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 마가 다락방 성령 강림(행 2:1-4)
성 경: [행2:1] 카이 엔 토 쉼플레루스다이 텐 헤메란 테스 펜테코스테스 에산 하판테스 호모뒤마돈 에피 토 아우토
주제1: [성령의 강림과 역사(役事)]
주제2: [오순절 성령 강림]
오순절 날이 - '오순절'이란 말에는 원래 '제50'의 뜻이 있다. 이 날은 유월절 주간의 안식일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에 지키는 유대인의 3대 절기(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신 16:1, 10, 13)의 하나이다(레 23:15, 16). 오순절은 유월절 기간 동안 처음 익은 보리 곡식단을 제단에 드린 날로부터 시작하여 밀 추수로 끝나는 49일(7주)간의 추수 기간 다음 날이기 때문에 '칠칠절'이라고도 한다(출 34:22; 신 16 :10). 또한 이 날은 처음 수확한 밀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 제사를 드리는 절기이므로 '맥추절'(출23:16) 혹은 '초실절'(출 34:22)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1세기경부터 오순절은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신 것을 기념하는 명절로 여겨지게 되었는데(Jubilees 1:1 , 6:17; TB Pesachim 68b; Midrash Tanchuma 26c) 출 19:1에 암시된 연대를 추론해 볼 때 율법을 받은 날이 오순절날임이 분명하다. 이 절기는 대개 유대력 시반(Sivan)월 16일에 해당되는데 현재의 태양력으로는 5월 말이나 6월 초순이 된다. 이 날에 흩어져 사는 모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와서 처음 익은 모맥(牟麥)으로 떡을 만들어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다. 유월절이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예표하는 것이라면 오순절은 신약 시대에 교회의 시작으로 영적 의미를 지닌다.
이미 이르매(쉼플레루스다이)- 이 말의 원뜻은 '가득 채우다'(눅 8:23) 또는'(시간이) 거의 닥쳤다'라는 뜻으로 본절에서는 '오순절 날이 거의 가까워'라는 의미이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앞에서 언급 뒤 3대 절기에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 절기들을 지켰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미루어보아 많은 사람들이 오순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을 것이며 예수의 제자들은 그 혼잡을 피할 뿐만 아니라 예수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한 곳에 모였을 것이다. 한 곳에 모인 사람은 열두 사도들과 1:13,15에 언급된 무리들을 포함하여 상당수의 부활을 목격한 자들로 볼 수 있다(Alfor, R. C. H. Lenski). 그러나 그들이 모인 장소에 대해 본절에서는 확실히 언급하지 않는다. 1:13에서는 '다락'으로만 언급되어 있으나 12:12에서는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 언급되고 있다. 만일 본절과 1:13 및 12:12의 장소가 서로 일치한다면 일반적으로 알려진 '마가의 다락방'이란 표현이 어느 정도 타당하다. 모인 모든 무리들은 주님의 명령(1:4)을 따라 열심으로 기도하면서 성령 강림을 기다렸던 것이다.
성 경: [행2:2] 카이 에게네토 아프노 에크 투 우리누 에코스 호스페르 페로메네스 프노에스 비아이아스 카이 에플레로센 홀론 톤 오이콘 후 에산 카데메노이
주제1: [성령의 강림과 역사(役事)]
주제2: [오순절 성령강림]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 2-4절에는 성령 강림이 세 가지 징표(徵表)로 나타난 것으로 기록한다. 곧 '바람'과 '불'(마 3:11, 12)과 '방언'인데 이것들은 모두 유대인들이 전통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나타내는 표시로 여겨졌다. 본 구절에는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로 성령의 임재가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여기서 '바람'이 성령의 임재하심에 대한 징표로서 나타난 것은 어원적으로 볼 때 '영'(프뉴마)이라는 단어가 '바람'(프노에)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에서 그 근거를 찾음 수 있다. 이러한 연관은 예수가 니고데모에게 중생에 대해 말씀하실 때에도 발견된다(요 3:8). 또한 구약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바람'으로 표시한 곳이 많이 있는 것을 볼 때(왕상 19:11; 시 104:4) 이 연관이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사상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바람 같은'이라 했기 때문에 바람과 성령이 동일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는 성령의 능력과 그의 오심의 충만함을 가리키는 것이다(Stanley D. Toussaint). 뿐만 아니라 이 말은 제자들이 지금까지 체험하였던 것보다 더 친밀하고 인격적이며 강력한 방법으로 성령께서 임재(臨在)하셨다는 것을 나타내 주는 말이다(Richard N. Longenecker).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 '온 집'은 헬라어 본문상으로 '그 온 집'을 말한다. 이것은 이미 한 번 언급된 집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1:13, 15 등에서 말한 집을 지시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 '집'을 혹자가 주장하듯이 성전의 집(성전 안에는 30개의 홀이 있었음)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Bengel, Bruce) 세심한 관찰력과 주의력을 지닌 의사인 누가가 '성전'(히에론)이란 말을 왜 언급하지 않았겠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따라서 이 '집'은 앞서 언급한(1:13, 15) '그 집'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Alford, Knowling, Hervey, Toussaint).
