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말씀 강해

[마가복음 6장 주석 강해설교] 세례 요한의 순교(막 6:1-29)

엘벧엘 2024. 3. 12.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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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6장 주석 강해설교 말씀은 세례 요한의 순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억울하게 헤롯에게 목 베어 순교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순교(막 6:1-29)

 

. 예수님과 그의 고향 사람들 6:1-6

(1) 그리스도께서 고향인 나사렛을 방문하신다(1). 그 나사렛에는 그의 친척들이 있었다. 그리스도는 고향 사람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은 적이 있었다(눅 4:29). 그러나 그는 그들을 다시 방문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매우 이상하리만큼 호의적으로 그들의 변화를 기다리고 계셨다.

(2) 그리스도는 안식일에 나사렛의 회당에서 가르치셨다(2). 안식일에는 그리스도가 본을 보여주신 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어야 한다.

(3) 고향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매우 존경스럽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첫째로 그리스도는 대단히 지혜롭게 말씀하셨고 둘째로 그는 권능을 행하셨기 때문이다. 고향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전파하는 복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증거 하는 두 가지 큰 증거들을 인정했다. 그 두 가지 증거란 곧 하나님의 권능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지혜로 말하고 하나님의 권능을 행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해도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4) 그들은 그리스도를 비방하기에 골몰했다(3). 이 모든 지혜와 이 모든 권능을 하잘 것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그들은 '이 사람이 목수가 아니냐'고 말했던 것이다. 마태복음에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목수의 아들이라고 비난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마가복음에선 '이 사람이 목수가 아니냐'고 말하며 더 심한 비난을 했던 것을 나타내고자 한 것 같다. 첫째로 그리스도는 이와 같이 종의 모습을 취한 분으로서 자기를 낮추셨다. 둘째로 그리스도는 이와 같이 게으름을 몰아내고 세상에서 할 일을 찾도록 가르치신다. 젊은 사람들에게 빈둥거리는 습관보다 더 해로운 것은 없다. 유대인에게는 이에 알맞은 좋은 관례가 있다. 곧 학자가 되고자 하는 유대의 젊은이들은 바울이 장막 짓는 일을 한 것처럼 어떤 기술을 익혀 필요할 때에 일자리를 얻어 생계를 꾸려나갔다. 셋째로 그리스도는 이와같이 천대를 받는 직공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자기의 손으로 노동을 해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을 격려코자 했다. 그러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보통 그런 사람들을 경멸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비난했던 또 한 가지는 그의 친척들이 비천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 고향 사람들은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냐 그의 형제들과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우리가 그의 가족들과 친척들을 알고 있지 아니하냐'고 말했던 것이다(3). 그러므로 그들이 그의 교훈을 듣고 놀랐다 해도(2) 그의 신분 때문에 기분이 상했으며(3) 이런 이유 때문에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5) 그리스도께서 이런 경멸을 어떻게 견디셨는지 알아보자(4-6).

1) 그리스도께서는 그 경멸을 부분적으로 변명하셨다. 선지자가 자기 고향(자기 친척과 자기집)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4). 의심할 여지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런 편견을 극복했지만 말씀의 사역자들이 낯선 사람들 가운데서 말씀을 전하는 것만큼 자기 고향에서 거의 인정받지 못하고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흔한 일이다. 그것은 어린 시절에 친숙했던 일로 말미암아 경멸을 받고 또 그들보다 낮은 신분에 있다가 성공하게 되자 시기심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기들의 가축을 개들에게 맡기면서도 자기들의 영혼을 영적 아버지인 인도자들에게 맡기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2) 그들이 그를 경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선한 일을 베풀어 주셨다. 즉 그리스도는 악하고 감사함을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친절하셔서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셨다'(5).

3) 그러나 그리스도는 다른 곳에서 행했던 큰 권능을 자기 고향에서는 행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 사람들 가운데 팽배했던 불신 때문이었다. 그것은 마치 불신이 전능자의 손을 매어놓은 듯한 이상한 표현이다. 그는 어디서나 행했던 많은 기적을 그곳에서도 행하려 했으나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들을 위하여 기적을 베풀려는 영광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경멸함으로써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베풀어 주시는 은혜의 흐름을 막고 또 자신들의 문에 빗장을 지르는 결과를 초래한다.

