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장에서는 오순절에 베드로가 성도를 향하여 설교를 하고 있다. 성령 강림으로 인하여 성도의 마음은 뜨거워 있었다. 베드로는 메시아인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다. 성령님이 임할 것을 요엘의 말씀을 통해서 증거 했다. 베드로는 뜨거운 마음으로 예수님이 죽고 무덤에서 부활하셔서 자기들에게 보인 것을 증거 했다. 성도는 부활의 주님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해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부활시켜 주셨다. 성도도 마지막 날에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거 설교(행 2:23-36)
성 경: [행2:23] 투톤 테 호리스메네 불레 카이 프로그노세이 투 데우 에크도톤 라본테스 디아 케이론 아노몬 프로스페산테스 아네일레테
주제1: [성령의 강림과 역사(役事)]
주제2: [베드로의 설교 - 예수의 참 메시아 되심]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 '정하신'(호리스메네)이란 '고정되어진, 결정되어진'의 의미로 하나님의 뜻을 영원 속에 두었다는 말이다. 이는 하나님이 영원 속에서 예수를 통한 구원 계획을 가지셨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정하신 뜻은 인간에 의해서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유대인의 악한 행위가 하나님의 영원 전에 세우신 계획을 바꿀 수 없었던 것이다.
내어준 바 되었거늘 - '내어준바'(에크도톤)는 동사적 형용사로서 수동분사와 같은 용법으로 사용되었다. 이에 대해 혹자는 이 표현이 유다에 의하여 내어 준 바 되었다는 것으로 이해한다(Robertson). 그러나 오히려 본절에서 베드로는 내어준 자에 단순히 유다만 포함시키지 않고 예수에 대해 거짓 증거하고 조롱했던 유대인들도 포함시키고 있는 듯하다.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 이 표현은 팔레스틴의 로마 당국자들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유대 당국자들에 의하여 선동(煽動)되는 그대로 실행하였던 자들이다(Richard N. Longenecker). 유대교 문헌에서는 이방인들이 '악한자들'(고전 9:21)로서 종종 표현되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고의로 죄를 짓는다거나 또는 단순히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못한 자들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못 박아 죽였으나 - 독자들은 그곳에 모인 자들 모두가 예수를 못 박아 죽인 것처럼 베드로가 표현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죽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그렇게 표현한 것은 예수를 죽음에 내어주어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개개인의 죄가 아니라 유대 민족 전체의 죄였기 때문이다.
성 경: [행2:24] 혼 호 데오스 아네스테센 뤼사스 타스 오디나스 투 다나투 카도티 우크 엔 뒤나톤 크라테이스다이 아우톤 휘프 아우투
주제1: [성령의 강림과 역사(役事)]
주제2: [베드로의 설교 - 예수의 참 메시아 되심]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 본문에서는 예수의 부활이 법 없는 자들의 어떤 행동과는 전적으로 무관하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엡 1: 19,20)을 따라 된 일임을 밝혀주고 있다. 예수의 부활은 본서에서 핵심 되는 주제이다(32절; 3:15; 4:10; 5:30; 10:40; 13:30-34, 37; 17:31; 26: 23) 여기에서 '사망의 고통'은 히브리어의 배경에 의하면 사냥꾼들이 포획하기 위하여 놓은 덫과 같은 '죽음의 덫', 혹은 '매는 줄'을 뜻한다. 예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으나 죄가 없으시므로(히 4:15; 9:28; 벧전 2:21; 요일 3:5) 그 사망의 올무에 매여 있지는 않으셨다. 그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것이다(고전 15:4-6).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 이 구절은 예수의 메시아 되심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말이다(요 20:9). 사망조차 예수 위에 왕노릇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베드로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되신 권위를 입증하고자 했다.
