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말씀 강해

[로마서 1장 주일설교말씀] 이방인의 우상숭배의 죄(롬 1:18-32)

엘벧엘 2022. 9. 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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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우상숭배의 죄(롬 1:18-32)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우상을 숭배한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다.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을 섬기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께 큰 죄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우상숭배가 큰 죄라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로마서 1-2장은 구원의 필요성에 대하여 증거한다. 사람들에게 구원이 필요한 것은 그들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 때문이다.

[18-19] [이는]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나타남이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사람들에게 구원이 필요한 까닭은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죄에 대해 하나님의 진노가 내릴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구원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죄 때문에 구원이 필요하다. 바울은 죄인을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 죄인은 불의를 행하면서 진리를 가로막는다. 사람들에게 진실이 있다면 죄는 죄로 드러나고 죄 문제의 해결이 가능하겠지만, 죄를 감추는 곳에는 소망이 없다.

사람들의 죄는 불경건과 불의로 요약된다. 불경건은 하나님을 향한 죄의 통칭이며, 불의는 모든 죄의 통칭이다. 물론, 불의는 불경건을 포함한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 의(義)요, 그것을 어기거나 지키지 못한 것이 죄이다. 죄들 가운데 불경건의 죄가 있고 이 죄가 근원적인 죄이다. 다른 모든 죄는 불경건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불경건에 대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어느 정도 모든 사람 속에 나타나 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보이셨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어느 정도 알려주셨다. 이것을 하나님의 일반 계시라고 말한다.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神性)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오묘한 천지만물의 시작과 현재까지의 보존을 묵상할 때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영원하심 즉 그의 신성(神性)을 깨닫게 된다. 자연만물은 하나님의 모습을 반영하는 거울과 같다. 자연 세계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과 신성(神性)의 증거가 확실하므로, 사람은 하나님께서 계신 줄 몰랐다고 핑계할 수 없다.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거나 감사치 않고 도리어 우상숭배에 떨어졌기 때문에 진노하신다. ‘하나님을 알되라는 말씀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의식하고 있음을 보인다. 무신론자도 전쟁 중에는 하나님을 찾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선조들은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었으나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고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신을 섬겨왔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를 어느 정도 의식하며 살지만, 그 하나님을 참으로 영화롭게 하지 않고 또 그에게 감사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마음은 미련하고 심히 어둡다. 천지만물의 기원에 대한 지식을 가지지 못한 것이 인생의 근본적인 무지(無知)요 어리석음이다.

 

[22-23]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새들과 짐승들]와 버러지 형상[기는 것]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사람들은 자신을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가 창조한 세계에 살면서 창조주를 알지 못하고 있다. 세상의 시작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세상의 진행 방향과 목적에 대한 지식도 있을 수 없다. 인류 역사상 천재적 사상가들의 결론은 바보들의 결론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성경은 모든 사람을 다 무지하고 어리석다고 말한다.

사람의 무지의 대표적 증거가 우상숭배이다. 우상숭배는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세계를 혼동함이다. 하나님께서는 영원자존자시요 그의 영광은 썩어지거나 없어지지 않으신다. 그러나 이 세상것들은 다 썩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자들은 우상숭배에 빠져 있다. 우상숭배는 불경건과 무지의 증거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의 불경건에 대해 진노하시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그러므로라는 말은 불경건이 모든 정욕의 죄의 원인임을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도덕의 근원이시고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부도덕의 뿌리이다. 그러므로 도덕 갱신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악을 떠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불경건한 자들을 정욕의 죄 가운데 버려두셨다. 그는 죄인들을 회개시키시고 구원하실 능력도 있고 그들을 버려두실 권한도 있다. 왜 자신들을 구원치 않으시냐고 항의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을 떠났고, 지금도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있고 자연만물 속에 명백히 나타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감사치 않고 오히려 우상숭배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불경건한 마음을 마음의 정욕과 더러움에 버려두셨다. 정욕의 죄는 불경건의 죄에서 나온다. 그것은 불경건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추가적 징벌이다. 죄는 죄를 더한다. 불경건한 사회는 음란한 사회가 된다. 그것은 확실히 하나님의 징벌이다.

