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원문 강해

[헬라어 성경 유다서 강해] 거짓 복음을 따랐던 소돔과 고모라(유 1:1-7)

엘벧엘 2021. 10. 5.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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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에서 소돔과 고모라는 여호와 하나님께 유황불로 심판을 받아 멸망당하게 됩니다. 거짓 복음을 따랐으며 여호와 앞에서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은 소돔에 있는 의인 롯을 구원하셨다고 말합니다. 롯은 복음을 따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거짓 이단들이 거짓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침투하여 거짓 복음을 전파하여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이 받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행위로는 절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고 구원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이제는 거짓 이단들의 거짓 복음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거짓 복음을 따랐던 소돔과 고모라(유 1:1-7)

 

1절 이우다스 이에수 크리스투 둘로스 아델포스 데 이아코부 토이스 엔 데오 파트리 헤ㅔ기아스메노이스 카이 이에수 크리스토 테테레메노이스 클레토이스

유 1:1

본절은 저자와 수신자와 수신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1) 본서의 저자인 유다는 두 가지 칭호를 사용하여 수신자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신약 성경에서 :유다“는 8명이 등장하나 본서의 저자는 예수와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를 의미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종”에 해당하는 헬라어 “둘로스”는 오직 주인의 뜻대로만 행해야 하는 소유물로서 주인의 재산에 불과한 존재를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노예와 포로 상태에 있었던 사람들을 자신의 피값으로 사셔서 현재 자신의 종으로 삼았음을 의미한다(고전 7:23). “예수 그리스도의 종”은 단순히 모든 그리스도인을 지칭할 때도 있지만 그리스도인 사역자인 “사도”를 지칭할 대도 사용되었다(롬 1:1; 벧후 1:1). 본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은 유다가 주와 한 가족으로서의 권위보다는 주께 봉사하도록 부름을 받은 사역자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야고보의 형제. ---- 혹자는 “형제”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델포스”가 혈연적인 형제를 의미하지 않고 동역자를 의미한다고 해석하여 본서의 저자가 “유다 바사바”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서 “아델포스”는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하는 정도이지 그 이상, 즉 사역자를 지칭하지는 않는다. 그러기에 본문의 “야고보의 형제”를 “야고보의 동역자 중의 한 사람”으로 해석하는 것은 부당하며 혈연적인 형제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유다”와 “야고보”가 혈연적인 한 형제로 나타나는 곳은 신약 성경 막 6:3뿐이다. 저자인 “유다”가 주의 형제인 “야고보”의 형제임을 강조한 것은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단지 주의 형제로서 잘 알려져 있는 “야고보”와 혈연적인 형제임을 드러냄으로 지신의 정체에 대해서 밝히기 위함이다.  (2) 저자인 유다는 수신자들이 사는 지역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수신자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갖는 특징을 세 가지 호칭으로 설명하고 있다.

부르심을 입은 자. --- 이것은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을 가리키던 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전이된 호칭이다(사 41:9; 42:6; 48:12,15, 19:1; 54:6 ; 호 11:1). 이 호칭은 그리스도인과 거의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도록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생활과 모습을 통해 나타내야 한다(롬 1:7; 고전 1:2; 빌 3:12,13; 벧전 1:15; 벧후 1:10; 계 17:14).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의 헬라어 “엔 데오 파트리”는 해석상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왜냐하면 유다가 본절에서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행한 자신의 사랑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의 하나님의 사랑을 진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에서”의 헬라어 “엔”은 도구격으로 사용된 것으로 “하나님에 의해 사랑을 받는” 이란 의미를 지닌다. 한편 “사랑을 얻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이스 에가페메노이스”는 완료 시상이다. 이는 이전에 주어졌던 하나님의 사랑이 지속적으로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호칭은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이었으나(신 7:7,8 ; 대하 20:7 ; 사 5:1 ; 43:4 ; 렘 31:3 ; 호 11:1 ; 14:1) 신약에 와서 새 이스라엘이 된 그리스도인을 지칭하는 칭호가 되었다(골 3:12 ; 살전 1:4 ; 살후 2:13).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 ---- 앞서 언급된 수신자들에 대한 두 가지 칭호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근간을 나타내는 반면 본문의 칭호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을 드러낸다. “지키심을 입은 자들”로 번역된 헬라어 “테테레메노이스”는 완료 시상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서 안전한 상태에 있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다(요 17:11,15 ; 살전 5:23 ; 벧전 1:4,5). 유다가 이 칭호를 사용한 것은 당시 수신자들 사이에 만연해 있던 거짓 교사들의 영향으로부터 하나님께서 수신자들을 보호하심을 분명히 밝히고 위로하기 위함이었다.

