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디모데전서 2장에서 중보기도의 필요성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도 성도를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 기도했습니다. 항상 기도하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도 성도들을 위하여 중보 기도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우리도 성도를 위해서 중보기도 해야 합니다. 아직 신앙과 믿음이 자라지 못한 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중보기도의 필요성(딤전 2:1-7)
1절 파라칼로 운 프로톤 판톤 포이에이스다이 데에세이스 프로슈카스 엔테윅세이스 유카리스티아스 휘페르 판톤 안드로폰
=====2:1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 '첫째로'는 시간적인 우선보다는 중요성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바울이 첫 번째 중요한 사항으로 말하는 것은 기도에 어떤 사람을 포함시킬 것인가에 대한 것으로 본절에서 바울은 기도의 대상을 '모든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다. 혹자는 '모든 사람'을 '모든 죄인들과 성도들을 포함하는 범세계적인 사람'으로 규정하지만 이것은 타당하지 않다. 오히려 본절의 '모든 사람'은 문자적인 의미보다는 '인종이나 국적이나 사회적 지위의 구별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것은 기도의 대상을 생각함에 있어 인간의 관습과 제도를 초월해야 함을 시사한다. 한편 본절에 나오는 네 개의 기도에 대한 명사인 '간구', '기도', '도고', '감사'가 각기 뚜렷한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 아니면 단순한 동의어로서 반복 사용되었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혹자는 이 네 단어의 의미를 따로 이 규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네 단어들이 열거된 것은 단순히 무의미한 반복만은 아니다. 그 단어들을 원어상으로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간구'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에세이스'는 '긴박한 상황에서의 어떤 특별한 성취를 위한 탄원'을 의미한다. 둘째, '기도'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슈카스'는 일반적인 의미로 '하나님을 향한 모든 경건한 아룀'을 뜻한다. 셋째 '도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튜크세이스'는 신약성경에서 딤전 4:5과 본절에서만 언급되는 단어로 '접근', '인터뷰', '사회적 교제'등의 개념으로 사용되었으나 본절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간구하는 '중보 기도'를 가리킨다. 넷째, '감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카리스티아스'는 과거의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뜻한다.
2절 휘페르 바실레온 카이 판톤 톤 엔 휘페로케 온톤 히나 에레몬 카이 헤쉬키온 비온 디아고멘 엔 파세 유세베이아 카이 세므노테티
=====2: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 본절은 기도의 대상으로 특별히 권세자들을 포함할 것을 지시한다. '임금들'은 당시에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였던 네로 황제뿐만 아니라 지위가 낮은 분봉왕들도 포함한다. 그러나 '임금들'을 당시의 황제와 왕들에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오히려 본절의 명령은 모든 세대와 모든 지역을 초월하여 적용되는 명령이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생존을 위하여 권세자들을 두시고 그들을 주관하시기 때문에(롬 13:1) 그들이 아무리 합당치 못한 통치를 한다 하더라도 그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야만 한다. 당시에 로마 제국을 지배하던 네로가 기독교를 극심하게 핍박한 사실을 염두에 둘 때 바울의 명령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 권세자들을 위한 기도는 나라의 안녕과 사회 질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정부와 사회가 평안한 상태로 나아갈 때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의 안정된 신앙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다.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은 외적 장애인 전쟁이 없고, 내적 장애인 근심이 없는 생활을 말한다. 그리고 '경건‘과 '단정'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심과 고상한 품성 및 도덕적인 덕행을 의미한다. 이상에서 언급한 신앙생활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은 통치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 기도를 해야 한다. 이는 단지 위정자들과 국가 지도자들에게 밀착되어서 자신들의 이권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질서와 안녕의 축복이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
3절 투토 가르 칼론 카이 아포데크톤 엔오피온 투 소테로스 헤몬 데우
=====2: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 권세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 일임을 말한다. '받으실 만한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데크톤은 본절과 5:4에만 나오는 단어로 '기쁘게 받아들이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아포데코마이의 형용사형이다. 모든 사람을 위한 선한 기도는 하나님 앞에 상달되며 그것은 하나님께서 흔쾌히 응답하여 주신다(요일 5:14).