4) 그리스도는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다'(6).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백부장(마 8:10)이나 사마리아의 여인과 같은 이방인들의 믿음을 보고 놀라신 것 외에는 어디서도 놀라신 것을 없었다. 그런데 그의 고향 사람들인 유대인의 불신을 보고 그리스도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5) 그리스도께서 '모두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셨다'(6). 만일 우리가 원하는 곳에서 선을 행할 수 없다면 비록 촌에서라도 선을 행할 수 있는 곳에서 선을 행해야 한다. 때때로 그리스도의 복음은 인구가 많은 도시보다 시골 부락에서 더 좋은 환영을 받는 것이다.

. 사도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심 6:7-13

1. 복음을 전파하고 기적을 행하는 권세를 열 두 사도들에게 위임하심(7-11)

이제까지 사도들은 그리스도와 교제를 나누어왔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의 발 앞에 앉아 그의 교훈을 들었으며 또 그의 기적을 보아 왔던 것이다. 그들은 줄 수 있는 것을 받아 왔고, 가르칠 수 있는 것을 배워 왔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열두 제자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지식을 얻기 위하여 학원에서만 공부할 필요가 없었다. 비록 그들이 현재의 능력과 역량에 따라 성취한 것이 과거에 성취했던 것만큼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도 그들은 장차 일을 하여 더욱 향상되도록 준비되어야 했다. 이제 다음의 내용을 살펴보자.

첫째, 그리스도는 그들을 둘씩 둘씩 보내셨다. 그런데 마가는 이점에 유의하였다. 그들은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낯선 곳으로 갔는데 그것은 그들이 낯선 사람들 가운데 있게 될 때 서로서로 동료가 되도록 하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서로에게 힘이 되고 마음을 격려해 주며 또 서로서로를 돕게 하려는 이유 때문이었다. 널리 알려진 격언으로써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말씀 사역자들에게 서로 연합하며 또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으라고 가르치신다.

둘째, 그리스도는 사도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셨다'(7). 그는 그들이 마귀의 왕국을 공격하도록 위임하셨으며 그들에게 권세를 주어 마귀들린 사람들로부터 마귀를 내쫓도록 하셨다.

셋째, 그리스도는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가난한 사람처럼 보이도록 그들에게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양식이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8)고 하셨다. 그러나 그 후에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전대와 주머니를 가지라고 명하셨다(눅 22:36). 그것은 그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관심이 처음보다 감소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처음 복음을 전파하러 나갔을 때보다 더 험한 때를 만나며 더 나쁜 대접을 받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선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고 했는데 이 지팡이는 싸울 때 사용하는 지팡이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마가복음에선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고 하셨으니 이때의 지팡이는 여행자들이 가지고 다니는 그런 지팡이를 말한다. 그들은 신만 신고 가야 했는데 이 신은 슬리퍼와 같이 발바닥 밑에만 가죽이 깔려 있으며 끈으로 얽어매게 되어 있다. 또한 그들은 가능한 한 가장 간편하고 검소한 차림의 옷을 입고 가되 두 벌 옷도

가져선 안 된다. 그들이 전파하는 복음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줄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지시하여 그들이 어떤 곳으로 가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그들이 처음 본거지로 삼았던 집에서 계속 유하라고 했다. 그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10). "너희는 심부름군으로 왔으므로 충분한 환대를 받도록 하라. 그리고 너는 처음 너를 초대한 집으로 들어가 그 집 사람들이 너를 짐으로 생각지 않는다고 믿을 정도로 너희의 친구들에게 자비를 베풀라"는 의미다.

다섯째,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이 전파하는 복음을 거절한 사람들에게 매우 준엄한 선고를 내린다. 어는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아래 먼지를 떨어 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11). 애굽의 먼지(9:9)처럼 그 먼지는 그들에게 재앙으로 변할 것이며, 그 진노의 날에 그들이 받을 저주는 소돔성의 저주보다 더 참혹할 것이다.

2. 위임받은 대로 순종하는 사도들의 행동(12,13)

그들은 스스로 매우 약하다고 생각했지만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고 또 그의 힘에 의지해서 아브라함처럼 어디로 가야할 바를 모르면서도 나아갔다.