성 경: [행2:25] 다비드 가르 레게이 에이스 아우톤 프로오로멘 톤 퀴리온 에노피온 무 디오 판토스 호티 에크 데시온 무 에스틴 히나 메 살류도
성 경: [행2:26] 디아 투토 유프란데 헤 카르디아 무 카이 에갈리아사토 헤 글롯사 무 에티 데 카이 헤 사르크스 무 카타스케노세이 에프 엘피디
성 경: [행2:27] 호티 우크 엥카탈레이프세이스 텐 프쉬켄 무 에이스 하두 우데 도세이스 톤 호시온 수 이데인 디아프도란
성 경: [행2:28] 에그노리사스 모이 호두스 조에스 플레로세이스 메 유프로쉬네스 메타 투 프로소푸 수
주제1: [성령의 강림과 역사(役事)]
주제2: [베드로의 설교 - 예수의 참 메시아 되심]
베드로는 자신의 주장을 확증하기 위하여 구약의 시편(16: 8-11)을 인용한다. 이는 자신이 8절에서 예수에 대하여 말한 바를 성경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다. 시 16: 8-11은 대표적인 메시아 예언에 대한 기록 중 하나로서 메시아의 부활(復活)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이 예언의 말씀을 들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가 바로 메시아인 것을 입증하려는 것이다. 베드로의 이와 같은 논중은 예수 자신에 의하여 세워진 해석에 기초하고(막 12: 35-47 참조), 부활 이후의 기독교 전통에도 부합되며, 또한 그 당시에 일반적으로 인용되었던 미드라쉬의 제반 해석 방법과도 일치되게끔 표현된 하나의 논증이다(Richard N. Longenecker).
성 경: [행2:29] 안드레스 아델포이 엑시온 에이페인 메타 파르레시아스 프로스 휘마스 페리 투 프트리아르쿠 다비드 호티 카이 에텔류테센 카이 에타페 카이 토 므네마 아우투 에스틴 엔 휘민 아크리 테스 헤메라스 타우테스
주제1: [성령의 강림과 역사(役事)]
주제2: [베드로의 설교 - 예수의 참 메시아 되심]
형제들아 - 이 말은 헬라어 본문에 따라 직역하면 '사람 형제들아'라는 말이다. 이는 '유대인들아'(14절)라는 말이나 '이스라엘 사람들아'(22절)라는 말보다 친근감 있는 표현이다. 베드로는 이제까지 인용한 구약의 맡씀에 대한 결론을 말하려고 공손히 청중들의 주의를 끌고 있다.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 여기에서 "말할 수 있노니'란 헬라어 본문에 따르면 '말하게 허락하면'의 뜻이다. 흠정역(KJV)에서는 이를 잘 반영하여 '나로 말하게 하라'(Let me speak)고 번역했다. 여기서 베드로는 '조상 다윗에 대하여' 말할 때 자신이 청중들과 형제로서, 이스라엘의 왕통의 선조로서 존경받는 다윗에 대해 말할 수 있게 허락해 달라는 공손한 태도를 나타냈다.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 다윗의 묘는 실로암 못 남쪽에 있었는데(Bruce) 현재는 예루살렘 마가의 기념교회 가까운 곳에 다윗의 무덤으로 알려진 유대교의 성기가 있다고 전해진다. 다윗은 이처럼 죽어서 그 무덤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기 때문에 앞서 인용한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이란 구절은 자신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었음이 분명하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다윗의 묘는 여러 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그중에 하나는 요한 힐카누스(John Hyrcanus)에 의해 3,000 달란트의 돈이 도난당했으며 그 후 헤롯에 의해 다른 방도 도굴(盜掘)되어 더 많은 돈이 도난당했다고 전해진다.
성 경: [행2:30] 프로페테스 운 휘파르콘 카이 에이도스 호티 호르코 오모센 아우토 호 데오스 에크 카르푸 테스 오스퓌오스 아우투 토 카타 사르카 아나스테세인 톤 크리스톤 카디사이 에피 투 드로누 아우투
주제1: [성령의 강림과 역사(役事)]
주제2: [베드로의 설교 - 예수의 참 메시아 되심]
그는 선지자라 - 다윗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메시아에 대해 예언했기 때문에 선지자였다(삼하 23:2;마 22:43). 비록 구약에서 그가 예언하는 무리 중에 포함되어 예언한 적은 없으나 자신의 후손 중에서 메시아가 나올 것을 미리 알고 예언했으므로 영감 받은 선지자 중 하나로 여겨질 수 있다.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하심을 알고 -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처음 하신 약속은 삼하 7:11-16에 기록되어 있다. 그 본문에서 언급된 것처럼 '맹세'에 관한 표현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 89:3,35에서는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나의 거룩함으로 맹세하였은즉...', 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말씀들은 하나님 자신의 신실성과 거룩함에 근거하여 영원 불변한 서약으로 맹세하신 것을 알 수 있다.
