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히브리어로 보는 사무엘하 중에서 사울과 요나단의 사망 보고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사울은 평생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녔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다윗의 손을 들어주셨습니다. 사울이 죽이려고 했지만 하나님이 보호하시니 다윗을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길보아 산에서 사울은 블레셋 군대와 싸우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사울 가문의 몰락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도 죽었습니다. 다윗은 이 소식을 듣고 비통해하였습니다.
사울과 요나단의 사망 보고(삼하 1:1-10)
1절 바예히 아하레 모트 솨울 베다비드 솨브 메하코트 에트 하아말레크 바예쎄브 다비드 베치클라그 야밈 쉐나임
=====1:1
사울의 죽은 후라 - 사무엘상.하를 연결해 주는 의미 있는 구절이다. 랑게는 이 문구가 2장에 나온 용례처럼(2:1, 그 후에) 단순히 내용의 흐름을 바꾸어 주는 보편적 형식으로서 사무엘상. 하와 구분점이 되는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구약 역사서 중 상당수가 '...가 죽은 후'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음을 보아(수 1:1;삿 1:1;왕하 1:1) 이 문구를 사무엘상. 하를 구분하는 기준점으로 삼음은 적절하다. 더욱이 이 문구에 의해 내용면에서 폭군 사울 왕의 시대와 성군 다윗 왕의 시대가 명확히 구분되는 것을 보아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사무엘상. 하가 히브리 성경에서는 한 권으로 되었을지라도 이 문구를 기준으로 구분한 것은 매우 적절하며 또한 그 의미가 깊다.
다윗이...도륙하고 - 삼상 30:16-20의 사건을 가리킨다. 즉 앞서 다윗은 아기스와 함께 출전(出戰)하느라 잠시 시글락을 비워 둔 적이 있다. 그때 아말렉족이 시글락을 침입, 다윗의 백성을 약탈하였는데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다윗은 그 뒤를 추격, 아말렉족을 격파하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였던 것이다.
시글락 - 브엘세바 북서쪽 19.2km 지점에 위치한 성읍이다. 원래 시므온 지파에게 배당되었으나(수 19:5;대상 4:30) 사울 시대에는 블레셋의 지배하에 있었다. 한편 가드의 아기스 왕은 다윗이 사울에게 뒤쫓기고 있을 때 시글락을 다윗에게 주어 외부의 적들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꾀하기도 했었다(삼상 27:6;대상 12:1,20). 즉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이 가드로 도망와 아기스 왕과 군사적 관계를 맺고 이곳을 얻었던 것이다. 덕분에 다윗은 지금까지 이곳을 그의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세력을 확장하며 은거할 수 있었다(삼상 27:8,9;30:26-30).
2절 바예히 바욤 하쉘리쉬 베힌네 이쉬 바 민 하마하네 메임 솨울 우베가다이브 케루임 바아다마 알 로쇼 바예히 베보오 엘 다비드 바이폴 아르차 바이쉐타후
=====1:2
제 삼일에 - 다윗이 아말렉 족을 추격하여 그들을 격파하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시글락으로 돌아온 지(삼상 30:16-20) 제 사흘째 되던 날을 가리킨다.
사울의 진에서 나왔는데 - 사울과 그 휘하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 군을 맞이하여 교전(交戰)하던 격전지(삼상 31:1-7)에서부터 도망쳐 나온 것을 가리킨다.
그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더라 - 이는 그 당시 근동 지방 사람들이 자기의 극한 슬픔을 표시하던 한 방법이다(수 7:6;삼상 4:12). 특히 그중에서도 자신의 옷을 찢는 행위는 극도의 고통이나 번뇌에 사로잡혔을 때 참을 수 없는 슬픔을 나타내던 한 표현법이다. 한편 그 밖에도 고대 근동인들은 금식, 굵은 베옷을 입는 것, 허리에 굵은 베를 띠는 것 따위에 의해 자신의 슬픔을 표현하곤 하였다(창 37:34;삼상 31:13;왕상 21:27;시 35:13). 그러나 본절에 나오는 이 사람의 행위는 다음에 이어지는 그의 위증에 비추어볼 때(5-10절) 전적으로 거짓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윗에게...엎드려 절하매 - 이는 곧 다윗을 자신의 주로 인정하는 경외와 복종의 자세이다. 즉 이는 이제 죽은 사울에 이어 이스라엘의 차기 왕위에 오를 자가 곧 다윗임을 인정하는 행위에 다름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땅에 두 활과 무릎이 닿을 정도로 부복하는 행위는 당시 백성들이 자신의 군주나 지도자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하던 자세이기 때문이다(14:4;19:18;창 42:6;삼상 24:8;왕상 18:7;왕하 2:15).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도 인간적으로 씁쓸한 감정을 떨칠 수 없다. 왜냐하면 얼마 전까지도 사울 휘하에서 충성을 다하던 자가 사울이 죽자(1절) 얼른 다윗에게로 도망쳐 와 이처럼 새로운 충성을 표하니 그의 약삭빠름과 간특(奸慝)함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3절 바요메르 로 다비드 에 미제 타보 바요메르 엘라이브 미마하네 이스라엘 니믈라테티
=====1:3
이스라엘 진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 이와 같은 보고를 올리고 있는 이 아말렉 사람은 아마도 이스라엘 군대에 고용된 용병(傭兵)이었을 것이다(8,13절). 그러기에 그는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패하고 사울마저 위기에 처하자(4-10절;삼상 31:1-6) 진영을 이탈, 잽싸게 도망쳐 나왔을 것이다.
