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원문 강해

[헬라어 성경 강해 골로새서] 골로새 성도를 칭찬하는 바울(골 1:1-8)

엘벧엘 2021. 10. 3.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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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축복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마다 골로새 성도들을 보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골로새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과 사랑이 넘쳐났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과 사랑이 바울에게도 전달되었습니다. 복음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간직하면서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골로새 성도는 구원받을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성화의 삶을 살면서 신앙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에바브라가 골로새 성도들을 복음으로 잘 가르치고 잘 배웠기 때문에 신실한 성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교회에서 복음을 열심히 가르치고 배우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골로새 성도를 칭찬하는 바울(골 1:1-8)

 

1절 파울로스 아포스톨로스 이에수 크리스투 디아 델레마토스 데우 카이 티모데오스 호 아델포스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 - 본서의 서두는 바울과 골로새 교회가 피차 처음 알게 되는 상황이므로 담담하게 바울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을 사도라고 소개하고 있다. '사도'라는 말의 의미는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단순히 '심부름을 하는 자'의 의미가 아니라 '파견자의 전권을 위임받은 자'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은 정당한 자신의 권위를 알리고 있는 것이다. 바울의 권위는 스스로 취한 것도 아니요 사람들의 추천으로 된 것도 아니다(고후 3:1). 오직 그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파견된 사람이고 그리스도의 권위와 권능을 대변하는 자이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의 사도 됨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로 거슬러 올라감을 밝히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과 그리스도 그리고 바울 자신에게로 이어지는 권위의 연속성을 주지 시키고자 함이다.

   형제 디모데 - 디모데는 본서 외에 고린도후서,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서, 빌레몬서의 서두에 언급된다(고후 1:1; 빌 1:1; 살전 1:1; 몬 1:1). 이는 디모데가 여러 지역의 교회들에 상당히 알려져 있었음을 말해준다. 본서에서 바울이 디모데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골로새 교인들이 디모데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디모데를 자신과 함께 소개함으로써 친근감을 주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뜻이 있었을 것이다. 디모데는 루스드라에서 바울을 처음 만났고 바울과 동행하면서 함께 사역하였다(행 16:1; 고후 1:19).

2절 토이스 엔 콜랏사이스 하기오이스 카이 피스토이스 아델포이스 엔 크리스토 카리스 휘민 카이 에이레네 아포 데우 파트로스 헤몬 카이 퀴리우 이에수 크리스투

=====1: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 '성도들'이란 말은'신자'에 대한 최상의 표현이며, 여기에는 구약적 배경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성별 하여 선택하였고, 이렇게 '성도'로 불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높은 지위에 걸맞은 삶을 살도록 요청받았던 것이 전제된다. 골로새 교인들도 '성도'로서의 자의식을 가지고 구별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 이는 성도의 영적 위치를 강조하는 말로 성도는 한 육체의 지체들로서 그리스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신실한 형제들 - 만약 골로새 교인들이 인격적으로 사람들의 신뢰를 받고 영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투철하며 그리하여 하나님께 충성을 다한다면 그들은 마치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처럼(1절), 바울과 영적 형제가 될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 바울의 편지 서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생략한 채 아버지의 이름만을 언급한 것은 본 서신이 유일한 예이다. 한편 헬라어 서신 형식에서 발신인은 '... 로부터'에 의해 드러나는데  본문에서는 '... 로부터'가 '아버지 하나님'에 붙어 있다. 이것은 본 서신의 기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암시한다.

   은혜와 평강 - '은혜'(카리스)는 하나님에게서 흘러넘쳐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값없이, 자격을 묻지 않고 주시는 것이다. 즉 '은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진 '구원'을 가리킨다. '평강'(에이레네)은 '은혜'에 의하여 귀결되는 것으로 하나님과 사람과의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진 상태이다. 한편 여기까지는 당시의 헬라적 서신의 서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발신자의 이름, 수신자의 이름, 그리고 인사와 기원이 이어지는 형식은 전형적인 헬라식 서신의 서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편지의 서문에 그치지 않는다. 이 편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배'하는 시간에 온 회중들에게 낭독되었다(4:16). 예배시간에 회중들에게 들려진다는 의미에서 이 편지의 서문은 단순한 인사말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임재를 기정 사실화하는 구약성경의 축복문의 성격을 띠고 있다.

