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도 회개해야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분노한 얼굴로 그들에게 향하지 않는다고 했다. 만약에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할 수밖에 없다.
유다 백성의 회개 촉구와 축복(렘 3:7-18)
성 경: [렘3:7] 바오마르 아하레 아쇼타흐 에트 콜 엘레 엘라이 타슈브 비로 쇼바 바테레 바테레 바고다 아호타흐 예후다
오히려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 이 구절에는 이스라엘이 이방 제사 의식에 깊이 중독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로 인해 몇 가지 시련을 당하고 난 후 여호와께로 돌아왔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다. 한편 남유다는 이스라엘의 범죄와 멸망에 넋을 잃고 흥미진진하게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구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유다의 반응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성 경: [렘3:8] 바에레 키 알 콜 아도트 아세르 니아파 미쉬바 이스라엘 쉴라히티하 베에텐 에트 세페르 키리티테하 엘레하 비로 야리아 보게다 예후다 아호타흐 바텔레크 바티젠 감 히
내가 그를 내어 쫓고 - 여기에는 B.C. 722년에 사마리아 성이 앗수르 군대에 의해 함락되는 역사적 사실이 지적되고 있다(왕하 17:1-6). 그러나 사마리아 멸망 전에도 이미 북이스라엘 왕국은 앗수르의 침공에 시달렸다(왕하 15:19). 디글랏 빌레셀 3세(B.C. 745-727년) 당시의 앗수르 군은 이스라엘 대부분의 도시들을 정복하고 수많은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갔다(왕하 15:29). 이는 북이스라엘의 배도에 대한 값비싼 대가였다. 그러나 유다는 언약을 어진 이스라엘의 심판을 목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우상 숭배에 빠져든 것이다.
성 경: [렘3:9] 비하야 미콜 지누타흐 베테하나프 에트 하아레츠 베티니아프 에트 하에벤 비에트 하에츠
돌과 나무로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 본절의 주체는 8절과의 연관 속에서 보면 유다인 것 같고, 10절과 관련지어 보면 이스라엘인 듯하다. 문맥상 전자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겠다. 유다의 배도는 아주 심각한 것이어서 여호와의 언약 조항을 잊었을 뿐만 아니라 우상 숭배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것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한편 가나안 종교에 있어 주요 관심사는 풍요와 성(性)에 있었는데, 따라서 그 제사 의식도 주로 땅, 짐승, 여인의 다산(多産)을 빌기 위한 목적에서 수행되었다(Feinberg). 본절에 언급된 돌과 나무 역시 그들의 주요 숭배 대상이었다.
성 경: [렘3:10] 베감 비콜 조트 로 쇼바 엘라이 바고다 아호타흐 예후다 베콜 레바흐 키 임 베세케르 니임 아도나이
진심으로...아니하고 거짓으로 할 뿐이니라 - 이스라엘이 언약 파기로 인해 심판을 초래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유다는 진심으로 여호와께로 돌이키지 않고 그 흉내만 내었다. 아마 예레미야는 여기서 요시야의 개혁을 염두에 둔 것 같다. 그렇다면 이 구절은 B.C. 622년 이후와 관계된다. 유다는 므낫세 통치 이전 즉 사마리아 멸망 때까지는 이스라엘보다는 우상 숭배에 덜 물들어 있었다. 그 이후 유다의 종교적 타락은 급속도로 심각해졌다. 그러나 요시야의 개혁과 더불어 유다는 다소 바른길로 들어서는 듯하였으나 예레미야에게는 이것이 피상적인 것으로 보였다. 종교 개혁으로 말미암아 종교적 행사는 활발했을지 모르나 참된 회개는 부족했던 것이며 예레미야는 이에 환멸을 느꼈던 것이다(5:20-31; 6:16-21; 7:1-15). 이 구절의 연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율법책이 발견되기 전, 즉 요시야가 그의 개혁 운동을 강화하기 이전에 나온 것으로 보고 있으나, 그보다는 종교 개혁 조치의 초기 실패를 지적하는 것으로 보고 이 구절을 B.C.622년 이후의 내용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성 경: [렘3:11] 바요메르 아도나이 엘라이 치다카 나피샤흐 미쉬바 이스라엘 미보게다 예후다
