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히브리어 성경주석 열왕기하 중에서 세 오십부장과 아하시야의 죽음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아하시야가 엘리야에게 세 오십 부장을 보냈습니다. 엘리야는 산에 앉아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을 내려 오십부장과 군사 오십 명을 불살랐습니다. 아하시야는 세 명을 보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아하시야는 죽었습니다.
세 오십부장과 아하시야의 죽음(왕하 1:9-18)
9절 바이쉘라흐 엘라이브 사르 하미쉼 바하미솨이브 바야알 엘라이브 베힌네 요셰브 알 로쉬 하하르 바예다베르 엘라이브 이쉬 하엘로힘 하멜렉크 디베르 레다
=====1:9
오십부장과 그 오십 인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매 - 각 부장 제도는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충고에 따라 모세가 처음으로 세운 이스라엘의 준 군사 체제이자 행정 조직이다(출 18:21-25). 이때 세움 받은 부장들은 곧 십부장, 오십부장, 백부장, 천부장인데 이러한 군대 조직의 체계는 고대 근동에 있어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였다. 한편 아하시야 왕이 오십부장과 그 오십인을 엘리야에게로 보낸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첫째, 엘리야가 순순히 따라오지 않을 경우, 강제로 끌고 오기 위해서이다. 그렇지 않고 아하시야가 선의를 가지고 있었다면 한 사람의 사자만 보냈어도 충분하였을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의 초인적인 능력을 의식했기 때문이다(요 18:3). 이처럼 아하시야는 선지자 엘리야에 대한 강한 적의를 품었을 뿐만 아니라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당돌하게 대항하려고 했던 것이다.
산 꼭대기에 앉았는지라 - 여기서 '산'이란 뜻의 '하르'에는 어떤 특정한 대상을 가리키는 정관사 '하')가 붙어있다. 이것은 본절의 '산'이 앞서 엘리야가 왕의 사자들과 만났던 바로 그 산(3절) 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절은 엘리야가 여호와의 사자의 명령대로 시행한 후(3,4절) 도망하지 않고 아하시야가 취할 다음 단계의 행동을 조용하고 냉정하게 기다리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한편 분명하지는 않으나 일부 학자들은 엘리야가 앉아 있던 산이 갈멜산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사실 갈멜 산은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과 싸우던 곳으로써(왕상 18장) 본장의 주제와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 주체는 바로 하나님의 사자와 왕의 사자 간의 싸움인데 그 싸움의 승패를 결정짓는 심판자는 앞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왕상 18:38)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불이었다(10, 12절).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내려오라 하셨나이다 - 여기서 '내려오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레다'로서 '싸우려 산에서 내려오다', 또는 '홍수처럼 급히 내려오다'라는 뜻의 동사 ('야라드')의 능동태 명령형이다. 따라서 이는 아하시야가 일국의 왕으로서 엘리야에게 명령하고 있는 말임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사람이여'는 선지자를 부를 때 흔히 쓰는 호칭이다(삼상 2:27;9:6,10). 그러나 아하시야가 엘리야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은 점으로 보아 여기서는 엘리야를 빈정대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즉 엘리야를 향하여 명령을 내리는 아하시야 왕의 태도는 존경보다는 경멸에 가까운 것이었다. 한편 '이르되'로 번역된 히브리어 '예다베르'는 피엘형(Piel;강조형 능동)으로서 '거듭거듭 말한다'라는 뜻이다. 이처럼 동일한 말을 두 번 세 번 반복함으로써 엘리야의 감정을 자극한 것으로 보아 오십부장 역시 아하시야의 명령을 전달함에 있어서 동일한 경멸의 자세를 취하였음이 분명하다.
