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원문 강해

[히브리어 설교말씀 잠언]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의 차이(잠 1:20-33)

엘벧엘 2021. 11. 1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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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장에는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나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예수님을 깨닫고 믿는 자들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주님도 모르고 자신 고집대로 인생을 사는 자입니다. 자신 고집대로 인생을 살다가 결국은 저주받아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혜를 받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의 차이(잠 1:20-33)

 

20절 하키모트 바후츠 타로나 바리호보트 티텐 콜라흐

21절 비로쉬 호미요트 티키라 비피티헤 쉬아림 바이르 아마레하 토메르

=====1:20,21

  파멸을 가져올 뿐인 죄의 유혹을 경고한 데 이어 저자는 지혜를 의인화시킴으로써 지혜에의 권고와 초대에 대한 순종의 유익함, 그리고 이를 거절한 자에게 있는 징책과 심판을 선고하고 있다. 성경상으로 지혜가 의인화된 첫 번째 경우는 욥 28:20-23,27,28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본절에서는 본문 외에 3:15-19;8,9장 등에서 지혜가 의인화되어 등장한다. 특히 8:22-31에서는 지혜가 그리스도와 동일시되어 언급된다.

   지혜가(호크모트) - '호크마'(2절)에서 파생된 복수형으로(22절;9:1;14:1;24:1,7;시 49:4), 이러한 복수형은 지혜의 수나 종류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함축하는 지혜의 완전성을 나타내기 위한 소위 장엄 복수로 쓰인 것이다(Bottcher). 길거리(바후츠) - 바깥의 개념인 '실외'(室外)를 포괄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부르며(라난) - 문자적으로는 '크게 외치며'란 뜻을 가지는 바, 고대 이스라엘에 있어 선지자, 지혜자, 교사들이 하나님의 말씀,  곧 지혜를 전달할 때의 매개적인 수단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Lange). 한편 본절에는  의인화된 지혜가 설교하는 곳을 계속 열거하고 있는바, 이곳들이 모두 공공 장소라는 점에서 지혜의 초청이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보편성, 공공성을 지닌 것임을 시사해 준다(8:1-4;9:3; 마 10:27;행 19:8).

훤화하는 길 머리 - 여기서 '길 머리'는 길이 사방으로 갈라지는 길의 중심부(겔 16:25, Delitzsch) 또는 성벽의 꼭대기(LXX, the top of the walls, RSV) 등을 뜻하며, '훤화하는'(호미요트)은 '시끄러운 곳'(왕상 1:41 ; 사 22:2)을 의미하는 바, 이 말은 일반적으로 사람이 많이 모여 북적대는 장소를 가리킨다. 

성문 어귀 - 고대 근동 사회에 있어서 성읍 내의 중심적인 운집 장소가 된 곳으로 재판의 개정(룻 4:11; 욥 29:7),  시장의 개설(왕하 7:1), 공공 회의의 개최(대하 18:9)등이 행해졌으며 특별히 선지자들의 예언이 자주 선포된 곳이기도 하다(왕상 22:10; 렘 17:19,20).

22절 아드 마타이 피타임 티에하부 페티 비레침 라촌 하미두 라헴 우키실림 이시니우 다아트

=====1:22

  11-14절과는 반대로 지혜 자체의 말 을 인용하고 있다. 거만한 자(레침) - 원어상 '조롱하는 자'(29:8)란 의미로 경건한 생활을 조롱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경고를 가벼이 여기고 멸시하는 자를 가리킨다.

23절 타슈부 리토카히티 힌네 아비아 라켐 루히 오디아 디바라이 에티켐

=====1:23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 여기서 '신'(루아흐)은 지혜와 총명의 신, 모략과 재능의 신, 그리고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며(사 11:2) 포괄적으로 성령 또는 성령의 사역을 의미한다. 또한 '부어 부며'(아비아)는 '용솟음쳐 나오다', '풍성히 발하다'란 뜻의 어근 '나바'에서 유래된 말로서 끊임없이 새롭고 풍성하게 주어지는 상태를 나타낸다(Umbreit, Elster).  따라서 본 구절은 회개한 자에게 끊임없이 새롭고 풍성하게 주어지는 성령에 대한 약속으로 이해할 수 있다(행 2:38,39).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 '나의 말'(데바라)은 지혜에 내재되어 있는 포괄적인 사상이나 교훈들을 의미하며(thoughts, NIV), '보이리라'는 체험적으로 깨달아  알게  '나의  신'은  '나의  말'에  생명과 능력을 부여하는 근거가 된다. 또한 이러한 원리는 요 6:63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속에서도 보이는 바, 이곳에서 지혜는 사람들을 위한 구원의 말씀의 원천으로 나타나고 있다(Delitzsch, Wardlaw).

24절 야안 카라티 바티마에누 나티티 야디 비엔 마키쉬브

=====1:24

 손을 펼지라도 - 여호와 신앙을 잊어 저리고 삶의 지향점을 상실함으로써 방황하는 자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주목하며 그들로 하여금 가까이 오도록 하는 것을 의인화시킨 표현이다(사 65:2, Zockler).

