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원문 강해

[히브리어 성경 열왕기상 강해] 아비삭을 아내로 구하는 아도니야(왕상 2:10-18)

엘벧엘 2021. 11. 5.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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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죽은 후에 아도니야는 밧세바를 찾아가서 다윗의 시종을 들었던 후처인 아비삭을 아내로 달라고 청합니다. 솔로몬에게 말하여 아비삭을 자신의 처로 맞이하게 해 달라고 말합니다. 아도니야는 자신 스스로 왕이 되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왕을 주셨습니다. 자신이 왕이 되지 못하자 아비삭을 아내로 맞이하여 솔로몬보다 더 우위에 있으려고 하는 계략을 펼쳤습니다. 이것을 밧세바가 솔로몬에게 말하자 솔로몬은 화를 냈습니다. 

 

아비삭을 아내로 구하는 아도니야(왕상 2:10-18)

 

10절 바이쉬카브 다비드 임 아보타이브 바이카베르 비이르 다비드

=====2:10

   다윗이 그 열조와 함께 누워 자서...장사되니 - '열조와 함께 누워 자다'란 표현은 '열조에게 돌아가다'(창 25:8;35:29;49:33)란 표현과 동일한 표현으로서, 곧 '죽음'을 가리키는 성경적 표현이다. 이리하여 통일 왕국 이스라엘의 위대한 성군(聖君) 다윗도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2절) 가고 말았다. 다윗은 자신의 남은 마지막 재임 기간을 새 왕 솔로몬과 백성들을 준비시키는 일로 보냈다(대상 22:6-19;28:1-21;29:1-22). 이처럼 다윗은 죽는 그 순간까지 맡은 바 소임을 다하다가 마침내 하나님의 축복 하에서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대상 29:28) 죽어 예루살렘의 다윗 성에 장사되었다. 실로 이스라엘 역사상 다윗은 가장 위대한 왕이요 의로운 왕이었다. 이런 맥락 하에서 다윗이 세운 도시 예루살렘은 '다윗 성'으로 간주되었다(3:1;8:1;느 3:15). 뿐만 아니라 다윗은 이후 이스라엘 모든 왕들의 의(義)의 척도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유다의 가증한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멸하지 않은 것은 바로 다윗을 생각해기 때문이었다(왕하 8:19). 무엇보다도 다윗은 장차 그의 가계를 통해 오실 메시아의 조상으로서 그 뚜렷한 의의를 지닌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지칭했으며(마 1:1), 백성들 역시 그리스도가 예루살렘 성에 입성할 때에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다윗을 기렸던 것이다(마 21:9).

   다윗 성 - 다윗이 여부스족에게서 빼앗은 성채로 시온 산성과 동일시된다(8:1;삼하 5:7;삼하 5:2). 그런데 시온 산(Mt, Zion)은 두로포이온 계곡과 기드론 계곡 사이의 산을 가리킨다. 이곳은 종종 예루살렘과 동일시되기도 한다(Wycliffe).  유대사가 요세푸스도 그렇게 말하였다. 그러나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예루살렘은 다윗 성이 보다 확장된 것이다(IDB). 그리고 역대 유다 왕들의 무덤은 시온 산 곧 다윗 성에 있었다( 11:43;14:31;15:8). 한편, 다윗의 묘는 느헤미야 시대를 거쳐(느 3:15, 16) 후일 사도 시대까지 존재하고 있었다(행 2:29).

11절 비하야밈 아쎄르 말라크 다비드 알 이스라엘 아리바임 샤나 비헤비론 말라크 셰바 샤님 우비루샬람 말라크 쉴로쉼 비샬로쉬 샤님

=====2:11

   다윗이...치리하였더라 - 다윗은 그의 나이 30세 때인 B.C. 1010년 경에 헤브론에서 왕위에 올라 그의 나이 70세 때인 B.C. 970년경까지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치리한 후 밧세바를 통해 낳은 아들 솔로몬에게 왕위를 양위한 후 그의 통치를 마감하였다.

