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히브리어로 보는 사사기 중에서 요셉 자손의 벧엘 정복 사건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12지파는 가나안 땅에 남아 있는 족속들과 싸워서 몰아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므온과 베냐민은 자신의 땅에 들어와 있는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쫓아내지는 못했습니다. 요셉 자손도 열심히 벧엘을 정복하기 위해서 싸웠습니다.
요셉 자손의 벧엘 정복 사건(삿 1:16-26)
16절 우베네 케니 호텐 모쎄 알루 메이르 하테마림 에트 베네 예후다 미드바르 예후다 아쎄르 베네게브 아라드 바옐레크 바예쎄브 에트 하암
=====1:16
본절은 모세의 장인이 속했던 겐 족속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들어왔음을 보여 준다. 민 10:29,30에 따르면 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또는 르우엘)와 처남 호밥에게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자고 요청했으나 호밥은 처음에 이를 거절했었다. 그러나 본절을 통해서 볼 때 호밥은 후에 이 같은 청을 수락하고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들어온 것이 틀림없다.
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 모세의 장인 이드로와 그의 처남 호밥은 원래 가나안 원주민이 아니라 미디안 족속 중 하나인 겐 족(Kenites)이다. 이 겐 사람에 대한 최초의 성서 기록은 창 15:19에 나타나며 발람의 신탁 속에 등장하는 '가인 사람'도 역시 겐 족을 가리키는 말이다(민 24:21,22). 이들은 주로 홍해 부근, 즉 엘란(Elan) 만 동부 지역인 아카바(Aqaba) 만 일대에 거주했었는데 점차 모압 경계선 북부(민 21:4), 팔레스틴 남부 산악 지대에까지 북상하였다. 아무튼 모세 이후부터 이들 겐 사람은 히브리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고(출 2:15-22) 다윗 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언급되고 있다(삼상 15:6;30:29). 그리고 본절에서는 이 겐 족이 유다 지파의 지경내(地境內)에 거함으로써 이스라엘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
종려나무 성읍 - 일명 '향기의 도시', '달(月)의 도시'로도 불렸던 여리고를 가리킨다(신 34:3;대하28:15). 예루살렘 동북방 약 27km 지점에 위치한 성읍인데, 종려나무의 산지로 유명하였기 때문에 '종려나무 성읍'(the City of palms)으로 불렸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당시 최초로 정복한 성읍이기도 한 바, 이에 대하여서는 수 6장을 참조하라. 한편 혹자들은 겐 족이 유다 지파와 처음부터 함께 아랏 남방의 헤브론과 드빌로 갔다고 보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종려나무 성읍은 헤브론에서 상당히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여리고를 가리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본절에 보면 겐 족이 처음에 머문 곳은 분명히 종려나무 성읍인 여리고이며 그 후에 유다와 시므온이 남방을 정벌할 때 아랏 남방으로 내려가 유다 백성과 함께 거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랏 남방 - 아랏은 헤브론 정남쪽 25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성읍이다. 넓고 완만하게 경사진 황무지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이곳은 아브라함 당시 이미 문명이 발달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아랏과 여리고는 약 85km가량 떨어진 먼 거리이므로 겐 족의 이주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백성 중에 거하니라 - 혹자는 '백성'에 해당하는 원어 '암'이 '아말렉'과 첫 두 자음이 일치하며, 겐 족속이 아말렉과 깊은 연판이 있는 족속이라는 사실을 들어(삼상 15:6), 여기서 '그 백성'이란 아말렉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미 앞에서 유다가 언급되었고 '암'이라는 단어에 정관사가 덧붙어 있으므로 '그 백성'이란 유다 지파를 가리키고 있음이 틀림없다. 역사적으로도 겐 족이 다윗 시대까지 이스라엘 백성들과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처음의 주장은 분명히 옳지 않다(삼상 30:29).
17절 바옐레크 예후다 에트 쉬므온 아히브 바야쿠 에트 하케나아니 요셰브 체파트 바야하리무 오타흐 바이크라 에트 솀 하이르 호르마
=====1:17
스밧...이름을 호르마라 하니라 - 스밧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오늘날의 '텔 엘 밀'(Tell-ei-Milh)이거나 '텔 에쉬세리아'(Tell esh-Sheriah)인 것으로 추정된다. 전자는 브엘세바에서 약 10km 정도, 후자는 약 20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성읍이다. 한편 유다와 시므온 연합군은 스밧을 진멸한 뒤 '호르마'라 칭하였는데, 이는 '완전히 파괴하다'는 뜻이다. 이것은 성읍의 파괴가 신들에게 언약의 맹세를 표하는 하나의 종교적 예식임을 암시하는 말로서 당시 고대 근동에서 널리 행해지던 것이다. 이러한 완전한 진멸은 잔인한 면도 있으나 전쟁에 뒤따르기 쉬운 것들, 즉 예를 들면 강간, 약탈 등의 추한 행위들을 미리 예방해 주는 이점도 있었다. 특히 유다 지파의 이러한 철저한 도륙은 그 땅에 뿌리박고 있던 우상과 이방 종교의 척결이란 점에서 오히려 의미가 깊다. 한편 호르마라고 불리는 이 스밧은 시므온 지파가 유다 지파의 지경 내에서 얻은 시므온 지파의 기업이었다(수 19:4).
