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원문 강해

[빌립보서 2장 헬라어강해]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빌 2:12-18)

엘벧엘 2022. 11. 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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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빌 2:12-18)

 

빌립보서 2장에서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영혼 구원받은 성도는 거룩한 성화 구원을 이루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행실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야 합니다. 영혼 구원받았다고 끝나버리면 자 범죄를 지을 때 하나님께 징계를 받습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영광된 삶을 살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 경: [빌2:12] 호테 아가페토이 무 카도스 판토테 휘페쿠사테 메 호스 엔 테 파루시아 무 모논 알라 뉜 폴로 엔 테 아푸시아 무 메타 포부 카이 트로무 텐 헤아우톤 소테리안 카테르가제스데

󰃨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 구원을 이루라 - '사랑하는 자들아'는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목양하는 자로서 친근감 있게 부르는 호칭이다. 친근한 호칭과 더불어 바울은 본절에서 '구원을 이루라'고 권면한다. '구원을 이루라'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그리스도인 개개인'의 차원에서 본절을 이해한다(Muller, Kent). 본절의 권면은 칭의 이후에 오는 성화의 과정에서 신인협동(神人協同)의 차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미 구원의 확증은 얻었지만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구원의 증거들을 실증하며 살아가야 함을 시사한다고 한다. (2) 혹자는 '그리스도인의 연합적인 차원'에서 본절을 이해한다(Hawthorne, Martin, Michael, Gnilka, Collan-ge). 바울은 4절에서 이미 개인적인 삶만 집착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돌보아 주라고 권면하고 있으며 본절 이하에서 개인적 구원의 문제를 생각한 종말론적인 분위기가 전혀 나타나지 않기에 교회 전체의 집합적, 공동체적 권면으로 볼 수 있다고 한(Hawtho-rne). 이러한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Lenski). 왜냐하면 '구원'에있어서 '개인''교회'는 분리할 수 없는 불가 분리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구원의 완성을 향해 계속해서 성숙해가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협력하여 나아가야 한다(4:1-6).

󰃨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 구원을 이루어가는 방법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전적으로 의지하여 하나님의 계획과 명령에 늘 순종하는 것이다(Martin, Kent).

성 경: [빌2:13] 호 데오스 가르 에스틴 호 에네르곤 엔 휘민 카이 토 델레인 카이 토 에네르게인 휘페르 테스 유도키아스

󰃨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 '행하시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네르곤'은 현재분사로 하나님께서 진정한 힘을 부여하시며 우리의 결심과 소원까지도 인도하시는 분임을 시사한다(Hendriksen). 그렇다고 해서 본절이 인간의 자유 의지나 책임적 선택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일의 계획과 성취에 있어서 그 모든 것을 인도하시되 강제적인 방법이나 수단으로 하시지 않는다(Kent). 이런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은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는다. 이것은 비록 온전히 이해할 수없을 만큼의 신비 일지 모르지만 바울이나 성경이 명백히 증거 하는 교훈이다(Hawthorne, Lenski).

성 경: [빌2:14] 판타 포이에이테 코리스 공귀스몬 카이 디알로기스몬

󰃨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 '원망''투덜대는 불평'을 의미하며 '시비''악의(惡意) 있는 논쟁'을 의미한다. 결국 사소한 일을 가지고 '악의 있는 마음으로 불평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후자는 바울이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15-17;14-17)들을 염두에 두고 서로 유비(類比)시켜 기록한 것으로 추측한다(Kent). 그러나 이러한 추측은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본문에서 그와 같은 추정을 내릴 만한 근거가 전혀 없으며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권위를 빙자하여 하나님께 도전한 반면에 빌립보 교회의 문제는 순수히 교회 내부의 불화(2)이기 때문이다(Hawthorne, Martin). 바울은 교회 내에서 불평과 싸움이 없이 모든 일을 행하기를 권면한다.

성 경: [빌2:15] 히나 게네스데 아멤프토이 카이 아케라이오이 테크나 데우 아모메타 엔 메소 게네아스 스콜리아스 카이 디에스트람메네스 엔 호이스 파이네스데 호스 포스테레스 엔 코스모

󰃨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빛들로 나타내며 - '흠이 없고'는 타인에게 책망받을 만한 일이 없는 것을 의미하며 '순전하여'는 이질적인 것이나 온전치 못한 것이 전혀 섞이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타인에게 책망받을 만한 일이 없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온전한 성품을 닮아서 세상에 빛을 나타내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빛으로서 온 세상을 비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5:14;5:8).

