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장 주석 성경강해 말씀은 가인의 제사를 여호와 하나님이 받지 않고 동생인 아벨의 제사만 받았다고 화를 내어 아벨을 죽인 성경 최초의 살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께 저주받아 방황하는 삶을 산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끊어진 구속사의 대를 잇기 위해서 아벨 대신에 셋을 아담에게 주었습니다.
가인의 살인과 저주 및 셋의 출생(창 4:9-26)
V. 첫 범죄자에 대한 공판과 정죄 4:9-12
1. 가인에 대한 심문(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가인이 스스로 자기 죄를 고백할 수 있도록 그에게 물으신다. 그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으려 하는 자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비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죄를 뉘우치는 자들은 그렇게 할 것이다.
2. 가인의 항변(9)
그는 죄가 없다고 주장하며 살인죄에 반항의 죄를 더한다. 여기서 다음 두 가지 점을 살펴보자. 첫째, 그는 계획적인 거짓말로 계획적인 살인을 감추려고 애쓴다.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이와 같이 마귀는 처음부터 가인 안에서 살인자요 거짓말쟁이였다. 이상하게도 눈이 먼 사람들은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에게서 자신의 죄를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며 또한 마음이 강퍅해진 사람들은 고백하기만 하면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에게서 자신의 죄를 감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둘째, 그는 하나님께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무례하게 자신의 재판관을 어리석고 불의한 자로 비난한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내가 바로 내 아우를 죽인 자가 아닙니까" 라고 자책하며 말했어야 했다. 혹자는 그가 마치 "당신이 그를 지키는 자가 아닙니까? 그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지 그를 지킬 책임이 없는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는 식으로 하나님과 그의 섭리를 비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형제들을 돌보는 일에 무관심한 자들은 그 형제들의 신체나 재물 혹은 명성이, 특히 그들의 영혼이 손상되는 것을 예방해야 할 때가 되면 사실상 가인과 같은 말을 한다(레 19:17; 빌 2:4)
3. 가인의 유죄 선고(10)
그의 말을 반대하는 증거가 논의의 여지가 없을 만큼 명백하다. 네 아우의 핏 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하나님은 자신의 지식이 가인에 대하여 불리한 증거를 하기 저네 마치 피 자체가 증인이고 고발자인 것처럼 말씀하신다. 여기서 다음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살인은 하나님께 가장 크게 울부짖는 죄이다. 인내로 고난을 받은 자들은 용서를 위하여 부르짖었지만(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그들의 피는 원수 갚음을 위하여 부르짖는다. 둘째, 하나님은 피가 땅에서부터 호소한다고 말씀하셨다. 곧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11절). 셋째, 원문에서는 그 단어가 복수로 쓰여 네 아우의 '피들이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지금 죽은 자의 피뿐 아니라 그의 후손으로 태어날 수 있었을 뻔한 모든 사람들의 피도 또한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피가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히 12:24). 아벨의 피는 원수 갚음을 위하여 호소하였지만 그리스도의 피는 용서를 위하여 호소하였다.
4. 가인에게 내려진 선고(11)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라.
(1) 그는 저주를 받았다. 아담의 불순종에 대한 저주는 땅에 대한 것, 곧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으리라'는 것으로 한정되었다. 그러나 가인의 반역에 대한 저주는 즉시로 그 자신에게 떨어졌다. '네가 저주를 받으리라'. 사실 우리 모두가 다 이 저주를 받아 마땅한 존재들이다. 신자들이 이 저주에서 구원을 받고 축복을 상속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다(갈 3:10-13)
(2) 그는 땅으로부터 저주를 받았다. 가인은 자신이 자기 몫으로 선택하고 마음을 둔 곳에서 자신의 형벌을 발견하였다. 우리는 땅에서 두 가지의 것을 기대한다. 그것은 음식물과 정착이다. 그러나 이 저주로 인하여 가인은 땅에서 기대할 수 있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박탈당했다. 그러므로 땅에서 나는 음식물이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그가 그러한 것을 누려 왔고 특별히 그의 직업을 생각해 볼 때 이 사실은 그에게 저주였다.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또한 땅에서의 정착이 그에게 거절된다.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그는 이 저주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수치와 비난을 받게 되었으며 그 자신의 마음속 또한 끊임없는 불안과 공포가 일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자신의 범죄한 양심이 그가 어디로 가든지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힐 것이고 그로 하여금 두려움으로 전전긍긍하게 만들 것이다. 가슴속에 스스로 불안을 품고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어디로 간다고 해서 어떤 안식을 얻을 수 있으며 정착할 어떤 곳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이처럼 마음이 불안한 사람들은 도망자가 될 수밖에 없는 법이다.
