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원문 강해

[히브리어 성경 열왕기하 강해] 엘리야의 승천(왕하 2:7-11)

엘벧엘 2021. 11. 7. 19:22
반응형

엘리야는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하게 됩니다. 에녹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늘로 승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시면 우리도 부활하여 하늘에서 주님을 만난다고 했습니다. 엘리야의 승천을 통해서 우리도 부활의 삶을 소망해야 합니다.

 

엘리야의 승천(왕하 2:7-11)

 

7절 바하미쉼 이쉬 미비네 하니비임 하리쿠 바야아미두 미네게드 메라호크 우쉬네헴 암미두 알 하야리덴

=====2:7

  선지자의 생도 오십 인이 - 여기에 언급된 오십 인이라는 숫자는 1장에서 엘리야 선지자를 잡으러 왔던 병사들의 수와 동일하다(1:9). 오십 명의 생도들은 엘리야의 최후를 목격한 증인들로서 그의 승천을 전파하게 될 사람들이다. 한편 선지자의  생도들이 50명이라는 것은 그들이 단체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바 이러한 사실은 암살의 위험에서 도피하는 다윗의 사건 등 많은 역사적 사실 속에서도 볼 수 있다(삼상 10:5,6,10; 19:20).

8절 바이카흐 엘리야후 에트 아다리토 바이길롬 바야케 에트 하마임 바예하추 헤나 바헤나 바야아비루 쉬네헴 베하라바

=====2:8

 겉옷을 취하여 - '겉옷'은 히브리어로 '에데르'로서 소매 없는 외투  또는 양가죽으로 되어 어깨를 감싸는 망토를 가리킨다(Pulpit Commentary). 70인 역(LXX)에는 '톤 멜로텐'으로 번역이 되어 있는데 이것은 '양가죽'을 의미한다. 한편 모세의 지팡이가 백성들에게 보여주는 권위의 상징인  것과 비교해서 여기에 나타난 엘리야의 겉옷은 선지자의 직분을 상징한다. 그리고 엘리야가 자신의 겉옷을 엘리사가 일하는 곳에다 던진 일(왕상 19:19)이 있는데 이는 엘리야가  엘리사를 선택한다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선지자직을 위임한다는 의미였다. 그렇기  때문에 무리들 앞에서 엘리야의 겉옷을 보인 것은 엘리사가 그의 후계자임을 명백히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 외투를 말면 모양이 어느 정도 지팡이와 같이 되었을 것이다.

   물을 치매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육지 위로 건너더라 - 이 사건은  모세가 지팡이로 홍해를 가른 사건(출 14:16,21)과 여호수아가 요단 강을 가른 사건(수 3:13)에 상응한다. 또 이것은 엘리야와 엘리사의 관계가 모세와 여호수아의  관계처럼 스승과 제자의 관계, 혹은 지도자 위임의 관계인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본 사건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여호와의 권능을 나타내는 상징적 의미를 내포한 이적이다. 왜냐하면 '권능'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해 있기 때문이다(시 62:11). 따라서 겉옷을 취하는 선지자의 상징적 행위와 이 이적의 사건은 이것을 지켜보는 생도들에게 하나님의 작정하심과 그분의 목적을 알게 했을 것이다. 한편 '육지'는 히브리어로 '하라바'로서 '마른땅'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에 따라 공동  번역과  영역본들에서는 모두 '마른땅'(dry ground)이라고 번역했으며  70인 역(LXX)도 이와 비슷하게 '에레모스' 즉 '사막', '광야'란 의미로 옮겼다. 또한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와 요단 강을 건널 때 '마른땅'(출 14:21;수 3:17)이라고 말했던 그 표현으로서 성경에서는 드물게 사용된다. 이처럼 하나님은 강물과 바닷물을 갈라놓을 수 있는 분일뿐만 아니라 갈라서 드러난 땅을 마르게도 하셔서 백성들의 불편함을 알고 조처하시고 역사하시는 분이다. 한편 이 두 선지자가 요단 강을 건너 당도한 곳은 모압 땅이었는데 이곳이 바로 모세가 죽음을 맞이했던 곳이다. 신 34:6을 보면 "오늘까지 이 묘를 아는 자 없으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묘가 없는 엘리야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즉, 17절에서 무리들이 엘리야의 시체를 찾았으나 찾지 못한 사건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후대의 많은 사람들은 엘리야를 에녹과 연관시키려고 하지만 오히려  모세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왜냐하면 구약에서 무덤의 위치에 대해 논란을 벌이고  있는 것은 모세와 엘리야에 대한 두 기사뿐이기 때문이다.