10절 바야아네 엘리야후 바예다베르 엘 사르 하하미쉼 베임 이쉬 엘로힘 아니 테레드 에쉬 민 하솨마임 베토칼 오트카 베에트 하미쎄이카 바테레드 에쉬 민 하솨마임 바토칼 오토 베에트 하미솨이브
=====1:10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 이 말은 자신의 권위를 실제로 증명해 보이겠다는 일종의 선포이다. 즉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이제 엘리야는 왕의 권위보다 더 큰 하나님의 권위를 그들에게 증명해 보이겠다는 말인 것이다. 한편 이러한 권위 증명의 문제는 신약 시대 당시 예수께서도 서기관과 제사장들에 의해서 제기받은 적이 있으시다(막 11:27-33).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 '불'을 뜻하는 히브리어 '에쉬'는 문자적으로 자연적인 불을 의미한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출 3:2;13:21,22;19:18) 비유적으로는 '진노의 심판'을 나타낸다(계 20:14,15). 소돔과 고모라는 여호와께서 내리신 '유황과 불'로 멸망했고(창 19:24), 예수께서도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마 7:19)고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셨다. 따라서 엘리야가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이라고 한 가정적인 표현의 말은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주심으로 말미암아 그 신적 권위가 증명된 것이다. 한편 이처럼 엘리야가 아하시야의 오십부장에게 불심판을 선고한 까닭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는 오십부장의 불손한 태도를 징치 하기 위함이며, 둘째는 아하시야 왕의 완악함을 경고하기 위함이다.
11절 바야솨브 바이쉘라흐 엘라이브 사르 하미쉼 아헤르 바하미솨이브 바야안 바예다베르 엘라이브 이쉬 하엘로힘 코 아마르 하멜렉크 메헤라 레다
=====1:11
왕이 다시...보내니 - 아하시야가 왕이라는 공직자의 위치에서 두 번이나 같은 행위를 시행했다는 것은 이미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 국가적인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그 배후에는 아하시야의 행위를 막을 만한 신하들이 없었던 탓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엘리야에 대한 아하시야 왕의 도전적인 태도는 더욱더 완강해져 갔다. 이는 곧 어리석음과 완악함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속히 내려오라 - '속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메헤라'로서 '서둘러서', '빨리'라는 뜻이다. 이것은 '내려오라'는 말을 더욱 강조해 주는 것으로서 권위주의 의식(意識)이 잔뜩 배어 있는 말이다. 사실 왕이 사자를 보낼 때는 공식적인 용어를 쓰기 마련이다. 따라서 본절에 나타난 이러한 용어는 선지자 엘리야의 권위에 대한 경멸과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보인다. 즉 아하시야는 하늘로부터 불이 임하는 심판을 당하고서도(10절)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더 교만한 자세로 엘리야와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다(Keil, Matthew Henry, Wycliffe).
12절 바야안 엘리야 바예다베르 알레헴 임 이쉬 하엘로힘 아니 테레드 에쉬 민 하솨마임 베토칼 오트카 베에트 하미쎄이카 바테레드 에쉬 엘로힘 민 하솨마임 바토칼 오토 베에트 하미솨이브
=====1:12
릿 완강해진 왕의 거만한 태도에 비해 엘리야 선지자의 태도는 어떠한가? 엘리야는 처음과 동일하게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선지자의 권위를 나타낼 뿐이다. 이러한 본절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1) 엘리야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태도를 취함으로써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신분을 잘 지켰다는 점이다. 이런 점은 과거 모세가 크게 한번 실수함으로써(민 20:11)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2) 엘리야는 더욱더 거만해진 두 번째 오십부장의 불손함을 잘 견딤으로써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면모를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종'된 자로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함과 일관된 자세를 잘 유지하는 것은 현대의 사역자들에게도 요청되는 필수적인 기본 덕목이다.