배역한 이스라엘은...오히려 의로움이 나타났나니 - 여기서는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비교 논쟁이 언급된다. 즉 배역한 이스라엘이 패역한 유다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범죄 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유다는 북이스라엘이 당한 사건으로 경고를 받았음에도 자기 길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 경: [렘3:12] 아도나이 로 에필 파나이 바켐 키 하시드 아니 니임 아도나이 로 에포르 리올람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 히브리어 원문상으로 언어유희가 쓰였다. 그래서 이를 살려서 번역하면 '돌아선 이스라엘아 돌아서라'라고 할 수 있다. 이 구절은 자기 백성이 뉘우치고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하나님의 부성애적인 사랑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내용이다. 여호와는 자비하시고 그 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신다. 한편, 여기에는 사마리아에 임한 심판이 너무 심했다거나 또는 적절치 않았다는 의미는 전혀 없다. 따라서 유다가 더 악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용서받는다는 논리도 성립되지 않는다. 여기서 지적되고 있는 핵심은 유다의 오랜 죄악에도 하나님이 참고 기다렸다면, 심판을 받은 이스라엘이 돌아오기만 하면 어떻게 용서함을 받지 못하겠는가 하는 내용이다(Thompson, Harrison, Nicholson).
성 경: [렘3:13] 아크 디이 아오네크 키 바아도나이 엘로하이크 파샤아티 바티파지리 에트 데라카이크 라자림 타하트 콜 에츠 라아난 우비콜리 로 쇼마이템 니임 아도나이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듣지 아니하였음이니라 -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하는 장면으로서 세 가지 회개 사항이 지적되고 있다. '듣지'에 해당하는 '솨마'는 그냥 말씀을 듣는 것뿐만 아니라 그 말씀에 순종하여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을 뜻한다. 이런 지적의 배경에는 순종하면 축복이요, 불순종하면 저주라는 신명기적 언약관이 자리 잡고 있다(신 28:1,2,15). 여호와의 언약 백성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사항은 그 언약에 순종하는 것이며, 그 외 다른 방식에 의해서는 언약 백성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Thompson, Harrison, Nicholson).
성 경: [렘3:14] 슈부 바님 쇼바빔 니임 아도나이 키 아노키 바알리티 바켐 비라카히티 에트켐 에하드 메이르 우쉬나임 미미쉬파하 비헤베티 에트켐 치욘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 - '남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알'은 '주인(남편, 주)이 되다'라는 뜻으로 가나안 신 바알과 음가가 같은 동사를 사용한 언어 유희인 바, 하나님만이 참된 보호자가 되실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나는'(아노키)이란 1인칭 대명사를 사용하여 강조하고 있다. 즉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신부로 삼아주신 것이다(2:2; 호 2:2).
하나와 ...둘을...데려오겠고 - 이 말은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가 있는 것을 전제로 한 지적이다. 그런데 이것은 전체적인 귀환을 가리키지 않고 각 성읍에서 하나와 각 족속 중에서 둘을 데려오는 정도의 극히 부분적 귀환이다. 이는 곧 하나님의 가장 자비로운 부르심에 응답하여 회개하는 자들이 소수에 불과할 것임을 시사한다. 한편 여기서 북이스라엘 사림들의 귀환은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시온'은 통일 왕국 시대에 정치, 종교의 중심지였다. 북쪽 포로들이 시온으로 돌아오면 이스라엘 전체가 다시 통합될 것이며 성소 역시 하나가 되어 정치적, 민족적 분단이 제거됨과 동시에 하나의 백성, 한 분 하나님만이 있게 되는 것이다.