18절 바일레코드 예후다 에트 아자 베에트 게불라흐 베에트 아쉐켈론 베에트 게불라흐 베에트 에크론 베에트 게불라흐
=====1:18
가사...아스글론...에그론 - 아스돗, 가드와 더불어 블레셋의 5대 성읍으로 꼽히던 도시들이다(수 13:3). 이 중 가사(Gaza)는 예루살렘 남서쪽 80km, 지중해에서 내륙 쪽으로 약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였다. 그리고 아스글론(Ashkelon)은 가사 북쪽, 아스돗 남쪽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였다. 마지막으로 에글론은 블레셋의 다섯 성읍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하였다. 따라서 유다와 시므온 연합군은 남쪽에서부터 점차 북쪽으로 북상하면서 블레셋 성읍들을 정복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때 그곳의 거민들을 완전히 진멸하지 못하였는 바, 이들 성읍들은 다시금 블레셋의 장중에 들어갔으며 이후 이스라엘을 고질적으로 괴롭히는 대적이 되었다(14:19;삼상 5:1,10;7:7,8).
19절 바예히 아도나이 에트 예후다 바요레쉬 에트 하하르 키 로 레호리쉬 에트 요쉐베 하에메크 키 레케브 바르젤 라헴
=====1:19
본절에서는 두 가지 대조적인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는 유다 지파가 신앙적으로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을 믿음으로 산지(9절) 거민들을 쫓아낼 수 있었던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불신앙적으로 철병거를 두려워하여 골짜기의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한 사건이다.
철병거가 있으므로 - 인류가 철을 생산하여 사용한 것은 헷 족속(Hittites)에 의해서였다(성경 총론, '구약과 고대 근동 문화' 참조). 그들 중 일부는 일찍부터 가나안 땅에 이주해 온 듯하며(창 23:3 ; 26:34) 합금 기술의 개발을 통해 다른 어느 부족보다 더 막강한 무기를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이 철재 무기는 사울 왕 시대에 블레셋의 기술에 의존하여 사용한 것이 고작이었으므로 당시 철재 무기는 매우 구하기 힘들었다(삼상 13:22).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철병거로 무장한 가나안 족속을 두려워한 것은 한편으로는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산지 거민을 쫓아내었던 그들이 철병거를 두려워하여 골짜기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하였다는 사실은 불신앙이라는 말로 설명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전에 여호수아는 가나안족들에게 철병거가 있다 하더라도 틀림없이 그들을 쫓아낼 수 있다고 요셉 지파에서 주지 시켰던 적이 있었다.(수 17:16-18). 그리고 실제로 사사 시대에 드보라와 바락은 철병거 9백 승을 가진 야빈 왕을 무찌르고 승리를 거둔 적도 있다(4:13-16). 따라서 유다 지파가 철병거를 가진 적에 대해 미리 겁을 집어먹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불신앙으로 인하여 정복 사업을 완수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 이에 해당하는 원어 '로 레호리쉬'는 능력이 없어서 쫓아내지 못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쫓아내지 아니한 직무 유기 내지는 고의적 회피 행위를 의미한다. 족 유다 지파는 골짜기 거민들을 쫓아내 보려고 시도도 하지 않은 채 미리 겁을 집어 먹고 아예 이 일을 포기했던 것이다(Lange).
20절 바이테누 레칼레브 에트 헤브론 카아쎄르 디베르 모쎄 바요레쉬 미솸 에트 쉘로솨
=====1:20
모세의 명한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 일찍이 모세의 가나안 정탐꾼 파송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구절이다. 즉 과거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정탐꾼들은 모세에게 회의적인 보고를 하였었다(민 13장).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만은 이스라엘이 능히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다고 보고하였다(민14:6-9). 그러자 모세는 갈렙에게 축복하기롤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수14:9)고 하였다. 그 같은 약속에 근거해 갈렙은 여호수아 생존 당시 헤브론을 요구, 기업으로 받았었던 것이다(수14:13-15). 본절은 바로 그 사건을 다시금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아낙의 세 아들 - 이미 10절에서 언급된 아낙 자손의 세 씨족인 세새, 아히만, 달매를 가리킨다. 한편 갈렙을 대장으로한 유다 자손이 이들을 무찌른 기사는 수 15:13,14에 상세히 나와 있다. 그러므로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21절 베에트 하예부시 요셰브 예루솰람 로 호리슈 베네 빈야민 바예쎄브 하예부시 에트 베네 빈야민 비루솰람 아드 하욤 하제
=====1:21
본절에는 베냐민 자손이 예루살렘 거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수 15:63에는 유다 자손이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 두 기록은 서로 상치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베냐민과 유다의 경계는 벤 힌놈 골짜기와 예루살렘 남쪽 지역에서 서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수 15:8 ; 18:28). 그러므로 여부스 사람을 예루살렘에서 쫓아내지 못한 책임은 이 두 지파 모두에게 있었던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수 15: 63 주석을 참조하라.
