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4차 세계선교 여행(2)”(행28장)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사도행전 28:1~31
요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행 28:31)
주제: 마침내 바울은 로마에 도착하여 가택 연금 중 복음을 담대히 전하다.
오늘은 추석입니다. 올해 폭우, 폭염, 대형산불, 태풍 가운데서 풍년을 맞이했다니 너무 감사가 넘쳐 납니다. 한편 산불, 폭우, 태풍 피해를 많이 받으신 이웃과 사랑과 관심을 함께 나누는 한가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 미국에서는 21년전 맨하탄에서 120층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린 슬픔의 날이기도 합니다. 2001년 9월 11일 화요일 아침에 맨하탄의 상징인 120층 두 개가 나란히 비행기 공격을 받고 무너져 내려 총 2,996명의 사망자(한인 희생자는 16명)와 최소 6,0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4대의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은 전원 사망하였고, 워싱턴 국방부 청사에서 사망하거나 실종된 사람이 125명, 세계무역센터에서는 약 2,500명의 사람이 사망하였습니다. 미국 전역은 하루 만에 일어난 큰 테러 사건으로 인해 비상사태에 빠지게 되었고, 미국은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미국의 발전과 안전을 위해 기도합시다.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은 사도행전 28장을 묵상합니다. 사도행전의 마지막 장이며 다음 주일부터 요한복음을 강해합니다. 유라굴라 라는 광풍으로 큰 위기에 처해졌으나 바울의 기도응답과 리더쉽으로 한 사람도 희생되지 않고 276명 전원이 파선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멜리데 섬에 무사히 정착하였습니다.
1. 멜리데(몰타 Malta)섬에 무사히 정착(행 28:1-15)
(1)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2) 토인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비가 오고 날씨가 추워지니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3) 바울이 한뭇 나무를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을 인하여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4) 토인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달림을 보고 서로 말하기를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공의가 살지 못하게 하심이로다’ 하더니(5)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버리니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6) 그가 붓든지 혹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그들이 기다렸더니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려 생각하여 말하되 ‘신이라’ 하더라.(7)이 섬에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유숙하게 하더니(8)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니(9)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10)후한 예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올리더라.(11) 석 달 후에 그 섬에서 과동한 알렉산드리아 배를 우리가 타고 떠나니 그 배 기호는 디오스구로라(12)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13)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난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14) 거기서 형제를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유하다가 로마로 가니라(15) 거기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사장과 삼관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사례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겉보기에는 별 교훈이 없는 평범한 사건들 같으나 여기에도 은혜로운 내용들이 있습니다. 멜리데 토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일반적 은혜가 있어 전도하게 되었으며 함께 배을 타고온 선장, 선주, 백부장, 승객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1-2절. 바울 일행이 바다 폭풍에서 살아남아 구원을 얻은 후에 안즉 멜리데라는 섬에 안주했습니다. 멜리데는 오늘날 몰타(Malta)라는 섬으로 이탈리아 남단에 있는 시실리아 섬 남쪽의 작은 섬입니다. 몰타섬(Malta Island)는 지중해의 섬나라 몰타 공화국에 있는 섬인데 면적은 약 246제곱km로 제주도의 1/3정도 크기입니다. 몰타 공화국(수도 발레타) 최대의 섬으로, 이탈리아 정남쪽, 리비아에서는 북쪽에 위치합니다. 역사적으로 몰타섬은 지중해 내에서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사람들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 왔습니다. 계단식 밭이 있는 낮은 언덕이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중요한 국제회의를 가지는 섬나라입니다.
멜리데(몰타) 섬의 원주민 토인들은 바울 일행에게 특별한 동정과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비가 오고 날씨가 다소 추워지는 때이었으므로 그들은 불을 피워 바울 일행과 배에 탄 승객들을 영접하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었습니다. 그들의 친절은 인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인간의 본성 속에는 남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본래 인간 속에 두신 선한 마음입니다. 문명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명의 발달이 오히려 인간의 인간성을 메마르게 하고 개인주의적이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3-4절. 바울이 한 뭇 나무를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을 인하여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었습니다. 우리말에 한 뭇(a bundle of sticks)이라는 말은 한 짐보다는 작고 한 줌보다는 큰 단위를 뜻합니다. 토인들이 이 뱀이 바울의 손에 달림을 보고 서로 말합니다.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공의가 살지 못하게 하심이로다.” 이것은 토인들 속에 있는 도덕의식을 증거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양심에서 나온 도덕성입니다. 그들은 악한 자는 공의의 형벌을 받는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 속에는 악을 행하면 ‘천벌’을 받는다는 의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본성 속에 심어주신 양심의 소리입니다.