4절 호스 판타스 안드로푸스 델레이 소데나이 카이 에이스 에피그노신 알레데이아스 엘데인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 본 구절은 17세기 칼빈주의자들과 알미니안 주의자들 사이에 일어났던 논쟁의 주요 쟁점이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본절을 두고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보편 구원설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알미니안주의자들의 보편 구원론적 해석은 타당치 않다. 구원은 모든 사람을 위해 예비되었지만 그 구원을 받아들이는 사람만 구원을 얻는다. 그래서 칼빈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예정한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사실은 '구원을 받으며'의 헬라어 '소데나이'가 수동형으로서 구원의 주체는 오직 '우리 구주 하나님'이시며 인간은 하나님의 구원 의지를 받아들일 때 구원을 얻는다는 점을 시사한다는 것에서 지지를 받는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본절을 통해 어떤 계층이나 종족의 특성 때문에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지는 않음을 말하는 것이지 개별적으로 모든 인간이 구원 받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진리에 대한 지식은 구원의 뿌리요, 열매이다. 이러한 지식은 인간의 자의적인 노력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획득된다(마 16:17; 딤후 2:25).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겔 33:11)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하심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
5절 헤이스 가르 데오스 헤이스 카이 메시테스 데우 카이 안드로폰 안드로포스 크리스토스 이에수스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 바울이 이처럼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만이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이며, 진정으로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분임을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이러한 사실은 개역성경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헬라어 본문에 나오는 접속사 '가르'('왜냐하면')가 앞절 내용에 대한 이유나 근거를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해진다. 또한 '가르'는 하나님께 드리는 선하고 받으실 만한 기도(1-3절)가 구원의 소망을 확고히 해준다는 점을 나타낸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 '중보'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시테스'는 원래 '화친이나 계약을 맺기 위해 두 사람 사이를 중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인간의 죄로 인해 깨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이다. 바울 사도는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바울이 '사람이신'이라는 말을 부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인성을 소유하심으로써 인간의 구원을 성취하셨음을 나타낸다. 이것은 결코 그리스도의 신격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구원주를 하늘 저편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계시사 우리의 친구 되신 예수(요 15:13, 14)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는다.
6절 호 두스 헤아우톤 안틸뤼트론 휘페르 판톤 토 마르튀리온 카이로이스 이디오이스
=====2: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 바울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의 속전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을 들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 얻기를 바라신다는 사실의 당위성을 설명한다. '속전'의 헬라어 '안틸뤼트론'은 신약성경에서 이곳에만 나오는 단어로 노예나 죄수의 '몸값'을 나타내는 '뤼트론'과 '대신'을 뜻하는 헬라어 '안티'가 합성된 말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몸값으로 우리를 죄로부터 해방시키셨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지만, 그의 속전을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죄의 멍에로부터 풀려나게 된다(롬 10:10-13).
기약이 이르면 증거 할 것이다 - 본 구절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된다. (1) 그리스도의 구속은 기회가 있는 대로 우리가 증거 해야 하는 사실이다. (2) 그리스도의 구속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이르러 일어났다. 본 구절의 '기약이 이르면'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로이스 이디오디스'가 문자적으로 '그 자신의 때에'를 뜻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때 두 번째 견해가 타당하다.
7절 에이스 호 에테덴 에고 케뤽스 카이 아포스톨로스 알레데이안 레고 엔 크리스토 우 프슈도마이 디다스칼로스 에드논 엔 피스테이 카이 알레데이아
=====2:7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 '이를 위하여'라 함은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친히 자신을 속전으로 내어주신 것을 증거 하기 위하여'라는 의미이다(6절). '전파하는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케뤽스'는 원래 '임금, 군주, 행정 장관, 총독, 군대 장관 등의 공식 통신문을 배달하거나, 공공문서를 전달하고 기타 여러 가지 의무를 이행하는 배달인 또는 사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신약성경에서는 이 용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선포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또한 '사도'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스톨로스'는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종'을 가리킨다. 바울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파하는 사명을 받았고 이 일을 위하여 그의 생애를 바쳤다(행 9:15 ; 20:24).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 바울이 복음 선포에 대한 그의 직무의 진정성을 이처럼 강력하게 밝히는 것은 1:3, 19, 20에서 시사되듯이 에베소 교인들 중에 유대주의 거짓 교사들이 그의 사도적 권위에 도전하고 있었음을 반영한다.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 바울이 '믿음과 진리 안에서 이방인의 스승이 된 것'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과 동격을 이룬다. 특별히 바울의 사도직이 많은 도전을 받은 이유는 사도란 예수의 공생애 기간 중 그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하고 그 본 것을 전파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사도 직분이 '믿음과 진리 안에서' 된 것임을 강조하여 에베소 교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권위나 디모데의 권위에 대한 의심을 불식시키고자 한다. 실제로 바울은 헬라 학문의 3대 중심지(알렉산드리아, 아테네, 다소) 중의 하나였던 다소에서 출생하여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빌 3:5) 엄격한 바리새인으로 양육과 교육을 받았고 이러한 적절한 배경 하에서 주 예수로부터 이방인을 위한 사도의 사명을 받은 자였다(행 26:15-18).
[데살로니가후서 헬라어 성경 좋은 말씀] 종말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살후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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