2절 엘레오스 휘민 카이 에이레네 카이 아가페 플레뒨데이이에

유 1:2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 지어다. ---- 본절은 수신자들을 위한 유다의 기원이다. “긍휼”은 하나님의 새 언약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친절한 태도와 동정을 의미하며,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고 그를 의지하는 가운데 주어지는 안녕을 의미하고,,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서 허락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호의와 관대함을 가리킨다. “긍휼”과 “평강”은 하나님의 축복을 기원하는 유대인들의 인사법이었다. 유다는 비록 “긍휼” 속에 사랑이 내포되어 있다 할지라도 “사랑”을 더 첨가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기원하는 초대 교회의 독특한 인사를 하고 있다.

3절 아가페토이 파산 스푸덴 포이우메노스 그라페인 휘민 페리 테스 코이네스 소테리아스 아낭켄 에스콘 그랍사이 휘민 파라칼론 에파고니제스다이 테 하팍스 파라도데이세 토이스 하기오이스 피스테이

유 1:3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 유다는 “사랑하는 자들아”라는 호칭을 통하여 수신자들에 대한 자신의 사랑과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17,20). 한편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고 있는 구원을 의미한다. 이는 종말론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믿음으로 온전히 받을 구원이요(21절 ; 벧전 1:5).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받아 누리는 구원이다(히 6:9). 저자인 유다는 수신자들이 이미 누리고 있으며 주의 파루시아 때에 참여하게 될 온전한 구원에 대해 편지하려고 하고 있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 “성도”에 대해서 혹자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음을 전달받은 사도를 가리킨다고 주장하나 교회를 설립한 사도들에게서 복음을 받아들인 교회의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행 9:13,32,41 ; 롬 12:13 ; 히 6:10). 왜냐하면 신약 성경에서 “주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도데이세”는 “받는다”라는 의미를 지닌 “파라람바네인”과 한상을 이루어 사도가 주고 그리스도인이 받아들이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고전 11:2,23 ; 15:3 ; 갈 1:9 ; 빌 4:9 ; 골 2:6 ; 살전 2:13 ; 살후 2:15; 3:6). 한편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에서 “믿음의 도”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에 의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해진 복음, 즉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내용을 의미한다(행 2:42). 이러나 믿음,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도들에게 전해지고 사도에 의해서 교회의 전해진 기독교 구원의 중심 메시지는 단번에 전해진 것으로 결코 변할 수 없는 진리이다. 유다는 복음의 불변성(不變性)을 강조함으로 거짓 교사들이 변질되고 왜곡된 거짓 진리를 전하는 것에 대해 암시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힘써 싸우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 “힘써 싸우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파고니제스다이”는 본래 레슬링 경기에 선수들이 쏟는 노력을 의미하였다. 유다는 “에파고니제스다이”를 사용하여 수신자들 모두가 가만히 들어온 거짓 교사들이 변질시키고 있는 복음을 수호하기 위하여 운동 선수가 경기에 애를 쓰듯이 노력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유다는 현재 시상인 “에파고니제스다이”를 사용하여 복음 수호를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노력이 항상 지속되어야 삶을 시사하고 있다. 한편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는 저자 유다가 수신자들이 거짓 교훈에 휩싸여 있음을 알고 그들로 하여금 수호하도록 권면하기 위하여 본서를 썼음을 시사한다.

4절 파레이세뒤산 가르 티네스 안드로포이 호이 팔라이 프로게그람메노이 에이스 투토 토 크리마 아세베이스 텐 투 데우 헤몬 카린 메타티덴테스 에이스 아셀게이안 카이 톤 모논 데스포텐 데온 카이 퀴리온 헤몬 이에순 크리스톤 아르노우메노이

