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원문 강해

[헬라어 성경 갈라디아서 복음말씀] 이방인의 그릇인 사도 바울(갈 1:11-17)

엘벧엘 2021. 12. 4.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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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1장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어떻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스스로 사도가 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자기를 불러서 사도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 당시 교인들이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서 의심을 품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항상 편지를 쓸 때 자신은 예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사도라고 썼습니다. 바울은 율법주의 신앙을 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복음으로 돌아섰습니다.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방인의 그릇인 사도 바울(갈 1:11-17)

 

11절 그노리조 데 휘민 아델포이 토 유앙겔리온 토 유앙겔리스덴 휘프 에무 호티 우크 에스틴 카타 안드로폰

=====1:11

  형제들아 - 헬라어 '아델포스'가 신약성경에서는 '같은 조상을 가진 사람'(행 3:22;롬 9:3), '믿음으로 연합한 가족'(마 23:8;롬 1:13). '그리스도의 동역자'(고후 1:1)등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포괄적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참된 복음의 진리를 따르는 모든 자들을 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바울은 여기서 갈라디아에 있는 그리스도인을 지칭하여 이 말을 사용했음이 분명하다.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 헬라어 본문에서는 본절의 '뜻'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고 다만 '사람을 따라'(카타 안드로폰)로 되어있다. 그러나 문맥상 4절의 '하나님의 뜻을 따라'(카타 토 델레마 투데우)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아 '사람의 뜻을 따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이처럼 바울은 반대되는 개념을 사용하여 자신의 사도권이 사람의 전승이나 인위적인 교육 등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강조하고 있다.

12절 우데 가르 에고 파라 안드로푸 파렐라본 아우토 우테 에디다크덴 알라 디 아포칼륍세오스 이에수 크리스투

=====1:12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 바울은 하나님을 섬기는 열심에서 유대교의 사도로 일한적이 있었다. 당시 사도의 개념은 산헤드린이나 여제사장 등 높은 직위에 있는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명령을 받아 임무를 완수하는 자들을 칭하기도 했다. 바울이 다메섹으로 향할 때에 그의 임무는 이러한 성격의 것이었다(행 9:2). 그러나 바울 사도는 지금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이전에 사람들의 명령에 따라 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주장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 바울은 반복적으로 부정어를 사용하여 사도권의 근거를 피력하다가 이제 접속사 '알라'('그러나')를 사용하면서 자신의 전한 복음이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사실을 강조한다. 예수의 열 두 제자들과는 달리 바울은 예수와 함께하는 삶을 통해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다는 점에서 사도적 권위에 도전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나타나신 주님과의 만남을 기점으로 사도의 사명을 받았다(행 9:4-26). 또한 열 두 제자들이 비록  바울보다 먼저 사도가 되긴 했지만, 그들 역시 성령에 대한 약속(요 14:16;16:13)이 오순절 사건으로 성취된 이후에야 비로소 사도가 되었다. 다시 말해 제자들이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아 비로소 사도로서 활약했듯이 바울은 다메섹의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나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13절 에쿠사테 가르 텐 에멘 아나스트로펜 포테 엔 토 이우다이스모 호티 카드 휘페르볼렌 에디오콘 텐 엑클레시안 투 데우 카이 에포르둔 아우텐

=====1:13

 유대교에 있을때에 행한 일 - '행한'의 헬라어 '아나스트로펜'은 역사적인 사건뿐만 아니라 그가 행한 일들과 근본적인 삶의 태도와 방식을 포함한다. 바울이 여기서 '유대교'(유다이스모)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비록 바울이 이전에 유대교에 속하여 모세 율법을 삶의 절대적 표준으로 삼고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고자 했지만, 유대교가 단지 '인간 종교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바울은 이제 유대교에서 벗어나 객관적 입장에서 자신이 과거에 유대교를 위해 일했던 사실을 회상(回想)하고 있다.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 바울은 교회를 핍박하는 일에 있어서 가히 광신적이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편견과 교만으로 교회를 핍박했다.  본절에서 '하나님의 교회'(엑클레시아 투 데우)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한다. (1) 교회를 핍박하는 것은 메시아이신 예수를 향한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대적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2) 구약 시대에는 유대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아 특권을 누리고 있었으나, 신약 시대에는 교회가 참 이스라엘로 전이되었다. 따라서 바울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열심으로 교회를 핍박한 것은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결과가 되었다.