3절 유카리스투멘 토 데오 카이 파트리 투 퀴리우 헤몬 이에수 크리스투 판토테 페리 휘몬 프로슈코메노이

=====1: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 바울의 편지 서문에 다른 사람의 이름이 같이 언급되는 경우에도 감사의 부분에서는 '내가'라는 단수형으로 서술되는 것과  달리 본문에서는 '우리'라는 복수형으로 표현되고 있다. 혹자는 이것을 저자 문제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즉 전자의 경우에는 바울이 단독 저자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공저자가 있음을 시사한다고 보는 것이다. 아마 공저자라면 그는 디모데일 것이고 이는 디모데가 실제적으로 서신 집필에 참여했다기보다는 곁에서 심정적으로 함께 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기도할 때마다'는 바울이 늘 골로새 교회를 위해 기도했다는 의미이다. 공동번역은 '우리는 여러분을 위해서 언제나 기도하고'라고 번역하여 이 의미를 살리고 있다. 이는 바울이 비록 골로새를 방문한 적은 없지만 계속해서 골로새 교회에 대한 사도직을 수행해왔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 모든 감사는 하나님께 돌려진다. 이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앞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묘사했는데(2절) 여기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 서술하고 있다(요 14:6). 따라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자 우리의 아버지이다(요 20:17).

4절 아쿠산테스 텐 피스틴 휘몬 엔 크리스토 이에수 카이 텐 아가펜 텐 에이스 판타스 투스 하기우스

=====1:4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 바울은 직접 골로새 교회를 방문해보지 못했지만 이야기를 들어서 골로새 교인들의 신앙 상태를 알고 있다. 아마 에바브라를 통해서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7절; 4:12). 바울이 들어서 알고 있는 것 가운데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믿음에 관한 것이다. 이 믿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라는 표현의 의미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일 수도 있고, 그리스도와의 관계성을 뜻하는 것일 수 있다. 이 둘은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다. 바른 믿음은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에서 비롯되며 그것은 곧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불가 분리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은 성도들 간의 폐쇄적 사랑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도들 간의 사랑이 더 긴밀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복음이 땅 끝가지 전파되면 이 사랑은 온 인류의 사랑이 될 것이다. 사랑은 믿음과 긴밀하게 결합된다. 사랑은 믿음의 구체화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사랑은 믿음의 열매요 참 증거인 것이다.

5절 디아 텐 엘피다 텐 아포케이메넨 휘민 엔 토이스 우라노이스 헨 프로에쿠사테 엔 토 로고 테스 알레데이아스 투 유앙겔리우

=====1:5

 하늘에 쌓아둔 소망 - 본절의 '소망'은 앞절의 '믿음', '사랑'과 밀접하게  결합된다. 이 '소망' 때문에 믿음과 사랑이 구체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소망은 하늘에 대한 소망이다. 그것은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믿음과 사랑의 삶을 산 결과 하늘에서 받게 될 영광스러운 보상 즉 하늘의 축복에 관한 소망이다.

   복음 진리의 말씀 - 복음과 진리는 서로 같은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진리'곧 '복음'은 사람들을 하늘의 소망으로 인도하며 믿음과 사랑의 삶으로 인도한다.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 곧 복음에서 비롯된다(롬 10:17). 또한 복음의 진리는 참다운 가르침과 사이비 교훈을 구별해 주는 척도가 된다.