(1) 사도들이 전파했던 복음 :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라(12). 그들은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켜 그들의 삶을 새롭게 하려 했다. 복음 전파자들이 꾀하는 위대한 계획과 복음 전파로 성취될 위대한 목적은 사람들을 회개시켜 그들이 새로운 심령과 새 길을 얻도록 하는 데 있어야 한다. 사도들은 이상한 의견을 내놓아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보다는 그들에게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2) 사도들이 행한 기적들 :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라고 주신 권세는 헛된 것이 아니며 그들도 그 권세를 헛되이 받지 않고 잘 활용했다. 그래서 그들은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칠 수 있었다'(13).

. 세례 요한의 죽음 6:14-29

1. 우리 주 예수에 관한 사람들의 엉뚱한 생각(15)

그리스도의 고향 사람들은 그의 초라한 친속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위대한 모습을 전혀 믿을 수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진리가 아닌 어떤 것이라도 기꺼이 믿으려 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가 그들이 기다렸던 엘리야라고도 했고, 구약의 선지자 중 하나가 다시 살아났다고도 했으며, 또 옛 선지자 중 하나와 같이 새로 일어난 선지자라고도 했다.

2. 우리 주 예수에 관한 헤롯의 견해(14, 16)

헤롯은 주 예수님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는 분명히 세례 요한이다(14). 내가 목베인 요한 그가 살아났다(16). 이러므로 그가 더 큰 권세를 가지고 와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느니라"(14).

(1) 헛된 신앙을 가지면 공상이 생기는 것이 보통이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로부터 일어난 선지자라고 말했으며 헤롯은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말했다. 이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죽은 자 가운데서 선지자 중의 하나가 살아나 능력을 행하는 것은 그들에게 불가능하거나 있을 수 없는 일로 생각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사실이 아니었을 때는 곧 의심을 받았다. 그러나 후에 그리스도에 관한 그 생각이 사실이 되었음에도 그 생각은 완강히 반박되고 부인되었다. 진리를 기꺼이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흔히 잘못된 생각과 공상에는 가장 잘 빠진다.

(2) 하나님의 뜻에 대적해서 싸우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을 승리자로 생각할 때조차 좌절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3) 죄의식은 죄의식 그 자체 외에는 죄를 고발하거나 고문하는 어떤 사람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헤롯왕은 '내가 목 베인 요한'이라고 말했으며 그 일에 대한 공포 때문에 그는 그리스도를 요한이 살아난 것으로 생각했다. 헤롯왕은 요한이 살아있을 동안에도 요한을 두려워했었는데 요한이 죽은 지금 요한을 열 배나 더 두려워했다. 인간은 유령과 귀신에 대한 공포뿐만 아니라 양심의 가책으로 인한 공포로도 시달림을 받을 수 있다.

(4) 구원을 얻게 하는 회심의 진리를 모르는 자들에게도 강한 양심의 가책으로 인한 공포가 있을 수 있다.

3. 세례 요한을 죽이는 헤롯(17-29)

(1) 헤롯이 얼마 동안 세례 요한에 대해 가졌던 높은 평가와 존경심 : 이 기사는 마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20).

1) 헤롯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였다(20). 사람은 선한 사람들, 특히 선한 사역자들을 매우 존경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그들 속에 선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자신은 여전히 악한 사람일 수 있다. 첫째로 요한은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었다. 완전히 선한 사람이 되려면 공의와 거룩함이 겸비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대할 때엔 거룩함이 겸비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대할 때엔 거룩함이 필요하고 인간을 대할 때엔 공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헤롯은 요한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요한이 의롭고 거룩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공의와 거룩함이 없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을 통하여 그 사실을 식별할 수 있다. 셋째로 헤롯은 그 때문에 요한을 두려워하면서도 그를 존경했던 것이다. 선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은 선한 사람들을 존경하게 되는 것이다.

2) 헤롯은 요한을 주목했다. 다시 말해 헤롯은 요한에게서 칭찬할 만한 것을 주목했으며 요한에 관한 것들을 들으면서 칭찬할 만한 것은 칭찬했다. 그러므로 헤롯은 요한의 언행을 분명하게 주목했던 것이다.

3) 헤롯은 요한의 설교를 들었다. 그것은 매우 겸손한 태도였다.

4) 헤롯은 요한이 설교를 통해 그에게 가르쳐 준 많은 것들을 행했다. 헤롯은 말씀을 듣는 자일뿐 아니라 부분적으로나마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계명들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한 아무리 많은 일을 한다 해도 충분히 않을 것이다.

