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이 말씀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또는 가라사대라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어로는 다바르라는 단어가 있고 아마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셔서 순종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에덴동산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열매는 임의대로 먹어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모든 인류가 죽었습니다. 원죄와 자 범죄가 이때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 하나님 말씀이 무엇인가요?
<1> 어휘
이 표제어에 해당하느 히브리어는 다바르이다. 그런데, 이것은 또한 '주제'를 의미하기도 하며(삿 3:20 참조; 한글 개역 성경에는 '명'으로 나와 있음=역자 주). 행동이나 행위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때로는 열왕기상 11:41의 경우와 같이 어느 것을 의미하는지 결정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한글 개역 성경에는 '사적, 행적'-'행장'이란 말속에-으로 번역되었음=역자 주)
70인역에서 다바르는 보통 로고스나 레마로 번역되었다. 이것이 신약성경에 전해져서, 신약성경에서는 로고스가 300회 이상, 레마가 70회 이상 나온다. 이 두 단어는 언제나 구분하기가 용이하지만은 않다. 물론 레마가 특히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다바르의 한 의미인 행위와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
<2> 생동적인 말씀
다바르란 말씀에는 말과 행동이라는 대조적인 의미가 들어 있는데, 이것은 이 히브리어가 포괄적인 개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즉 말이 악한 것은 그 행실이 악하다는 것과 똑같다. 엄숙하게 한 말은 잠제적인 힘을 가지고 있고, 취소될 수 없다(창 27장 전체의 줄거리 참조). 이 점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원형적(原形的)인 표현이었음에도 불구하고(예, 시 8:3), 이 생동적인 말씀이 창조의 수단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시 33:6 참조). 이와 같은 사실은 그리스도인이 필수적으로 이해해야 할 사항이다(히 11:3).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눈과 비가 그 효과를 달성하듯이 그 목적한 바를 틀림없이 이룬다(사 55:10-12). 예수님의 기적적인 탄생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성취적인 것(self-fulfilling)이기 때문에 확실하다(눅 1:37 ASV-이것은 이상의 기적적인 출생에 대해 기록된 창 18:14의 70인 역이 반영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성취하심으로써 "자신의 말을 이행하신다". (신 9:5)
<3> 계시로서의 말씀
이 계시로서의 말씀을 통해서 다바르란 단어가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 배경이 설명되어진다. 즉, 여호와의 말씀은 사무엘이 부름을 받을 때까지는 아직 그에게 계시된 적이 없었다(삼상 3:7). 그런데 이 계시의 말씀이 선지자에게 "임했다"(렘 1:2, 4과 여러 곳). 그리고 이 계시의 말씀이 예레미야 선지자에게는 환상으로 보이기도 했다(렘 38:21). 그러나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해서 자비를 베푸거나 심판하시는 행위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예레미야는 자기 백성들에게 당시의 슬픈 사건들을 보고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메시지를 듣고서 여호와의 말씀을 '보도록'(깨닫도록) 간청하고 있다(렘 2:31). 선지자들이 "이 말씀을 들으라"라고 외칠 때(예, 암 4:1, 5:1), 그들은 역사적으로 반드시 성취될 계시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 말씀은 하늘에 굳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시 119:89). 언약을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계시적인 말씀에 인도를 받는다(시 119:105, 130등). 구약성경에서 다바르는 약 400회 나오며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성경을 통틀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표현하셨다(마15:6). 이와 마찬가지로 신약성경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골 3:16 참조). 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란 말은 그리스도 자신에게 대해서도 적용되었다(요 1:1, 14). 즉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인격적인 계시의 말씀이시다('로고스' 항목 참조). 