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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주일 설교] 도마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등장(요 20:26-31)

엘벧엘 2024. 3. 21.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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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0장 부활 주일 설교 말씀은 예수님이 도마에게 나타나서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도마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도마에게 믿음을 주려고 합니다. 도마는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라고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도마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등장(요 20:26-31)

 

. 그리스도의 재출현(20:26-31)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또 다른 출현에 관한 기사를 보게 된다. 이때는 도마도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었다.

1. 그리스도께서 출현하신 때(26)

그날은 그의 부활로부터 '여드레 후인'날로서 '그다음 주의 첫날'이었음이 분명하다.

(1) 그리스도께서는 얼마동안 자신의 재출현을 지연시키셨다. 그것은 그가 저 세상에 속한 자들 중의 한 사람이란 사실과 때로 필요한 경우에만 이렇게 방문하신다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는 그의 사역의 초기에 40일 동안 모습을 드러내시지 아니하시고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으셨다. 그리고 이제 그는 그의 영광의 초기인 이 40일 동안 대부분 모습을 드러내시지 아니하시고 선한 천사들의 수종을 받으셨다.

(2) 그는 자신의 재출현을 7일간 지연시키셨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도마의 불신을 책망하시기 위해서였다. 기회가 여러 번 주어지는 법은 아니다. 한 번의 기회를 놓친 자는 다른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상당한 기간 동안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제자들이 기쁨으로 충만해 있었던 반면, 도마는 한 주일을 매우 우울하게 보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재출현을 지연시키신 또 하나의 이유는 나머지 제자들의 믿음과 인내심을 시험하시기 위해서였다. 제자들은 그들이 주를 보았다는 사실에 만족했을 때 커다란 성취감을 맛보았다. 그러나 주님은 과연 그들이 확보한 기반을 지킬 수 있는지를 시험하시고자 하셨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들이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그의 육체적 현존으로부터 그들을 점진적으로 떼어놓으시려고 하셨을 것이다. 그의 재현이 지체된 또 하나의 이유는 주일의 첫날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스도는 주의 첫날이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안식일로 준수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뜻을 명백히 알리시기 위해 그의 재현을 일주일간이나 지연시키셨다. 이 날을 엄숙하게 준수하는 것은 그때부터 교회의 전 시대를 통하여 우리에게 계승되었다.

2.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방문하신 장소와 그 과정(26)

이 방문은 예루살렘에서 행해졌으며,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유대인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문들이 닫혀 있었다. 이때 도마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었다. 비록 그가 전에는 그 자리에 없었으나 두 번씩이나 자리를 이탈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한 번의 기회를 놓쳤을 때, 우리는 다음의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더욱더 진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만일 그러한 손실이 우리의 갈망을 자극한다면, 그것은 좋은 징조이지만 그렇지 않고 그것을 식혀버리는 것이라면 그것은 나쁜 징후일 뿐이다. 제자들은 도마가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들은 그를 의문의 여지가 있는 논쟁에 끌어들이지 않고, 그가 기꺼이 와서 주를 만나 보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리스도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 사이에 있는 것을 발견하시고 서야 비로소 그에게 나타나셨다.

주님께서는 그가 도마를 책망하셨던 사실과 그 책망 중에서도 그를 온유하게 배려해 주셨던 사실에 대하여 모든 제자들을 증인으로 삼고자 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 사이로 오셔서 그 한가운데 서셨다. 우리 주 예수의 겸손하심을 보라. 그는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지상에 체류하시면서 가련한 제자들의 조그만 비밀 집회를 방문하사 그들 가운데 서 계신 것이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고 인사하셨다. 그리스도의 이 반복적인 말씀은 결코 무익한 것이 아니라 그가 엄청난 평강을 주실 것과 지속적으로 축복을 주실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3. 이 집회에서 그리스도와 도마 사이에 주고받은 내용(27-29)

본문은 이 사실만을 기록하고 있다.

