표론적인 의미에서 이들은 신랑 되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교회의 성도들을  암시한다 (엡 5:22-33).

   내가 비록 검으나 - '검으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쉐호라'는 선천적으로 피부가 검은 것을 가리키지 않고 피부가 햇볕에 그을러 암갈색으로 거무스름하게 된 상태를 가리킨다(애 4:8 참조).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 '게달'은 '검은' 또는 '유력자'란 뜻이다. 이들은 아브라함의 서자(庶子)인 이스마엘의 차남의 후예들로서(창 25:13 참조) 일반적으로  북아라비아 지방 등을 다니며 유목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또한 베드윈(Bedawin) 족속으로 알려지기도 하는데 이들의 장막은 검은색 또는 암갈색의 염소 가죽으로 만들어졌다(겔 27:21 참조).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 '휘장'(예리아)은 - 흔히 '(성막의) 앙장'(출 26:1-10) 또는 '막'(출 26:7,11,12)으로도 번역되는 말이다. 또한 이는 일반 천막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된 듯하다(렘 4:20; 49:29). 본 구절에서는 당시 동방의 왕들의 일반적인 습관처럼 솔로몬이 연중 한 차례 정도 왕궁 밖에 나갈 때 치는 장막 또는 그 덮개로서의 천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Lange).

6절 알 티르우니 쎄아니 쉐하르호레트 쎄쎄자파트니 하솨메쉬 베네 임미 니하루 비 사무니 노테라 에트 하케라밈 카르미 쎌리 로 나타르티

=====1:6

 내 어미의 아들들이 - 본서에는 술람미 여자의 아버지에 대한 언급은 한 번도 없고 다만 그녀의 어머니에 대해서만 몇 번 언급되고 있다(3:4; 6:9; 8:2). 이런 이유로 혹자는 그녀의 아버지가 죽었고 술람미 여자는 어머니와 오빠들과 함께 살았던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이 오빠들이 술람미 여자의 어머니가 재혼하여 다른 아버지에게서 낳은 배다른 오빠들 또는 사촌 오빠로 보기도 한다(Unmbreit, Ewald).

   나를 노하여 포도원지기를 삼았음이라 - 이는 아버지의 유업을 이은 술람미 여자의 오빠들이 술람미 여인으로 하여금 포도원을 지키는 일꾼으로 일을 시켰음을 암시한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 여자들이 가사 외에 들에 나가 일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창 29:9, 10; 출 2:16, 19).

   나의 포도원은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 술람미 여인이 오빠들의 포도원을 돌보느라고 자신의 포도원은 미처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는 뜻이다.  혹자는 본 구절의  단수 '포도원'을 8:12에 근거하여 술람미 여자의 육체적인 아름다움 또는 술람미 여자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G. Loyyd Carr, Lange).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본 구절의 의미는 술람미 여자가 전문(前文)의 거무스름한 피부처럼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꾸지 못하였다는 뜻이다.  한편 예표론적인 의미에서 볼 때 이는 성도들이 다른 일상적이고 피상적인 일들에 몰두한 나머지 정녕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맡은 신앙적 임무는 잘 감당하지 못함을 암시한다.

7절 하 기다리 쎄아하바 나페쉬 에카 티르에 에카 타르비츠 바초호라임 샬라마 에흐예 케오테야 알 에드레 하베레이카

=====1:7

 너의 양 떼 먹이는 곳과 오정에 쉬게 하는 곳 - 이는 술람미 여자가 사랑하는 솔로몬 왕을 그리워하여 함께 있고 싶어서 한 말이다. 여기서 '양 떼'란 원문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뒤의 '먹이다'란 말에 의해 유추해서 번역된 것이다. 이에 간해 혹자는 솔로몬이 직접 들에 나가 친 양 떼를 의미한다고 본다(Weissbach). 그러나 이보다는 일반적으로 구약에서 흔히 쓰는 상징적 표현으로서(삼하 5:2; 대하 18:16; 시 95:7;  렘 10:21), 솔로몬 자신이 목자로서 돌보며 다스리는 백성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Delitzsch). 그리고 '오전에 쉬게 하는 곳'도 목자들이 양떼를 칠 때 햇볕이 가장 뜨거운 한낮에 그늘에서 쉬며 양 떼들로도 쉬게 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말한 상징적인 표현이다. 여기서 술람미 여인은 마치 선한 목자가 양 떼를 돌보듯이 백성을 보살피는 솔로몬 왕의 은택을 자신도 받고 싶어 하고 나아가 그와  더불어 개인적이고 내밀한 사랑을 나누고 싶어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예표론적 측면에서 본 구절은  양 떼를 위해 목숨마저 버리시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연상시킨다(요 10:11).

   내가 네 동무 양 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린 자 같이 되랴 - '얼굴을 가리운 자'에 대해서는 창녀와 같이(창 38:14,15) 얼굴을 가리는 자(Delitzsch), 부끄러워함으로 얼굴을 가리는 자(Umbreit), 낯설은 자로서 얼굴을 가리우는 자(Ewald), 또는 이리저리 헤매는 자(Ginsburg)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된다. 이중 어떤 해석을 치하더라도 본 구절 이해에 차질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즉 술람미 여인이 사랑하는 연인 솔로몬을 찾기 위해 그의 동무의 양 떼 가운데서 헤매다가 찾지 못하고 그 곁에서 수치를 당하는 경우를 우려한 것이다.

[히브리어로 보는 전도서] 인생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니(전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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