5절. 바울이 그 뱀을 불에 떨어버리니 조금도 상함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하신 약속의 성취입니다. 마가복음 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그러나 이런 일을 오늘날 일부러 시험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사도시대의 현상이었습니다. 기적은 사도들이 하나님의 참된 종들이며 그들이 전한 복음이 하나님의 진리임을 확증하는 표이었습니다(고후 12:12). 히브리서 2: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신님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6절. 그들은 그가 독으로 인하여 붓든지 혹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으나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려 생각하여 그를 신이라고 말하였습니다. 토인들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의 능력이 많으시다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종교가 없는 민족은 없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의 본성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 즉 신 의식(神意識)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지으신 증거이기도 할 것입니다.
멜리데 섬 토인들의 도덕성과 종교성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어느 정도 주시는 일반적 은혜일 것입니다. 그 은혜 때문에 세상이 극도로 악하게 치닫지는 않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세상이 극악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멸망 당할 마지막 세상의 중심 도시를 사치와 음란으로 더러워진 바벨론이라고 부릅니다(계 17-18장). 그러나 아직은 하나님의 구원의 문이 열려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종교성과 도덕성이 있고, 그것은 아직 전도와 선교의 접촉점과 발판이 됩니다.
7-10절. 이 섬에서 제일 높은(chief man 추장) 보블리오(Publius)라 하는 사람이 그 근처에 토지가 있었습니다. 그가 바울 일행과 모든 승객들을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유숙하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어려움 속에서도 바울에게 주신 하나님의 위로였습니다. 그때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었습니다.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요 은혜이었습니다. 그 섬의 사람들은 병고침만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바울은 그들에게도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또한 이 치유사건이 선장, 선주, 백부장, 군인들, 모든 승객들이 모두 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비한 자에게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마음이 굽은 자에게는 굽음을 보이십니다(시 18:25-26).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행을 갚아주십니다(마 6:3-4). 사람은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갈 6:7).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후한 예절로 그들을 대접하였습니다. 바울 일행과 모든 승객들이 떠날 때에 그들은 그들의 쓸 것을 배에 올려 주었습니다. 바울은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토인들에게 병고침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울의 능력 때문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요 바울 일행에게는 큰 위로와 기쁨이었습니다.
11-15절. 석달 후에 바울의 일행은 그 섬에서 겨울을 지나(過冬)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로마로 출발하였습니다. 그 배의 깃발에는 디오스구로(Castor and Pollux)라고 새겨져 있었습니다. 수라구사(Syracuse, 시라큐즈)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Rhegium)에 이르러 하루를 지난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Puteoli = Pozzuoli는 이탈리아 캄파니아주 나폴리현에 위치한 코무네다. 캄피 플레그레이의 중요 도시임)에 이르러 거기서 형제를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7일을 함께 유숙하다가 로마에 도착하였습니다. 거기 형제들이 소식을 듣고 압비오 시장터(Appii forum)와 삼관(세 채의 여관들)까지 맞으러 왔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었습니다. 수라구사는 시실리아 섬 동쪽 항구이며 레기온은 시실리아 섬 건너편 이탈리아 반도 최남단 항구입니다. 바울을 맞으러 나온 이들은 주님의 진실한 제자들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라고 말씀하셨고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마 10:40, 42).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랑하시는 종 바울에게 많은 힘과 위로를 주셨습니다.