(1) 도마에 대한 그리스도의 자비로우신 겸손(27):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로부터 도마를 불러내셔서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과 못자국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라고 말씀하셨다. (1) 그리스도서는 도마가 분명하게 언급한 것에 대해서 조목조목을 따져 응답하심으로써 그의 불신을 은연중에 책망하셨다. 비록 우리의 혀로 불신의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또한 마음속에 그런 생각을 전혀 품지도 않았을지라도, 주 예수께서는 우리의 불신을 알고 계시다. (2) 그리스도께서는 도마의 나약함을 겸손히 받아들이신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자신의 체면이 손상되는 것조차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여기서 그리스도께서는 도마를 불신 가운데 내버려 두시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도마의 환상과 같은 부질없는 일에까지 기꺼이 순응시키신다. 그리스도는 도마에게 그의 손을 자신의 옆구리에 넣도록 허락하심으로써 그가 믿을 수만 있다면 자신의 상처가 만져짐을 당하는 것조차도 감당하신다. 이와 같이 그는 우리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시기 위해 그의 죽음을 기억하게 하실 목적으로 하나의 의식을 제정하셨다. 그리고 우리가 그 의식 속에서 주의 죽음을 보고 있을 때, 우리는 그 못자국 속에 우리의 손가락을 넣어보라는 요구를 받는다. 그에게 우리의 손을 내밀자.

그리하면 그가 도움과 권유와 자비의 손을 우리에게 뻗치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도마에게 하신 최후의 말씀 곧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는 말씀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라'는 이 경고의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믿음이 없는 자들이라면, 우리에게는 그리스도도 없고 은혜도 없으며 소망과 기쁨도 없기 때문이다.

(2)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한 도마의 믿음: 이제 그는 자신의 불신을 부끄러워하며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28)라고 외친다. 우리는 그가 실제로 자신의 손을 그리스도의 못자국에 넣어 보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29)고 말씀하셨다. 즉 도마는 그를 본 것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이제 그는 믿음을 통하여 승리자가 되었다.

1) 이제 도마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진실성에 관한 의구심을 완전히 해소시켰다. 믿음에 대한 그의 소극적 자세와 후퇴는 오히려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2) 그러므로 도마는 그를 주님인 동시에 하나님으로 믿었으며, 우리도 그렇게 믿어야 한다. 우리는 그의 신성, 즉 그가 곧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그는 인간이 만든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이다. 우리는 그의 중보, 즉 그는 한 분이신 주님이심을 믿어야 한다. 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놓인 중대한 관심사들을 조정하시며, 우리의 행복에 필요한 가교를 설치해 주신다.

3) 도마는 그를 자기의 주님인 동시에 하나님으로 믿었다.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명하신 바가 우리에게도 임하게 되기를 간구하는 심정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한다. 그의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다"라는 이러한 고백은 생명력 있는 믿음의 행위이다.

4) 도마는 이상과 같은 사실을 공개적으로 고백했다. 즉 그는 그리스도를 향해 "당신은 나의 주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말했거나, 그의 동료들을 향하여 "이분은 나의 주요 하나님이시라"라고 말했을 것이다. 우리도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 하나님으로 영접하고 있는가? 우리도 그리스도께로 나아가 도마와 같이 말해야 하며, 또한 우리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승리하는 자들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해야만 한다. 도마는 그리스도를 진심을 다해 붙잡았던 사람처럼 열렬한 애정으로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부르짖었다.

(3) 그리스도의 결론적인 답변(29): 본문에서 그리스도는 '도마야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셨다(29). 그리스도는 도마를 신자로 인정하신다. 건전하고 신실한 신자들은 비록 그들이 연약하고 더디다 할 지라고 주 예수를 은혜롭게 영접할 것이다. 도마가 그리스도를 시인하자마자, 그리스도께서는 도마의 이전의 불신을 들어 그를 책망하신다. 도마는 믿는 데에 더디 하였으므로 그 자신의 위로에 이르는 데에도 그만큼 지연되었다.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따른 자들은 후에 그들이 왜 좀 더 일찍 그를 따르지 못했을까 하고 애석해하는 많은 이유들을 갖게 된다. 도마는 순탄치 못한 과정들을 거쳐 마침내 믿음으로 인도된다. 만일 우리 자신의 감각 외에는 어떠한 증거도 용납될 수 없고, 우리 자신이 목격한 것만 믿어야 한다면, 세상을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어떻게 개종시킬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을 크게 강조하기 위하여 도마는 마땅히 책망받은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보다 쉬운 방법을 통해 믿는 자들의 믿음을 칭찬하신다. 도마는 한 신자로서 실로 축복을 받았지만, 오히려 그리스도의 기적들과 특히 그의 부활을 보지 못하고도 믿은 자들이 더 큰 축복을 받았다. 이러한 일들을 보지 못하고도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복이 있다.