여부스 사람 - 가나안 일곱 족속 중 한 족속으로서(창 10:16). 예루살렘 산악 지대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이다(수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 그래서 고대에는 예루살렘을 '여부스'라고도 불렀다(19:10 ; 수 15:18 ; 18:28 ; 대상 11:4 등). 한편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의 이 같은 공격 실패로 인하여 예루살렘은 사사 시대 동안 이스라엘로부터 독립되어 있었다(19:10-12), 그러다가 다윗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완전히 정복된다(삼하 5 : 6-10). 그러나 다윗의 정복 이후에도 부분적이나마 여부스 사람의 예루살렘 거주는 계속 허용된 듯하다 (삼하 24:16).
오늘날까지 예루살렘에 거하더라 - 예루살렘이 완전히 정복당하고 여부스 족이 축출당한 때는 다윗 시대이다. 따라서 여기서 가리키는 '오늘날'이란 B.C.1050-1000년 경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연대는 본서의 기록 연대를 추정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바, 본서의 기록 연대 역시 이 시기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사사기 서론 참조.
22절 바야알루 베이트 요세프 감 헴 베이트 엘 바아도나이 임맘
=====1:22
본절은 베냐민 지파와는 달리 요셉 지파가 믿음으로 정복 사업에 나아갔음을 보여주고 있다.
요셉 족속 - 여기서 '요셉 족속'이라 함은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를 통틀어 칭하는 말이다(수 17:17). 그들은 유다와 시므온처럼 기업을 함께 할당받았기 때문에(수16:1-4) 연합하여 벧엘 정복에 나섰음이 틀림없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 258).
벧엘 -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19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베이틴(Beitin)이다. 이곳에는 좋은 샘들이 많아 고대로부터 유목민들의 각광을 받았었다. 본래의 이름은 '루스'(23절)인데, 야곱에 의해 '하나님의 집'이란 뜻의 '벧엘'로 바뀌었다(창 28:16-19). 한편 이러한 벧엘은 본래 베냐민 지파에게 분배된 땅(수 18:22)이었으나 요셉 족속의 남쪽 경계선과도 서로 맞물려 있었다(수 16:1,2). 따라서 요셉 족속도 벧엘에 거주하고 있는 가나안인들을 다 쫓아내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영토를 보호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므로 본절에서 요셉 족속이 벧엘 정복에 나선 것이다. 한편 벧엘 정복에 관한 기사는 성경상에 상세히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추측컨대 여호수아가 아이 성을 정복한 후(수 8장) 곧이어 벧엘도 일시 정복했던 것 같다(수12:16). 그러나 벧엘은 다시금 가나안 원주민들의 수중에 넘어갔으며 이에 본절에서 요셉 족속이 재차 정복에 나선 것 같다(Goslinga). 아무튼 이러한 벧엘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하지만 '하나님의 집'이란 뜻의 이름에 걸맞지 않게 벧엘은 왕정 시대 당시 우상 숭배의 중심지가 되었다(왕상 12:26-33 ; 왕하 17:27-33 ; 렘 48:13).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 - 요셉 족속이 벧엘을 성공적으로 정복하게 된 동인(動因)이 근본적으로 여호와께 있었음을 상기시켜 주는 구절이다(삼상 17:47).
23절 바야티루 베이트 요세프 베베이트 엘 베솀 하이르 레파님 루즈
=====1:23
벧엘을 정탐케 하였는데 - 여기서 '정탐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투르'는 '경비가 엄한 지역을 몰래 살피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는 모세가 가나안에 염탐꾼들을 보냈던 것(민 13:1-20)과 비슷한 행위임을 알 수 있다. 즉 요셉 족속의 이런 신중한 태도는 그들이 참으로 믿음 가운데 서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루스 - '벧엘'의 본명이다. '하나님의 집'이란 뜻의 '벧엘'이란 이름은 야곱이 처음 붙인 것이며(창 28:19) 가나안족들은 그곳을 '루스'라했다. '루스'란 '왜곡되다', '떠나다'라는 뜻인데 벧엘의 우상 숭배 역사와 잘 부합되는 이름이다. 한편 수 16:2에는 "벧엘에서부터 루스가 나아가"라는 언급이 있다. 이는 마치 벧엘과 루스는 서로 인접해 있는 다른 지역인 것처럼 생각케 해준다. 때문에 혹자는 루스의 남쪽을 '벧엘'로 보고 있기도 하다(Cassel).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껏 살펴보아왔듯 이 '루스'와 '벧엘'은 동일한 지역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수16:2 주석을 참조하라.
