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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성경 복음 설교말씀]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수 10:6-11)

엘벧엘 2023. 4. 26.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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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0장에서는 여호수아 군대가 가나안 남부 지역을 점령하면서 아모리 동맹군과 싸우게 됩니다. 기브온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 군대를 도와주셔서 승리하게 됩니다.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을 때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수 10:6-11)

 

오늘 본문 이전의 사건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성을 단숨에 점령했습니다. 또한 아이성보다 크고 더 강한 기브온마저도 속임수로 이스라엘과 화친한 신흥 이스라엘의 막강한 세력은 주변거민들은 더욱 위협을 느꼈습니. 이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왕 아도니세덱이 주동이 되어 헤브론, 야르뭇, 라기스, 에글론, 왕들이 모여서 5개국이 연합해서 기브온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보냈습니다. 이것이 오늘 읽지 않은 본문 전의 상황입니다. 5개국 연합군의 선전포고를 받은 기브온 사람들이 급히 길갈로 전령을 보내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사람은 이 땅에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여호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도움, 사람의 도움과 사람의 의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사람의 도움

사람의 도움의 동기는 무엇입니까? 10:1-2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수아가 아이를 취하여 진멸하되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한 것과 또 기브온 거민이 이스라엘과 화친하여 그중에 있다 함을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듣고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기브온은 왕도(王都)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 예루살렘왕 아도니세덱이 주변 헤브론 왕을 비롯해서 4개국을 불러 모은 동기는 크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협동, 도움은 자기의 두려움에서 출발합니다. 두려움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입니까? 키가 자라듯이 두려움도 자라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 두려움을 막기 위해서 사람들은 서로 도와줍니다. 외로움의 두려움을 막기 위해서 결혼을 하고 고독의 두려움을 막기 위해서 교제를 하고 친교를 합니. 그러나 고독을 피하기 위해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인간적인 발상에서 나온 결혼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본래의 뜻과 목적을 마침내 이루어 내지 못하고 더 큰 외로움과 고독에 빠지게 됩니다. 혹기 사귀는 사람이 외로워서, 고독하는 것이 두려워서 사랑하고 결혼을 요청해 온다면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바탕에 벌써 인간의 두려움을 막기 위해서 한 인간의 수단과 방법은 결코 두려움을 줄여 주지 못합니다. 세상은 점점 두려워지고 있습니다. 2, 3의 살인자들이 생겨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서로 힘을 합하여 애쓴다고 두려움이 사라집니까? 두려움을 막기 위한 사람의 도움의 한계성 있기 때문입니.

1> 사람의 도움은 단편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이 돕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도우는데 정으로 도우면서 많은 도움을 준 듯 착각합니다. 예컨대 정으로 도우는 사람은 동정은 가지만 지식과 의지가 따르지 않는 사람은 나중에 도운 것을 기억합니다. 큰 교회에서 우리 교회에 도운 것을 교회 주보에 깨알같이 인쇄해서 알립니다. 사람의 지정의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도울 때 그 안에서 기쁨도 있기 때문입니다. 장애자를 돕는 것도 감정으로만 돕는 것을 장애인들이 가장 귀찮아합니다. 장애자가 지나갈 때 측은히 여기고 가엽게 여기는 눈으로 바라봅니다. 행동만 따르는 도움은 장애자가 지금 무엇이 필요하다는 지식이 없으면 차라리 동정조차도 거두워 주었으면 하는 것이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심정임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6:1-4절 말씀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제가 불안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전인격적인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2> 사람의 도움은 아무리 전인적이고 완벽하다고 할지라도 영원히 지속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완벽해도 사람의 도움에 한계가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 1:17절에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 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고 권면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분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이 땅의 생활이 어떻습니까?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서 이 세상의 다른 도움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착각입니다. 이 구름과 같은 세상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도움을 날마다 체험하고 지내십니까? 날마다 그분의 말씀이 여러분을 인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도움을 지난 주간에도 몇 번씩 체험하였습니까?

2. 하니님의 도움

위급해진 기브온 사람들이 드디어 도움을 여호수아에게 청하였고 여호수아는 여호와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6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그들의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하신지라 전쟁에서 이길까 질까 아리송하다면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손에 대적을 붙여 주신다는 확신을 주심으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싸운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전쟁은 신나고 재미있는 싸움이 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 10:3-4 하나님 앞에서의 싸움을 이렇게 피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린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경쟁은 육체적인 경쟁이 아니다.라는 그런 말씀입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의 능력입니다. 요새를 부수는 강력한 능력입니다. 우선 자신의 마음을 부시어 평정케 하는 바울은 최후의 진지를 파괴할 수 있는 성령의 힘을 염두에 두고 강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쓰는 뒤나미스와 같은 어원인 뒤나토스를 사용했습니다.

우리들의 싸움은 날마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전쟁이 있는 것을 말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 죽음은 우리가 위의 죄 때문에 누구나 죽습니다. 한번 죽는 것이 사람의 정한바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을 찾지 할 것을 우리 손에 붙인다는 확신을 주어서 도움을 줍니다. 확신이 지금 이 시간 여러분에게 찾아왔습니까? 하나님의 도움입니다. 모든 것을 내손에 붙여주신다는 확실한 음성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의 결혼의 의미는 도와가면서 살기 위해서 확신한 후로부터는 결혼의 의미가 변합니다. 성도의 결혼의 의미는 나의 아내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 손에 붙여 주신 것입니다. 이웃도 교회도 하나님께서 내 손에 붙여주신 공동체이기 때문에 쉽사리 돌아서지 않고 그 공동체를 위하여 최선을 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손에 붙여 주신 것을 구체적으로 믿고 어떤 행동을 했습니까? 확신으로 우리를 도우고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도우심 자연법을 초월해서 도우십니다.

사람이 아무리 도우려고 해도 자연의 법칙을 초월해서 도우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것은 자연을 초월해서 도와주십니다. 지금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자연의 법칙을 초월해서 도움을 받습니다. 11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덩이 우박을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우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욱 많았더라 우박이 내려서 이스라엘 연합군이 도륙하고 멸절하는데 이스라엘의 자손보다 우박의 피해로 죽은 사람이 더 많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무엇을 의미합니까?

초자연적으로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데 예수님은 하나님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소리를 곁에서 듣던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 사람이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생각해서 참람하도다고 생각했습니다. 서기관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고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언급하지 못했습니다. 죄에 대하여 벌을 내리겠다든지, 용서하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권세에 대한 월권이며 신상 모독입니다.

중풍병자를 고치는 일은 사람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은 것은 영혼이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 사함을 주는 것을 어리석고 미련하다고 이방인이 비난했지만 그것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은 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모두 이 도움이 필요합니다.

확실히 죽어도 다시 산다는 확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인하여 초자연적인 죄 사함의 도움을 지금 받았습니까한계가 있는 사람의 도움에 매여 있으렵니까? 감정이나 지식의 행동의 도움에 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유산을 남기지만 그것 역시도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함이 필요치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죄 사함을 받고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히브리어로 보는 창세기 말씀] 하나님의 무지개 언약(창 9: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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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9장에서는 하나님이 홍수로 심판하지 않는다고 노아와 무지개로 언약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성을 보시고 심판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아시고 홍수로 심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인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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