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장에서 바울은 복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예만 있고 아니오가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순종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예만 있는 순종(고후 1:18-24)
18절 피스토스 데 호 데오스 호티 호 로고스 헤몬 호 프로스 휘마스 우크 에게네토 나이 카이 우
=====1: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 '미쁘시니라'로 번역된 헬라어 '피스토스'는 사업의 거래나 공적 의무의 수행에 있어서 `신실한'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미쁘시니라'는 표현은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란 뜻이다. 구약에서 '신실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속성을 반영하는 하나님의 명칭이기도 하다(신 7:9;사 49:7).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의 신실함을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의거하여 주장하고 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사 2:2-4;눅 1:68-79;고전 1:9), 이것이 바울의 신실함의 근거가 된다면 그의 신실함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바울은 매우 효과적이고도 담대(膽大)하게 자신을 변증하고 있다.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한 말은 그의 여행 계획뿐만 아니라 그의 사역까지도 포함되는 것으로 보인다(13절). 이렇게 볼 때 바울은 그의 사역을 수햄함에 있어 매사에 하나님의 종 된 자로서 신실함으로 일관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19절 호 가르 투 데우 휘오스 이에수스 크리스토스 호 엔 휘민 디 헤몬 케뤼크데이스 디 에무 카이 실루아누 카이 티모데우 우크 에게네토 나이 카이 우 알라 나이 엔 아우토 게고넨
=====1:19
실루아노 - 이는 '실라'의 로마식 이름이다(살전 1:1).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유력자 중 한 사람이었고(행 15:22),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에 동참했던 동역자이자 친구였다(행 15:36-41).
너희 가운데 전파된...예수 그리스도 - 바울, 실루아노, 디모데가 고린도에 복음을 증거한 것은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 기간이었는데 먼저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했고(행 18:1-4),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나중에 합세하였다(행 18:5). 이들 세 사람은 고린도에 1년 6개월간 머물면서 교회를 세우고 세례를 베풀었다(행 18:7-11).
저에게는 예만되었느니라 - 바울과 실루아노, 디모데 세 사람의 삼중 증거에 의해 전해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어서는 결코 모순과 우유부단함과 이중성이 없음을 단언하고 있다. 여기서 '되었느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게고넨'은 강조적 현재 완료형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은 영원한 현실로서 동일한 효력을 나타냄을 보여준다.
20절 호사이 가르 에팡겔리아이 데우 엔 아우토 토 나이 카이 엔 아우토 토 아멘 토 데오 프로스 독산 디 헤몬
=====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이나 당신의 종들을 통해 주신 약속의 성취자이고(롬 1:3;갈 3:16). 이스라엘의 전역사가 지향해 온 목적을 완성하신 분으로 모두의 의롭다함을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롬 10:4). 이러한 사실은 구체적으로 예수의 인격과 사역 속에서 실현되었고(눅 5:17-26;7:18-23), 성도들과 교회는 그것의 증거이다.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 '아멘'은 '진실로 그렇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이루어 주소서'라는 의미를 갖는 말로 구약성경에서도 사용되었고('아멘', 신 27:15, 16;렘 11:5;시 41:13) 유대교를 거쳐 기독교에서도 예배 시에 사용되었으며 현재도 사용되고 있다. 성도들의 '아멘'은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의미가 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예'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을 의미하는 것처럼, 성도들의 '아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순종을 표시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된다. 바울의 헌신적인 사도적 수행은 바로 하나님께 대한 '아멘'의 한 전형(典型)이라 할 수 있다.
21절 호 데 베바이온 헤마스 쉰 휘민 에이스 크리스톤 카이 크리사스 헤마스 데오스
=====1:21
견고케 하시고 -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 사이의 관계는 신실하신 하나님에 의해 결정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진실만이 있을 뿐이다. 이렇듯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을 그리스도 안에 굳건히 세우신 분이 바로 신실하신 하나님이실진대, 그리고 그들의 믿음을 강하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더욱 풍요롭게 하실 분이 하나님이실진대 양자 사이에 사소한 일로 오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본문에 함축된 의미이다.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 '기름을 부으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리사스'는 `기름을 붓다', '신성하게 하다'는 뜻의 헬라어 동사 '크리오'에서 온 말로 구약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그리스도'와 같은 어원을 갖는다. 또한 구약에서 기름을 붓는 행위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람들을(선지자, 왕상 19:16;왕, 왕상 1:39;제사장, 출 29:7) 구별하여 소명을 부여하는 것을 뜻한다.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바 하나님께서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에게 기름을 부었다고 하는 것은 위의 두 경우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그들의 기름부음 받음은 하나님께서 사명을 부여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고, 그 사명은 그리스도의 기름부음 받음 즉 그리스도의 소명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것은 육체적인 것이나 개인적인 신념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 의해 확증받는 것이다.