유 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 “가만히 들어온”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비밀리에 들어온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바울과 베드로는 이 단어를 사용하여 이단적인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갈 2:4 ; 벧후 2:1). 이러한 자들은 진정한 진리인 복음을 부정하고 그리스도인에게 거짓 교훈을 전하여 잘못된 길로 빠지게 하는 거짓 교사들로서 외적으로는 교회의 일원이었으나 내적으로는 교회에 속하지 않은 자들이었다. 한편 “사람 몇”의 헬라어 “티네스 안드로포이”는 수신자들이 명확하게 잘 아는 사람들의 그룹을 가리키는 표현이다(롬 3:8 ; 고전 4:18 ; 15:34 ; 고후 3:1 ; 10:12 ; 갈 1:7 ; 딤전 1:3,19 ; 벧후 3:9). 유다는 이 표현을 통해서 수신자들이 분명히 알고 있는 거짓 교사들에 대해 명확하게 경고하고 있다.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 “옛적부터... 미리 기록된 자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이 팔라이 프로게그람메노이”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① 혹자는 거짓 교사들과 그들에 대한 정죄가 하늘 책에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 ② 혹자는 거짓 교사들과 그들에 대한 정죄가 베드로후서와 같은 사도들의 예언에 기록되어 있다고 주장한다(딤후 3:13 ; 벧후 2:1-3:4n). ③ 혹자는 거짓 교사들과 그들에 대한 정좌가 신약 시대 이전의 예언, 즉 구약이나 에녹서와 같은 것에 기록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옛적부터”라는 표현을 가장 충족시키며, 실제로 유다는 구약에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다가 멸망당한 자들에 대해 5-7정에서 언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에녹서의 내용을 많이 반영하고 있기 째문이다. 유다는 수신자들에 게 거짓 교사들에 대한 정죄는 이미 과거의 예언에 분명히 나타나고 있음을 강조함으로 그들로 거짓 교사들의 실체를 명확히 인식하게 하고 있다. 한편 “이 판결을 받기로”를 해석함에 있어서 어려운 점은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토”이다. 이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① 혹자는 벧후 2:3에 언급된 정죄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② 혹자는 믿음에 도에 대한 변호에서 암시된 거짓 교사들에 대한 정죄나(3b) 거짓 교사들이 가만히 들어왔다는 정죄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③ 혹자는 본절 하반절에서 언급된 정죄받을 수밖에 없는 그들의 죄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④ 혹자는 5-15절에서 언급되는 예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네 가지 견해 중 문맥상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이 판결을 받기로”는 5-15절에서 언급된 유형의 정죄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파루시아 때에 주어질 정죄를 의미한다.

경건치 아니하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세베이스”는 유다가 거짓 교사들의 특징을 지칭한 포괄적인 단어로,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계명의 도덕적 권위를 거부하고 불의한 행동을 하는 거짓 교사들의 도덕 폐기론을 함축적으로 고발하는 용어이다.

우리 하나님의 은혜로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을 용서하시고 죄와 율법의 정죄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자유롭게 하신 하나님의 호의를 가리킨다. 거짓 교사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 즉 성적인 탐닉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모든 도덕적인 제한조차도 무시할 수 있는 자유로 해석하여(벧후 2:19) 성적인 방종을 행하였다.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헬라어는 “톤모논 데스포텐 카이 퀴리온 헤몬 예순 크리스톤”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① 혹자는 “홀로 하나이신 주재”가 하나님에게 사용된 것을 이유로 성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눅 2:29 ; 행 4:24 ; 계 6:10). ② 혹자는 윤리적인 행위에 대한 부인이라고 주장한다.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더 타당하다. 전자의 경우라 한다면 8절에서 오직 천사들을 훼방한 것만을 언급해야 하나 유다는 거짓 교사들의 다른 죄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성적인 방종으로 바꾸었음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불경건한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약용하였고 그리스도의 주권을 부인하였다(딛 1:16).

5절 휘포므네사이 데 휘마스 불로마이 에이도타스 휘마스 하팍스 투토 호티 호 퀴리오스 라온 에크 게스 아이귀프투 소사스 토 듀테론 투스 메 피스튜산타스

6절 앙겔루스 테 투스 메 테레산타스 텐 헤아우톤 아르켄 알라 아폴리폰타스 토 이디온 오이케테리온 에이스 크리신 메갈레스 헤메라스 데스모이스 아이디오이스 휘포 조폰 테테레켄

7절 호스 소도마 카이 고모라 카이 하이 페리 아우타스 폴레이스 톤 호모이온 투토이스 트로폰 에크포르뉴사사이 카이 아펠두사이 오피소 사르코스 헤테라스 프로케인타이 데이그마 퓌로스 아이오니우 디켄 휘페쿠사이

유 1:5-7

너희는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거울이 되었느니라. ----- “범사를”에 대해서 혹자는 저자인 유다가 말하기를 원하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나 수신자들이 개종할 때에 사도들로부터 이어받은 믿음의 모든 본질들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왜냐하면 개역성경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으나 헬라어 본문에는 “단번에”를 의미하는 “하팤스”가 첨가되어 있어 과거에 수신자들이 받았던 복음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유다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구약의 세 가지 예를 제시함으로써 사도들이 전하여준 복음을 분멸하게 인식시키고자 하고 있다(롬 15:15 ; 살후 2:5 ; 딤후 2:8 ; 벧후 1:12 ‘ 3:1,2 ; 계 3:3). 유다가 제시한 심판의 예는 다음과 같다.