   헤브론에서 칠 년을 치리하였고 - 다윗의 헤브론 7년 통치는 유다 지파만의 왕으로서 통치한 기간이다. 이후 다윗은 사울 왕국을 통합하여 명실 공히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서 33년간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다. 한편, 다윗의 헤브론 통치기간에 대해 역대기는 여기서와 마찬가지로 7년으로 나타내고 있지만(대상 29:27), 사무엘 서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7년 6개월로 나온다(삼하 5:5).

12절 우쉴로모 야샤브 알 키세 다비드 아비브 바티콘 말키토 미오드     

=====2:12

   솔로몬이 그 아비 다윗의 위에 앉으니 - 이는 1:46과 중첩되나 본절은 다윗이 죽고 이제 본격적인 솔로몬의 통치기가 시작됨을 나타낸다. 따라서 솔로몬의 즉위(1:46) 이후에도 다윗은 죽을 때까지 얼마 동안 일종의 섭정 자격으로 통치를 계속했던 것 같다. 한편, 솔로몬의 즉위 연대는 대략 B.C. 970년 경으로 추정된다.

   그 나라가 심히 견고하니라 - 대체로 이 부분은 앞으로 이어져 나올 내용의 요약으로 보고 었다(Keil, B hr, Hammond).  그리고 여기에 상응하는 보다 구체적인 설명은 대상 29:23-25에 나타나고 있다. 한편 이것은 일찍이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삼하 7:12).

13절 바야보 아도니야후 벤 하게트 엘 바트 셰바 엠 쉴로모 바토메르 하샬롬 보에카 바요메르 샬롬

=====2:13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 - 1:5 주석 참조.

   솔로몬의 모친 밧세바에게 나아온지라 - 70인 역(LXX)에는 아도니야가 절을 하였다는 말이 추가되어 있다. 한편 1:11의 밧세바는 왕비였으나 지금 그녀는 태후(太后)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왕국에서 태후의 위치는 대단히 유력한 위치였다(J. Hammond). 그러므로 실제 열왕기에는 왕들의 모친들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14:31;15:10,13;왕하 11:1;12:1;14:2;15:2 등). 그중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의 전횡(專橫)은 특기할 만하다(왕하 11:1-3). 분명 이런 맥락 하에서 아도니야 역시 밧세바를 움직여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밧세바에게 접근한 것이다.

   네가 화평한 목적으로 왔느뇨 - 화평에 해당하는 '샬롬'은 보통 인사말로서 주로 사용된다(창 43:27;출 18:7). 그러나 궁금증이나 의혹을 담은 물음에서도 종종 사용된다(삼상 16:4;왕하 5:21;9:11,17). 의당 밧세바는 아도니야의 방문이 의아했을 것이다(Keil, Hammond). 왜냐하면  아도니야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들 솔로몬과 왕위를 놓고 다투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아도니야가 이제 다윗이 죽고 난 후 솔로몬이 본격 통치를 시작할 즈음에 갑자기 밧세바를 방문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밧세바는 경계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므로 경계심을 품은 질문을 한 것이다.

14절 바요메르 다바르 리 엘라이크 바토메르 다베르

=====2:14

   내가 말씀할 일이 있나이다 - 원문은 "내가 말씀을 드려도 괜찮은지?" 하는 은근함이 담긴 의문문의 형태이다. 이처럼 비교적 상세하게 그들의 대화 내용이 보도되는 것은 그 자리의 분위기를 전달함으로써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을 납득시키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도니야에게 호의를 가질 리 만무한 밧세바가 결국 그의 청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18절).

15절 바요메르 아티 야다아티 키 리 하이타 하밀루카 비알라이 사무 칼 이스라엘 피네헴 리밀로크 바티소브 하밀루카 바티히 리아히 키 메아도나이 하이타 로

=====2:15

   왕위는 내 것이었고 - 원문상 '내 것이다'(리)란 말이 앞서 나오기 때문에 문법상 '내 것'이란 말이 강조적 형태를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Burney). 아무튼 아도니야가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당시 다윗의 생존한 아들들 중 그가 최연장자였기 때문이다<1:6>.

