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원문 강해

[헬라어 성경 에베소서 복음말씀] 성령의 인침을 받은 성도(엡 1:13-19)

엘벧엘 2021. 12. 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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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1장에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구원받은 백성은 성령으로 인침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 하나님은 도장을 찍어 주십니다. 이것은 구약의 할례 언약과 같은 개념입니다. 할례를 받은 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을 때 심령에 도장을 찍어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게 하십니다. 그래서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한 번 구원받은 자는 구원이 취소되지 않습니다. 할례 언약을 받은 자는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구원받은 자도 취소되어 원죄의 죄인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성령의 인침을 받은 성도(엡 1:13-19)

 

13절 엔 호 카이 휘메이스 아쿠산테스 톤 로곤 테스 알레데이아스 토 유앙겔리온 테스 소테리아스 휘몬 엔 호 카이 피스튜산테스 에스프라기스데테 토 프뉴마티 테스 에팡겔리아스 토 하기오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 '너희'는 앞절에서 '유대인'을 지칭한 '우리'와 대조되는 인칭 대명사로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Wood, Bruce, Foulkes). 하나님의 구원은 유대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복음이 전하여졌다. '복음'은 다른 곳에서 '주의 말씀'(고전 14:36; 살전 2:13), '하나님의 말씀'(고전 14:36; 살전 2:13), '그리스도의 말씀'(골 3:16), '생명의 말씀'(빌 2:16), '화해의 말씀'(고후 5:19)이라고도 불리어진다. 이런 '구원의 복음'과 동일시되는 '진리의 말씀'은 하나님의 구원 목적을 계시하는 사도의 복음을 가리킨다(Lincoln).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구원 계획을 사도들은 이방인에게까지 전파하였으며 그 결과 이방인들도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구원을 얻게 되었다.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 '인치심을 받았으니'의 헬라어 '에스프라기스데테'는 소유권을 나타내거나(아 8:6), 어떤 문서나 서신의 신빙성을 보증할 때 사용되었다(Wood). 이러한 '인을 받는 것'에 대해서 혹자는 '세례'를 가리킨다고 주장하나(Gnilka, Houlden), 그것은 복음을 받아들일 때 수반되는 성령의 영접을 가리킨다(Lincoln). 성령의 영접은 하나님께서 소유주가 되시는 내적 확증이며, 이런 내적 확증을 공동체 안에서 외적으로 표시하는 것이 '세례'이다(Foulkes).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되며, 하나님은 그들의 소유주와 보호자가 되신다. 이런 관계 변화를 확증하고 보증하는 것이 '인침'이다. 한편 '약속의 성령'은 예수님께서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령을 가리키는 것으로(Foulkes, Bruce, 눅 24:49; 요 14-16장; 행 1:4, 5;'the promised Holy Spirit', NEB), 성령을 받음으로 주어질 신령한 축복을 암시한다(Lincoln).

14절 호스 에스틴 아르라본 테스 클레로노미아스 헤몬 에이스 아폴뤼트로신 테스 페리포이에세오스 에이스 에파이논 테스 독세스 아우투

=====1:14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 '보증'의 헬라어 '아르라본'은 '에라본'('보증')에서 차용한 것으로 당시의 상업 용어이다. 이것은  어떤 계약을 할 때의 계약금을 가리킨다. 바울은 본절에서 '성령의  인침'을 그리스도인의 기업의 보증에 비유하고 있다. 이는 약속의 성령이 성도의 마음속에서 보증을 해주시므로 구속의 그날까지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해주심을  시사한다(Calvin). 한편 '기업'은 성령이 그리스도인의 현재 삶 속에서 보증해 주신 것으로 미래의 영적인 부활체(고전 15:44; 고후 5:4)를 가리킨다. 이는 미래에 주어질 완전한 구원을  시사한다(Lincoln).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 '얻으신 것'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1) 혹자는 그리스도인에게 약속된 축복이라고 주장한다(Abbott, Schlier). (2) 혹자는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의 소유주이심을 시사한다고 주장한다(Robinson, Gnilka, Houlden). 두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출 19:5; 신  14:2;26:18;말 3:17; 행 20:28).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의 소유주로서 그리스도인들을 미래에  완전히 구속하신다.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 본절은 6, 12절의 반복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속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을 나타낸다. 미래에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을  완전히 구속하시고 소유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15절 디아 투토 카고 아쿠사스 텐 카드 휘마스 피스틴 엔 토 퀴리오 이에수 카이 텐 아가펜 텐 에이스 판타스 투스 하기우스

=====1:15

  이를 인하여 - 이것은 바울이 새로운 언급을 하기 전에 종종 사용하던 것으로 '앞서 언급한 전체로 인하여'라는 의미이다(Blaikie, Wood, Lincoln).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의 믿음과 사랑에 대해 들었음을 밝히고 있다.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1) 에베소 교인들이 주 예수를 믿는 믿음(Abbott, Gnilka), (2) 에베소 교인들이 주 예수 안에서 보인 믿음의 행위(Schlier, Ernst). 두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절은 골 1:3, 4과 병행을 이루는 것으로 골로새 교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한 믿음과 같은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Lohse, O'Brien,  Bruce, Lincoln). 이런 믿음에서  비롯된  행함은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났다(Foulkes).