4절 바요메르 엘라이브 다비드 메 하야 하다바르 하게드 나 리 바요메르 아쎄르 나스 하암 민 하밀하마 베감 하르베 나팔 민 하암 바야무투 베감 솨울 비호나탄 베노 메투
=====1:4
일이 어떻게 되었느뇨 - 아말렉 사람의 보고에 대하여 다윗이 좀 더 구체적인 전황(戰況)을 묻고 있는 장면이다. 즉 다윗은 이스라엘군이 어떠한 지경에까지 이르렀기에 아말렉 용병이 다 도망쳐 나올 정도였는지 무척 궁금해한 것이다(Keil & Delitzsch). 한편 이 같은 다윗의 물음은 과거 아벡 전투의 결과에 대하여 엘리 제사장이 초조한 심정으로 묻던 질문과 꼭 같다(삼상 4:16). 더군다나 이 두 경우 모두 1) 이스라엘의 대전국(對戰國)이 블레셋이며 2) 이스라엘군이 참패를 당한 점 3) 그리고 그 결과 이스라엘에 새로운 지도자가 출현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처럼 과거 아벡 전투 결과, 엘리에서 사무엘로 통치권의 전황이 이루어졌듯(삼상 4, 7장) 이제 길보아 전투(삼상 31장) 결과, 사울에서 다윗에게로 통치권이 전환되게 된 사실(2:1-4)은 배후에서 역동적(dynamic)으로 인간의 역사를 주장하시며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새삼 느끼게 해 준다. 즉 비록 인간의 역사는 실패로 끝나는 것 같으나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 가운데서 당신의 뜻과 계획을 한 치의 차질도 없이 성취시켜 나가고 계시는 것이다.
군사가...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도 죽었나이다 - 이미 삼상 31:1-7에서 자세히 언급된 상황이다. 이 같은 이스라엘의 대패(大敗)는 하나님께서 범죄 한 사울에게 주셨던 예언(삼상 13:14;15:23,26,28;28:19)의 성취라는 의의를 지닌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5절 바요메르 다비드 엘 하나아르 하마기드 로 에크 야다에타 키 메트 솨울 비호나탄 베노
=====1:5
사울과...죽은 줄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 - 사울과 요나단이 전사하였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은 다윗의 심정이 역설적으로 드러나있는 반문이다. 즉 다윗은 아말렉 사람에게 "네가 직접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목격하기라도 했단 말이냐? 어찌 감히 네가 함부로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다고 하느냐?"는 의미로 다그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다윗의 위대한 신앙 인격을 엿볼 수 있다. 즉 그는 지금껏 자신을 박해하던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선 안도의 한숨을 쉬기는커녕 오히려 이스라엘의 지도자와 그 아들 요나단이 전사한 데 대하여 충격과 당혹감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6절 바요메르 하나아르 하마기드 로 니케로 니케레티 베하르 하길보아 베힌네 솨울 니쉐안 알 하니토 베힌네 하레케브 우바알레 하파리쉼 히데비쿠후
=====1:6
소년 - 이에 해당하는 '나아르'는 유년기에서 청년기에 이르기까지의 소년, 소녀, 청년, 처녀 모두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용병(mercenary)으로 전투에 참여한 점으로 보아 여기서는 20세 전후의 청년을 가리키는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기에 공동번역 및 대부분의 영역본(KJV, NIV, RSV)들은 이를 '젊은이'(young man)로 번역하고 있다.
내가 우연히...올라 보니 - 아말렉 소년의 거짓말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고 있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사무엘상 마지막 장에 의하면 사울의 죽음을 목격한 자는 그의 '병기 든 자'로서 처음부터 사울과 함께 길보아 전투에 참여했던 것으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삼상 31:1-6).
길보아산 - 이스르엘 골짜기(the valley of Jezreel)에 위치한 해발 497m의 석회암 구릉이다. 삼상 31:1 주석 참조.
사울이 자기 창을 의지하였고 - 혹자(Clericus)는 이를 사울이 창을 사용, 자살을 시도하려 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의지하다'에 해당하는 '솨안'은 '기대다', '쉬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는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극도로 지친 사울이 땅에 꽂힌 자신의 창을 의지한 채 힘들게 겨우 서 있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봄이 낫다(Lange). 이는 당시 역경 중에 처해 있던 사울의 비참한 지경을 여실히 증거해 준다.