 

[25]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하나님의 진리는 하나님에 관한 바른 생각을 가리키고, ‘거짓 것은 하나님에 관한 잘못된 생각들을 가리킨다. 사람들은 참 하나님을 우상으로 대치했고, 하나님에 대한 참된 생각을 우상의 생각들로 대치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피조물을 조물주 대신 혹은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많은 사람이 우상 앞에 절하지만, 우상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 많은 사람이 조상들에게 제사를 드리지만, 죽은 조상들은 후손에게 복을 주지 못한다.

많은 현대인이 하나님 대신에 돈을 사랑하며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그러나 돈이 신이며 인간이 신인가?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는 병원 중환자실이나 장례식장에 가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어리석게도 돈의 노예가 되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돈을 위해 살며 또 자신만 의지하며 살다가 불쌍하고 허무하게 죽는다. 인간은 이런 헛된 것들을 극복해야 한다. 영원히 찬송을 받으실 분은 창조자 하나님뿐이시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바로 깨닫고 마음을 다해 그에게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 한다.

 

[26-27]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사람의 죄들 가운데 두드러진 죄는 부끄러운 정욕의 죄 즉 음란의 죄이다. 바울은 여자들의 죄에 대해 말한다. 여자들은 자신을 순리대로 쓰지 않고 역리로 쓴다. 자신을 순리대로 쓴다는 말은 성년이 되어 결혼하여 정상적 결혼생활을 하는 것을 말하며, 역리로 쓴다는 것은 정상적 결혼생활을 이탈하여 행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특히 여자들의 매춘 행위나 동성애 등을 가리켰다고 본다.

바울은 남자들의 죄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들도 하나님께서 주신 부부관계로 만족하지 않고 심지어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다. 이것은 남자 동성애를 가리킨 것이라고 본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결혼의 질서를 파괴하는 악한 일이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은 이렇게 심히 변질되고 부패되었다.

동성애의 죄악은 옛날 소돔과 고모라 성 사람들의 죄악이었다(19). 또 옛날 가나안 족속들에게 이런 동성애의 죄악이 있었다(18). 또 고대 헬라와 로마 사람들 가운데도 이런 죄악이 보편적이었다. 시세로(Cicero)는 말했다. “[동성애의] 행위는 헬라인들 가운데는 보편적이었고, 그들의 시인들과 위인들 및 심지어 그들의 지식 있는 자들과 철학자들도 그런 일을 행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을 자랑했다. . . . 그것은 어떤 특정한 도시들만의 풍습이 아니라 그리스 전체의 풍습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동성애에 대해 상당한 보응을 내리셨다. 소돔과 고모라 성은 유황불비로 잿더미가 되었고 가나안 족속들은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 멸망을 당했다. 고대 헬라와 로마도 다 멸망했다. 오늘날 에이즈(AIDS)병의 유행은 현대 사회의 음란과 동성애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보인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경건한 자가 되어야 한다. 경건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두려워하며 그에게 합당한 경배와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경건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을 부정하거나 하나님께 돌려야 할 합당한 감사와 영광을 돌리지 않는 것이 불경건이다. 또 하나님보다 돈이나 세상의 것이나 육신의 쾌락이나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이 불경건이다. 오늘날은 심히 불경건한 시대이다. 성도들은 이 불경건한 시대에 참된 경건을 실천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성결해야 한다. 모든 음란의 죄악들을 다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이 음란한 세상 속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깨끗이 지키도록 힘써야 한다. 하나님의 진노와 최종적 심판은 불경건하고 음란한 세상에 임할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과 더불어 멸망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은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거룩해야 한다.

 

[28] 또한 저희가 마음에(엔 에피그노세이)[지식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아도키모스 누스)[무가치한(BDAG), 부패한(NASB, NIV) 생각]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죄인들은 세상의 많은 지식은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가지기를 싫어한다. 하나님의 지식이 모든 지식의 근본이지만 그들은 그 지식을 거절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 무가치한 생각대로 내버려두셨다. 죄인의 생각은 하나님의 표준에 미달하고 무가치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려두셔서 합당치 못한 일들을 행하게 하셨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거절하는 자들은 결국 여러 가지 죄악에 떨어진다. 불경건은 모든 죄악들의 뿌리이다.

 

[29] 곧 모든 불의, [음행](전통본문), 추악(포네리아)[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사람들에게는 모든 불의가 가득하다. ‘모든이라는 말은 뒤에 나오는 가득한 자요라는 말과 더불어 여기에 대표적으로 열거된 죄악들의 다양한 종류들에 관계된다. ‘불의’(不義)는 모든 죄악들의 대표적 명칭이다. ()는 하나님의 계명과 뜻에 일치하는 행위요, 불의는 그의 계명과 뜻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하나님께서는 온갖 종류의 불의를 정죄하시고 우리에게 의로운 삶을 원하신다.