6절 투 파론토스 에이스 휘마스 카도스 카이 엔 판티 토 코스모 카이 에스틴 카르포포루메논 카도스 카이 엔 휘민 아프 헤스 헤메라스 에쿠사테 카이 에페그노테 텐 카린 투 데우 엔 알레데이아

=====1:6

  하나님의 은혜 - 복음이 말 그대로 좋은 소식인 것은 그것이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핵심으로 한다.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 복음은 모든 장애를 뛰어넘어 골로새 교인들에게 이르렀고 온 천하에도 이르렀다. 여기서 '온 천하'는 문자 그대로 온 세상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당시 복음이 다메섹, 다소, 안디옥, 고린도, 에베소뿐만 아니라 로마에까지 전파된 것을 염두에 두고 '온 천하'란 말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즉 바울은 복음이 끊임없이 그 영역을 확대하는 것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발하고 있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 복음은 열매를 맺게 하고 자라게 하는 능력을 지닌다. 열매를 맺는 것과 자라는 것은 각각 복음의 내적 활동과 외적 팽창을 나타낸다. 또한 이 두 동사가 현재 중간태 분사로 되어있는 것은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복음의 역동적 활동을 암시한다.

7절 카도스 카이 에마데테 아포 에파프라 투 아가페투 쉰둘루 헤몬 호스 에스틴 피스토스 휘페르 휘몬 디아코노스 투 크리스투

=====1:7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 - 바울이 에바브라를 '함께 종 된' 자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은 바울이 그를 복음 사역의 동역자로 인정하였음을 뜻한다. 본문의 '에바브라'는 빌립보 교회의 신실한 일꾼이었던 '에바브로디도'(빌 2:25 ; 4:18)와는 다른 인물이다. 에바브라는 골로새 태생으로(4:12), 그곳뿐 아니라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에서도 큰 활약을 한 사역자로 보이며 어떤 혐의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한때 바울과 함께 옥에 갇히기도 했다(몬 1:23).

   배웠나니 - 골로새 교인들이 복음을 듣고 은혜를 깨달아 열매를 맺게 된 것은 바로 에바브라의 선교에 의한 것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아울러 에바브라를 통해  골로새 교인들이 받은 복음은 정당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 '너희를 위하여'는 '우리를  대신하여'(공동번역)로 볼 수 있고 그렇게 기록하고 있는 사본들도 많다. 물론 에바브라의 복음 사역은 골로새 교인들을 위한 것이지만, 그것은 골로새에 갈 수 없는 바울을 대신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에바브라는 바울의 동역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에바브라의 일꾼 됨은 바울에게 소급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소급되는 것이다.

8절 호 카이 델로사스 헤민 텐 휘몬 아가펜 엔 프뉴마티

=====1:8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고한자니라 - 에바브라는 바울을 대신해서 골로새를 방문해 복음을 전했고 바울에게 되돌아와서 골로새 교인들의 신앙적 상황을 이야기해 주었다. 골로새 교인들이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열매를 맺으며 자란다는 것의 한 가지 증거는 그들에게서 사랑이 생겨났다는 것이다(4절). 이 사랑은 그 동기와 출처가 인간에게 있는 '에로스'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즉 '아가페'이다. 칼빈은 이것을 '영적인 사랑'이라고 해석하였다. 한편 본 서신 전체에서 성령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곳은 본문이 유일하다. 이런 의미에서 '성령 안에서'라는 표현은 '너희 사랑'이라는 말의 본질적 의미를 밝혀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골로새 교인들이 지니고 있던 사랑은 다름 아닌 성령께서 일깨워 준 것이었다. 이처럼 '성령'으로 말미암는 영적 사랑이 넘쳐나는 곳, 그곳이 바로 이상적인 교회의 모형이다.

[헬라어 성경 강해 빌립보서] 바울의 성도에 대한 감사와 중보기도(빌 1:1-11)

 

[헬라어 성경 강해 빌립보서] 바울의 성도에 대한 감사와 중보기도(빌 1:1-11)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감사하면서 중보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항상 빌립보 성도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항상 성도들을 향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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