병거와 기병은 저를...따르는데 - 다시 한번 아말렉 소년의 거짓말이 드러나고 있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병거(chariots)는 평지에서나 사용 가능한 도구이지 산에서는 그 사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스라엘군이 블레셋 군을 피해 길보아 산으로 도망친 이유도저들이 병거를 타고서 추격해 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삼상 31:1). 그러자 그때 블레셋 군은 병거나 기병 대신 '활 쏘는 자들'을 동원 이스라엘군을 추격했었다(삼상 31:3).
7절 바이펜 아하라이브 바이르에니 바이크라 엘라이 바오마르 힌네니
8절 바요메르 리 미 아타 바요메르 엘라이브 아말레키 아노키
=====1:7,8
나는 아말렉 사람이니이다 - 사울의 죽음과 관련된 아말렉 소년의 보고(6-10절)가 완전히 날조된 거짓 보고임을 드러내 주는 결정적 단서이다. 왜냐하면 할례 받지 못한 자들에 의해 죽임 당할 것을 두려워했던 사울(삼상 31:4)이 스스로의 신분을 '아말렉 사람'이라고 밝힌 소년에게 자기를 죽여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9절)은 논리적 모순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9절 바요메르 엘라이 아마드 나 알라이 우모트테니 키 아하자니 하솨바츠 키 콜 오드 나페쉬 비
=====1:9
내가 고통에 들었나니 - 직역하면 '고통이 나를 붙잡았다'는 뜻이다. 여기서 '고통'에 해당하는 '솨바츠'는 간혹 경련, 어지러움증, 현기증 따위를 의미하기도 한다(De Wette, Hesenius, Lange, Wycliffe, Pulpit Commentary). 그러나 전후 문맥을 보아 여기서는 뒤쫓아오는 적들을 도저히 피할 수 없다고 느낀 데서 온 '공포'나 '두려움'을 가리키는 듯하다(Matthew Henry). 이처럼 심령의 평안을 잃어버리고 죽음의 공포나 인간적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일반적 현상이다.
10절 바에에모드 알라이브 바아모트테후 키 야다에티 키 로 이흐예 아하레 니펠로 바에카흐 하네제르 아쎄르 알 로쇼 베에츠아다 아쎄르 알 제로오 바아비엠 엘 아도니 헨나
=====1:10
엎드러진 후에는 - 여기서 '엎드러지다'는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분명치 않다. 이에 해당하는 원어 '나팔'은 '쓰러지다'는 뜻이다. 따라서 혹자는 이를 사울이 창에 엎드리어 자살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주장하기도 한다(Matthew Henry). 그러나 대개의 학자들은 이를 사울이 블레셋에게 '패배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Lange, Keil & Delitzsch, Pulpit Commentary).
그 곁에 서서 죽이고 - 이처럼 아말렉 소년은 자신이 사울의 부탁을 받고서 사울을 죽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삼상 31: 3, 4에는 사울이 블레셋 군이 쏜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자 절망하여 자살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면 이같은 차이점에 대하여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에 대하여 학자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1) 성경은 성령의 영감(靈感)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여러 자료들을 모아 편집한 것이기 때문에 편집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라는 견해(Ewald). 2) 사무엘 상. 하의 저자가 동일인이 아니기 때문에 생긴 차이점이라는 견해(Wordsworth). 3) 아말렉 소년이 다윗으로부터 상급을 받기 위해 사울이 자결한 사실을 숨긴 채 거짓 증거 했기 때문에 생긴 차이점이라는 견해(Lange) 등이다. 이 중 첫 번째 견해는 성경 영감설 자체를 부인하는 자유주의적 견해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리고 두 번째 견해는 사무엘상. 하의 저자가 비록 다르다 할지라도 동일한 사실에 대해서는 그 내용을 서로 달리 진술할 수 없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세 번째 견해는 지금껏 우리가 살펴온 바와 일치 한다. 즉 사울의 죽음에 관한 아말렉 소년의 보고는 처음부터 거짓으로 일관된 위증(僞證)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많은 학자들도 세번째 견해를 지지하고 있다(Brown, Fausset, Jamieson, Rust, R.H.Pfeiffer).
면류관 - 원어 '네제르'는 일반적으로 '왕관'(crown)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블레셋과의 전투에 나선 사울이 이러한 왕관을 착용했을 리는 만무하다. 아마 이는 사울의 투구에 둘러 쳐져 있던 좁다란 금띠로서 왕권을 상징하던 것인 듯하다.
팔에 있는 고리 - 사울이 팔에 차고 있던 고리는 고대 근동의 군지휘관들이 흔히 지니고 있던 장신구 중의 하나이다(민 31:50). 오늘날 발굴된 앗수르의 조각물들에도 보면 손목과 팔에 고리를 찬 병사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Lavard, Wycliffe).
[히브리어로 보는 사무엘상] 나실인으로 구별된 사무엘(삼상 1: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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