하나님께서는 구약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셨으며,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전하게 말씀하셨다(히 1:1). 이처럼 구약이나 그리스도 자신도 하나님의 말씀인 계명들을 지키셨다(요 8:55).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지 않다(요 5:38).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의 말씀을 가짐으로써 구별된다(요 15:7). 그리고 이러한 생동적인 말씀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주장을 버리고 그리스도께 헌신케 만든다. (히 4:13)
<4> 복음으로서의 말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은 구원에 관한 말씀이며, 그 자체가 구원을 이루는 말씀이다. 이사야 55:10이하의 말씀은 회개자의 용서에 대한 말씀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이 구원의 말씀은 의인화(擬人化)되기도 했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치료하기 위해서 보낸 말씀이라고 언급되기도 했다(시 107:20). 영원히 존재하는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복음'으로 불리고 있다(벧전 1:25). 이 말씀은 아직도 스스로 성취하시는(自完成的인) 말씀이시다. 왜냐하면 동일한 대목에서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났다고 언급되었기 때문이다(벧전 1:23; 참조, 약 1:18).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깨끗해진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메시지는 하나님의 말씀이다(눅 5:1). 또한 사도들과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전파한 예수님을 주제로 한 메시지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다(행 4:29와 여러 곳). 이것은 '천국 말씀'(마 13:19)이나 '십자가의 도'(고전 1:18)와 같은 특징적인 기사들에 의해서 상세히 설명되고 있다.
<5> 성경으로서의 말씀
시편 119편은 기록된 계시를 전제하고 있는데 시편 기자는 이것을 '율법, 계명, 율례, 법도'로-혹은 '하나님의 말씀'(105절)이나 그냥 '말씀'(130절)으로 묘사했다.
우리 주님도 이러한 용법을 사용하셨는데,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유전을 구별하셨으며(마15:16), 원래의 계시와 기록된 말씀을 서로 관련시키셨다. (요 10:35). 또한 바울은 구약성경의 교훈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으며(롬 9:6 이하), 그 개개의 구절들을 '말씀'이라고 했다(롬 13:9; 갈 5:14). 그리고 난해한 디모데전서 4:5는 아마도 '성경적인 기도'(또 다른 하나의 생동적인 말씀)를 가리킨 것 같다. (한글개역 성경에는 '말씀과 기도'로 되어 있음=역자 주)
이처럼 말씀은 성경에는 몇 가지 형태로 사용되었으나, 모두 아주 일관성있게 나타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자신의 뜻을 인간에게 계시(전달)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이시다. 복음과 성경의 교리와 그리스도의 말씀(설교)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모든 경우에 말씀은 생동적(창조적)이고, 인간을 구원하며, 심판하는 것이다.
<6> 말씀과 성령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계적 견해'나 '마술적 견해'를 의미하지 않는다. 올바른 견해에 대한 열쇠는 말씀과 성령이 공존(共存)한다는 데 있다. 구약 시대 선지자들과 신약 시대 사도들의 계시는 언제나 성령님과 연관되어 있다(엡 3:5). 성령께 대해 기술된 기능들은 말씀에 대해서도 역시 기술되었다(요 16:8, 9과 히 4:12, 13을 비교; 요 14:16과 롬 15:4를 비교; 요 5:39와 요 15:26을 비교). 이러한 몇 가지 경우에 있어서는 말씀이 분명히 성경을 가리키고 있으나, 그 밖의 곳에서는 일반적인 '말, 말씀'을 가리킨다.
종교 개혁가들은 이상과 같은 내용을 확신한 나머지 자기들의 주장을 성경에 호소했었다. 즉 그들은 올바로 이해된 성경 본문에 자기들의 주장을 호소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말씀 자체에는 그 말씀을 믿음과 회개를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의 조명(照明)하심이 내재되어 있음을 인정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께서 성경속에서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살아서 역사하고 있다. 선지자들이나 에수님이나 사도들이 전파한 말씀처럼, 글로 기록된 성경 말씀도 "듣는(읽는) 자가 믿음을 화합할 때" 효과를 발휘하게(유익을 끼치게) 된다. (히 4: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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