성 경: [렘3:15] 비나타티 라켐 로임 킬리비 비라우 에트켐 데아 비하시켈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주리니 - 회복 시대의 주요 특징 중의 하나가 언급되고 있다. 즉 다윗처럼(삼상 13:14) 여호와의 마음에 합하는 통치자가 여호와의 뜻에 따라 백성을 통치하게 될 것이다(23:1-6; 겔 34:23; 37:24). 한편 예레미야는 여태까지 심판을 선포하다가 여기서는 은혜 장면으로 넘어간다. 어쩌면 하나님의 심판을 엄숙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이러한 은혜로운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 인기를 누리던 낙관적 선지자들은 심판 예언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그랬기 때문에 심판 이후에 도래할 은혜 역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들에게 있어서는 심판이란 없었고 오직 '값싼 은혜'만 있을 뿐이었다(27:16; 28:2-4).
성 경: [렘3:16] 비하야 키 티리부 우피리템 바아레츠 바야밈 하헴마 니임 아도나이 로 요미루 오드 아론 베리트 아도나이 비로 야알레 알 레브 비로 카루 비로 이피코두 비로 예아세 오드
회복 시대의 그림이 이제 더욱 확대되고 있다. 이는 두 가지 면에서 묘사되고 있는데 첫째는, 주의 백성이 '이 땅에서 번성하는 것'이요, 둘째는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도 생각지도 만들지도 아니한다는 것'이다. 이 예언은 1차적으로 포로 귀환 후의 상황에 관한 내용으로 보기도 하지만, 예언의 복합 성취라는 관점 및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근거로 볼 때 메시아 시대의 상황에 관한 언급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1) 구원받은 남은 자의 증가와 번영은 메시아 시대의 특징으로 묘사되는 사항이다(23:3 참조). (2) 언약궤는 이스라엘 종교의 최고 상징이었던 바 그것이 필요 없게 된다는 것은, 옛 신앙의 청산과 새로운 예배(요 4:23)의 시대가 열림을 암시한다. 언약궤는 B.C. 586년 예루살렘 함락 당시 소실되었거나 바벨론에로 탈취되어 갔을 것인데, 52:17-23의 전리품 목록에서 빠진 것으로 보아 소실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성 경: [렘3:17] 바에트 하히 이키리우 리루샬람 키세 아도나이 비니키부 엘레하 콜 하고임 리셈 아도나이 리루샬람 비로 일리쿠 오드 아하레 쉬리루트 리밤 하라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보좌라 - 16절에 이어, 선지자는 예전에 언약궤가 지녔던 의미 곧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는 보좌(왕하 19:14,15; 시 80:1)로서의 의미를 예루살렘 자체가 갖게 될 것임을 예언한다. 이 또한 1차적으로는 포로 귀환 후 재건될 예루살렘 성전에 언약궤가 없지만 예루살렘이 여호와 신앙의 중심지가 될 것임을 예언한 내용이며, 더 나아가서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 곧 영적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하겠다(갈 4:26;히 12:22).
성 경: [렘3:18] 바야밈 하헴마 옐리쿠 베이트 예후다 알 베이트 이스라엘 비야보우 야히다브 메에레츠 차폰 알 하아레츠 아세르 히니할리티 에트 아보테켐
유다 족속이 이스라엘 족속과...이르리라 -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재통일에 대한 약속은 이미 B.C. 8세기 선지자들이 선포한 바 있는 주제이다(호 3:5; 미 2:12). 이러한 재통일은 두 왕국이 멸망하여 포로로 잡혀가는 고난을 겪은 후에야 마침내 이루어질 것이다(사 11:1--16; 겔 37:15-28). 어떤 주석가들은 이 구절을 보아 후대인 포로기 이후에 삽입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용어나 사상이 예레미야의 사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23:1-8). 한편 본절의 예언은 1차적으로 포로 귀환을 통해 성취되었으며, 보다 궁극적으로는 여호와의 선택하신 바 메시아의 은혜로운 통치하에서 온전히 이루어질 것이다(사 11장; 겔 37장; 슥 8장 등).
[헬라어 성경 누가복음 3장 강해] 세례 요한의 복음 선포 말씀(눅 3: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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