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2장에는 마지막 종말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게 만드는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성도를 미혹하게 됩니다. 바울은 이런 적그리스도의 거짓 복음에 미혹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전에는 주님의 재림이 없다고 말합니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올 때 적그리스도가 출현하게 됩니다. 지금도 거짓 이단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이런 이단들이 말하는 거짓 복음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항상 십자가 복음에 가까이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종말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살후 2:1-8)
1절 에로토멘 데 휘마스 아델포이 휘페르 테스 파루시아스 투 퀴리우 헤몬 이에수 크리스투 카이 헤몬 에피쉬나고게스 에프 아우톤
=====2: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 - '강림하심'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파루시아스'로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단어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는 두 가지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1) 혹자는 재림이 환난 후에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Morris). (2) 혹자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심으로 환난과 주의 날이 동시에 시작될 것이라고 주장한다(Thomas). 즉 성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심으로 환난을 받지 않고 '안식'을 누리며(1:7),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얻게 되리라(1:10)는 것이다. 그런데 본장 전체의 내용은 전자의 견해와 같이 환난 후에예수의 재림이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묘사는 마 24장에 언급된 종말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과 일치된다. 따라서 첫 번째 견해를 취하는 것이 무난하다.
우리가 그 앞의 모임에 관하여 - 예수의 재림 때 성도들이 그를 영접하기 위해 그분 앞에 모이는 사건(살전 4:17) 곧 '휴거'를 가리킨다. '모임'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에피쉬나고게스'로 신약성경에서 보통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 (1) 동사형으로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선택자들을 모으는 것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마 24:31;막 13:27). (2) 명사형으로 신자들이 예배드리기 위해 모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히 10:25). 그런데 여기서는 종말 사건과 연관되어 사용되고 있으므로 이 단어는 성도들이 변화되어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는 기쁨을 맛보며 동시에 영원히 함께 생활하게 될 것을 의미한다(Morris).
2절 에이스 토 메 타케오스 살류데나이 휘마스 아포 투 노오스 메테 드로에이스다이 메테 디아 프뉴마토스 메테 디아 로구 메테 디 에피스톨레스 호스 디 헤몬 호스 호티 에네스테켄 헤 헤메라 투 크리스투
=====2:2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 바울에게서 나온 것처럼 보이는 가르침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데살로니가 교인에게 전달되었던 것 같다(Thomas). 그 경로 중의 첫 번째는 예언이라는 영적 은사와 관련된 초자연적 계시에 의한 것이었다. 예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지지받고 있었고(살전 5:19,20) 주의 말씀으로 인정되기도 하였다(Bruce). 또한 그 경로 중 두 번째는 '말'이었다.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로구'는 여기서 어떤 사람들을 통해 전달된 내용이나 교훈을 가리킨다. 그래서 영역 성경 중 NIV는 '전언'(report)으로 번역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마치 바울과 직접 대화한 것처럼 하여 그 내용을 전하려 했음을 암시한다(Lightfoot). 즉 어떤 이들이 직접 바울의 입으로부터 나온 '재림'에 대한 말을 들었다는 소문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 경로 중의 세 번째는 '편지'(에피스톨레스)였다. 즉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의 편지 내용을 잘못 이해했거나 거짓 교사들의 위조 편지를 받고 오해하기도 했을 것이다(Morris).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앞서 열거한 세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에 미혹당했는지 혹은 세 가지 모두에 다 미혹당했는지 알 수 없으나, 어쨌든이 세 가지 모두를 단호히 부정하고 있다(Thomas).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 '이르렀다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네스테켄'('존재하다')은 고대 동사로 임박성(臨迫性)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현존함을 나타내는 말이다(Thomas, Morris). 즉 '주의 날이 벌써 왔다'(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공동번역)는 의미이다. 이는 데살로니가 교인들 가운데 예수의 재림이 이미 임했다고 믿는 자들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잘못된 신앙은 어떤 면에서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는(딤후 2:18) 사상과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사상을 가르치는 자들은 아마 오순절 설령 강림을 예수의 재림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이처럼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주의 날에 대한 자세한 가르침(살전 5:1)을 바울에게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된 주장에 심히 흔들리고 있었다.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거짓 풍문에 흔들리지 말 것을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다. '동심하거나'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 투 노오스'는 문자적으로 배가 안전한 닻에서 떨어져 바람이나 파도에 밀려 요동하는 것처럼 갑작스러운 열광이나 황홀 때문에 균형을 잃은 상태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성급하고 경솔한 행동을 뜻한다. 즉 그들이 갑작스러운 흥분에 사로 잡힐 가능성에 대해 주의시킨 것이다(Morris). 한편 '두려워하거나'로 번역된 헬라어 '메데 드로에이스다이'는 예수께서도 막 13:7에서 사용하셨던 동사로서 무서움에 사로잡힌 상태나 걱정하는 상태를 묘사한다(Morris). 보다 구체적으로 이 동사는 현재 계속되는 동요의 상태를 표현하는 말로서 신경과민에서 비롯되는 흥분상태 즉 갑작스러운 충격을 받은 후에 뒤따라 오는 동요를 의미한다(Milligan). 이처럼 바울은 '주의 날이 이르렀다'는 잘못된 가르침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물리치고 확실한 진리 위에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말 것을 강권(强勸)하고 있다.