5) 헤롯은 요한의 말을 달게 들었다. 외식자도 말씀을 들을 때는 순간적인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8:15에는 '자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2) 헤롯에게 그의 허물을 말해주는 세례 요한의 성실성 : 헤롯은 책망하면서 그에게 분명히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18)고 말해 주었다. 이것이 바로 헤롯이 요한의 가르침대로 많은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떠날 수 없었던 헤롯의 죄였다. 그가 왕이라 해도 요한은 엘리야가 아합에게 했던 것 이상으로 그를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헤롯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은 위험하며 헤로디아의 기분을 상하게 상하게 하는 것은 더욱더 위험한 일이었지만 요한은 자기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자기의 의무를 다하고 나머지는 운명에 맡겼을 것이다.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기를 바라는 주의 일군들은 사람의 얼굴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3) 헤로디아가 이 일로 요한에게 품었던 악의 :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19). 요한을 죽일 수 없게 되자 헤로디아는 그를 옥에 가두게 했다(17). 예언을 존중하는 척하는 많은 사람들이 오직 부담스럽지 않은 것만을 따른다. 그것도 그 예언이 그들의 죄와 전혀 상관이 없을 때에만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말씀의 사역자들이 자기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여 죄인들로부터 핍박을 받는 것이, 그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못하고 영원히 저주를 받는 것보다 더 낫다.

(4) 요한의 목을 베려는 음모 : 마침 기회 좋은 날이 왔으니(21). 왕의 생일에는 궁정 무도회가 벌어지게 된다. 생일 잔치를 장엄하게 빛내기 위하여 헤로디아의 딸이 공개석상에서 춤을 추고 또 헤롯은 그녀의 춤에 매혹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므로 왕이 그녀에게 '무엇이든지 너 원하는 것' 심지어 '내 나라의 절반까지도 주리라'는 엄청난 약속을 했음이 분명하다. 이 약속은 반드시 맹세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헤롯은 '맹세하되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가 주리라'(23)고 말했던 것이다. 어머니 헤로디아의 지시를 받았던 헤로디아의 딸은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했다. 그리고 그녀는 세례 요한의 머리를 가지고 놀 수 있는 예쁜 물건처럼 소반에 담아 헤로디아에게 갖다 주었음이 분명하다. 그리하여 헤로디아는 시간을 더 이상 지체하거나 놓치지 않고 세례 요한의 머리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헤롯은 헤로디아의 딸이 구하는 것을 허락했으며 앉은 자들이 함께 있을 동안 즉시 세례 요한의 목을 베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헤롯은 다음과 같이 가장했다. 그리고 그가 그런 약속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온 세상을 내준다 해도 그를 처형하게 하지 않았을 것처럼 보였다. 왕이 심히 근심하나(26). 그는 후회와 가책도 없이 이 일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양심은 본래 사람들이 쉽사리 죄를 짓게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는 자기가 한 맹세의 의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가장한다. 그러나 그 약속은 너무 경솔하게 이루어졌으며 또 아무리 약속이라도 그에게 불의한 일을 하게 할 수는 없었다. 죄로 가득찬 맹세는 뉘우쳐져야 하기 때문에 실행되어선 안된다. 만일 헤롯이 헤로디아의 음모를 몰랐다면 그가 이 처형을 서둘러 행한 것은 단지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을 흥을 돋우려는 목적 때문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을 인하여' 그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왕들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싶어하는 것 때문에 스스로 그들의 노예가 된다. 그래서 왕은 시위병 하나를 집행관으로 보냈다. 포악한 독재자들은 집행관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내린 가장 잔인하고 불의한 명령에 언제든지 복종하도록 한다.

(5) 세례 요한을 처형한 뒤 헤롯의 사악한 궁정은 온통 승리감에 도취되었으며, 세례 요한의 머리는 그 여아의 선물이 되어 그녀에 의해 그녀의 어미에게 전해졌다(28). 그러나 세례 요한을 따르던 경건한 무리들은 온통 비탄에 젖었다.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였다'(29).

[마태복음 성경주석 회개 말씀] 세례 요한의 회개 선포 말씀(마 3:7-17)

 

[마태복음 성경주석 회개 말씀] 세례 요한의 회개 선포 말씀(마 3:7-17)

마태복음 3장 성경주석 회개 말씀은 세례 요한의 회개 선포 말씀과 예수님의 세례식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성부 하나님의 음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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