13절 바야솨브 바이쉘라흐 사르 하미쉼 쉘리쉼 바하미솨이브 바야알 바야보 사르 하하미쉼 하쉘리쉬 바이케라 알 비르카이브 레네게드 엘리야후 바이트하넨 엘라이브 바예다베르 엘라이브 이쉬 하엘로힘 티카르 나 나페쉬 베네페쉬 아바데이카 엘레 하미쉼 베에네이카
=====1:13
올라가서 엘리야의 앞에...엎드려 간구하여 가로되 - 여기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앞의 두 오십부장(9,11절)과 다른 세 번째 오십부장의 겸손한 태도이다. 특히 이는 두 번째 오십부장의 태도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즉 두번째 오십부장은 전임자가 징벌을 받은 사실을 알면서도 산 아래에서 엘리야에게 내려오라고 큰소리쳤었다. 그러나 세 번째 오십부장은 두 전임자를 교훈 삼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도로 엘리야에게 공손한 태도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 여기서 '귀히 보소서'란 말은 히브리어 '티카르'를 번역한 것이다. 이 단어는 '귀하게 여기다', '존중하다'라는 뜻의 동사 '야카르'의 미완료 변형으로서 어떻게든 긍휼을 베풀어 달라는 간절한 청원이다. 그런데 세 번째 오십 부장의 이러한 간구와 겸손함은 아하시야 왕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아하시야는 두 차례에 걸친 하나님의 심판에도 불구하고 (9-12절)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또다시 엘리야를 체포하러 세 번째 군사들을 파송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 번째 오십부장은 엘리야의 권위와 하나님의 권능을 깨닫고선 아하시야의 명령과 상관없이 엘리야의 발 앞에 무릎 꿇은 것이다(Matthew Henry's Commintary, Vol. p. 709).
14절 힌네 야르다 에쉬 민 하솨마임 바토칼 에트 쉐네 사레 하하미쉼 하리쇼님 베에트 하미셰헴 베아타 티카르 나페쉬 베에네이카
=====1:14
불이...살랐거니와 - 본절은 세 번째 오십부장이 두 전임자들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징벌을 자신의 교훈으로 삼았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계속되는 하나님의 징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더욱 완악해져 가는 아하시야 왕의 태도와 좋은 대조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고 두려워하는 자는 반드시 구원을 얻기 마련이다(15절;시 149:4).
15절 바예다베르 말아크 아도나이 엘 엘리야후 레드 오토 알 티라 미파나이브 바야콤 바예레드 오토 엘 하멜렉크
=====1:15
여호와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 3절에서 언급되었던 '여호와의 사자'가 본절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바로 지금까지 엘리야를 보호하고 계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그의 권위를 지탱해 주셨음을 의미한다.
저를 두려워 말고 함께 내려가라 - 여기서 '저'가 가리키는 사람은 아하시야 왕이다. 그리고 '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미파나이우'로서 '그의 면전에'라는 뜻이다. 즉, 여호와의 사자는 엘리야로 하여금 아하시야 왕 앞에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 말라고 권고하시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두 번의 징벌을 내리시고 난 후 지금에 와서야 엘리야를 아하시야 앞에 보내시는 걸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추론해 볼 수 있다. 첫째, 이제는 아하시야에게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에 있어 방해가 되는 외적인 장애물이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이제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백성들이나 신하들이 모두 분명하게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즉, 두 차례에 걸친 심판으로 인해(9-12절) 이제는 백성들이나 신하들 가운데 세 번째 오십부장과 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당신의 심판을 행하심에 있어서 단지 징벌만을 하지 않으신다. 그 심판 속에는 후대의 하나님의 백성들 뿐만 아니라 당대의 백성들에게 주는 귀한 교훈이 담겨 있는 것이다.
16절 바예다베르 엘라이브 코 아마르 아도나이 야안 아쎄르 솰라흐타 말아킴 리데로쉬 베바알 제부브 엘로헤 에크론 하미벨리 엔 엘로힘 베이스라엘 리데로쉬 비데바로 라켄 하미타 아쎄르 알리타 솸 로 테레드 미메나 키 모트 타무트
=====1:16
본절은 3,4절의 반복일 뿐만 아니라 왕의 사자들에 의해 왕에게 전달된 동일한 말이다(6절). 그러나 이제 아하시야 왕 앞에서 엘리야 선지자가 이 말씀을 직접 선포한 것은 대단히 의미가 깊다. 즉 엘리야는 우상을 섬기는 포악한 아하시야 왕을 향해서 그의 불신앙을 선포함으로써 어떠한 상황에 처할지라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도 변경함이 없이 담대히 외쳤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의 참된 용기와 담대함을 발견하게 된다(고후 5:6).
