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원문 강해

[히브리어 성경 느헤미야]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진 소식(느 1:1-3)

엘벧엘 2021. 9. 18.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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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히브리어 성경 느헤미야 중에서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진 소식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들이 불탔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느헤미야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는데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성문이 불탔는데도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진 소식(느 1:1-3)

 

1절 디브레 니헤므야 벤 하칼야 바예히 베호데쉬 키셀레브 쉐나트 에세림 바아니 하이티 베슈샨 하비라

=====1:1

 하가라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 여기에 '여호와의 말씀'이란 말이 없다고 해서 본서의 영감성을 의심해서는 결코 안 된다. 물론 예언서들의 초두에서 예언자들이 자신의 전언(傳言)이 신적인 기원을 갖는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여호와의  말씀'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은 사실이다(렘 1:2; 호 1:2; 암 1:1). 그러나 그 예언서들은, 철저하게 예언적 특성을 갖고 있는 메시지의 전달이라는 특수한 경우에 해당된다(Schultz). 그러면 본절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본서가 '느헤미야'에 의해서 기록되었음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본절은, 본서가 에스라서의 속편적인 성격을 띠고 있지만 느헤미야에 의해 독립적으로 구성된 책임을 암시한다. 한편, '하가랴'는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 희귀한 이름으로서, 그 의미는 분명치  않지만 '여호와의 흑암'으로 추측된다. 반면에 '느헤미야'는 포로 전후기를 막론하고 대단히 흔했던 이름으로서, 그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위로하신 다'이다. 바로 이 이름의 축약형이 '나훔'이다(나 1:1).

   아닥사스다 왕 제 이십 년. B.C. - 445년을 가리킨다.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더니 - '기슬르월'은 태양력으로 11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에 해당되는 달(月)이 다. 이때 아닥사스다 왕은 당시 느헤미야가 머물러 있었던 '수산 궁'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페르시아 왕들은 대개 겨울에는 '바벨론'을, 여름에는 메대의 '악메다'를 휴양지 삼아 거기서 통치하였으며, 봄이나 가을이 되어야 '수산 궁'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스 6:2; 에 1:2). 느헤미야가 고국으로부터의 급박한 소식을 접하고서도(2, 3절) 즉시 왕에게 부탁하며 귀국할 수 없었던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었으리라 추측된다. 실제로 느헤미야가 자신의 괴로운 심정의 자초지종을 아뢰고서 귀환 허가를 받은 것은 '니산월'(2:1), 곧 B.C. 444년 3, 4월에 해당되는 때였다.

2절 바야보 하나니 에하드 메아하이 후 바아나쉼 미후다 바에쉐알렘 알 하예후딤 하펠레타 아쎄르 니쉐아루 민 하쎄비 베알 예루솰람

=====1:2

 나의 한 형제 중 하나니 - 이 사람은'느헤미야'의 친동생인 것으로 추정된다(7:1,2). 나중에 그는 느헤미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귀환해서 느헤미야를 돕는 관리로 임명되었다(7:2).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는 은혜로우셨다'이며, '하나니아'라는 이름의 축약형이다.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이르렀기로 -  이들이 '하나니'를 우두머리로 해서 '수산궁'에 온 것은, 예루살렘의 급박한 상황을 페르시아 왕궁의 고위직에 있었던 느헤미야에게 알리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니'는 페르시아나 바벨론에 살고 있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결국 이것은 '하나니'가 자신의 친형 느헤미야와 헤어져 에스라를 따라 B.C. 458년에 팔레스틴으로의 귀환 대열에 합류했었음을 암시한다.

   내가 형편을 물은즉 - 이처럼 느헤미야가, 급박한 상황을 현장에서 체험하고 그것을 알리려고 급히 찾아온 동생의 일행이 보고를 하기도 전에 먼저 질문한 것은, 그가 고국의 소식에 매우 목말라 있었음을 강력히 시사해준다. 특히 여기의 '형편을 물은즉'(솨알)은 '구걸하다', '간청하다', '질문하다' 등의 뜻으로서 자신에게 필요한 어떤 것을 간절하게 요구하는 행위를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된다(출 3:22; 삿 5:25; 왕상 3:1; 렘 30:6 )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 이것은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을 말한다(스 2:1). 유대인들에게 있어 포로 생활이란 커다란 수치였으므로, 성지(聖地)에로의 귀환은 곧 수치를 면한 것으로 이해되었다(스 9:13 참조).

3절 바요메르 리 하니쉐아림 아쎄르 니쉐아루 민 하쉐비 솸 바메디나 베라아 게돌라 우베헤르파 베호마트 예루솰람 메포라체트 우쉐아레이하 니체투 바에쉬

=====1:3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 이는 당시 유대 사람들이 숫자가 적고 무장을 갖추지 못함으로써 이방인들의 노략 대상이 되며, 지극히 가난하여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음을 가리킨다. 한편, '그 도'에 대해서는 몇 가지 견해로 갈린다. (1) 유프라테스강 서편 지대를 가리킨다는 견해, (2) 사마리아를 가리 킨다고 보고 당시 유대는 페르시아의 행정 구역상 사마리아에 속했다고 이해하는 견해, (3) 유대를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 견해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유대가 고레스나 다리오 때에 이미 페르시아의 독립된 한 속령으로 인정받았다고 보며, 학개가 스룹바벨을 '유다 총독'으로 지칭한 사실을 그 증거 자료로 제시한다(학 1:1). 따라서세 번째 견해가 가장 무난할 듯하다.

   예루살렘 성은 훼파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 이 같은 사건이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1) B.C. 586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함락된 사실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와, (2) 스 4:7-24에 기록된 르훔과 심새 등의 훼방 사건을 가리킨다는 견해가 있다. 예루살렘  함락은 본문 시점으로부터 무려 140여 년 이전에 발생한 오래된 역사적 사건이었지만, 본문의 정황은 최근에 발생한 충격적인 요소가 전달된 것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이 견해는 상당한 타당성을 지닌다. (3) 에스라서와 본서 사이의 공백 기간인 12년 사이에 몇 차례의 성벽 재건이 시도되었으나 그때마다 훼방당했던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견해이다. 이 견해도 시대 설정의 측면에서 비교적 무난하다고 이해된다.

[히브리어 성경 강해 에스라] 고레스 왕의 성전 기구 반환(스 1:7-11)

 

[히브리어 성경 강해 에스라] 고레스 왕의 성전 기구 반환(스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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