또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음행이 가득하다. 음행은 인간 관계의 죄들 중에 매우 크고 심각한 죄이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음행과 불결을 미워하시고 우리에게 거룩하고 단정한 삶을 원하신다.

사람들은 또 악이 가득하고 또 탐욕이 가득하다. 악은 다른 사람에게 정신적, 물질적 해를 끼치는 것이다. 사람은 선해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악을 행해서는 안 된다. 또 탐욕은 이 세상의 것을 더 많이 가지려는 마음이다. 탐심은 하나님 대신에 세상을 사모하며 그것을 더 가지려는 마음이며 그것은 일종의 우상숭배이다(3:5). 성도가 영원한 천국을 참으로 믿고 소망하고 사모한다면 지나가는 이 세상의 것에 대한 탐심을 버려야 한다. 우리의 사모하는 보화와 우리의 영원한 기업은 하나님이요 장차 올 천국이다.

사람들은 또 악의’(惡意)가 가득하다. 악한 마음에서 악한 행위들이 나온다. 사람은 마음과 생각을 지켜야 한다. 악한 마음을 버리고 선한 마음을 간직해야 한다. 사람들은 또 시기, 살인, 분쟁이 가득하다. 시기는 교만과 함께 싹트고 미움과 함께 자라서 남과 다투며 남을 죽이는 데까지 나아간다. 우리는 교만과 시기를 버려야 한다. 우리는 남을 나보다 낫게 여겨야 하고, 남이 나보다 잘되면 축하하고 기뻐해야 한다. 또 진리의 싸움은 필요하지만, 그 외의 모든 다툼과 분쟁을 버려야 한다. 천국은 의와 진리 안에서 화평한 세계이다.

사람들은 또한 사기(詐欺)와 악독이 가득하다. 사람들은 자기의 유익을 위해 남을 속인다. 이런 이기심에서 온갖 종류의 악한 행위들이 나온다. 그러나 성도는 자기의 이익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고 거기에 순복해야 하고 또 하나님의 뜻 안에서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고자 하는 자들은 다른 이들을 위해 선한 마음과 행위를 가질 수 있다.

사람들은 또 수군수군한다.’ 이것은 은밀히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남에게 할 말이 있으면 당사자에게 직접 하는 것이 사랑이며, 뒤에서 그에 관해 수군거리는 것은 악한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각자 자기 일에 충실해야 하고 다른 사람의 일에 참견하지 말고 또 그에 대해 말 하기를 좋아하지 말아야 한다.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비방한다는 말은 공공연히 남을 비난하는 것을 가리킨다. 비방은 교만과 시기와 미움 등에서 나온다. 사랑은 이웃의 허물을 덮지만, 미움은 이웃에 대한 비난으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인간 관계에 금이 가고 가정이나 단체나 교회나 사회가 파괴된다. 사랑은 단체나 사회를 건설하는 덕이요, 미움과 비난은 그것을 파괴하는 악이다.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라는 원어(데오스튀게이스)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이라는 뜻이라고 본다. 사람은 왜 하나님을 미워하는가? 빛에 속한 자는 빛을 좋아하나 어두움에 속한 자는 빛을 싫어하기 때문이다(3:20). 악인은 하나님을 미워한다.

또 사람들은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이다. ‘능욕하는 자라는 말은 영어성경에는 멸시하는 자, 오만불손한 자라고 번역되었다. 능욕, 교만, 자랑, 이 세 단어의 뜻은 서로 가깝다. 교만은 죄악의 근원인 마귀의 죄악이었고, 모든 죄인들의 특성이 되었다. 피조물이 자신을 주인과 왕으로 여기는 것이 교만이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주인이시요 왕이시므로, 교만은 어리석고 무지한 일이요 매우 근본적 죄악이다. 거기서 남을 멸시함과 자랑이 나온다.

사람들은 또 악을 도모하며 계획한다. 이것은 실수의 악이 아니고 의도된 악, 계획된 악이다. 고의적인 악행은 실수로 범한 악보다 더 악하다. 부지 중에 범한 죄와 고의적인 죄는 크게 다르다.

