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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3장 설교말씀] 솔로몬 왕의 빛나는 지혜(왕상 3:16-28)

엘벧엘 2022. 11. 26.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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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3장에서 솔로몬 왕은 하나님의 지혜를 받았다. 솔로몬은 지혜로운 판결을 내리게 된다. 두 여자가 솔로몬에게 왔을 때 아이의 죽음에 대해서 누구의 아이가 진짜 엄마인지를 판결해 주었다. 이런 솔로몬의 지혜가 사방으로 퍼져나가서 에티오피아 여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솔로몬 왕의 빛나는 지혜(왕상 3:16-28)

 

여기에 솔로몬의 지혜의 한 사례가 있다. 그것은 이제 막 그에게 주어진 그 은사가 그에게 현실적인 힘이 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 증거가 주어졌다. 그것은 그 나라의 어떤 비법이나 고문기관의 정책도 분명 그것우수했을 것이다. 솔로몬의 지혜는 소송 사건의 판결로부터 주어졌다. 왕들은 그런 사건은 재판관들에게 맡길 수 있지만, 자기들이 직접 사실을 심리한다고 하여 그것이 자기들의 존엄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Ⅰ.법관들이 아니라 당사자들에 의해서 소송이 제기되었다. 당사자들은 여자였으나, 솔로몬과 같은 통찰력 있는 눈으로는, 본인들의 태도로 보아 옳고 그름을 구별하기가 쉬웠다.

이 두 여인은 창기였으며, 공동 주택에서 살았다. 그리고 그들의 남편에 대한 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들의 아기들은 사생아일 것이라고 보는 자들도 있다. 이 사건은 솔로몬 앞에까지 오기 전에 이미 하급 법정에서 다루어졌음이 틀림없다. 그 재판관들이 결정할 수가 없어서 솔로몬의 지혜로 그것을 결정하는 것이 급기야 더 잘 처리되는 것으로 여겼다.

이 두 여인은 같은 집에 살고 있으면서, 3일 간격으로 아들을 낳았다(17, 18절). 그들은 너무나 가난해서 하녀나 간호할 사람이 없었다. 또 그들은 창녀들이어서 멸시를 받았으므로, 친구나 친척을 동반할 수가 없었다. 그들 중의 한 여인은 밤중에 어린아이를 깔아 죽이고 나서, 다른 아이와 바꾸었다(19, 20절). 이에 다른 여인은 곧 크게 속았음을 알고 시비를 가리려고 공의(公義)에 호소했다(21절).

 

1. 어린아이들 때문에 야기되는 근심이 얼마나 많으며, 또 그들의 생명이 얼마나 불확실하며, 그리고 그들은 얼마나 많은 위험을 끊임없이 당하고 있는가를 알자. 유아기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다. 그리고 처음으로 켜진 그 생명의 등불은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곧 꺼지기 쉽다.

 

2. 당시의 사생아들은 오늘날 흔히 겪는 형편보다는 훨씬 좋았다. 그 당시 창녀들은 자기 아이들을 사랑하고, 보살피고, 그들과 떨어져 있는 것을 퍽 싫어했다. 한편 오늘날 사생아들은 먼데 보내어지고 자녀들이 받는 특권과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예언된 일이다. 즉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그 때에 사람들은 본성적인 애정도 잃을 것이라고 했다(딤후 3:1, 3).

 

Ⅱ. 사건 해결의 난점은 무엇인가? 최종적으로 판정을 내려 주기를 호소하는 문제는 살아 있는 어린아이의 어미가 누구냐 하는 것이다. 바로 그 문제가 법정에 제기된 것이다. 두 어미는 맹렬하게 권리를 주장하며, 이에 크게 우려하고 있었다. 두 여인이 다 같이 고집에는 완강했다. 한 여인은 “이 아이는 내 아이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다른 여인은 “아니오, 이 애는 내 애요”라고 주장했다. 살아 있는 아이를 기르는 것보다는 죽은 아이를 매장하는 것이 비용이 덜 들건만, 어느 누구도 죽은 아이를 갖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들이 애써 갖고자 주장하는 것은 살아 있는 아이였다. 살아 있는 아이는 부모의 소망이 되기 때문에, 부모의 기쁨이 된다. 그런데 죽은 아이도 그들에게 기쁨과 소망이 될 수 있을까?(렘 31:17 참조)

그런데 문제는 어느 편에도 증거가 없다는 사실이다. 가령 이웃 사람이 아이들의 출생과 할례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더라도 이들을 구별할 수 있을 만큼 자세히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사자들에게 고문을 가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야만적인 것이 되었을 것이다. 정당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완고한 여자가 자기에게 유리한 재판을 원한다. 위증을 제시하는 편에는 가책조차 없다. 재판관이나 배석 판사들은 이처럼 거짓이 숨겨져 있을 때 진실성을 발견할 지혜가 필요하다.