이러한 축복은 장차 믿게 될 사람들, 즉 그리스도의 육체를 본 적이 없는 이방인들에게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은 보고 믿은 자들의 믿음보다 더 칭찬할 만한 것이다. 보지 않고도 믿는 것은 믿는 사람들의 마음이 한결 훌륭하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보이는 것에 의존하는 자는 믿지 않으려고 내적인 저항 의식을 일종의 강압에 의해 극복해야 한다. 그러나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더욱 고귀한 자이다. 또한 보지 않고도 믿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나타내는 보다 큰 예증이 된다. 보고 믿는 자 들은 보지 않고도 믿는 자들보다 더욱 혈육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4. 역사가가 어떤 결론을 추론해 내듯이 이 복음서 기자가 밝힌 소견(30,31)

(1) 복음서 기자는 다른 많은 일들이 행해졌으나 '많은 표적들이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사실을 우리에게 확실하게 알려 주고 있다. 우리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기 위한 다른 표적들과 다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록한 자들은 부활에 관한 증거를 찾거나 그들이 찾아낼 수 있는 그런 단편적이고도 빈약한 증거물들을 채택하거나, 추측으로 그 나머지 부분을 보완하는 데에 급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충분히 여분이 있을 정도의 증거를 갖고 있었다. 제자들은 직접 다른 표적들이 행해지는 것을 목격했으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전도들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엄청난 양의 증거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당연한 것이었다. 우리는 왜 그 표적들이 모두 기록되지 않았는가, 왜 이보다 더 많은 표적들을 기록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왜 이것들 외의 다른 표적들을 기록하지 않았는가에 대하여 물을 필요가 없다. 이 기사가 단지 인간의 작품에 불과했다면, 그것은 논쟁의 쟁점인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성을 입증하기 위한 숱한 조서와 진술서들로 말미암아 그 양이 엄청나게 증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였으므로 필자들은 이 기사를 거룩한 보증으로 기술하였다. 따라서 이 기사는 기꺼이 가르침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자들을 확신시키고 완악한 자들을 불신 속에서 정죄하기에 충분했다.

만일 이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 많은 내용이 기록되었어도 역시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은 신용을 얻기 위해 온갖 말을 전하지만, 하나님은 믿음을 주실 수 있으므로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 만일 이 기사가 단순히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목적으로 기록된 것이라면, 이 복음서 기자는 좀 더 풍부한 내용을 수록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기사는 사람들을 믿음으로 인도하기 위해 기록되었고 그러한 의도에 충분히 부응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2) 복음서 기자는 우리가 접하는 본문의 기록의도를 우리에게 알려 준다. "너희로 예수께서 믿게 하려 함이요(31). 또한 예수는 그리스도이시자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1) 복음을 기록한 자들의 의도: 복음서 기자들은 본인에게나 다름 사람들에게 당면한 이익이 되는 어떠한 견해도 배제하고 오직 사람들을 그리스도와 천국으로 인도하고 그들을 믿도록 설득하기 위한 목적으로 복음서를 저술하였다.

2) 복음을 읽고 듣는 자들의 의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믿고 영접하는 것이 신자들의 의무이다. 우리가 믿어야 하는 위대한 복음의 진리는 예수는 곧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는 사실이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왕과 구세주로서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권능을 부여받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칭함을 얻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우리가 소망해야 할 위대한 복음의 축복은 그의 이름을 통하여 생명을 얻게 된다는 믿음인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의 방향을 지시해 준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은 생명이 우리의 기쁨을 충족시키는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을 격려해 준다. 인간은 어떤 커다란 이익이 기대될 때 모험을 감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명의 말씀에 의해서 제공되는 이익보다 더 큰 이익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 생명의 말씀은 영적인 생명과 영원한 생명 모두를 포함한다. 이 두 생명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서 얻어지며, 모든 진실한 신자들은 결코 파기될 수 없는 이 두 생명을 확실히 얻게 된다.

[마가복음 고난주간 설교] 빌라도 앞에 선 예수님(막 1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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