성 경: [행2:31] 프로이돈 엘랄레센 페리 테스 아나스타세오스 투 크리스투 호티 후 카텔레이프데 헤 프쉬케 아우투 에이스 하두 우데 헤 사르크스 아우투 에이덴 디아프도란
주제1: [성령의 강림과 역사(役事)]
주제2: [베드로의 설교 - 예수의 참 메시아 되심]
미리 보는 고로...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 이 구절은 이미 인용된(27절) 시 16:10에 대한 해석이다. '미리 본다'는 것은 선지자로서 계시와 영감을 가지고 행하는 것을 의한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선지자는 예언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기능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선지자를 단순히 예언자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다윗은 장래에 될 일을 미리 보고 예언한 예언자이면서 영감 받은 시(詩)를 많이 써서 하나님을 찬양한 선지자였다. 다만 본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언과 관련된 다윗의 선지자의 기능이 강조되고 있다.
성 경: [행2:32] 투톤 톤 이에순 아네스테센 호 데오스 후 판테스 헤메이스 에스멘 마르튀레스
주제1: [성령의 강림과 역사(役事)]
주제2: [베드로의 설교 - 예수의 참 메시아 되심]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 베드로는 이미 22절에서 '예수'를 언급했으며 그다음부터 예수에 대해 적용된 예언을 설명했으므로 본절에서 '이 사람을'(투톤)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베드로는 '이'를 사용함으로써 다윗에 의해 예언된 메시아가 바로 '예수'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베드로는 자연스럽게 예수의 부활이 예언의 성취임과 역사적 사실임을 강조했다.
우리가 다 이일에 증인이로다 - 본 구절의 헬라어 본문에 관계대명사 '후'가 사용되어 해석상의 문제를 야기시킨다. 즉 본 구절은 이 관계대명사의 선행사(先行詞)가 무엇이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1) 하나님:이에 따라 본문을 직역하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증인이다.' 벵겔(Bengel) 같은 학자들이 이해석을 지지한다. (2) 앞절 전체: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를 받는 것으로 이해하여 개역 성경처럼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다(Meyer, Lenski, Bruce, Ralph Earle). 대부분의 영역 성경도 이 번역을 취한다. (3) 예수:'우리 모두가 예수의 증인이다' 란 의미가 된다(Alford, Knowling).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의 부활을 강조하여 설교하고 있으므로 '예수'아 '하나님'을 선행사로 취하는 것보다 앞절 전체를 선행사로 보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따라서 베드로는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모든 자들이 부활에 대한 증인임을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의 부활은 사도들의 중심 메시지였고, 그들은 본절 외에 네 차례나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증인들이라고 강조했다(3:15; 5:32; 10:39-41; 13:30,31). 그들은 자기들이 보고 들은 것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성 경: [행2:33] 테 덱시아 운 투 데우 휩소데이스 텐 테 에팡겔리안 투 하기우 프뉴마토스 라본 파라 투 파트로스 엑세케엔 투토 호 뉜 휘메이스 블레페테 카이 아쿠에테
주제1: [성령의 강림과 역사(役事)]
주제2: [베드로의 설교 - 예수의 참 메시아 되심]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 여기에서 '오른손으로"란 하나님의 전능과 그의 권능을 상징하는 말이지(엡 1:20; 히 1:3; 8:1; 10:12; 12:2 벧전 3:22 비교) 승천한 예수의 위치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은 아니다. 물론 허비(Hervey)는 '오른손으로'를 '오른편에'로 해석하여 예수가 승천하여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시는 것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여격이 장소로의 의미보다는 방법의 의미를 나타내므로 타당하지 않다. 한편 '높이시매'라는 말은(3 :13; 빌 2:9) 그리스도의 몸의 부활과 승천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영광스러움을 내포하는 말이다. 이것은 신학적인 용어로 예수의 승귀(昇貴)라 칭한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 예수가 약속하신 성령(1:5; 요 14:16; 16:13)을 아버지께 받아서 보내는 권능을 얻었다'(1:8; 요 14:26; 15:26; 16:7)는 표현은 성경의 곳곳에서 언급되고 있다. 이처럼 성령은 성부께로부터 나와서 성자를 통해 오시는 것이다. 여기서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온다는 종교 회의의 결정이 비롯되었다(니케아 신조).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 무리들이 보고 들은 것은 성령이 임했을 때 일어났던 현상에 대한 것으로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3절)과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2절)와 백이십 명이 '다른 방언으로 말하는 것'(4절)을 가리킨다.
부어주셨느니라 - (엑세케엔). 이 말은 '에크케오'(쏟아버리다)의 부정과거형으로 예수께서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셨음을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이 말은 선지자 요엘에 의하여 사용된 표현으로(17절) 그의 예언이 여기에서 성취되었음을 의미한다.