 

Ⅲ. 사건의 결말. 솔로몬은 양쪽이 주장하는 것을 정성껏 듣고 증거를 종합했다(23절). 그러자 온 법정은, 솔로몬의 지혜가 진실성을 찾아내는 데 어떤 과정을 밟는가 하고 기대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무슨 말이 떨어질는지 모르고 있는가 하면, 다른 이는 아마도, 제비를 뽑아 결정되는가 했다. 그러나 솔로몬은 칼을 가져오라고 시켜서 두 쟁론자에게 살아 있는 아이를 칼로 잘라 나눠 가지라고 명령했다.

 

1. 이것은 그 사건을 우스꽝스럽게 해결하려는 듯이 보였다. 즉 풀 수 없는 매듭을 칼로 잔인하게 잘라 버리려는 듯이 보였다. 명철한 판관들은 “이것이 과연 솔로몬의 지혜란 말인가?” 하고 솔로몬이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도 생각해 보지도 않고 비웃었다. 이렇듯, “왕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잠 25:3). 사실 율법에는 살아 있는 황소와 죽은 황소를 반분하라는 법이 있기는 하나(출 21:35), 그것이 이 사건을 해결할 수는 없다.

 

2.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이 진실성을 발견하는 데 유효 적절한 것임이 판명되었다. 솔로몬은 두 여인의 외모와 말하는 투로 보아, 이와 같은 실험을 하기 전에 이미 사실을 분명히 분간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모든 참관자에게 만족감을 주었고, 거짓 주장자를 잠잠케 할 수 있었다.

참된 어미를 찾아내기 위해 아이가 어느 여인을 가장 사랑하는가는 시험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어느 여인이 그 아이를 가장 사랑하는가를 시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실로 두 여인은 모성애를 가장했으나, 그 아이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그들의 성실성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1) 그 아이가 자기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여인은, 아기가 자기 것이라는 쟁론을 벌이면서도 체면 지키기에 급급하여, 반분한다는 점에 만족했다. 자기 아이를 깔아 죽인 여인은 진짜 어미가 이 아이를 갖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이러한 결과가 가져오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해 아무런 관심조차 안 가졌다. 즉 “내 것도 네 것도 되지 못하게 하도록 나누게 하소서” 했다.

이리하여 그 여인은 자기의 권리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는 솔로몬이 그러한 사실을 알면 어떻게 하나 두려워한 것 같다. 비록 그녀는 자기의 본심이 폭로된 것을 조금도 모르고 있었지만, 솔로몬은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에 이 여인이 진짜 어미라면, 이와 같은 피비린내 나는 결정에 그렇게 빨리 동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 그러나 어린아이가 자기 아이라고 알고 있는 여인은, 어린아이가 도살당하는 것보다는 그 아이를 자기의 대적에게 주어 버리려 했다. 그 여자의 우는 소리는 얼마나 애처로운가? “오! 내 주여, 그 산 아이를 저에게 주소서”(26절). “그 아이를 전혀 못 보게 되기보다는 차라리 그 여인의 것으로 되게 하소서.”

그 어린아이에 대한 순정으로 보아, 그 여인은 어린아이를 깔아 죽인 여인과 같은 무정한 어미가 아니라, 살아 있는 아이의 진짜 어미이며, 자기가 낳은 자식에 대한 애정 때문에 차마 죽음을 볼 수 없는 진짜 어미였음이 판명되게 되었다.

“사건은 명확하다. 더 이상 무슨 증거를 필요로 하리요”라고 솔로몬은 말했다. 곧 “이 여인에게 산 아이를 주라. 여러분이 모두 보는 바와 같이, 이 거짓 없는 모성애로 보아 이 여인이 그 아이의 어미다”라고 했다.

부모들이여, 어린아이들을 잘 보살펴서, 특히 그들의 영혼을 잘 보살펴 줌으로써, 자기들의 사랑을 보여 주도록 하되, 특히 거룩한 맹렬함으로 그들을 타는 불 속에서 끄집어낸 부지깽이처럼 여기고 사랑하라. 자녀들에게 의무를 다하는 사람들은 자녀들에게 위안을 주는 사람과 같은 사람이다. 사탄은 사람의 마음을 유혹하여 하나님과 나누어 가지는 것을 기뻐하는 거짓된 자임을 알 수 있으나, 그 마음을 의로운 주권이 지배하는 자는 마음을 통째로 가지든가 아니면 아예 가지지 않는다.

 

Ⅳ. 이러한 일과 솔로몬의 지혜의 여러 가지 사례로 인해, 솔로몬은 자기 백성들에게 큰 명성을 얻어 그의 나라를 평안하게 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그들은 왕을 두려워하였다”(28절). 또 높이 받들어, 그를 거역하는 일은 감히 하려고도 못 하고, 불의한 일은 두려워서도 못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솔로몬 앞에 나타나면 모든 것이 분명히 드러나게 됨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지혜가 그(솔로몬) 속에 있음을 알았으니”, 곧 그 지혜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것이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였다”(전 8:1). 이는 그에게 있어서 “병기보다 나았다”(전 9:18). 이로 말미암아 그는 백성들에게 두려움과 사랑을 다 같이 받았다.

[역대하 4장 히브리어 성경강해] 솔로몬이 놋으로 제단을 만듦(대하 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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