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갈라디아서 2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안디옥 회식 사건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했습니다. 그 이유가 베드로가 이방인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데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자들이 온다는 말을 듣고 베드로가 식사를 마치지도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할례자들이 두려워 떠났습니다. 바울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이방인과 식사를 마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책망했습니다. 베드로가 아직도 율법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복음으로 구원받았다고 하면서도 율법주의 신앙에 빠져 있을 때가 있습니다. 오직 복음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안디옥 회식 사건(갈 2:11-21)
지난번에 함께 은혜를 나누었던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리게 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안디옥 회식 사건이다. 오늘날 우리 민중교회들이 예배 후 아직 미약하나마 공동식사를 나누는 이유는 박해받는 교회였던 초대교회가 이러한 공동식사를 통해 인간관계를 깊게 다지고 식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나눔을 방해하는 이 세상의 모든 마귀의 세력과 맞서서 잘 싸워나갔던 모습이 있었기에 이러한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는 의미에서 공동식사나마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초대교회는 어디나 이러한 공동식사가 의례히 있었다. 더욱이 분명한 자기 거처가 없을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이 마음대로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식사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가슴 부푼 일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이들에게는 교회에서의 식사야말로 1주일 중 가장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사람이건 여유가 안 되는 사람이건 자기 능력 안에서 모든 것을 다 내어놓고 공동식사만이 아니라 공동생활까지 했던 모습을 우리는 사도행전 2장에서 보게 된다. 사실 요즘은 공동체 운동을 표방하는 사교가 난리를 치고 있다. 일명 구원파라는 사교가 신자들로부터 재산을 빼앗다시피 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을 종교학자들은 기독교가 공동체 운동을 포기하고 겉 신앙에만 빠져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올바른 공동체 운동은 절실한 시대적인 하나님의 요청이다.
안디옥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와는 달리 이방인들이 신앙을 고백하고 밥상 공동체에 합류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그래서 유대인들끼리만의 집단적 성격을 뛰어넘은 모습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었다. 율법에 의해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과 함께 공동식사를 통하여 성도의 교제를 나누고 있었다. 예루살렘 교회의 베드로가 무슨 연유로 안디옥교회에 가게 되었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지만 아무튼 안디옥교회 공동식사에 자연스럽게 같이 참여하게 되었다. 사실상 이 사건은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예루살렘 공의회 이전에 있었던 일이고, 예루살렘 공의회 이후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세운 교회가 갈라디아 교회이기 때문에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향해 쓴 갈라디아서에 이 사건이 기록된 것은 바울이 지난 일을 회상하며 쓴 기록이라는 점을 먼저 이해해야 할 것 같다.
공동식사는 늘 있던 일이겠지만 이 늘상적인 일이 베드로가 참여한 상황만 다르다고 해서 크게 다른 것은 없겠지만 이것이 사건으로 성서에 기록되었던 것은 뭔가 다른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요지는 이렇다. 안디옥교회에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베드로가 식사를 하고 있는 동안에 베드로뿐 아니라 바울이나 바나바와 같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동석을 하고 있었던 차에 그 자리에 갑자기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인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 몇 명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미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면 형식화된 율법을 거부하는 신앙이 있었을 것이라는 우리의 짐작과는 달리 율법에 위배되는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과 함께 식사 교제를 나누는 것에 대한 거리낌이 있었던 나머지 베드로가 얼른 식사를 중지하고 마치 그들과 식사를 함께 하지 않았던 것처럼 일어나버렸다.
그러자 바나바와 다른 유대인들이 베드로와 같이 따라서 일어났다. 여기에 대해서 바울은 그들의 행동이 복음의 진리에 어긋난다고 질책하는 내용이다. 갈릴리 민중과 함께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하다 잡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의 복음의 진리는 율법 조항에 의한 할례 받은 유대인이어야만 신자로서 가능하다는 문제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임에도 그들에게 남아있는 종교적인 관례 때문에 이런 행동이 나오게 된 데 대해 바울은 이방인을 유대인 되게 강요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베드로를 위시한 유다 그리스도인들 몇 사람들에 의해서 노골적으로 무시당한 결과이며 공동체를 깨뜨리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그러기에 바울은 체면을 깎인 이방 그리스도인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의미에서 강력하게 규탄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한 교회의 내적 문제나 또는 베드로라는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성서에 기록될 이유가 없었다. 가난하고 억압받는 소외된 사람들이 누름과 눌림이 없고, 착취와 착취당함이 없는, 서로가 서로를 위한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 건설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작은 불꽃들이 되어 예루살렘 지배자들의 가혹한 탄압을 피해 뿔뿔이 흩어져 팔레스틴 곳곳에, 아니 이방 지역에 이르기까지 확산되어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됨으로 인해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데 본문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먼저 유다인이 되어야 한다는 보수파 유다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이방 교회들은 많은 혼란을 겪게 된 것을 드러내 주고 있다.
분명히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했던 이유와 목표가 어렵고 소외된 민중을 구원하는 데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원초적인 목적을 잃어버린 채 이방인들과 유대인들끼리 패를 갈라 구원의 여부나, 선택 받음의 여부, 정통성의 여부 같은 것을 따지는 사변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의 진리대로 예수께서 몸소 보여주신 대로 살아가는 것만이 의미가 있다고 본문에서 역설하고 있다. 사람이 태어날 때 이방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죄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복음의 진리 안에서 사는 데에는 유다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의 차별이 없는 것이다. 인간을 또다시 제도에 의해 노예화시키고 공동체 안에서 누리는 그리스도의 자유를 막는 행위에 바울은 굴복할 수 없었다.
바울은 안으로는 예루살렘 교회의 보수파 유다 그리스도인들과 싸워야 하고 밖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탄압하는 로마 제국주의와 그 하수인격인 유다 지배자들과 싸워야만 되었다. 우리가 교회 갱신운동을 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중적인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이다. 내적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떨어뜨리는 보수적인 신앙인들을 변화시켜야 하고, 이 세상의 하나님에게 창조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모든 인간을 괴롭히고 죄인 취급하는 세력들을 회개시켜야 한다. 바울의 열정이 유다인과 이방인 사이의 담을 무너뜨리려는 데서 비롯되었고 이 벽을 허물었기 때문에 세계를 향해 선교의 장을 넓혀나갈 수 있었듯이 또한 우리의 작은 공동체 안에서도 보이던 보이지 않든 간에 남아있는 약간의 갭과 벽들을 허물지 아니하면 올바른 공동체를 넓혀 갈 수도 없고 복음의 진리에 합당하지도 않을 것이다.
본문의 사건을 공동식사 사건이라 하지 않고 회식이라 이름 붙이는 이유는 바로 진정한 공동체가 형성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말로는 공동체를 부르짖지만 우리에게 남아있는 벽을 완전히 허물고 하나 되기 전에는 감히 공동체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 우리 사이의 작은 벽을 넘지 못하는데 그 기나긴 세월 동안 막혀있던 휴전선을 어떻게 허물 것이며 수천 년 역사를 가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벽을 어떻게 허물수가 있겠는가? 이제 올해 하반기를 시작하면서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새롭게 출발함으로써 선교의 폭을 넓혀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 바란다.
[예레미야 4장 성경말씀] 너희 묵은 땅을 갈라(렘 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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