9절 바이히 키아비람 비엘리야후 아마르 엘 엘리샤 쉬알 마 에에세 라크 비테렘 엘라카흐 메이마크 바요메르 엘리샤 비히 나 피 쉬나임 비루하카 엘라이

=====2:9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 '영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루아흐'로서 '영', '호흡', '영혼'이라는 뜻이나 여기서는 '선지자적 능력'을 가리킨다. 그리고 본문의 '갑절'이라는 말은 신 21:17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는 용어로써 맏아들의  분깃을 강조한 표현이다(Keil & Delitzsch). 즉 이 말은 일반의 형제 들보다 장자가  받는 두 몫의 유산을 말한 것이다. 따라서 엘리사는 엘리야의 합법한 계승자로서 충분한 지도자의 역량을 엘리야에게 요구한 것이다. 만일 이 구절이 엘리야보다 두배의  능력을 구한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때는 다음과 같은 모순이 생긴다(Bahr).

1) 실제로 엘리사가 받은 능력은 엘리야의 두 배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엘리사가 산 생애의  길이나 그가 나타낸 기적의 수나 양은 엘리야가 행한 것보다 두 배의 능력을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인 것이다. 2) 그러한 요구는 주인을 모시는 종 된 자로서 가장 겸손치 못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종이 결코 그 주인만  못하다고  했던 것이다(마 10:24). 따라서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갑절의 영감을 요구한 것은  하나님의 일에 대한 열심을 나타낸 표현으로 엘리야같이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으로 인정받기 위한 것이다(Matthew Henry, The Interpreter's Bible).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사역자도 하나님의 능력을 받기 위해서 먼저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간절히 간구하는 경건의 훈련이 절실히 요청된다(히 4:16).

10절 바요메르 히키쉬타 리쉬올 임 티리에 오티 리카흐 메이타크 이히 리카 켄 비임 아인 로 이히예

=====2:10

 가로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 엘리야의 이 말은 엘리사가 요구한 일의 중요성의 정도를 나타낸다. 왜냐하면 9절에서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고 할 때 엘리야는 자신이 쉽게 줄 수 있는 것을 의미했던 것 같다. 그런데 엘리사의 요구는 엘리야가 기대했던 대답이 아닐 뿐만 아니라(Matthew Henry Commentary) 자신이  행할 수 없는 하나님께만 속한 일 즉, 신령한 축복을 원한 것이기에 그 일은  어렵다고 한 것이다. 또 엘리야는 후계자를 임명함에 있어서 인간적인 의식은 만인이 보는 가운데서 치를 수 있으나 이에 대한 신적인 증거는 자신의 영역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Keil & Delitzsch, Pulpit Commentary). 그렇기에 엘리야는 엘리사의 마음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께 엘리사의 신앙심 깊은 요청이 허락되도록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 - 신 31:23에서  여호수아가  모세의 지도권을 양도받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직접 임했다. 그러나 엘리야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이적이 곧 엘리사의 선지자적 직분에 대한 증거가 되리라고  했다. 즉 엘리야는 엘리사가 자신의 승천 모습을 직접 지켜보고 그리고 그 승천의 영적  의미를 깨닫는다면(Wycliffe) 그의 요청이 성취될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6:17;눅 24:16,31). 그래서 '그렇지 않으면'이라는 어느 정도 부정적인 면을 암시하는 말을 첨가해서 엘리야는 자신의 의도를 분명히 나타냄과  동시에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일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처럼 엘리야는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바라보면서 그분의 뜻을 신뢰하였으며 그 명령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사는 선지자적인 태도의 모범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11절 바이히 헴마 홀리킴 할로크 비다베르 비히네 레케브 에쉬 비수세 에쉬 바야피리두 벤 쉬네헴 바야알 엘리야후 바시아라 하샤마임