행 28:1-15의 본문으로부터 배우는 세가지 교훈은, 첫째로 우리는 서로를 향해, 특히 어려움을 당한 자들을 향해 친절과 인간애를 가지자는 것입니다. 멜리데 섬의 토인들에게도 그런 인간애가 있었습니다. 남을 배려하고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은 인간다운 모습이요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이요 그것이 실상 구원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친절과 선을 행하는 자들이 됩시다.
둘째로, 우리는 모든 불의와 불법을 멀리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본성 속에 있는 도덕성, 즉 양심을 거슬러 불의와 불법을 행하지 말고, 하나님의 계명과 선한 양심을 따라 의롭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갑시다.
셋째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믿고 어떤 현실에서도 낙심하지 맙시다. 바울은 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하나님의 선한 손길 안에서 살았고 시시때때로 많은 위로와 힘을 얻었고 체험하였습니다. 바울의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지금도 살아계셔서 섭리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참된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행하면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위로와 힘을 주셔서 체험케 하실 것입니다.
2. 로마에서 가택연금에서도 전도를 계속하다(행 28:16-31)
(16)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17)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모인 후에 말하기를 “여러분 형제들이여, 제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규모를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어준 바 되었으니 (18) 로마인은 저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놓으려 하였으나(19)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제가 마지못하여 가이사에게 호소함이요 제 민족을 송사하려는 것이 아니로라.(20) 이러하므로 여러분들을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노니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제가 이 쇠사슬에 매인바 되었노라.” (21)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유대에서 당신에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당신에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고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22) 이에 우리가 당신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노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줄 우리가 앎이라” 하더라.(23) 그들이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대언자(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님의 일로 권하더라(24)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언급한 말로 말하기를 “성신님(Holy Ghost)이 대언자 이사야로 여러분들의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26)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29)그들이 이 말들을 들을 때 유대인들이 떠나면서 자기들끼리 크게 논쟁하더라 And when he had said these words, the Jews departed, and had great reasoning among themselves.)30바울이 온 이태(2년)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31)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16절. 드디어 바울의 일행은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백부장은 죄수들을 시위대장에게 넘겼으나(개역판 성경은 누락하고 있으나 킹제임스 역에는 있음. the centurion delivered the prisoners to the captain of the guard, but). 바울은 그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바울과 함께 로마에 도착했고 바울 곁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의 우거하는 집’(23절) 혹은 ‘자기 셋집’(30절)에서 2년 동안 유숙했습니다.
17-19. 바울이 로마의 셋집에서 산지 사흘 후에 바울은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모인 후에 말했습니다. “여러분 형제들, 제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규모(관습)를 배척한(잘못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어 준 바 되었으니 로마인은 저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놓으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제가 마지못하여 가이사에게 호소함이요 제 민족을 송사하려는 것이 아니로라.”
바울은 유대인들 중의 높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오해나 잘못된 선입견을 갖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정죄받을 죄가 없었으나 정죄를 당했고 부득이 로마 황제[로마제국의 대법관]의 판결에 호소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처신은 지혜롭고 정당하였습니다. 당시 최고의 지도자 앞에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중요하고 뜻깊은 일입니다. 전도자에게는 행동의 정당함과 인격의 신임성이 중요합니다. 전도자가 거짓되다면 어떻게 진리를 선포할 수 있으며 그가 악을 행하거나 사리사욕에 따라 행동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종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종들에게는 거짓되다거나 불법하다는 말보다 더 심각한 비난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마귀의 방해와 인간의 무지와 미움, 이기심과 열등감 등의 연약성 때문에 사람들의 오해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지라도, 전도자가 그의 결백과 신임성을 변호하는 일은 필요하고 지혜롭고 정당한 일입니다.
20-22절. 바울은 또 로마에 거주하는 여러 유대인 원로들에게 말합니다. “이러하므로 여러분들을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노니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제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이스라엘의 소망’은 메시아의 오심과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소망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 때문에, 그분으로 말미암아 주시는 부활과 영생의 소망 때문에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습니다.