성 경: [행2:34] 우 가르 다비드 아네베 에이스 투스 우라누스 레게이 데 아우토스 에이펜 호 퀴리오스 토 퀴리오 무 카두 에크 덱시온 무
주제1: [성령의 강림과 역사(役事)]
주제2: [베드로의 설교 - 예수의 참 메시아 되심]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 그는 죽어서 장사되었고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당시에 그의 무덤은 예루살렘 가까이에 있었다. 그리고 그의 육체는 무덤에서 썩었고 승천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지금 인용할 이 시는 다윗 자신에 적용시킬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승천에 대하여 이야기할 것이었다.
주께서 내 주에게 - 이 구절은 시 110:1의 인용으로 후기 유대교 시대에 유대교 해석자들이 난해한 문제로 삼았던 구절이다. 문제는 '내 주'가 과연 누구인가 하는 문제인데 몇몇 고대의 랍비들은 이 시편을 아브라함과 관련지어 해석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다윗과 관련지어 해석했으며 심지어는 히스기야 왕과 관련지어 해석할 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기원후 약 7년이 될 때까지 랍비 문헌에서 이 시편 110편이 메시아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 확실한 중거도 없다(D. M. Hay)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시 110: 1을 메시아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하여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適用)시킨 적이 있다(마 22:41-46; 막 12:35-37; 눅 20:41-44). 베드로는 이 시편이 메시아에 대한 예언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언급했다.
성 경: [행2:35] 헤오스 안 도 투스 에크드루스 수 휘포포디온 톤 포돈 수
주제1: [성령의 강림과 역사(役事)]
주제2: [베드로의 설교 - 예수의 참 메시아 되심]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 바울이'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빌 2 :10)라고 가르친 적이 있듯이 '발등상 된다"는 것은 항복을 의미한다.
성 경: [행2:36] 아스팔로스 운 기노스케토 파스 오이코스 이스라엘 호티 카이 퀴리온 카이 크리스톤 아우톤 호 데오스 에포이에센 투톤 톤 이에순 혼 휘메이스 에스타우로사테
주제1: [성령의 강림과 역사(役事)]
주제2: [베드로의 설교 - 예수의 참 메시아 되심]
그런즉 이스리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 베드로는 본문에 이르러 예수를 주와 메시아로 선포하여 자기 설교의 절정이자 결론에 도달했다. '온 이스라엘'(파스 오이코스 이스라엘)이란 문자적으로는 "이스라엘의 모든 집'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말은 매우 강조적인 표현으로 이스라엘 전 민족 또는 종교적 공동체를 가리킨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 예수는 자신의 메시아 직분을 공생애를 통하여 죽기까지 하심으로 완전히 성취하셨고 또한 하나님에 의해 부활하셨으며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므로 '주와 그리스도'란 칭호가 그에게 참으로 합당한 것이다. 또한 이 칭호가 그에게 합당한 이유는 신약의 다른 여러 곳에 나타나는 기독론적인 진술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롬 1:4; 빌 2:9-11; 히 3:14; 요일 5:6). 특별히 이 '주와 그리스도'라 는 칭호는 바로 베드로의 메시지의 제목이요 초대 교회 신앙 고백의 내용이었다(롬 10:9; 고전 12:3). 한편 여기서 그리스도에 적용되는 주(퀴리오스)는 아마 구약의 여호와와 일치되는 표현이다. 즉 34절에 인용된 '주께서'가 시 110:1에서 '여호와께서'로 언급되었으며 70인 역(LXX)에서 '퀴리오스'로 번역되었다. 또한 '여호와'란 표현을 70인역은 거의 대부분 '퀴리오스'로 번역하고 있다. 따라서 베드로는 구약의 '여호와'와 '예수'를 상호 관련시키고 있는 듯하다(Stanley D. Taussaint). 또한 베드로는 설교 속에서 '주'란 표현을 예수와 하나님께 동시에 적용시키고 있다(21,34,39절). 그러므로 여기에 이 단어가 사용된 것은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에 대한 강조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이 ' 주와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의 유일한 소망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최고의 능력과 영광으로 유대 민족을 로마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모든 민족 위에 높여주는 정치적인 위대한 통치자로서의 주와 그리스도, 곧 메시아를 기대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그들은 예수가 자신들의 메시아 사상과 부합되지 않게 가르치며 활동하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이다.
[룻기 3장 히브리어 강해설교] 룻의 청혼과 보아스의 승락(룻 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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