사람들은 또 부모를 거역한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양육되지 않은 많은 자녀들은 부모들을 거역한다. 이것이 부패된 인간성이다. 아이들은 엄한 징계와 훈련을 통하지 않고는 도무지 통제되지 않고 길들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성경은 어릴 때부터 징계의 매로 아이들을 교육하라고 말했다(23:13-14). 사람의 부패된 인간성은 사랑의 징계를 통해 비로소 조금 제어될 수 있다(13:24; 22:15).

[31] 우매한 자요 배약(背約)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는 자요](전통본문) 무자비한 자라.

사람들은 우매하여 참 지식도 깨달음도 없다. 그들은 행복을 추구하면서 스스로 불행을 가져온다. 그들은 많은 지식을 추구하여 얻지만, 참으로 알아야 할 지식, 곧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며 지금 왜 여기 있으며 무엇을 위해 있는지에 대하여는 모른다. 이것이야말로 무지하고 우매한 인생의 모습이다. 과연, 이런 사람이 소와 말 같은 짐승보다 뛰어나다고 자랑할 수 있을까?

배약(背約)하는 자는 약속을 어기는 자, 불신실한 자를 가리킨다. 사람이 약속을 어기는 데는 부득이한 환경적 요인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는 자신의 불신실함 때문이다. 사람들은 쉽게 약속하고 그 약속을 쉽게 저버린다. 특히 사람의 불신실함은 시간에 대한 약속과 돈에 대한 약속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신실한 인격, 믿을 만한 인격은 약속을 하는 데도 신중하지만, 약속한 바는 반드시 지키려 한다.

무정한 자는 인정이 없는 자를 가리킨다.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서는 인정이 있어 보이지만, 환경이 조금만 악화되면 무정함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자기 유익을 위해 부모님을 저버리며 아내를 학대한다. 힘센 자는 약한 자의 것을 빼앗고 강대국은 약소국을 침입한다.

또 사람들은 원통한 일이 있을 때 그것을 마음 깊이 오래 간직하고 잘 풀지 않고 심지어 보복하려 한다. 이런 마음 때문에 인간 관계는 허물어진다. 우리는 우리에게 악을 행한 자와도, 그가 사과하면, 언제나, 즉시 화해해야 한다. 우리는 용서하기를 힘써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무자비하다. 자비와 긍휼은 하나님의 품성이다. 그러나 타락한 사람들은 이기적(利己的)이게 변하였고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고 남의 것을 교묘히 빼앗는다. 또 그들은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결코 할 수 없을 악을 행하며 또 거칠고 폭력적이고 사악한 자들이 되었다.

 

[32]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사람들은 이런 죄악들을 행하는 자가 죽어야 마땅하다는 하나님의 율법과 공의를 알고 있다. 이런 공의는 그들의 사회법들에 어느 정도 나타나 있고 그들의 양심의 법에도 반영되어 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벌은 사망이다. 그것은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도덕 법칙이다. 죄인은 영적으로, 육적으로, 영원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단지 죄인들의 육체적 죽음 정도가 아니고 그들의 영육이 당할 영원한 지옥 형벌을 포함한다(2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기만 이런 죄악들을 행할 뿐 아니라 이런 것들을 행하는 자를 옳다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더 가증한 뻔뻔함과 완악함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사람들의 죄악됨은 명백하고 충만하다. 모든 불의, 음행, ,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하고, 수군수군하고 비방하고 하나님을 미워하고, 능욕, 교만, 자랑하고, 악을 계획하고 부모를 거역하고, 우매, 배약(背約), 무정하고, 원통함을 풀지 않고 무자비하다. 또 악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는 뻔뻔함까지 있다. 이런 모든 죄악들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세상에 임한다.

우리는 이런 모든 죄악들을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이런 모든 죄악들을 깨끗이 씻음 받아야 한다. 사람의 죄들은 어떻게 씻음 받을 수 있는가? 사람의 죄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만 깨끗이 씻음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버리기를 결심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의 구원을 받고 이제는 모든 죄를 멀리하고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헬라어 성경말씀 빌립보서 강해]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라(빌 2:5-11)

 

[헬라어 성경말씀 빌립보서 강해]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라(빌 2:5-11)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라(빌 2:5-11) 성도는 마음에 예수님을 품고 있어야 한다. 바울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한다. 예수님은 근본이 하나님인데 사람의 형체를 가지고 이 땅에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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