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애가에는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하고 예루살렘에 폐허가 되어 고통스러운 참상에 대해서 기록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을 향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을 때 그들을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를 괴롭히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따랐다가 결국은 예루살렘이 멸망을 당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참 복음이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거짓 선지자를 따라가면 죽습니다.
예루살렘 폐허에 대한 탄식(애 1:10-22)
10절 야도 파라스 차르 알 콜 마하마데하 키 리에타 고임 바우 미키다샤흐 아셰르 치비타 로 야보우 바카할 라크
=====1:10
손을 펴서 보물을 빼앗았나이다 - '보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하마데하'는 여기서 복수형으로 쓰이고 있는데, 이는 드문 용례이다. 문자적인 의미는 '그녀의 가치 있는 것들'로서, B.C. 586년 바벨론인들의 공격으로 성전에 있는 값비싼 장식품들이 모조리 강탈당하여 바벨론으로 옮겨진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렘 52:17-23). 이스라엘 자손들조차도 제사장 신분이 아닌 이상 성소에 입실하는 것에 금지된 상황인데, 이교도들이 그 거록한 성전을 마구 짓밟았다는 것 자체가 최악의 상황이었음을 말해준다. 이스라엘 회중에 들 수조차 없었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밟았던 것이다.
11절 콜 암마흐 네아나힘 미바키쉼 레헴 나티누 마하모데헴 마하마데헴 비오켈 리하쉬브 나페쉬 리에 아도나이 비하비타 키 하이티 졸렐라
=====1:11
보물로 식물들로 바꾸었더니 - 여기서 '보물'은 양식을 사기 위해 내주었던 예루살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보물을 말한다. 아마 이것은 B.C. 586년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직전의 상황을 암시하고 있다.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서는 아무리 값비싼 보물이라 해도 양식과 바꾸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12절 로 알레켐 칼 아비레 데레크 하비투 우리우 임 예쉬 마키오브 키마키오비 아셰르 올랄 리 아셰르 호가 아도나이 비욤 하론 아포
=====1:12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 본 구절은 여러 가지로 번역된다. (1) 한글 개역 성경이나 KJV, NIV, RSV 등의 영역 성경들처럼 의문문으로 옮기는 견해, (2) '나는 너희에게 아무런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 혹은 '나의 슬픔이 너희에게는 아무렇지도 않다' 등과 같이 평서문으로 번역하는 견해. (3) '너희에게 슬픔이 임하지 않게 하라'와 같이 명령문으로 옮기는 견해 등이 있다. 이상과 같은 여러 가지 견해들 중에서 첫 번째의 견해, 즉 의문문으로 번역하는 것이 가장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우리는 의문형을 가리키는 '헤'가 생략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Calvin).
13절 미마롬 샬라흐 에쉬 비아치모타이 바이리데나 파라스 레셰트 리라길라이 헤쉬바니 아호르 니타나니 쇼메마 칼 하욤 다바
=====1:13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어 이기게 하시고 - 본 구절은 '그가 불을 내려보내시고 그것으로 내 뼈를 관통하게 하셨나이다'라고도 읽을 수 있다. 시인은 '그물'과 '곤비', '불'이란 개념을 사용하여서, 예루살렘을 뒤흔들었던 그 공포와 혼란상을 회화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불은 예루살렘 성 깊숙이 번져 들어갔으며, 또한 그물이 쳐쳐 있어서 아무도 거기서 달아나지 못하게 되었었다. 한편, '이기게 하시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다'는 '짓밟다', '정복하다'는 뜻으로 바벨론 군대의 침탈을 암시하는 듯하다.
14절 니시카드 올 피샤아이 비야도 이시타리구 알루 알 차바리 히키쉴 코히 니타나니 아도나이 비데 로 우칼 쿰
=====1:14
내 죄악의 멍에를 그 손으로 묶고 - 맛소라 사본은 해석하기 어렵다. '묶고'로 번역된 '니쉬카드'란 말이 구약 성경에서 오직 이곳에서만 쓰였으며, 그 의미 또한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70인 역(LXX)과 수많은 사본들은 자음들을 변형시켜서 '솨카드'란 동사로 읽고 있다. 이것은 '주의하다', '지키다'란 뜻인데, 이를 받아들여 본절 상반 절을 다시 번역하면, '내 죄악이 주시되어 왔었다'(Watch has been kept over my transgressions)이다. 이 번역은 '멍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올'마저 '...위에'라는 뜻의 전치사 '알'로 읽어야 한다는 점에서 다소 무리한 해석이다. 그런가 하면, 이 말은 '무겁다'란 뜻을 가진 어근 '카쉐'에서 파생된 말로 읽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내 범죄의 멍에가 무겁다'로 번역될 수 있다. 아무튼 가 구절의 취지는 예루살렘의 죄악이 복합적이므로 마치 동물 목에 걸린 무거운 멍에처럼 그들을 짓누른다는 의미이다(Harrison).
15절 실라 칼 아비라이 아도나이 비키리비 카라 알라이 모에드 리쉬보르 바후라이 가트 다라크 아도나이 리비툴라트 바트 이후다
=====1:15
성회(모에드) - 는 일반적으로 즐겁고 재미있는 모임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적군이 여호와의 호출을 받아 유다 용사들을 쳐부수는 축하 행사를 위해 모인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술틀 - 은 예루살렘의 저항이 분쇄되고 그 방어자들의 피가 마치 술틀에서 포도즙이 으깨져 나오는 것과 같다는 회화적 표현 수법이다.