이것이 가인에게 내려진 선고였다. 그리고 이 선고에서조차도 그가 즉시로 제거되지 않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그에게 주어졌다는 점에 있어서 거기에는 자비가 뒤섞여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래 참으시며 아무도 멸망하기를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Ⅵ. 이 선고에 대한 가인의 불평과 하나님의 선고의 확정 4:13-15
1. 자신에게 내려진 선고에 대한 가인의 불평(13,14)
그는 이 선고가 엄하고 힘들다고 불평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절망의 말을 토로했다고 여긴다. 아무리 큰 죄와 죄인들이라도 용서의 하나님께로 가면 거기에서 사유함이 있다. 그러나 그 사유함을 단념하는 자들은 그것을 잃고 만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인은 자신의 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또 다른 극단으로 치우쳤다. 사단은 자신의 노예들을 처음에는 뻔뻔스러움으로 다음에는 절망으로 몰아간다. 가인은 사실상 자신이 관대한 취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혹독한 취급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기가 지옥에 던져지지 않은 것을 오히려 놀라와해야 할 지금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소리 높여 항의하고 있는 것이다. 가인은 자신의 불평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자기에게 내려진 선고를 길게 늘어놓는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 세 가지 점을 살펴볼 수 있다. 첫째, 그는 이 선고로 말미암아 자신이 하나님의 은총에서 제외되었다고 생각한다. 둘째, 그는 자신이 이생의 모든 위로에서 추방되어 결국은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는 '오늘 이 지면에서 쫓겨난 것'이다. 셋째, 그는 이 선고로 말미암아 자신이 모든 인류의 미움과 악의를 받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그가 어디로 돌아다니든지 간에 그는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할 것이다. 적어도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는 의심하는 사람처럼 자기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자기를 쫓는 자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 그의 가까운 친족들 외에 달리 살아 있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자기 동생에게 스스로가 그처럼 야만스럽게 행동했던 그로서는 그들조차 무서워한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는 모든 피조계가 자기를 대적하여 무장했다고 본 것이다.
2. 이 선고에 대한 하나님의 확정(15)
하나님은 심판하실 때(모든 이의를)이기시는 분이다. 여기서 다음 두 가지 점을 살펴보자. 첫째, 가인은 본문의 선언에 의해 진노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우리는 이 선언이 그 당시 존재해 있던 작은 세계 전역에 공포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왜냐하면 가인이 죽으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가 받은 선고(그가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선고)가 좌절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가인의 경우를 통해서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어느 누구든지 하나님의 손에서 칼을 빼앗는 자는 뻔뻔스러운 찬탈 행위를 하는 자이다. 둘째, 가인에게 표를 주사. 이것은 그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구별하고 그가 바로 자기 동생을 죽인 사람이라는 것을 공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Ⅶ. 가인의 후손 4:16-18
여기에는 가인이 하나님께 배척을 받은 후의 기사가 기록되어 있다.