22절 호 카이 스프라기사메노스 헤마스 카이 두스 톤 아르라보나 투 프뉴마토스 엔 타이스 카르디아이스 헤몬
=====1:22
우리에게 인치시고 - `인치시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프라기사메노스'는 '공문서의 효력을 보장해 준다'는 의미가 있다. 즉 이 인(印)은 봉인된 서류가 변조되거나 수송 중에 내용물이 변경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며 또한 소유권의 표시이기도 하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성령으로 인치셨다는 것은 성도들을 당신의 소유로 확인하셨다는 것이며 성도들에게 구원의 궁극적인 확실성을 부여해 주셨다는 것이다(엡 4:30).
보증으로 성령을 - '보증'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르라본'은 히브리어 '에라본'에서 유래한 상업적인 단어로(창 38:18) 어떤 물건을 매입하기 위하여 지불해야 할 대금의 총액 중 '첫 번째 분납금'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당신의 소유로 삼기 위해서 보증금을 지불하셨다. 사람에게 있어서 계약을 체결하고 보증금을 지불하는 것이 반드시 소유를 확정 지어 주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형편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며 또 그 마음도 수시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전능하시기 때문에 그분이 보증금을 지불하셨다는 것은 곧 그분의 완전한 소유가 되는 것을 뜻한다. 성도들은 완전한 하나님의 소유이며 그것은 성도들의 마음속에서 역사하는 성령께서 증거 하신다(롬 5:5;8:9;갈 4:6).
23절 에고 데 마르튀라 톤 데온 에피칼루마이 에피 텐 에멘 프쉬켄 호티 페이도메노스 휘몬 우케티 엘돈 에이스 코린돈
=====1:23
내가 내 영혼을 두고 하나님을 불러 증거하시게 하노니 - 바울은 자신의 여행 계획이 어떠했고 그 계획이 왜 바뀌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가(15-17절) 자신의 여행 계획이 근거하고 있는 복음과 그리스도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자기의 진실성을 먼저 확인시킨 뒤(18-22절),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여행 계획을 재변경시킨 사유를 밝히고 있다. 먼저 그는 자신의 영혼을 걸고 거의 맹세에 가까운 표현으로 자신의 진실성을 자신 있게 주장하고 있다. 바울은 가끔 그의 주장을 강력하게 표현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증인으로 내세우고 있는데(롬 1:9;빌 1:8;살전 2:5, 10), 이러한 문구는 당시 헬라 문학에서 사용되던 저주 문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증인으로 내세우는 바울의 문구는 구약에 보편적으로 사용된 맹세문에서 그 선례를 찾을 수 있다(룻 1:17;삼상 14:44;삼하 3:35). 여기서 바울이 감히 하나님을 증인으로 내세우는 것은, 맹세가 아니라 그의 전 생애가 하나님 앞에 밝히 드러나 있다는 그의 신앙적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 바울이 계획을 바꾸어 고린도에 가지 않은 것은 결코 바울 자신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고린도 교인들을 아끼는 마음 때문이었다. 만약 바울이 그들을 아끼는 마음이 없이 본래의 계획대로 고린도를 찾아갔다면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마음 아픔뿐이었을 것이다(2:2,3).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에는 벌을 받아야 할 만큼 바울을 근심되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2:5-7). 바울은 그들을 징계할 수도 있었을 것이나 그러기보다는 그들 스스로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했다(2:7). 이것은 목회자로서의 바울이 매우 지혜롭고 인내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고린도의 문제 교인들은 바울의 인내와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을 왜곡하여 도리어 그를 비난하였다.
24절 우크 호티 퀴리유오멘 휘몬 테스 피스테오스 알라 쉬네르고이 에스멘 테스 카라스 휘몬 테 가르 피스테이 헤스테카테
=====1:24
믿음을 주관하려는...기쁨을 돕는 자 - 여기에는 바울의 목회관이 나타난다. '주관한다'는 것은 '지배한다'는 뜻이며, 이는 바울이 자기의 복음 전도에 의해 신앙을 갖게 된 사람들에게 지배자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신앙적 기쁨을 위해 돕는 봉사자로 나아가기를 원했음을 말해준다. 여기에는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그의 신학적 이해가 깔려 있다. 즉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여 신앙을 갖게 된 성도들에 대하여 일정한 사도적 권위를 가지기는 하지만(10:2-8;고전 5:4, 5;딤전 1:20), 궁극적으로 신앙인의 실존은 인간이 아닌 하나님에 의해서만 규정된다고 보았다. 또한 신앙은 지배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 선택에 의한 것인 만큼 바울은 그들 스스로가 신앙 안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최선의 목회라고 보았다. 이처럼 바울이 사도적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고린도 교인들의 기쁨을 위해서 봉사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가 자신의 육체적 이익을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한다고 비난하는 자들의 주장이 어불성설임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헬라어 원어성경 고린도전서 복음 말씀] 십자가 도의 능력(고전 1: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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