25절 바티피리우 칼 에차티 비토카히티 로 아비템

=====1:25

  교훈...책망 - '책망'이 악을 행치 말라는 소극적 의미를 가지는 데 반해 '교훈'은 적극적인 선의 실천에 대한 권고적 의미를 함축한다.

   멸시하며(파라) - 원어상 경멸이나 무시의 의미보다는 '내어버리다', '거절하다'(spurned, LB)란 뜻을 강력히 시사하는 말로 강한 거부 의사를 나타낸다(4:15, Umbreit, Ewald).

26절 감 아니 비에디켐 에시하크 엘리아그 비보 파히디켐

27절 비보 카샤아바 카쇼아 파히디켐 베이디켐 키수파 예아테 비보 알레켐 차라 비추카

=====1:26,27

 지혜의 권고를 거절한 악인들이 당하게 될 결과적 심판의 엄중성을 점층법과 열거법을 사용하여 강조하고 있다.

   웃을 것이며...비웃으리라 - 조롱과 멸시의 의미를 점층적으로 강조하는 표현으로(시 2:4) 두 단어 모두 방관자적 조소(嘲笑)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28절 아즈 이키라이니니 비로 에에네 이샤하리니니 비로 이미차이니니

=====1:28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 여기서 '찾으리라'(솨하르)는 '새벽녘'이란 말에서 파생된 단어로 일찍 일어나 열심을 내어 기도하며 찾는다는  의미이다(8:17, Delitzsch, Zockler).  따라서 본절 이하는 그러한 열성적인 부르짖음과 기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할 것임을 시사하는 바(요  7:34),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에 대해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던 은혜의 시기, 곧 회개와 용서의 때에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호  10:12;  눅13:24-28; 고후 6:1,2).

29절 타하트 키 사니우 다아트 비이리아트 아도나이 로 바하루

30절 30절 로 아부 라아차티 나아추 칼 토카히티

=====1:29,30

 본서의 모토(motto, 7절)에 근거해 볼 때  본절은 악인들이 당할 심판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다. 곧 악인들은 계속되는 지혜의 초정과 권고를 무시하고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어리석음을 선택했으며, 종교적, 윤리적 삶의 원리를 제시하는 지식을 경멸하였기에 마땅히 엄중한 심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31절 비요킬루 미피리 다리캄 우미모아초테헴 이시바우

=====1:31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 여기서 '열매'는 자신이 취한 행동의 결과를 비유한 것으로 본 문구는 위에 언급된 모든 심판과 형벌의 원인이 바로 악인들 스스로에게 있음을 보여 준다.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 '꾀'(모에초트)는 악한 궤계나 악의적인 모략, 또는 불가능한 계획(schemes, NIV)을, '배부르리라'(사바)는 '과식하여 물리게 하다'(14:14;25:16; 시 88:3)란 뜻을 가진다. 따라서 본 문구는 근원적인 만족을 얻지 못한 자가 과한 욕망을 품고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그는 스스로에 대해서도 좌절과 환멸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32절 키 미슈바트 피타임 타하리겜 비샬리바트 키실림 티아비뎀

=====1:32

  퇴보(메슈바) - 이는 '돌아서다'란 의미의 어근 '슈브'에서 파생된 말로 좋은 의미에서는 죄를 자각하고 돌아서는 회개를 가리키며, 나쁜 의미에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떠나 등을 돌린다는 뜻의 배교, 반역(NIV)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렘 8:5; 호 11:7, Delitzsch).

   안일(솰와)  - 이 말 또한 원어상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곧 좋은 의미에서의  '고요함', '안전함'(17:1; 시 122:7)과 나쁜 의미에서의 '나태', '부주의함', '세속적 성공을 지시하는데,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실로 이러한 거짓 평안은 영혼을 부패시키며 인간을 쾌락과 물질의 노예로 전락시킨다(눅 12:16-21).

33절 비쇼메아 리 이쉬칸 베타 비샤아난 미파하드 라아

=====1:33

  나를 듣는자 - 여기서의 '나'는 의인화된 지혜를 가리킨다(20절). 따라서 이 구절은 지혜의 권고와 충고를 거절한 악한 자들과는 반대로 그 지혜의 모든 권고와 초청을 듣고 따름으로써 전인격적으로 순종하는 자를 지칭한다.

   안연(晏然)히 살며 -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에서 안전하게 살게 될 것이라는 신 33:12-18의 약속을  연상시킨다. 곧 이 말은 현세적인 안전함을 넘어서 지혜의 충고와 권고에 순종하는 의인이 누리게 될 궁극적이며 영원한 영적 평안을 가리킨다. 한편 이 말이 원전에서는 완료형 문법으로 쓰였는 바, 이 평안은 미래적인 비전일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현재적 의미의 평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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