=====2:11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 원문의 문자적인 뜻은 '이에 그들이 걷기를 계속하면서 계속해서 말했다'란 의미로 이것은 두 사람이 요단 강을 건너  걸어가고 있을 때 하늘로부터의 징조를 기다리면서 한참 동안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을  가리킨다. 이처럼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엘리사에게 무슨 증거를 보이시도록 기도하였을 것이며 또한 엘리사는 스승의 최후를 맞이하면서 엘리야가 남긴 교훈을 하나라도 더 듣기를 원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과 유사한 예로서 눅 24:50,51에는 예수께서  하늘로 올리우시기 전에 제자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서 축복해 주시는 장면이  나온다.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 이 구절은 1장에서 말한 '하늘에서 내려온 불'과 연관됨이 분명하다(1:9-16). 엄밀하게 말하면 실제로 '불수레와 불말'에 관한 언급은 엘리야의 생애 중에서 불의 역사로 말미암은 그의 승리를 연상시켜 준다(왕상 18:24-38;왕하 1:10-12). 실제로 구약에서 말과 병거는 군대의 전쟁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며(출 14:7; 삿 4:3;욜 2:5;나 3:2), 불이 하나님의 현현을 상징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출 3:2;24:17;신 33:2;합 3:3-5)이 '불수레와 불말'이 하나님의 권능과 의지를  나타내는 구름을 의미(Lange)한다기보다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와 초자연적인 권능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Pulpit Commentary, Wycliffe).

   회리바람을 타고 - 원문의 문자적인 뜻은 '회리바람 안에' 또는 '회리바람 가운데'이다. '회리바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세아라'로서 검은 구름과 번갯불을 동반한 '태풍' 상태를 의미한 말로 하나님의 임재, 또는 하나님의 진노 하심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여기서 회리바람은 자연법칙에 의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으로 일어난 현상이었다(욥 38:1;행 2:2). 그리고 원문을 보면 엘리야가 불수레와 불말을 타고 승천했는지 분명치가 않다. 단지 갑자기 불수레와 불말이 나타나자 엘리야와 엘리사가 태풍 가운데 사라진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 그러므로 엘리야가 불 병거를 타고 올라간 것이 아니라(말 4:5,6;마 11:14) 폭풍 중에, 즉 주께서 임재하시는 가운데 승천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Wycliffe). 그래서 17절에서 오십 인을 보내어 엘리야를 찾아오게 한 것도 이와 같이 그의 사라짐이 묘연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엘리야가 에녹(창 5:22-24), 예수(눅 24:50-53)와 같이 죽지 않고 하늘에 올라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모든 신자들이 경험하게 될 일에 대한 예표이기도 하다(고전 15:51;살전 4:17). 한편 후대의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시지 직전에 먼저  엘리야가 나타나리라(말 4:5)고 믿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유대 문헌 가운데 기록하고 있는 바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유월절에 엘리야가 갑자기 들어올 것을 예상하고 문을 잠그지 않았다고 하며, 개들이 즐겁게 짖으면 그것이 엘리야가 오는 소식이라 하여 가슴을  두근거렸다는 것이다(Bahr).

   승천하더라 - 여기서 히브리 원문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는 '알라'인데 이것은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질문할 때(3,5절) 사용한 단어 '라카흐'와 다른 뜻이다. 즉 '라카흐'는 하나님이 그를 데리고 가심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알라'는 그 원형인 '번제'라는 뜻의 '올라'에서 보듯이 완전히  태워져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 사라지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확실히 에녹이 승천한 경우와 연관되는데(창 5:24) 창세기의 기록에서는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을 해석할 때 엘리야의 승천 방법을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의하여 그의 모습을 사라지게 하심으로써  에녹과 모세와 동일하게 취하셨음을 인정할 수 있다. 한편 하나님의 기적과 초자연적인 능력을 부인하는 자유주의적인 신학자들의 일부는 본 엘리야의 승천 기사를 하나의 전설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The Interpreter's Bible). 그러나 그 현장을 목격한 당시의 선지 학교 학생들과 엘리사의 증언에 의해 또는 승천 전에 언급된 사실(3,5절)을 미루어볼 때 그리고 변화 산상에서 모세와 같이 나타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엘리야의 기사를 살펴볼 때 그 사건의 역사적 진실성과 객관적 사실성은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할 수 있다(마 17:3,4;눅 9:30). 이러한 엘리야 선지자의 승천 사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 곳에 대한 확실성뿐만 아니라 인간의 불멸성에 대해 어렴풋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불멸성은 성도의 몸이 입게 될 영광이고, 이러한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가 승천하신 것에 대한 한 상징인 것이다(Matthew Henry Commintary).

[히브리어 성경 열왕기상 강해] 아비삭을 아내로 구하는 아도니야(왕상 2:10-18)

 

[히브리어 성경 열왕기상 강해] 아비삭을 아내로 구하는 아도니야(왕상 2:10-18)

다윗이 죽은 후에 아도니야는 밧세바를 찾아가서 다윗의 시종을 들었던 후처인 아비삭을 아내로 달라고 청합니다. 솔로몬에게 말하여 아비삭을 자신의 처로 맞이하게 해 달라고 말합니다. 아도

el-bethel.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