24절 바이르우 하쇼메림 이쉬 요체 민 하이르 바요메루 로 하르에누 나 에트 메보 하이르 베아시누 임메카 하세드
=====1:24
본절에 기록된 사건은 여리고 정탐 시에 기생 라합에게 일어났던 사건과 유사하다(수 2장). 아무튼 이는 요셉 족속이 어떻게 견고한 요새 벧엘을 정복하게 되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또 벧엘 정복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요셉 족속과 함께 하셨음(22절)도 잘 보여 준다.
성읍의 입구 - 이것은 성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벧엘 사람들이 요셉 족속의 성문 출입을 허용 할리 만무하다. 따라서 이는 요새화 된 벧엘에 침입해 들어갈 수 있는 비밀 루트(root)나 방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 259).
선대하리라 - 원문을 직역하면 '자비를 보이겠다'. '은혜를 베풀겠다'는 뜻이다. 여기서 '자비', '은혜'에 해당하는 원어 '헤세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긍휼' 또는 인간과 인간 간의 '변함없는 신뢰'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창19:19 ; 삼하16:17 ; 시59:17). 여기서는 정탐꾼이 벧엘 거민에게 제시한 '약속을 어기지 않고 반드시 이행하겠다'는 강조적 의미로 쓰였다.
25절 바야르엠 에트 메보 하이르 바야쿠 에트 하이르 레피 하레브 베에트 하이쉬 베에트 콜 미쉐파흐토 쉴레후
=====1:25
그 사람이 성읍의 입구를 가르친지라 - 이 벧엘 사람은 요셉 족속의 정탐꾼으로 말미암아 신변의 위협을 느꼈으므로 이처럼 성읍의 입구를 가르쳐 주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탐꾼이 그에게 정중히 도움을 요청한 점으로 보아(9절) 자발적인 행동이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즉 그는 여리고 성의 라합처럼(수2:8-11). 이미 하나님께서 요셉 족속과 함께 하심(22절)을 감지했기 때문에 정탐꾼의 요청에 협조했을 것이다.
그 사람과 그 가족을 놓아 보내매 - 라합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은 신실하게 약속을 지켰다(수6:17). 이와 같이 한 사람의 행동 여하에 따라 전가족의 구원과 멸망이 좌우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대표 원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과거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오늘날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구원받게 된 것이다(롬5:18). 물론 구원은 최종적으로 개개인과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어떤 사람이 타인의 구원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이 주변 사람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쳐 구원에로 인도할 수는 있으므로, 성도의 힘쓸 의무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고후 2:15, 16 ; 딤후 4:2).
26절 바옐레크 하이쉬 에레츠 하히팀 바이벤 이르 바이크라 쉐마흐 루즈 후 쉐마흐 아드 하욤 하제
=====1:26
헷 사람의 땅 - 헷 족속은 인도 유로피안(Indo-European) 족이다. 이들은 B.C.1800-1200년 사이에 소아시아와 시리아 지역에 거대한 왕국을 건설했었다(수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 참조). 고고학자들은 이스라엘의 족장 시대나 모세 율법 시대에 일어난 사건들과 헷 족속의 법률이나 관습들, 특히 이들의 종주권 계약(suzerainty treaties) 사이에 많은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한편 시리아 지역은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당시 '헷 족속의 온 땅'으로 불렸다(수 1:4). 따라서 본절에서 벧엘 거민이 이주하였다는 '헷 사람의 땅'은 시리아의 어느 한 지역이었음이 분명하다.
그 이름을 루스라 하였더니 - 이 사람은 자신의 새로운 정착지에 다가 벧엘의 옛 이름인 '루스'라는 칭호를 붙였다. 이곳의 위치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떠나다'라는 뜻 외에도<23절> '편도나무'(almond)라는 뜻을 지닌 '루스'라는 이름에 근거해 추정해 볼 수는 있다. 즉 편도나무로 유명했던 고대 헷 족속의 땅으로는 북부 시리아의 '쿠프로스'가 있으므로 이곳이 곧 루스였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Cassel).
[히브리어로 보는 사사기] 사사 옷니엘의 드빌 정복 사건(삿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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