   온 이스라엘은 다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 이것은 분명히 상황 판단 착오로서, 사실 자체의 반대되는 곡해이다(1:20,40). 물론 아도니야의 유력한 추종 세력이 있었지만(1:7,9), 온 이스라엘의 지지가 자신에게 있었다는 주장은 아도니야의 교만한 성품과 왕위에 대한 미련이 빚은 착각이다<1:5>. 여하튼 교활하게도 아도니야는 본래 왕위가 자신의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렇게 되지 못한 사실을 과장하여 상기시킴으로써, 은근히 밧세바의 마음에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돌이켜 - 영역본 KJV는 'turned about'으로 번역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본래의 원칙에서 벗어난 변칙의 의미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그러므로 비록 아도니야가 이 말 다음에 그러한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다는 말로 돌리고는 있지만(Keil), 역시 내심으로는 왕위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떨치지 않고 있음과 아울러 솔로몬의 왕위를 인정치 않고 있음을 보여 준다(J. Hammond, Patterson).

16절 비아타 쉬엘라 아하트 아노키 쇼엘 메이타크 알 타쉬비 에트 파나이 바토메르 엘라이브 디베르

=====2:16

   내 얼굴을 괄시하지 마옵소서  -  원문은  "당신의  얼굴을 돌리지 마소서"(Do not turn away your face)란 뜻이다. 즉 외면하여 거절하지 말아 달라는 간청이다.

17절 바요메르 이미리 나 리쉴로모 하멜레크 키 로 야쉬브 에트 파나이크 비이텐 리 에트 아비샤그 하슈나미트 리이샤

=====2:17

   수넴 여자 아비삭을 내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 아도니야의 이 간청은 다만 아비삭의 미모를 탐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아도니야의 이러한 요구는 궁극적으로 왕위를 노리는 행동으로 해석한다(Keil, B hr, Smith 등). 왜냐하면 아비삭은 다윗과 동침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그의 첩(후궁)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Patterson). 그런데 파사 제국을 비롯한 고대 근동에서 늘 선왕(先王)의 첩을 아내로 삼음으로써 후왕(後王)이 자신의 왕위를 널리 인정받는 관습이 있었다(Herodotus). 이런 맥락 하에서 압살롬도 백성들의 목전에서 다윗의 후궁들과 동침함으로써 왕권 쟁취를 널리 선언한 바 있었다(삼하 16:20-23). 따라서 비록 밧세바는 이러한 아도니야의 숨은 저의를 정확히 간파하지 못하고 쉽사리 그의 청을 들어 중재자의 자격으로 나섰지만, 지혜로운 솔로몬은 밧세바의 말을 통해 아도니야의 숨은 저의를 정확히 간파하고, 이 사건을 계기로 마침내 아도니야를 처형시키고 만다(25절). 그 이유는 솔로몬이 아도니야에게 일찍이 주지 시켰던 바 "악한 것이 보이면 죽으리라"(1:52)라는 말대로 아도니야의 아비삭 요구 속에는 다시금 왕위를 노리는 '악한 의도'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18절 바토메르 바트 셰바 토브 아노키 아다베르 알레카 엘 하멜렉크

=====2:18

   좋다 내가...왕께 말하리라 - 밧세바가 아도니야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한 까닭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견해들이 대두된다. 즉 밧세바는 별생각 없이 아도니야의 청을 들어주었다는 견해, 즉 사사로운 애정 문제가 정치적 연관을 가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기 때문에 선뜻 아도니야의 청을 들어주었다는 해석(Wycliffe, B hr),  왕위 경쟁에서 탈락한 아도니야에 대한 일종의 위로와 동정의 대가로 쉽사리 그의 청을 들어주었다는 견해 (C. Dentan), 밧세바는 자신이 왕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임을 은근히 과시하기 위해서 아도니야의 청을 수락했다는 견해(J. Hammond) 등이 논의된다. 그러나 아마도 이 모든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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