16절 알 엘레 아니 보키야 에니 에니 요리다 마임 키 라하크 미메니 미나헴 메쉬브 나피쉬 하이우 바나이 쇼메밈 키 가바르 오예브
=====1:16
내 눈에 눈물이 물 같이 흐름이여 - 본절에는 예루살렘 함락에 따른 쓰라린 심정이 표현되고 있는데, 이들 침략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원수라는 사실이 그 고통을 더욱 쓰라리게 한 것이다. 원문에는 '내 눈에'(에니)란 말이 반복되고 있으나 현대의 대부분의 영역 성경들은 초기의 역본들을 따라 이것을 생략하고 있다(Ellison)
17절 페리사 치욘 비야데하 엔 미나헴 라흐 치바 아도나이 리야아코브 시비바이브 차라이브 하이타 이루샬람 리니다 베네헴
=====1:17
시온이 두 손을 폈으나 - 본절은 시인이 파괴된 이 도시 대신에 애도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내용이다. 그리고 '두 손을 펴는 것'은 슬픔과 탄원의 몸짓을 나타낸다.
18절 차디크 후 아도나이 키 피후 마리티 쉬미우 나 칼 암밈 하암밈 우리우 마키오비 비툴로타이 우바후라이 하리쿠 바셰비
=====1:18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거역하였도다 - 여기서는 예루살렘을 이런 참혹한 심판으로 몰아넣었던 죄악에 대한 한탄의 노래가 나타난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하나님의 뜻에 반역한다거나 또는 그 공의로우신 처사에 반발하는 듯한 내용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여기서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으로서 나타나고 있는데, 오랜 반역을 꾀하던 이들 하나님의 백성은 마침내 처벌당했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은 가나안 종교의 퇴폐적인 제사 의식에 빠져들음으로써, 이미 오염되어 있었으며 그 결과 심판에 대한 예언이 마침내 성취되었던 것이다(Harrison).
19절 카라티 라미아헤바이 헴마 리무니 코하나이 우지케나이 바이르 가바우 키 바키슈 오켈 라모 비야쉬부 에트 나피샴
=====1:19
사랑하는 자 - 란 동맹국들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바벨론 군대가 이 땅을 파괴시키고 있었을 때 유다를 도우러 오지 못했다. 특히 기대를 걸고 있었던 애굽도 갈대아군들과의 직접적인 대결을 피하기 위해 몸을 도사리고 있었다.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 거짓 선지자들의 그럴듯한 거짓말에 현혹되어 예레미야의 경고를 무시했던 바로 그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포위 공격에서 간신히 살아남긴 하였으나 결국 양식을 찾지 못해서 죽어갔다.
20절 리에 아도나이 키 차르 리 메아이 하마리마루 네히파크 리비 비키리비 키 마로 마리티 미후츠 쉬킬라 헤레브 바바이트 카마베트
=====1:20
예루살렘의 유일한 희망은 여호와께서 그 대적들을 심판해 주시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죄악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지경에 다다라 있었다. 한편, 예레미야는 70년이 지난 다음에야 예루살렘이 회복될 것이고 그 반면에 갈대아인들은 망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언했었다(25:12-14). 그러나 예루살렘 함락은 이 예언을 믿는 경건한 자들에게까지도 엄청난 충격이 될 정도로 처절했음이 분명하다.
마음이 괴롭고 - 이의 히브리어 '메아 하마르'는 문자적으로 '창자가 뒤틀린다'는 뜻으로서 극도로 괴로운 심경을 나타낸다.
21절 샤미우 키 네에나하 아니 엔 미나헴 리 칼 요이바이 샤미우 라아티 사슈 키 아타 아시타 헤베타 욤 카라타 비이히우 카모니
=====1:21
여기서는 전날 선택된 백성을 위해 대적을 무찔러 주셨던 하나님이 이제는 자기 백성에게 진노하셨다는 사실이 언급되면서, 대적들이 이 사실을 알고는 대단히 즐거워한다는 내용이 언급된다. 본절 끝부분의 반포하신 날을 이르게 하시리니(헤베타욤 카라타)라는 표현은 난해한 구문이다. 어떤 학자는 '반포하신 날'을 유다의 재앙의 날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이해하기도 하나, 거만한 이스라엘 대적들이 처벌을 받아 낮아지는 대를 가리킨다고 봄이 타당하다. RSV 영역 성경은 페쉬타(Peshitta)역을 따라 이를 명령형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NIV 영역본은 미래의 소망을 나타내는 희구적 가정법(optative suvjunctive)으로 이해하고서 이를 '그 날이 이르도록 하시기를'(May you bring the day)이라 번역하였다. 그런가 하면 KJV, ASV는 이를 예언적 완료형으로 이해하고 있다. 저자는 대적들의 악한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처벌받게 되기를 기도한다.
이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이 처벌되었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공의의 실현이 바로 심판이었다는 내용은 뒤에 이어지는 몇 장의 주제로 등장한다. 본절은 이런 의미에서 본서의 기본적인 신학 사상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죄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이 민족이 바라보고 기대를 걸 수 있는 미래에 대한 희망의 근거이기도 한 것이다(Harrison).
22절 타보 칼 라아탐 리파네카 비올렐 라모 카아셰르 올랄리타 리 알 칼 파샤아이 키 라보트 아니호타이 비리비 다바이
=====1:22
본절은 본장의 결론에 해당되는데, 하나님의 공변된 보응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즉 온 세계의 심판주 되신 여호와께서 자신들을 처벌하였던 것과 같이 악하고 죄 많은 다른 민족들에게도 그와 같은 심판을 내려달라는 것이다. 이런 탄원은 전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에 의거한 것으로서, 사도바울이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는 주의 약속을 상기시킨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롬 12:19).
[히브리어 성경 예레미야 설교말씀] 여호와를 배신한 유다 백성(렘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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