14절 카이 프로에콥톤 엔 토 이우다이스모 휘페르 폴루스 쉬넬리키오타스 엔 토 게네이 무 페리스소테로스 젤로테스 휘파르콘 톤 파트리콘 무 파라도세온

=====1:14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 바울이 과거에 유대교를 신봉했던 정도를 나타내는데, '지나치게'의 헬라어 '프로에코프톤'은 '길을 밝히다', '숲에서 앞서서 길을 개척하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유대교의 대학자인 가말리엘 문하에서도 뛰어난 제자였고 유대교에 속한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서 나아가고 있었다. 이처럼 유대교에 대해 열심이었던 바울은 율법과 랍비들의 전승에서 해방되어  복음으로 말미암은 완전한 자유를 선포하게 되었다. 만약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유자가 되지 못했다면 할례와 율법을 돌아보는 자(행 15:5)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계시에 의하여(12절) 그 높은 율법의 벽을 훌쩍 넘어설 수 있었다.

   내 조상의 유전 - 유대인의 율법은 두 가지 형식을 취했는데 하나는 정언적 또는 절대적이며 또 하나는 결의법 또는 판례법 형식이다. 전자는 십계명과 같이 예외가 없는 지상 명령의 성격을 띤 것으로 운율을 가지고 있어 예배 시에 낭송되거나 암송하기에 편리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반면에 후자는 실제 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관습법과 같은 것으로 본절의 '유전'은 후자에 가깝다. 랍비들은 613개 조항의 법 조문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바로 전자를 실생활에 확대 적용하여 세분화(細分化)한 것이다(Lenski). 결국 '유전'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바울은 인간이 만든 유전의 울타리에 갇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다.

15절 호테 데 유도케센 호 데오스 호 아포리사스 메 에크 코일리아스 메트로스 무 카이 칼레사스 디아 테스 카리토스 아우투

=====1:15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 '택정하시고'의 헬라어 '아포리사스'는 '어떤 경계로부터 떨어지게 한다'는 뜻으로서 어떤 특정한 직분이나 사역에 관련하여 성별(性別)됨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2:12;행 19:9).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은 그들의 부르심이 '어미의 태로부터' 된 것임을 고백하고 있다(사 49:1;램 1:5). 바울은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이 가지고 있던 사상을 잇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 계획과 예정을 선지자나 사도 같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국한시키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 된 모든 사람에게 적용시키고 있다(롬 9:11).

16절 아포칼륍사이 톤 휘온 아우투 엔 에모이 히나 유앙겔리조마이 아우톤 엔 토이스 에드네신 유데오스 우 프로사네데멘 사르키 카이 하이마티

=====1:16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 예수께서 바울의 영혼과 마음속에 내적 계시를 통하여 자신을 나타냈음을 말한다. 바울은 내적 계시를 통하여 예수가 누구시며 그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본절은 또한 역사적으로 다메섹 도상의 체험(행 9:1-9)을 시사하며 아울러 바울이 성령의 충만함과 그리스도의 말씀을 소유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렇듯 바울이 내적 계시를 통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과 말씀을 소유한 것은 자신의 이해를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이방에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위함이었다.

17절 우데 아넬돈 에이스 히에로솔뤼마 프로스 투스 프로 에무 아포스톨루스 알르 아펠돈 에이스 아라비안 카이 팔린 휘페트렙사 에이스 다마스콘

=====1:17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아 이방인의 사도 된 것을 강조하기 위해 '오직'(알라)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또한 구태여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지 않았다는 사실과 혈육과 의논하지 않았다는 것(16절)을 언급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한편 '아라비아'는 매우 광범위한 지역이기 때문에 바울이 갔던 장소가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사실 다메섹도 아라비아에 속한 곳이므로 다메섹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으로 갔으리라 추측된다. 혹자는 모세가 율법을 받았던 것을 상기하여 이곳을 시내산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견해도 명확한 근거가 없다. 의미상'아라비아'는 예루살렘과 상관없는 장소이며 또한 바울 자신이 개인적으로 예수의 계시를 체험하고 이해한 장소이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남으로 그의 삶과 가치관이 변화되었지만 자신이 경험한 계시를 체계화시키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는 마치 예수께서 그의 사역을 준비하시면서 침례를 받으시고 광야에 나가 기도하신 것과 유사하다. 바울은 광야에서 혈육과 분리되고, 예루살렘에 있는 다른 그리스도인의 영향도 받지 않고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교제를 통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특별한 계시, 즉 이방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사역을 위하여 준비하는 기간을 가졌다.

[헬라어 성경 고린도후서 복음 말씀] 예수님의 예만 있는 순종(고후 1:18-24)

 

[헬라어 성경 고린도후서 복음말씀] 예수님의 예만 있는 순종(고후 1:18-24)

고린도후서 1장에서 바울은 복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예만 있고 아니오가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십자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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