①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 첫 번째 예는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한 후 불신앙으로 인해 심판을 받은 사건을 나타낸다. 이것은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선발된 정탐꾼들이 가나안을 정탐한 후에 돌아와 보고한 내용을 듣고 출애굽한 것을 원망하고 불신앙 하였던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재용을 암시한다(민 14장).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였고, 광야 생활 가운데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통해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체험하였으며,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만을 제외한 열 지파의 정탐꾼들은 불신앙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보고만을 함으로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하나님을 원망하고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유다는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를 “믿지 아니한 자들”이라고 정의하면서 불신앙에서 비롯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경고 하고 있다. 여기서 심판자로 지칭되는 “주”에 대해서 혹자는 벧후 2:4를 기초로 하여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수”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4,17,21,25절). 한편 “후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 듀테론”은 문자적으로 두번째를 가리키는 것으로 유다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암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한 듯하다. 즉 “토 듀테론”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의 불신앙에 대한 심판을 나타내나 이차적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을 구원하신 주께서 재림하셔서 배교한 그리스도인을 심판하실 것을 시사한다.

②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 유다가 두 번째로 제시한 예는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타락한 천사들에 대한 심판이다.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에서 “지위”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르켄”은 영역이나 자치권 혹은 책무를 가리키는 것으로 천사들이 자신의 영역과 책무를 버리고 배교한 사실을 가리킨다. 이 예는 두 가지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하나는 그들을 타락케 한 정욕이다. 타락한 천사들은 땅에 내려와 여인들과 교접하였다(창 6:4 ; 욥 1:6). 이러한 사상은 본서에 자주 반영되고 있는 위경인 에녹 1서에 상세하게 나타나고 있다(9:8 ; 10:11 ; 12:4). 또 다른 하나는 사단과 그의 천사들의 교만으로 인한 반역이다(사 14:12 ; 24:21,22). 유다는 타락한 천사들이 자신의 지위나 처소를 버리고 하나님을 반역하므로 심판을 당한 것과 거짓 교사들의 경우를 대비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가두셨으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테레켄”은 완료 시상으로 하나님께서 타락한 천사들을 심판하여 이미 가두셨음을 나타낸다. “테테레켄”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의 헬라어 “메 테레산타스”와 대조를 이루어 타락한 천사들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교만하여 음욕하여 자유로와지려고 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영원히 결박되어 갇히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그들은 비록 에녹서에 자주 나타나는 표현인 “큰 날의 심판까지”(에녹서 10:6 ; 16:1 ; 22:4,10,11 ; 103:8), 즉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한 최후의 심판의 날까지 일시적으로 갇혀 있지만 그들의 결박은 영원한 것이다.

③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 --- 세 번째 예는 창 19장에 기록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사건이다. 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사건은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로 자주 나타난다(신 29:23 ; 사 1:9 ; 13:19 ; 렘 23:14 ; 49:18 ; 50:40 ; 호 11:8 ; 암 4:11 ; 습 2:9). 유다는 본문의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이 앞서 언급한 타락한 천사들과 같은 모양으로 즉 같은 종류의 범죄를 통하여 멸망당하였음을 시사하고 있다. 위에서 “다른 색”이란 문자적으로 “다른 육체”를 의미한다. 즉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다른 육체와 성관계를 맺기를 원한 것과 천사들이 땅에 내려와 여인들과 성관계를 맺은 것을 비교한 것이다. 유다는 타락한 천사들과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하나님의 주신 질서를 무시함으로 영원한 불로 멸망당함같이 하나님이 주신 질서를 무시하는 거짓 교사들 역시 지옥의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됨을 경고하고 있다.

[헬라어 성경 요한삼서 강해] 가이오에 대한 칭찬과 격려(요삼 1:1-8)

 

[헬라어 성경 요한삼서 강해] 가이오에 대한 칭찬과 격려(요삼 1:1-8)

사도 요한은 가이오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요한은 가이오에게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한다고 말합니다. 요한은 가이오에 대해서 말을 들었는데 진리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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