17절 바야마트 키드바르 아도나이 아쎄르 디베르 엘리야후 바이멜로크 예호람 타흐타이브 비쉐나트 쉐타임 리호람 벤 예호솨파트 멜렉크 예후다 키 로 하야 로 벤
=====1:17
엘리야의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 여기서 '대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전치사'케'로서 '...와 동일하게', '...처럼'이라는 뜻이다. 즉 이는 엘리야가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틀림없이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가리킨다. 이와 같이 열왕기서에 기술된 역사의 전반을 살펴볼 때 선지자가 선포한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 것은 곧 하나님께서 그 선지자의 권위를 보증해 주고 계신다는 분명한 증거가 된다(왕상 14:18; 22:13;왕하 2:22; 10:17; 24:2).
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 70인 역(LXX)과 수리아역(Peshitta)과 라틴어 역본(Vulgate)에는 '여호람'(Jehoram)이란 말 뒤에 '그의 형제'라는 말이 덧붙여져 있다. 그리고 공동 번역, Living Bible, RSV 등도 이것을 옳은 것으로 보고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러나 맛소라 히브리 본문에는 이 말이 생략되어 있다. 아마도 맛소라 본문이 그렇게 한 것은 '여호람'이 '아하시야'의 형제라는 사실을 당대에는 누구나 다 아는 일반적인 상식에 속한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70인 역(LXX)등이 '그의 형제'라는 단어를 삽입해 주므로서 오늘날의 우리들에겐 많은 유익이 되고 있다. 즉, 이는 당시 아하시야에게 아들이 없었다는 사실과 여호람이 그의 형제라는 사실을 동시에 보여 주는 주석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유다 왕...여호람의 제 이 년이었더라 - 본절과 달리 3:1에서는 유다 왕 여호사밧(Jehoshaphat)의 제18년에 이스라엘 왕 여호람이 왕위에 오른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반면 8:16에는 유다 왕 여호람이 왕위에 오른 해가 이스라엘 왕 여호람의 제5년이었다고 되어 있다. 즉 한 곳에서는 이스라엘 왕 여호람이 유다 왕 여호람보다 약 4년 먼저 왕위에 올랐다고 기록되어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약 1년 늦게 왕위에 올랐다고 서로 모순되게 기록되어있다. 그런데 이처럼 서로 엇갈리는 연대 기록은 성경 기자들의 기록상의 오류로 인한 것이 아니다. 대신 그 원인은 근복적으로 이스라엘의 섭정 제도(regency)에 있다. 즉 성경의 연대 기록은 어떤 왕의 섭정 개시 연도부터 계산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정식으로 등극한 해부터 계산되기도 한다. 따라서 아하시야의 형제 여호람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 연대를 계산함에 있어서도 본절에서는 유다 왕 여호람이 섭정을 시작한 해를 기준으로 계산한 반면, 8:16에서는 유다 왕 여호람이 정식 등극한 해를 기준으로 계산한 것으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 pp. 288f).
18절 베예테르 디브레 아하제야후 아쎄르 아사 할로 헴마 케투빔 알 세페르 디브레 하야밈 레말케 이스라엘
=====1:18
아하시야의 남은 사적은...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 성경에는 아하시야의 사적이 엘리야와 관련해서 죄를 범했다는 본장의 기록밖에 없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많은 사건이 이스라엘 왕 역대 지략에 기록되었고 본서가 기록될 당시 사람들은 아하시야의 여타 사적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성경의 기록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은 그가 심히 악을 행하였다는 것이다(대하 20:35).
이스라엘 왕 역대 지략 - 이 책(the book of the chronicles of the kings of Israel)은 신구약 성경 66권 중의 한 권인 역대기(歷代記)가 아니다. 대신 이는 본서 저자가 활용한 자료들 중의 하나인 이스라엘 왕들의 국정 일지(國政日誌)를 가리킨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왕상 14:19 주석을 참조하라.
[히브리어 성경주석 열왕기하] 아하시야에게 엘리야 예언 보고(왕하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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