성 경: [행2:3] 카이 오프데산 아우토이스 디아메리조메나이 글롯사이 호세이 퓌로스 에카디센 테 에프 헤나 헤카스톤 아우톤
주제1: [성령의 강림과 역사(役事)]
주제2: [오순절 성령 강림]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 '불의 혀'는 성령의 임재를 묘사한다. 이와 관련하며 구약에서 여러 번 하나님의 임재를 불로 표현한 것을 볼 수 있다(출 3:2-5; 13 :21; 24:17; 40:38). 복음서에서 세례 요한은 성령의 오심을 불과 밀접하게 관련시켜 말하고 있다(마 3:11 ;눅 3 :16). 여기서 '불의 혀'란 실제로 불이 타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불'구약 시대에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상징한다(Blaiklock, Ralph Earle). 그뿐 아니라 '불'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기도 한다(창 19:24; 레 10:2; 민 16:35; 왕하 1:9-12; 사 47:14).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 커다란 불덩어리 같은 것이 불의 혀같이 나타나서 각 사람의 머리 위에 임했다. 이것은 약속된 주의 성령이(1:4; 요 14:16-21,26; 15:26, 27; 16:7-15) '각 사람' 위에 임했다는 사실로 요엘 선지자의 예언(욜 2: 28-32)과 예수의 약속이 구체적으로 성취되었음을 보여 준다. 구약의 옛 언약 하에서는 하나님의 임재는 특수한 목적을 위해서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한정(限定)되었으나(민 11:26-19; 삼상 10:6-12) 이제는 예수를 믿는 모든 무리 가운데 성령이 임하셨다. 이는 신약 시대의 성도들이 각양 은사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될 것을 암시한다.
성 경: [행2:4] 카이 에플레스데산 하판테스 프뉴마토스 하기우 카이 에륵산토 랄레인 헤테라이스 글롯사이스 카도스 토 프뉴마 에디두 아우토이스 아포프뎅게스다이
주제1: [성령의 강림과 역사(役事)]
주제2: [오순절 성령 강림]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 성령의 충만함은 성령 세례와는 다른 것이다. 성령의 충만은 여러 번 되풀이될 수 있어서 구원의 때뿐 아니라 그 후에도 계속 일어날 수 있다(4:8, 31; 6:3,5; 9:17; 13:9,52). 그러나 성령의 세례는 구원의 순간에 모든 믿는 자들에게 단회적(one for all)으로 일어난다. 그러면 성령의 충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울의 경우 그의 서신에서 성령의 충만에 대해 꼭 한 번만(엡 5:18) 언급하고 있다. 심지어 그가 성령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다루는, 이른바 성령장이라고 할 수 있는 롬 8장에서도 성령 충만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특이한 현상이라 할 수 있는데 바울은 오히려 성령의 인도나 지배(롬 8:5, 9, 11, 14 참조)에 대해서 말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는 성령의 인도나 지배를 받는 상태를 성령의 충만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미 내주 하신 성령(롬 8:9; 고전 12: 3)의 지배와 인도함을 받는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 공간적으로 성령이 채워지거나 다시 들어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 하나님은 바벨탑의 사건을 통해서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셔서 그들을 흩어버리셨다(창 11:1-9). 제자들이 성령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게 된 이 사건은 혼잡케 되었던 언어가 다시 회복된 것으로서 새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주님의 부활의 소식이 우주적으로 확산(擴散)될 것을 암시한다. 그런데 메이어(Meyer) 외에 많은 비평 학자들은 오순절 체험이 비역사적이라고 주장하면서 본절과 같은 이적을 저자가 미화시킨 것으로 주장한다(Bauer, Schnekenburger. De Wette). 이러한 주장은 근본적으로 본서의 역사성을 부정하고 누가의 의도적 편집에 의한 것으로 았던 편견에서 비롯되었다. 이 견해를 따르게 되면 결국 본서가 바울이라는 인물을 부각시키고 미화시키기 위한 전기 biography)에 불과하며 결코 영감 받은 책이 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비평 주의자들의 견해는 이런 면에서 배격되어야 한다. 한편 이 구절에서 성령의 세례를 말하지 않고 오히려 성령의 충만을 말하지만 이미 1:5에서 성령의 세례를 예언했고 또 11:15, 16에서는 성령 세례가 오순절에 일어났다고 회고하고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은 오순절에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의 사건이 거의 동시적으로 발생했음을 암시한다. 우리는 이 사건이 교회가 세워지기 위한 처음의 특수한 상황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제자들에게 성령세례의 증거는 방언이었다. 그들은 성령을 받고 자신들이 아직 배운 바가 없는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고, 다른 여러 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했다. 이것들은 성령이 그의 경륜에 찬 사역을 이루시기 위하여 강림한 증거 들일뿐 일반적이며 영속적인 은사는 아니다.
[열왕기상 히브리어 강해 말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한 솔로몬(왕상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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