3절 메 티스 휘마스 엑사파테세 카타 메데나 트로폰 호티 에안 메 엘데 헤 아포스타시아 프로톤 카이 아포칼뤼프데 호 안드로포스 테스 하마르티아스 호 휘오스 테스 아폴레이아스
=====2:3
미혹하지 말라 - 바울은 경고의 범위를 확장시켜서 어떤 종류의 계교(計巧) 귀 기울이지 않아야 할 뿐 아니라 단호히 거부할 것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강권하고 있다. '미혹하지 말라' 원어 '메 여사파테세'는 영이나 말 그리고 편지 등을 통한 거짓된 가르침과 그 외의 어떠한 것에라도 사로잡히는 일은 기만당하는 것임을 시사한다(Morris).
배도하는 일 - 바울은 주의 날이 임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아직 일어나지 않은 두 가지 현상을 인용하여 증명하고 있다. 그중에서 먼저 바울은 배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바울의 진술은 말세의 징조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근거하고 있다(마 24:11, 23, 24). 여기서 '배도'(아포스타시아)는 정치적, 군사적인 반란을 의미하는 말로서(Bruce), 이것은 마지막 날이 이르렀을 때 하나님을 대항하는 악의 세력이 출현할 것을 의미한다(딤전 4:1-3;딤후 3:1-9;4:3,4).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 - 바울은 주의 날에 이르지 아니함을 증명하기 위한 또 다른 한 가지 현상으로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지 아니하였음을 들고 있다. 역사 속에서 사단의 악한 일을 행한 자들이 수없이 많았기 때문에(요일 2:18) 불법의 사람이 누구인지 결정하기는 힘들다. 그러므로 이 인물을 어떤 특정한 인물과 동일시하기보다는 마지막 날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Morris). 특히 '사람'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안드로포스'는 나타날 적그리스도가 사단 자신이 아닌 사단의 일을 수행하는 인간 존재임을 나타내고 있다(Lenski). 또한 바울은 '멸망의 아들'을 '불법의 사람'과 동의어로 언급했는데, 이는 '멸망되기로 예정한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호칭은 예수께서 가룟 유다를 지칭하실 때에도 사용하셨다(요 17:12). 이 말은 '불법의 사람'이 아무리 흉악한 계획과 성도를 괴롭히는 일을 행할지라도 종말에는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나타나기 - 바울은 앞서 주의 재림을 나타낸 동사(1:7)의 헬라어 '아포칼뤼프데'('나타난다')를 여기서 다시 사용하고 있는데, 이 동사에 사용된 부정 과거 시제는 미래적 의미를 나타내는 구절에 사용되어 불법의 사람이 역사의 정해진 시간에 발생할 결정적인 사건과 연관되어 나타나게 될 것임을 보여준다(Constable). 이런 진술을 통해 바울은 주의 날이 이르지 않았다는 것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확신시키고 있다. 왜냐하면 주의 날의 초기 단계를 특징짓는 이 두 가지 뚜렷한 현상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Thomas).
