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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예배 찬송] 부모님 추도예배 찬송가 539장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엘벧엘 2022. 10. 8.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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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추도예배 찬송가 539장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예수님께 소망의 닻을 주라> 6:13-20

 

서론 : ""은 곧 소망을 상징하고 뜻한다.

닻은 배의 안위를 좌우하는 근간이 된다.

배가 항구에 들어가서 소정 장소에 정박하고자 할 때 닻을 내리워서 바다 밑 땅 속에 걸리게 한다. 이 닻만 든든히 내려놓으면 그 배는 웬만한 풍랑과 동요에도 아무 염려가 없다.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무섭게 바람 부는 밤 물결이 높이 설렐 때

우리 주 크신 은혜에 소망의 닻을 주리라

 

이 찬송을 지은 에드워드 모트(E. Moto) 목사는 "굳건한 반석이신 그리스도, 그 위에 내가 서니 모든 땅들은 가라앉는 모래이더라"라는 시 구에 영감을 얻어지었다고 한다.

1. 인생은 소망 중에 산다

 

인생은 소망 중에 산다. 어린이 때에는 청년에 대한 소망! 또 청년 때에는 장년, 노년, 이렇게 우리는 소망 중에 산다.

만일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어서 그에게 아주 소망이 없어졌다고 하면 그는 얼마나 가련한 자인가? 그는 그만 낙심하게 될 터이요, 타락해 버리고, 심하면 무서운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고, 또 정신 이상이 생길 것이고, 적극적으로는 자살까지 하게 된다. 이처럼 소망이 없으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그렇지만 다른 소유가 다 없어졌어도 이 소망만 그냥 남아 있으면 그 사람은 그 소망의 줄을 붙잡고 다시 살아갈 수가 있다.

영국의 유명한 화가 와츠(G. Watts 1817-1904)"소망"이라는 그림을 보면, 둥그란 지구의 위에 한 여인이 눈은 수건으로 가렸고 가슴에는 비파를 안고 앉아 있는데, 그 비파의 선이 다 끊어지고 다만 한 줄만 남았는데 이는 곧 "소망의 줄"이다. 그리고, 그 여인의 머리 위에 작은 별 하나를 볼 수 있으니 이는 곧 "소망의 별"이다. 이 그림은 실망에 빠진 많은 사람을 구원하였다고 한다.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여러 가지 소망의 줄이 끊어진다. 사랑하는 부모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하늘같이 믿던 남편이 일조에 불구가 되거나 죽거나 한다. 흥왕 하던 사업체가 무너지거나 높이 받들렸던 명예가 졸지에 타락되는 등의 일들이 생긴다.

그렇지만, 이 소망의 줄 하나만 우리가 붙들고 있다면 그 소망의 즐 하나로써 능히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성경에는 소망을 가르쳐서 "영혼의 닻"이라고 하였다. 우리 인생들의 심령이 풍파 높은 세상을 지나갈 때에 어떤 때에는 큰 폭풍을 만나나 이 생명의 닻을 깊은 바다 밑에 꽂나 놓으면 아무리 풍파가 심해도 우리의 심령선은 깨어지지 않는다. 이 닻줄은 소망의 닻이기 때문이다. 만일에 이 소망의 닻줄이 끊어지면 배는 이리저리 시험의 풍파에 휩쓸려 떠내려가다가 보이지 않는 암초에 언제 충돌하여 파선될지 모른다. 그러므로, 인생은 소망이 있어야 산다. 이 소망은 곧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산 소망이시다.

 

벧전 1:3"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곧 예수님은 우리의 산 소망이시다.

근래에 자살자가 많이 생겨난다. 남녀 별로 보면 남자가 70% 이상이며, 연령별로 보면 15-24세까지가 32.6%, 25-34세까지가 22.5%인데, 한창 성장하며 희망이 가장 크고 아름다운 청년 학생들이 많고, 무식층 보다 지식층이 더욱 많다는 통계다.

가령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소망을 물질과 돈에다 둡니다. 그러다가 돈이 없어지면 쉽게 실망한다. 어떤 사람은 소망을 사람(친척·친구·선배 등)에게 두었다가 그 사람이 실패하거나 변심되면 그의 소망은 산산이 깨지고 만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사업체, 기관, 또는 자기 기술, 지식에 둔다. 그러나, 그것은 바람을 잡고 그림자를 붙드는 격이다.

특히 스타, 챔피언, 금메달리스트 등이 소망을 반짝 빛나는 현재 인기에 두나 그것은 순간 후에(길어야 몇 해 후에) 끊어지고 사라지는 소망이다.

요I 2:15"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라고 하였다. 세상 것은 모두가 인간에게 속하였기 때문에 풀과 같이 말라지고 꽃과 같이 시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3. 예수 그리스도는 천국의 소망이시다.

 

어떤 사람은 소망을 한 몸이나 가정에 국한된 작은 소망을 가지며, 어떤 사람은 세계적 대 소망을 가지고 활동한다. 크나 작으나 이 세상 소망은 다 헛되니 참된 소망은 천국의 소망뿐이다.

나사로를 박대하던 부자는 매일 먹는 진수성찬의 호화로운 생활로 제 소망을 성취하였으나, 한 번 죽어 지옥불에 떨어지고 보니 고대광실, 문전옥답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인간의 역사는 피 흘리는 전쟁의 역사다. 통계적으로 보면, 역사의 45%가 전쟁사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탄압 밑에 살면서 만주사변, 상해사변이 일어날 때 일본이 패망하던 한 민족이 살아나리라 소망하였더니 일본이 이기고 나니 낙망하였다. , 제2차 세계대전이 치열할 때 일본 독일이 삼국이 패망하면 세상은 참 살기 좋으리라고 생각하였는데, 생각한 대로 일본 독일이 패망하였고, 한국 민족은 해방을 맞이했으나 미국과 러시아가 적대되어 으르렁거리고 3차 대전을 바라보고 있으니 세상에 붙은 소망은 소망이 아니요, 절망뿐이다.

 

세상의 믿던 모든 것 끊어질 그날 되어도

구주의 언약 믿사와 내 소망 더욱 크리라

이 세상에서 믿던 물질적인 것이나 육체적인 것은 다 끊어질 날이 이른다. 인간이 믿고 살던 기업체, 가족, 정권, 국가 까지라도 끊어지는 그날이 있으리니 과연 이 세상 것으로 소망을 삼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께 소망의 닻을 주는 것은 예수님을 안식의 근거지로 삼고 평안히 쉬는 것을 말하나니, 이는 우리가 죄 많은 이 세상을 떠나 주께로 가서 영원 안식을 바라면서 영혼의 닻을 주님께 드리움이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11:25)고 하였으니, 과연 예수 그리스도는 천국의 소망이다.

 

예수의 이름은 세상의 소망이요

예수의 이름은 천국의 기쁨일세(91 후렴)

 

과연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붙들고 사는 동안에는 이 세상에서 큰 소망이 되며 그 소망 붙들고 사는 자는 천국을 차지하리라.

 

결론 : 파란곡절이 물결치듯 하고 환란이 벼락 치듯 이는 이 세상에서 소망의 닻을 예수님께 두고 이 고해를 건너가다가 "이 세상 이별하는 날 주께로 가리라"하고, 영원한 천국의 소망이 성취되어 거기서 길이길이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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