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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심령부흥성회 찬송가 193장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설교말씀

엘벧엘 2022. 11. 15.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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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심령부흥회를 개최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구합니다. 심령부흥회를 할 때 찬송을 많이 부르게 됩니다. 특히 보혈 찬송가를 많이 불러서 심령에 예수님의 은혜가 넘치도록 합니다. 우리의 죄를 씻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보혈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씻겨 주셨습니다. 이번 심령부흥회에서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를 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심령부흥성회 찬송가 193장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영본 생활과 육본 생활〉골 3:1-11

 

서 론 : 이 찬송가는 유명한 호프만(E.A.Hoffman 1838-1920)이 작사, 작곡한 부흥집회용 찬송가다.

이 찬송의 특징은 1-3절까지는 성도들의 올바른 신앙생활을 준엄하게 묻는 형식으로 되어 있고, 그 생활을 잘 영위하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예수의 보혈로 씻기어 있는가를 후렴을 통하여 확인하는 것으로 작시되었다.

성경 말씀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 위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 주 예수님이 계시고, 주 안에 내 생명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위엣 것을 찾으라는 말씀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마땅히 존중해야 할 영성을 몰각하고 육을 존중시하며, 만물의 영광인 인간의 영적생활을 기본으로 삼지 못하고 육에 기본 한 생활을 하고 있다.

영은 본이요, 육은 말인데 영육이 뒤바뀌었으니 본말이 전도된 셈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 받았으니 영본 생활을 함이 그 본분을 다 하는 일이다.

 

1. 영적 병과 육신의 병, 어느 것부터 고쳐야 하나?

인간은 연약한 육체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원치 않아도 종종 병에 걸린다. 사실 의사의 세밀한 진찰을 받아 보면, 어느 부분도 약하지 않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병자 아닌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인간은 병들면 괴롭고 아프고 만사가 귀찮으며 활동을 제대로 못해 생존의 위협마저 받아 근심, 걱정 끝에 죽기까지 한다. 그래서 분주하게 약도 먹고 의사의 진료도 받는다. 제일 우선되는 급선무는 먼저 병 고치는 일이다.

영이 병들어 아픈 것을 깨닫고 고치려고 애써 보았는가? 여러분은 아픈 곳이 생기면 기도부터 하는가? 병원부터 가는가? 더구나 신령한 영적 병이 들었을 때, 이를 치료하기 위하여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는가? 교인들이 주일을 범하거나 교회 출석을 못한 핑계로 몸이 아파서 못 왔다고 흔히들 말한다. 그러나 목사를 속이는 핑계라면 한 가지 죄를 더 짓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속지 않으신다.

신앙이 병들었을 때, 평시와는 달리 특별히 기도하거나 주의 종들을 모시고 예배드리거나 말씀을 사모하여 영적 고갈 상태를 채우려고 노력하였는가? 육신이 병들고 괴로울 때, 먼저 내 심령은 병들지 아니했는지 자아 진찰을 해 보자. 반드시 고치려고 노력할 때 영의 병이 낫게 되고 육의 병도 아울러 나을 것이다.

 

2. 영적 미와 육체미, 어느 것이 먼저인가?

 

베드로전서 3:3-4에 보면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라고 하였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라서 이성이 있기 때문에 미추를 판단하는 동시에 추를 미워하고 미를 추구한다. 이것이 인간의 특징이다.

인간은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하여 무던히 애를 쓴다. 더구나 젊은 사람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아름다움을 나타내려고 온갖 화장품을 쓰고 미장원 출입을 자주 하며 여러 가지 패물과 옷을 마련한다. 많은 돈이 들어도 아까워하지 않고 투자를 한다.

교인들도 예배당에 나올 때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하여 화장을 하고 옷을 골라 입고 온다. 될수록 아름답게 꾸며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영적 미를 나타내려고 애썼는가? 속 사람의 단장을 위하여 애쓴 것이 무엇인가? 마음에 온유하고 단정한 성품으로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하여 투자하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육적 미를 나타내는 단장에도 자기 경제에 맞게, 분수와 신분에 맞게, 환경에 맞게 가꾸는 것이 이상적인 단장이라고 하겠다.

 

3. 영적 소유와 육적 소유, 어느 것이 더 귀한가?