󰃨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 -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이 빛을 드러내야 할 '세상'을 의미한다. 빌립보 교인들이 현재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악과 연합한 타락한 세대이다(6:12).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는 빌립보 교인들의 사명은 흠이 없는 자로서 세상에 빛을 드러내는 것이다.

성 경: [빌2:16] 고곤 조에스 에페콘테스 에이스 카우케마 에모이 에이스 헤메란 크리스투 호티 우크 에이스 케논 에드라몬 우데 에이스 케논 에코피아사

󰃨 생명의 말씀을 밝혀 - '밝혀'의 헬라어 '에페콘테스'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단단히 붙들다'이며, 다른 하나는 '제시하다'이다. '에페콘테스'의 의미에 따라서 본절에 대한 해석도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1) 혹자는 본절을 앞절의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와 대조하여 '생명의 말씀을 단단히 붙들다'란 의미로 해석한다(Lightfoot, Moffatt) (2) 혹자는 '제시하다'는 의미를 받아들여 세상에 '생명의 말씀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Muller, Lenski, hawth-orne). 두 가지 견해는 서로 다른 견해가 아니다. 전자의 견해는 후자를 뒷받침해 준다.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의 말씀 즉 복음을 굳게 붙들지 않으면 그것을 세상에 밝히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Kent).

󰃨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 빌립보 교인들이 생명의 말씀에 사로잡혀 말씀을 세상에 밝히 드러낼 때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해산의 수고를 하고 고난 가운데 복음을 전파하여 열매를 맺은 것이 헛되지 않게 되며 '그리스도의 날' 즉 재림 때에 '자랑'이 된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그리스도인들 이 땅에서 애써 수고한 대가를 보상받을 것이다(Kent).

성 경: [빌2:17] 알르 에이 카이 스펜도마이 에피 테 뒤시아 카이 레이투르기아 테스 피스테오스 휘몬 카이로 카이 슁카이로 파신 휘민

󰃨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 '관제'는 고대 제사의 관습에서 포도주를 제물에 붓는 행위를 가리킨다. 바울은 이런 제사 행위를 연상시켜 자신의 순교를 암시한다. '관제로 드릴지라도'의 헬라어 '스펜도마이'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현재 수동태로 보아서 가까운 미래의 의미를 포함하는 형태라고 해석하여 현재나 가까운 장래에 바울 자신이 순교당할 것을 예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Hendriksen, Martin). (2) 혹자는 현재 중간태로 보아서 바울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교의 제단에 드리려는 심정을 고백한 것이라고 주장한다(Lenski). 두 가지 견해 중전자가 타당하다. 신약성경에서 '스펜도마이'는 두 번 나타나는데(17;딤후 4:6) 모두가 수동태로 사용되고 있다(Kent). 따라서 본문은 바울 자신이 가까운 장래에 순교당할 것을 예견(豫見)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믿음의 제물과 봉사'의 헬라어 '테뒤시아 카이 레이투르기아 테스 피스테오스'에서 '제물과 봉사'는 하나의 관사 ''로 수식을 받고 있다. 이것은 '제물과 봉사''희생적 봉사'를 의미하는 중언법적 표현임을 시사한다(Kent).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행하는 모든 희생적인 봉사 위에 자신을 관제로 즉 순교로써 드린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한다. 이러한 사실은 바울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음과 교회를 위한 바울의 헌신적인 열정을 시사한다(Muller).

성 경: [빌2:18] 토 드 아우토 카이 휘메이스 카이레테 카이 슁카이레테 모이

󰃨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 본절은 바울 자신의 고난과 순교가 빌립보 교인에게 슬픔과 좌절보다는 기쁨과 소망이 되도록 하라는 권면이다. 앞절과 본절에 '함께 기뻐하라'가 계속 나오므로 혹자는 17절의 '함께 기뻐하니''축하하다'로 해석한다(Meyer, Lightfoot). 이미 빌립보 교인들이 기뻐할 내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본절에서 두 번씩이나 기뻐하라고 권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문맥상 어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관제로 순교를 당할 바울에게 '축하를 보낸다'는 것은 문맥에 맞지 않는 어색한 표현이기 때문이다(Kent, Mu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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