4절 호 안티케이메노스 카이 휘페라이로메노스 에피 판타 레고메논 데온 에 세바스마 호스테 아우톤 에이스 톤 나온 투 데우 호스 데온 카디사이 아포데이크뉜타 헤아우톤 호티 에스틴 데오스
=====2:4
대적하는 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호 안티케이메노스'로'대적자','배반자'라는 의미를 지니며(Robertson), 종종 사단에게 적용되었다(딤전 5:14).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판타 레고메논 데온'은 이방신들뿐만 아니라 참되신 하나님까지도 포함하는 모든 신을 가리킨다(Bruce).
숭배함을 받는 자 - 여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세바스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종교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확실히 알지 못하고 섬기는 대상들을 가리킨다(행 17:23). 본문에 사용된 이러한 용어들은 단 11:36-39에 나오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의 극에 달한 교만과 그의 신격화 행위를 연상케 한다.
하나님 성전에 앉아...하나님이 하느니라 - 적그리스도는 교만이 극에 달하여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 자신을 하나님이라 선언하기 때문에 이에 따라 많은 사람이 미혹될 것이다(마 13:14). 한편 '하나님의 성전'이 '예루살렘 성전'을 지칭하는지 '기독교 교회'를 가리키는지 분명하지 않으나 미래에 다시 세워질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Thomas, 단 9:26, 27;마 24:15;막 13:14). 그리고 바울의 이러한 진술은 일차적으로 로마 황제의 신격화를 염두에 두고 말한 것으로 추정된다(Lightfoot). 실제로 역사상 로마 황제 가이우스 갈리굴라(Caius Caligula)는 예루살렘에 자신을 숭배하게 하기 위한 동상을 건립하려고 필사적인 시도를 감행한 적이 있었다. 신약 성경 요일 2:18의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라는 사도 요한의 진술을 볼 때 당시에 적그리스도의 실제적인 언급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예언의 모든 부분이 완전히 성취되기 위해서는 적그리스도가 극명하게 나타날 미래의 시기까지 기다려야만 한다(Calvin, Thomas). 그때에 적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성전에 앉히는 이교적 행위를 통해 적그리스도 임을 완전하게 드러낼 것이다(Lenski).
5절 우 므네모뉴에테 호티 에티 온 프로스 휘마스 타우타 엘레곤 휘민
=====2:5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 바울의 참을 수 없어하는 어조가 본 구절에 드러나 있다. 그러나 그는 격노(激怒) 하기보다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들과 함께 있을 때 가르쳤던 진리들을 상기시킴으로 그들을 바로 잡으려 하고 있다(Calvin). 데살로니가 교회에 일어난 문제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바울이 이미 데살로니가에 있었을 때 가르치고 경고하였던 것들이다. 이러한 사실은 '말한 것'(엘레곤)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즉 이 동사는 미완료 과거의 시제로 바울이 그런 사실에 대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계속 언급했음을 암시한다. 그래서 공동 번역은 본 구절을 '내가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종종 말하곤 했다'(I used to tell you these things)라고 번역했다. 또한 이 동사의 시제는 만일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바울이 가르쳤던 내용을 다시 생각했더라면 그 같은 거짓 풍문에 미혹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Thomas). 이와 같이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자신이 과거에 가르쳤던 것들을 기억하여 깨닫기를 소원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데살로니가 교회의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결책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직 그들은 바울이 가르친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참된 진리를 옳게 분별하고 거짓 가르침을 경계할 수 있었다.