(1) 그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게 되리라는 선고에는 순순히 복종하였다(16절).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 나갔다'는 말은 곧 그가 의도적으로 하나님과 신앙을 포기하고 신앙의 교훈을 받지 않기 위하여 신앙의 특권들을 기꺼이 버렸다는 말이다. 가인은 이제 여호와 앞을 떠나 나갔다. 그가 위로를 받기 위하여 다시 여호와 앞으로 돌아왔다는 기록은 성경 어느 곳에서도 결코 보이지 않는다.
(2) 그러나 그는 자신이 피하며 유리하는 자기 되리라는 선고에는 대항하여 맞서려고 애썼다.
1)그는 자기 땅을 선정하였다. 그는 나가서 '에던 동편에 거하였다.' 이곳은 아담과 그의 경건한 가족이 거주하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그러나 정착하려고 한 그의 시도는 헛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의 영혼이 끊임없는 불안 속에 있었으므로 그가 거주한 땅이 그에게는 '놋땅'(the land of Nod, 즉 흔들림 혹은 떨림의 땅)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들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안식을 얻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유의해야 한다.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난 후 그는 결코 안식을 누리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내 영혼아 네 안식으로 돌아가라. 하나님 안에 있는 네 안식으로 돌아가라. 그렇지 않으면 네가 영원히 쉬지 못하리라."
2)그는 거주하기 위해 성을 건축하였다(17절).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그는 성을 쌓고 있었다'고 읽는다. 즉 그는 늘 성을 쌓고 있었으나 그와 그의 손의 행사에 저주가 내려졌기 때문에 그 일을 완성하지는 못하였다는 말이다. 여기서 다음 몇 가지 점을 살펴보자. 첫째, 하나님의 선고에 가인은 반항한다. 하나님은 그가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만일 그가 회개하고 겸손해졌다면 이 저주가 변하여 축복이 되었을 것이다. 둘째, 가인이 하나님을 버린 후에 무엇을 선택하였는가를 보라. 그는 이 세상에 정착지를 정하여 자신의 영원한 안식처로 삼았다.
셋째, 가인이 끊임없이 자기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공포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여 어떤 방법을 취하였는가를 보라. 그는 자신의 불행을 생각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망치와 도끼 소리로 범죄한 양심의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도성의 건축 사업에 손을 대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분주한 세상사에 몰두함으로써 양심의 가책을 무마시키려고 애쓴다. 넷째, 어떻게 악한 사람들이 종종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선을 제압하며 외적인 번영에 있어서 그들을 앞서는가를 보라. 아담과 금의 복된 가족은 장막에 거하였는데 비하여 가인과 그의 저주받은 종족은 성에 거하였다.
(3) 그의 가족도 또한 늘어났다. 여기에 그의 후손에 대하여 즉 그의 가계의 상속자들이 일곱 대에 걸쳐 기록되어 있다.
Ⅷ. 라멕에 관한 기사 4:19-22
여기에는 아담의 칠대손으로서 가인의 혈통을 타고난 라멕에 관한 몇 가지 기사가 있다.
비록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함으로써 죄를 짓기는 하였지만 그들로 인해 자녀의 축복을 누렸고 그 자녀들은 그들의 경건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발명의 재주 때문에 당대에 유명하게 되었다. 그들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들이었고 발명에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아니면 적어도 무엇을 개량하거나 유익한 어떤 기술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의 자녀들에 대해 고찰해 보자.
(1) 야발은 유명한 목축업자였다.
(2) 유발은 유명한 음악가로서 특별히 퉁소를 연주하는 자였고 고상한 예술 혹은 음악에 대한 규칙을 최초로 고안한 사람이었다. 야발이 사람들로 하여금 부유해지게 만들었다면 유발은 사람들로 하여금 즐거워하게 만들었다. 야발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목양신이었으며 유발은 아폴로신이었다.