이에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유대에서 당신에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당신에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고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이에 우리가 당신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노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우리가 앎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초대의 신자들과 교회들은 이방인들에게서뿐만 아니라 또한 유대인 사회에서도 이미 반대를 받고 있었습니다. 로마에 사는 유대인들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23절. 로마에 서는 유대인들이 날짜를 정하고 바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왔습니다. 바울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대언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님의 일로 권하였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경의 주요 주제이며 복음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하며 죄인이 하나님 없이 사는 상태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 앞에 순종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장차 영광스런 천국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 복음을 전하실 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하셨습니다(마 4:17).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시작됩니다. 바울은 이 복음을 구약성경에 근거하여 증거하고 권면하였습니다.
24-29절.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마디로 경고합니다. “성신님께서 대언자 이사야로 여러분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그리고 전통사본에는 “그가 이 말을 마칠 때에 유대인들은 서로 큰 쟁론을 하며 물러갔다”고 되어 있는데 우리 개역 성경에는 “없음”으로 나옵니다.(행 28:29)
복음이 증거될 때에 믿는 자도 있으나 믿지 않는 자도 있습니다. 복음은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눕니다. 항상 그런 현상이 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은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적절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들었으나 그분을 알지 못했고 오히려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바울이 곳곳에 다니며 복음을 전했을 때에도 다수의 유대인들은 그가 전한 구원의 도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대적하였습니다. 그것은 이상한 영적 어두움이었습니다. 참으로, 구원은 전도자에게나 죄인 자신에게 달려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주이십니다. 물론 죄인 자신이 회개하고 믿어야 하지만,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회개치 않고 믿지 않을 것입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30-31절] 사도바울은 온 이태[2년]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 2년은 아마 재판받는 기간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전도의 기회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분께서 보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에게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비록 죄수의 몸, 쇠사슬에 매인 몸이지만 복음을 담대히 전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성신님께서 주시는 능력과 확신이었습니다. 바울의 전도 활동을 금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복음은 그 후에 계속 오늘까지 온 세상에 전파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 그러할 것입니다. 전통사본(킹제임스 역 성경이 대표적임)에 신약성경 마지막에 ‘아멘’이 있는데 사도행전, 야고보서, 요한3서 마지막에는 ‘아멘’이 없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사도행전 말미에 아멘이 없는 것은 사도행전의 땅끝 복음전파가 지금까지 계속 진행중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온누리 교회는 사도행전 29장이 지금도 계속 씌여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행 28:16-31의 교훈은 무엇인가요? 첫째로, 우리는 바울의 복음 전하는 열정을 본받읍시다. 그는 자신의 결백과 신임성을 위하여 자신을 변호하였습니다. 비록 그것이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지라도, 그러한 변호는 필요하고 정당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불리한 상황을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 환경을 바꾸었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오늘날도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은 전도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파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신님의 능력의 역사로, 또 바울 같은 전도자들의 헌신과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로, 온 세상에 전파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복음은 온 땅에 전파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하나님을 위해 복음을 전할 자들은 누구인가요? 바울은 죄수의 신분과 쇠사슬에 매인 몸으로 복음을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우리는 자유의 몸을 가지고 복음을 열심히 전하고 있는지요? 셋째로, 그러나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구원 문제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주이십니다. 사람이 복음을 깨닫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는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사람은 영적으로 심히 어두워져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회개하고 그분을 믿고 따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회개와 구원을 위해 또 구원받은 후의 성화를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것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사도행전 마지막을 읽으면서 바울은 마침내 로마에 도착하게 되었고, 로마에 사는 유대인들, 지도자들, 그리고 황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복음을 전함을 알게 됩니다. 사도행전에 다 기록되지 아니했지만 그는 마침내 스페인에 가서 복음을 전하며, 소아시아 지역을 다시 심방하다가 네로 황제에게 체포되어 로마로 돌아와 참수(그의 목이 땅에서 세 번 튀었고 전해진 그 장소에 바울기념교회당이 있음)되어 순교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이런 선교의 열정으로 모두 땅끝 선교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민족의 명절 한가위 추석을 맞이하여 한해동안 베풀어주신 은총과 축복 감사드립니다. 오늘까지 사도행전을 다 강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음 주일부터 요한복음을 강해할 때도 지속적인 은혜와 지혜를 더 하여 주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창세기 4장 강해설교말씀] 가인과 아벨의 제사(창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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