 

인간에게는 소유욕에 있어서 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바라고 원한다. 따라서 소유가 늘고 좋은 것이 될 때 기뻐한다. 부인들이 가정에서 살림을 살 때 옷이나 가구나 식기 같은 살림살이가 하나씩 늘고 새로 생길 때 기뻐하는 모습을 본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물질 소유의 기쁨이 아닌 영적 소유의 기쁨을 가져야 한다. 주일 하루를 지키고, 설교 말씀 한번 듣고, 성가대로 한 시간 봉사하며, 기타 교회에 나와서 행하는 모든 영적 일이 우리의 신령한 소유가 됨을 인식하고 보다 더 영적 소유에 치중하자.

육의 기쁨을 얻기 위하여 소유를 더욱 많게 하려면 많은 돈과 시간과 노력이 함께 드는 것같이 신령한 것을 소유함에 있어서도 힘쓰고 애써야 된다. 천국은 힘쓰는 자가 얻는다고 하였다.

 

4. 영적 화복과 육적 화복,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인간은 누구나 재앙이나 화 받는 것을 싫어하고 꺼려한다. 반면에 축복과 혜택 받음을 갈망한다. 그러나 육적으로 축복받는 것보다 영적 축복을 더 중요시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장사하다가 실패하였다고 교회 출석을 안 해 신앙에까지 실패를 한다. 어떤 부인은 계하다가 깨이는 바람에 믿음마저 깨뜨리고 만다. 어떤 분은 아들이 죽어서 땅에 묻으니 신앙마저 묻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므로 육신적 재앙이나 실패를 당할 때 주의해야 한다. 사탄은 그렇게 약하여질 때를 틈타서 그 사람의 심령을 실패시키려고 활약하는 것을 깨닫고 주의해야 할 것이다.

축복에 대해서도 육신적 축복보다 신령한 축복을 더 바라고 원해야 한다. 산상보훈 첫머리에 소개한 8복을 살펴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부자보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기뻐하는 자보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 강폭 한 자보다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 핍박하는 자보다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 등등으로 세상 일반 사물의 이치와는 정반대다. 모순인 것 같다. 이것이 역리적 진리라고 한다.

어리석은 부자는 풍년 들어 좋다고 창고 확장 계획을 세웠지만 먹고 마시다가 더 큰 불행(죽음)을 당하였고, 탕자는 내가 아버지와 하늘에게 죄를 얻었으니라고 회개하며 아들 대접을 받을 수 없으니 품군의 하나로 취급해 달라고 간구하였을 때, 오히려 아들 자리가 회복된 것을 볼 수 있다. 신령한 화복이 육신적 화복보다 더 귀중하다.

5. 영적 생명과 육적 생명, 어느 것이 긴가?

 

"가늘고 길게 사는 것보다 짧아도 굵게 살라"라고 한 격언이 있다. 무가치하게 오래 산다면 오히려 세상에 방해거리가 되고, 식량만 소비하는 신세가 되며, 자녀들에게 걱정거리만 되고 만다.

자기만을 위하여 살다가 죽는다면 칠팔십 년을, 아니 백 년을 살았어도 무슨 가치가 있으며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나 영적 생명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는 가치 있는 생활을 한다면, 다만 삼사십 년을 살아도 인간다운 삶을 살고 죽는다면 그것이 귀중한 것이다.

영적 생명이란 무슨 큰 공훈을 세워야만 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신앙생활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소요리문답 제1문답)라고 하셨으니, 내세울만한 공훈이 없다 해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으면 보람된 삶을 산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그를 기쁘시게 하다가 세상을 떠난다면 비록 소년 시절, 청년시절에 죽었어도 한이 없으리라. 그러나 육적 사업과 생명만을 위하여 살다가 죽었다면 억천만 년 살았어도 한 푼의 가치도 없는 소용없는 노릇이다.

 

결 론 : 동물은 동물적 생활을 하는 것이 당연한 본성이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들, 그리고 육지에 사는 짐승들은 각각 헤엄칠 놈은 헤엄치고, 나는 놈은 날고, 뛰는 놈은 뛰는 것이 자연스럽다. 또한 순리요, 원칙이다.

마찬가지로 영성을 소유한 인간으로서는 영본 생활을 하는 것이 원칙이요 자연스럽다. 반대로 동물적 생활을 하는 것은 역리요, 위반된 일이다. 인간으로서 더구나 믿노라고 하는 우리 성도들은 영본 생활에 힘써 주님 뜻대로 사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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