(3) 두발가인은 유명한 대장장이로서 전쟁과 농업의 유익을 위해 동철을 다루는 기술을 크게 발전시킨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불과 대장간의 신(Vulcan)과 같은 사람이었다.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은혜를 갖지 않은 사람들도 탁월하고 유익한 많은 재능들을 부여받을 수 있고 그로 말미암아 당대에 유명하고 쓸모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일반적인 재능들은 사악한 자들에게도 주어진다. 반면에 하나님은 세상에서 어리석다고 하는 것들을 자신만의 것으로 택하신다.
Ⅸ. 라멕의 말 4:23,24
여기에 기록되어 있고 필시 그 당시에 이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을 라멕의 이 말에 비추어 볼 때 그는 대체로 저주받은 가인의 종족이 그러했던 것처럼 악한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이 사납고 잔혹한 성격을 갖고 있어서 자기를 방해하는 자는 마구 휘둘러 치며 모두 다 죽이고 마는 사람이라고 공언한다. 그가 어떤 기질의 사람인가, 즉 그가 얼마나 성을 잘 내는 사람인가를 아는 그의 아내들은 혹 누군가 간 그를 죽일까 봐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다.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 누가 나를 공격하든지 간에 나는 개의치 않는다. 나를 공격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에게 본때를 보여 주겠다. 어른이든지 소년이든지 불문하고 죽이리라."
Ⅹ. 아담이 또 다른 아들을 낳음 4:25,26
이 장에서 아담에 대한 언급이 여기에 처음 나온다. 아벨의 살해, 가인의 회개치 않음과 변절이 아담과 하와에게 큰 고통을 주었음을 두말할 나위가 없다. 게다가 그들 자신의 사악함과 과오가 그들을 책망하고 비난하였기 때문에 그 사실들이 더욱더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의 첫 조상들에게 그 고통을 덜어 주는 어떤 것이 있었음을 발견한다.
(1) 그 슬픈 사건으로 그들의 가정이 몹시 흔들리고 약화되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가정을 다시 세워 주셨다.
1)그들은 그들의 후손, 곧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보았다(25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다루시는 섭리 가운데서 그들에게 베푸시는 자비와 온정을 보라.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서 한 가지 위로를 거두어 가실 때에는 그 대신에 다른 위안을 그들에게 주신다. 그런데 그 위로는 그들이 이전에 누렸던 위안(비록 그 위안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생각했을지라도)보다 그들에게 더 큰 축복이 되는 수가 종종 있다. 하나님의 종들을 죽이는 자들은 이러한 수단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이 지치리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스스로 속고 말 것이다. 그리스도는 여전히 자기의 후손을 보실 것이다. 하나님은 돌을 가지고서도 자기를 위한 자녀들을 일으켜 세우실 수 있으며 순교자들의 피를 교회의 씨앗으로 만드실 수 있다. 아담과 하와는 예언자적인 안목으로 이 아들을 '셋'(Seth, 즉 '고정하다' '정해진' 혹은 '놓여진'이라는 뜻이다)이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그의 후손을 통해서 인류가 세상 끝날까지 존속할 것이며 그에게서 메시아가 태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배교의 우두머리인 가인은 방랑자가 된 반면에 참교회의 조상이 된 셋은 정착한 사람이 된 것이다. 참된 정착은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 안에서만이 있을 뿐이다.
2)그들은 그들의 후손의 후손을 보았다(26절).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2)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자기 가정 안에서 신앙이 되살아나는 것을 보게 하셨다.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26절). 만일 선한 사람이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내리는 것을 보지 못하고 또한 자기 후손들이 진리 가운데서 행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면 그가 자기 자녀의 자녀를 본다는 것이 그다지 큰 위로가 되지는 못한다. 이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은 스스로 분발해서 과거에 행했던 것보다 더욱 열심히 신앙으로 살려고 애쓰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자기 골방과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격식을 갖춘 공중 집회를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은 스스로를 구별하기 시작하였다. 난외주에는 그 구절이 이렇게 적혀 있다.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기 시작하였다.' 혹은 스스로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렀다.
[레위기 11장 주석 강해설교] 부정한 동물과 정결한 동물(레 1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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