16절 우 파우오마이 유카리스톤 휘페르 휘몬 므네이안 휘몬 포이우메노스 에피 톤 프로슈콘 무

=====1:16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 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 바울은 기도할 때마다 에베소 교인들의 믿음과 사랑에 대해 감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감사는 에베소 교인들의 믿음과 사랑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사역으로 인해서 생겨난 것임을 암시한다(Lincoln). 한편 '말하노라'로 번역된 '므네이안  포이우메노스'는  단순히 '기억하다'라는 의미(remembering, NIV, RSV) 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명확한  표현이다(Foulkes). 왜냐하면 이것은 사도 바울이 기도할 때에 기도 대상자의 성품과 인격 그리고 신앙의 정도와 처해 있는 환경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그의 이름을 불러가며 간구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Wood). 이런 바울의 기도는 에베소 교인들이 성숙을 향해 성장해갈 수 있도록 간구하는 중보 기도이다(17-19절).

17절 히나 호 데오스 투 퀴리우 헤몬 이에수 크리스투 호 파테르 테스 독세스 도에 휘민 프뉴마 소피아스 카이 아포칼륍세오스 엔 에피그노세이 아우투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 본절은 바울의 중보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에 대한 묘사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은 '하나님'과  '그리스도' 사이의 분명한 구분을 짓는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에게 종속적이다. 한편 '영광의 아버지'는 셈어적인 표현으로 '영광스러운 아버지'를 의미한다(Bruce,  Lincoln, Foulkes). '영광'은 하나님의 현존과 능력의 광채로서 본절에서는 조명하시는 능력을 암시한다(18절).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 '정신'의 헬라어 '프뉴마'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프뉴마'에 관사가 없기 때문에 인간의 영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KJV, RSV, Abbott, milton). (2) 혹자는 관사가 없이도 '프뉴마'가 성령을 가리키기 때문에(갈 5:5, 16) 인간의 영이라 할 수 없고 '성령'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Hendriksen, Caird, NIV). (3) 혹자는 성령에 의해서 인간의 영에 주어진 성령의 은사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Foulkes).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고 본다. 한편 '지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사역을 이해하는 것이며(8절;3:10;5:15), '계시'는 하나님의 비밀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것을 시사한다.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 성도들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받은 지혜와 계시에 의해서 하나님을 알게 된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어떤 피상적인 지식이 아니라 개인적인 친분을 통해서 얻어지는 충만된 지식을 뜻한다(Wood).

18절 페포티스메누스 투스 오프달무스 테스 디아노이아스 휘몬 에이스 토 에이데나이 휘마스 티스 에스틴 헤 엘피스 테스 클레세오스 아우투 카이 티스 호 플루토스 테스 독세스 테스 클레로노미아스 아우투 엔 토이스 하기오이스

19절 카이 티 토 휘페르 발론 메게도스 테스 뒤나메오스 아우투 에이스 헤마스 투스 피스튜온타스 카타 텐 에네르게이안 투 크라투스 테스 이스퀴오스 아우투

=====1:18,19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 '마음눈'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아름다운 표현이다(Wood).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의 에베소 교인들은 '총명이 어두웠고'(4:18), '어두움'에 거하였었다(5:8). 그러나 이제 구원을 받은 에베소 교인들은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복음을 통해 깊은 깨달음을 얻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알게 하시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Cole, Wood).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 '마음눈'이 밝아져 세 가지를 알게 되기를 기도한다.

   (1)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 '부르심'은 '선택'과 '예정'(4, 5,  11절)을 전제로 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의 인치심을 받음으로 이루어지며, 그 부르심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미래에 온전하게 하시는 소망을 갖게 된다(Bruce, Foulkes). '소망'은 그리스도인의 구원이 완성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통일될 것에 대한 바람을 의미한다(Lincoln).

   (2)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 '그 기업'의 헬라어 '테스 클레로노미아스 아우투'는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그의 기업'으로서 14절에서 언급한 '우리의 기업'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업을 가리킨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기업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켰다(신 4:20;9:26, 29;삼하 21:3; 왕상 8:51; 왕하 21:14; 시 28:9;33:12;68:9;78:62, 71;94:14;106:5,  40;사 19:25;47:6;63:17; 렘 10:16;51:19). 그러나 본절에서 하나님의 기업은 유대인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기업은 '성도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기업은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Abbott,  Houlden,  Milton, Lincoln).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의 영광을 알기를 기도하고 있다.

   (3)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 바울은 본문에서 네 가지 단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첫째, '힘'으로 번역된 '크라투스'는 저항과 통제로써 길러진 힘(6:10)을 의미하며, 둘째, '강력'의 헬라어 '이스퀴오스'는 육체적이며 남성적인 힘으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타고난 힘을 뜻하고(6:10), 셋째, '역사하심'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네르게이안'은 영향을 끼칠 수 있거나 조절이 가능한 힘을 지칭하며(3:7;4:16), 마지막으로, '뒤나메오스'('능력')는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나  잠재력을  가리킨다(Wood, Barth, Schlier). 이러한 네 가지의 유사 용어를 사용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성도의 기업과 소망을 잇는 견고한 다리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Hendriksen).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향해 행하신 하나님의 광대한 능력이 어떤 것인지를 에베소 교인들이 알기를 중보 기도한다.

[헬라어 성경 갈라디아서 복음 말씀] 이방인의 그릇인 사도 바울(갈 1:11-17)

 

[헬라어 성경 갈라디아서 복음말씀] 이방인의 그릇인 사도 바울(갈 1:11-17)

갈라디아서 1장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어떻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스스로 사도가 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자기를 불러서 사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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