6절 카이 뉜 토 카테콘 오이다테 에이스 토 아포칼뤼프데나이 아우톤 엔 토 헤아우투 카이로
=====2:6
저의 때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엔토 헤아우투 카이로'로 직역하면 '저 자신의 때에'란 의미이며 '적당한 때에'(at the proper time, NIV)라고 의역할 수 있다.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불법의 사람을 정하신 때에 나타나게 한다는 것이다(Robertson). 즉 하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주 예수의 나타나실 때를 정하신 것처럼(1:7), 불법의 사람이 일어날 때를 정하셨다. 그러나 그날은 미래에 속하기 때문에(2, 3절;살전 5:2) 아무도 알 수가 없다(Thomas).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막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우리는 그가 무엇을 염두에 두고 하였는지 추측할 따름이다. '막는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카테콘'은 본 구절에서는 중성 분사로 언급되었으나 7절에서는 남성 분사로 '막는 자'(호 카테콘)로 언급되었다. '막다'의 뜻은 첫째, '좋은 것을 굳게 붙잡는다'(살전 5:21), 둘째, '억제한다', '방해한다'(몬 13)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본절에서는 후자(後者)의 의미로 쓰였다. '막는 것'이 남성과 중성으로 쓰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해석상의 난점(難点)이 있어왔고 주석가들의 주장이 다양하게 나타났다. 주석가들의 '막는 것'에 대한 주장을 열거해 보면 (1) 로마 제국과 황제(George, Ladd), (2) 로마 정부에 나타났던 법과 통치(Morris), (3) 유대 국가(Warfield), (4) 바울 자신(Cullmann), (5) 어떤 악마적임 힘(Moffatt), (6) 복음(Calvin), (7) 하나님 또는 성령(Strobel, Thomas)등을 들 수 있다. 이 주장들 중 어느 하나로 결정지을 수 없으나 다음의 근거로 (7)의 견해를 취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첫째,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막는 것'은 성령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잘 알려졌었다(Thomas). 그들은 불법의 사람에 대항하기 위해서 성령을 의지했었다.(13절;살전 1:6;4:8;5:19). 그리고 성령은 더욱 선하신 목적을 위해 바울로 하여금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막는 자로 역사하셨던 적이 있었다(행 16:6) 둘째, 절대 주권자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단과 그의 세력까지도 제어하실 능력이 있을 뿐 아니라(욥 1:6-12;2:1-6) 필요에 따라 사단의 세력조차도 유효 적절하게 사용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출 10:1)
7절 토 가르 뮈스테리온 에데 에네르게이타이 테스 아노미아스 모논 호 카테콘 아르티 헤오스 에크 메수 게네타이
=====2:7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 '비밀'에 해당되는 헬라어 '뮈스테리온'은 신약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이전에 감취어졌으나 이제 나타나게 된 하나님의 의도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Bruce). 그런데 본절에서는 '불법'이라는 용어와 함께 사용되었으므로 불법의 사람이 숨어 있다가 은밀히 활동하기 시작한 것과 연관이 있다. 불법의 사람을 활동케 한 주체는 사단이다(Morris). 이 사단의 세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세상에서 활동하고 있지만(렘 23:25-27) '막는 자' 때문에 현재로는 은밀하게 활동하고 있을 뿐이다.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 내에서 성도들을 미혹하는 거짓 교사들도 바로 이러한 세력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불법'의 비밀은 배도가 일어나고 불법의 사람이 나타날 때(3, 8절) 비로소 그 정체를 드러내고 활동하게 될 것이며 그것은 '막는 자'의 능력에 달려 있다(Thomas).
8절 카이 토테 아포칼뤼프데세타이 호 아노모스 혼 호 퀴리오스 아날로세이 토 프뉴마티 투 스토마토스 아우투 카이 카타르게세이 테 에피다네이아 테스 파루시아스 아우투
=====2:8
그때에 - 이 '때'는 '막는 것'이 사라질 때를 가리킨다(Calvin). 즉 '막는 자'가 떠날 바로 '그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날 것이다(Bruce). 막는 자 때문에 지연되었던 그의 때는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일어날 수 없다. 그리고 불법의 사람은 미래의 한 기간에 악한 일을 하도록 보장받을 것이며 정해진 그때에 더 이상 은밀히 활동할 필요 없이 공개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 종말에 나타날 불법의 사람 곧 적그리스도의 최후가 분명하게 묘사되어 있다. 본 구절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 프뉴마티 투 스토마토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그가 갖고 있는 저항(抵抗)할 수 있는 능력을 문자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Gloag). 즉 주님의 입김만으로도 적그리스도들을 물리칠 수 있다는 힘찬 표현이다(Milligan). 구약에서도 하나님의 입김은 악한 자에 대한 심판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욥 15:30).
강림하여 나타나심 -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강조하기 위하여 다른 곳에서 각기 별도로 사용된 단어 '에피파네이아'('나타남')와 '파루시아'('강림')가 이곳에서는 동시에 사용되고 있다(Robertson).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재림에 대한 생생한 표현으로 재림 사건이 역사 가운데서 실제로 발생하여 결국 불법의 사람의 파멸을 몰고 온다는 것을 암시한다(Moffatt).
[데살로니가전서 헬라어 좋은 성경말씀] 복음을 대하는 성도의 자세(살전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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